‘1725명 목숨 앗아간 가습기살균제 참사’…10여년 투병 끝 피해자 1명 사망

환경보건시민센터 활동 언론보도
홈 > 정보마당 > 환경보건시민센터 활동 언론보도
환경보건시민센터 활동 언론보도

‘1725명 목숨 앗아간 가습기살균제 참사’…10여년 투병 끝 피해자 1명 사망

관리자 0 4618

‘1725명 목숨 앗아간 가습기살균제 참사’…10여년 투병 끝 피해자 1명 사망

세계일보 2021.11.23

피해자 고 김응익씨 지난 21일 사망

다른 피해자들, 김씨 전철 밟을까 우려
“합리적 배보상안 제시되고, 가해기업 수용해야”
23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지난 21일 숨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고 김응익 씨의 유가족과 피해자 단체 관계자들이 가습기살균제 생산 기업 처벌과 피해보상 방안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숨을 쉬고 싶어 하셨지만 말씀조차 하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23일 오후 12시10분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 인근.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 고 김응익(64)씨의 아들은 검은 상복을 입은 채 이렇게 말했다. 지난 21일 새벽에 떠난 아버지의 발인을 마치고 이날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한 그는 아버지의 마지막 희망이 가해 기업의 진심어린 사과였다고 말했다. 그는 “저희 아버지는 살아생전에 합의나 이런 문제가 아니라 (가해)기업으로부터 사과 한 마디를 받고 싶으셨다”면서 “하지만 어떤 기업도 행동하지 않았고 끝까지 살고 싶다는 의지를 갖고 계셨던 아버지는 결국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비극이 끝나지 않고 있다. 김씨의 사망으로 가습기살균제 참사 희생자는 이날 기준 1725명(전체 피해 신고자 7598명)이 됐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6·25 전쟁 이후 단일 사건으로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환경 참사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유족과 시민단체들은 김씨가 사망하는 날까지 가해 기업이나 정부로부터 단 한 푼의 배·보상도 받지 못했다면서 피해자 지원, 가해기업 처벌 등 가습기살균제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환경보건시민센터 등 시민단체와 유족,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이날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 인근에서 고 김응익씨 추모행사 및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가습기살균제 원료를 만든 SK케미칼 등 가해 기업들이 사과하지 않고, 정부가 손을 놓고 있는 사이 김씨 사례와 같은 ‘비극’이 이어지고 있다고 호소했다.


유족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김씨는 1997년부터 15년 이상 옥시 레킷벤키저가 만든 가습기살균제(옥시싹싹 뉴가습기당번)를 사용했다. 김씨 가족은 믿을 수 있는 제품이라며 늘 옥시 제품을 구입했고, 거실과 침실 등에서 가습기를 틀 때마다 살균제를 넣었다. 김씨는 2011년 폐섬유화를 동반한 호흡곤란 및 뇌경색을 겪었지만 가습기살균제가 원인일 것이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 김씨는 가습기살균제 문제가 검찰 수사 등으로 공론화된 2016년에야 피해 신고를 했지만 정부로부터 여러 차례 거절당한 끝에 지난해에야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특별법에 따라 정식 피해자로 인정됐다.

 

김씨는 지난해 6월 폐 이식을 받은 뒤 삶에 대한 희망을 이어갔다. 폐 이식 후 “숨쉬기가 너무 좋다”며 좋아했던 것도 잠시, 합병증이 생기면서 김씨의 건강은 다시 악화됐다. 지난 6월에는 위암 3기 진단을 받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김씨는 지난 8월17일 가습기살균제 참사 10주기를 앞두고 SK빌딩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 직접 수술부위를 보여주면서 정당한 피해보상 및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당시 그는 기자회견에서 임기 초에 사건의 진상규명을 약속했던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약속을 지키라고 호소했고, 가해 기업에는 배·보상 계획을 속히 제시하라고 요구했다”면서 “하지만 이 요구는 끝내 관철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씨의 사망 소식을 접한 다른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도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내가 다음 순서가 되지 않을까’란 두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최 소장이 이날 대독한 편지를 통해 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이렇게 말했다. ‘김씨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싶었지만 명복만을 빕니다. 저는 폐활량이 20%라서 (날씨가) 좋은 계절에도 운신이 어렵습니다. 김씨의 전철을 밟아야 할 운명이기에 만감이 듭니다. 어쩌다가 살균제를 사왔는지, 왜 가습기 통에 그 사약을 넣었는지 비통하고 원망스럽습니다. 돌아가신 분도 많고 다가오는 죽음도 피할 길 없는 저와 다른 피해자들을 (가해 기업인) SK, 애경, 옥시에 알려주십시오. 매일 매일이 숨 쉬기에 고통스럽습니다’

 

피해자들은 가해 기업들의 진심 어린 사과를 비롯, 합리적인 배·보상안이 하루 속히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가습기살균제로 지난해 아내를 잃은 김태종씨는 “우리나라에서 1725명이 죽은 사건이 있었느냐. 6·25전쟁 이후 단일 사건으로는 최대의 사망자가 나온 화학테러 사건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나몰라라’하고 있고, 가해 기업 역시 마찬가지다”면서 “가해 기업들은 SK(케미칼)를 비롯해서 애경, 이마트, 옥시,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다 재벌사들이다. 재벌 총수들이 나서지 않고는 배·보상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배·보상을 위해 조정위원회가 구성돼 있는데 피해자들의 어려움을 직시해 합리적인 배·보상안이 제시돼야 하고, 가해 기업들은 속히 이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0 Comments
시민환경보건센터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