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명 넘게 죽었는데 1~2억 벌금? 말이 안 된다"

환경보건시민센터 활동 언론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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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보건시민센터 활동 언론보도

"100명 넘게 죽었는데 1~2억 벌금? 말이 안 된다"

최예용 0 11339
[인터뷰]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 위해 나선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오마이뉴스, 베이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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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4.27 10:43l최종 업데이트 13.04.27 10:43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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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내지는 국가 간 분쟁, 교통사고나 비행기가 떨어지는 것 말고 무차별적으로 다수가 피해를 본 사건 중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사망한 사례가 있나요? 국내에서 환경사건 또는 일반 사회사건에서 이렇게 많은 피해자가 발생한 예가 없어요. 그런데도 사건 발생 만 2년이 돼서도 아무런 대책이 없습니다.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사건들과 비교를 해야만 얘기가 되는 사건인데도 정부나 사회의 관심은 의외일 정도로 없다는 겁니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최예용 소장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사건은 그 어떤 사건과도 비교할 수 없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족들의 건강을 위해 마트에서 생활용품인 가습기살균제를 사서 쓰다가 폐질환에 걸린 피해자들이 386명이나 된다. 그중 120명은 세상을 떠났다. 가습기살균제 피해가 세상에 알려진 지 만 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정부 부처들은 '우리의 책임이 아니다'는 이유로 피해자에 대한 조사도, 대책 마련도 서로 떠밀고 있다. 가해 기업들은 일말의 사과 한 마디 없다.

정부가 있어야 할 자리에 시민단체만이 있었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가습기살균제 피해가 확인된 지난 2011년 여름부터 피해자들과 함께 정부와 가해기업에 피해자 대책 등을 요구하는 활동을 벌여왔다. 이 센터를 이끌고 있는 최 소장은 전국의 피해자들 집을 일일이 방문해 피해 실태를 조사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가족을 잃은 피해자들의 고통과 슬픔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몸소 깨닫게 됐다.

뒤늦게라도 국회가 가습기살균제 사건 해결을 위한 움직임을 시작하면서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다시 언론에 오르내리고 국민들의 관심이 되살아나려고 하고 있는 현재, 하고 싶은 말도, 해야 할 말도 많은 최 소장을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 환경보건시민센터 사무실에서 만났다.

산모도 죽고, 아이도 죽고... "100명 넘게 사망한 초유의 사건"

 1980년대 후반부터 환경운동을 시작한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가습기살균제 사건처럼 피해자가 많이 발생한 환경사건은 처음봤다고 말했다. 석면문제, 페놀사건 등도 굵직굵직한 사건이 있긴 했지만 100명이 넘는 사망자를 발생시킨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라는 게 최 소장의 설명이다.
ⓒ 이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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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소장은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처음 접한 날을 "아주 생생하게 기억한다"고 말했다. 그는 산모들의 원인미상 폐질환의 원인이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가습기살균제라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고 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는 2011년 4월 임산부들이 갑작스레 원인 미상의 폐질환으로 사망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전문가들은 바이러스 침투 등 다양한 추측을 내놨지만, 중환자실에 입원한 산모들은 원인도 치료방법도 찾지 못하고 사망했다. 그리고 같은 해 8월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는 이들 사건을 두고 원인 미상의 중증폐질환이 원인이라고 밝혔다.

"정부조사 내용을 봤더니 어떤 가습기살균제 제품인지에 대한 내용은 없었습니다. 황당했지요. 계속 가습기살균제를 쓰고 있는 사람은 어떻게 하라는 건가요? 추가적인 피해자들을 막기 위해 그 다음날 제품명을 공개하라는 성명서를 내보낸 게 센터에서의 첫 활동이었습니다."

성명서가 나간 뒤 환경보건시민센터 사무실로 피해자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산모뿐 아니라 영유아들의 피해가 많다는 제보들이 잇따랐다.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환경보건시민센터는 가습기살균제 제품 20종을 발표했다. 옥시레킷벤키저의 옥시싹싹가습기당번, 롯데마트의 와이즐렉, 애경의 가습기메이트, 홈플러스의 가습기청정제 등 알만한 기업 제품이 수두룩했다. 

50년 전 독일보다 후진적인 대한민국의 현실 

1980년대 후반부터 환경운동을 시작한 최 소장도 "이처럼 피해자를 많이 낸 사건은 처음봤다"고 말했다. 그는 "석면문제·페놀사건 등 굵직한 사건이 있긴 했지만 정작 피해자가 확인되고 100명 넘게 사망한 사례는 하나도 없다"며 "그나마 1960년 독일에서 불거진 탈리도마이드 사건이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비슷하다"고 전했다.

탈리도마이드는 1950년 후반 독일에서 진정제로 만들어진 약으로 임산부의 입덧방지제로 널리 사용됐다. 동물실험 결과 부작용이 없어 안전하다고 판명돼 독일을 비롯한 50여 개 국가에서 많은 임산부들이 이 약을 처방받았다. 하지만 이 약으로 인해 1만 여명의 아이들이 사망하거나 손·다리가 짧은 기형아로 태어났다.

최 소장은 "탈리도마이드 사건을 계기로 임신 중 특히 초기 3개월은 약을 조심해야 한다는 게 상식이 됐다, 그렇다면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줄 것인지를 생각해봐야 한다"며 "피해대책 부분에 있어선 50여 년 전 발생한 탈리도마이드 사건과 만 2년 전 발생한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별로 다르지 않다, 2년이 지났는데 조사도 진행 안하는 걸 보면 50여 년 전보다 더 후진적"이라고 지적했다.

환경보건시민센터에 따르면 가습기살균제 피해 신고사례는 현재(4월 24일 기준) 사망 120건 등 386건으로 나타났다. 이는 기존 질병관리본부와 환경보건시민센터로 접수된 359건(사망 112건)에서 최근 추가 피해신고사례까지 포함된 수치다. 최근 가습기살균제 피해에 대한 언론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문의하고 신고하는 연락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피해조사는 기약 없이 멈춘 상태다. 가습기살균제 피해가 발생하고 1년이 지난 지난해 말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는 가습기살균제 피해 진상규명을 위한 폐손상조사위원회를 꾸리고 가습기살균제 피해 의심사례로 접수된 사례들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폐 CT 검사·폐기능검사 등의 후속 조사를 벌이겠다는 조사위원들의 뜻을 복지부가 거부하고, 조사위원들이 일괄 사퇴하면서 조사 진행이 중단된 것.

'조사위원들이 주장하고 있는 피해자 후속 조사가 없다면 애당초 조사는 무의미하다'는 게 최 소장의 견해다.

"이미 사망하거나 폐이식할 정도의 중증 피해사례에 대한 조사는 어느 정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건 중증환자의 경우예요. 피해접수 사례의 절반 이상이 경증환자일 텐데 그에 대한 조사가 없습니다. 만약 중증환자의 판단기준으로 경증환자를 판단한다면 '가습기살균제 피해가 아니다'라고 결론 내릴 우려가 크지 않을까요. 그래서 중증환자들에 대한 판단 기준으로 전체를 조사하는 것은 옳지 않을 수 있단 문제제기가 나왔고, 폐CT검사뿐 아니라 폐기능까지 놓고 전반적인 평가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피해조사를 담당했던 복지부를 비롯해 가습기살균제 피해와 관련이 있는 환경부·산업통상자원부(옛 지식경제부) 등은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만 급급한 상황이다. 하루 빨리 마련되고 지원돼야 할 피해대책이 정부 부처들의 '권한 밖'이라는 한마디에 거론조차 되지 않는 것이다.

최 소장은 "정부는 부처 간의 영역과 권한, 이런 얘기를 하는데 솔직히 일반 시민이나 피해자들이 보기에는 웃기는 얘기"라며 "어차피 정부는 하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각 부처마다 고유 영역이 다른데 (부처별로) 걸쳐있는 범부처적인 성격이 한두 가지인가, 그러니까 총리실에서 조정해주고 대통령이 국무회의 때 지시해주는 것 아닌가"라며 "어떤 의미에서는 대통령과 국무총리도 이 사건에 있어 책임을 방기한 것이다, 부처 간의 소통 등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면 국무총리·대통령이 했어야 했다"고 강조했다.

"사람이 죽고, 가정이 완전히 망가졌다"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하고 판매한 기업은 보상은 고사하고 사과 한 마디로 하지 않고 있다. 최예용 소장이 활동하고 있는 환경보건시민센터 한쪽 벽에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으로 몰아넣은 가습기살균제 기업 명단이 담긴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 이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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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대책도, 사과도 없는 상황에서 피해자와 피해가족들은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최 소장은 지난해 초 3개월 간 환경보건시민센터 사람들과 전국을 누비며 피해자들을 만나왔다. 전화로 피해접수를 받았을 때와 달리 직접 본 피해자들의 삶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이었다.

그는 "죽은 아이의 유골함을 납골당에 놓지 못하고 집안에 두고 있는 피해가족들을 보면서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엄청난 일이구나'를 느꼈다"며 "그분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함께 울고 했던 게 이 운동을 끌고 가게 되는 동력이 됐다"고 털어놨다.

피해자들의 울분을 알기에 모두가 무관심했던 시간동안에도 기자회견·1인 시위·피해자 사진전 등을 진행하며 가습기살균제 문제를 끌고 왔고, 피해자들을 대신해 정부 관계자에게 강경한 태도로 문제 해결을 촉구해올 수 있었다.

"사람이 죽고 가정이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그 사람들의 입장을 대변하는데 '제발 조사 좀 해 달라, 잘 좀 부탁한다'고 말하는 건 말이 안 됩니다. 피해자들의 울분과 한을 불과 10%밖에 대변하지 못했어요. 나머지는 이 속에 그대로 쌓여 있을 뿐입니다." 

지금의 현실이 답답한 듯 허탈한 웃음을 짓는 최 소장. 그도, 그와 함께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이끌어 가고 있는 환경보건시민센터 2명의 직원들도 아무런 진전이나 해결이 없는 상황에선 막막하기만 하다. 언론이나 사회의 관심이 없었던 지난해에도 그들은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국민들에게 잊혀 지지 않도록 피해자들과 함께 외로운 싸움을 해야만 했다.

최 소장은 "문제점을 지적하다가도 우리들의 한계를 느낀다. 시민사회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이 정도밖에 안되는구나, 그런 자괴감도 들었다"며 "원래 석면 문제를 집중해서 해왔기에 (석면 문제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돌아가야 하는데, 가습기살균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심정을 전했다.

이어 "지금이라도 다른 환경단체, 보건의료 단체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힘을 실어서 해결되도록 해야 한다"며 "피해자들의 어려운 상황도 이해할 수 있지만 우리가 말하는 건 한계가 있고, 피해자들이 나서지 않으면 대책은 마련되지 않는다, 냉혹한 현실을 피해자들이 다시 한 번 알고 피해 대책 활동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화평법? 제2의 가습기살균제 사건 못 막는다 

제2, 제3의 가습기살균제를 막기 위한 과제는 무엇일까. 최 소장은 "수많은 국민들이 쓰는 생활용품 속에 든 화학물질에 의한 대형사고이니 만큼 이번 기회를 계기로 화학물질 안전관리를 제대로 하고, 그럼에도 발생한 피해를 위한 구제와 보상·피해대책을 제도적으로 갖춰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현재 환경부는 '화평법'(화학물질 평가 및 등록 등에 관한 법률)을 통해 제2의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막을 수 있다고 하지만 실제 그렇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신규화학물질은 유해화학물질관리법으로 컨트롤하고, 기존 써왔던 몇만 개의 화학물질을 관리하기 위한 아주 기본적인 데이터·유해정보 이런 걸 파악하는 수준일 것입니다.

특별히 유해하다고 판단될 경우 조사하거나 등록을 강제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이건 거꾸로 된 겁니다. 화학물질이 유해하다고 확인이 되면 그때 가서 확인하겠다고 하는데, 겉으로는 화학물질을 등록하고 관리한다는 그럴듯한 명분이 있지만 실제 제2의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막을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부정적이에요."

화평법은 국내에 유통되는 모든 화학물질에 대한 위해성 여부를 분석·평가해 그 결과를 정부에 보고·등록하도록 강제하는 법으로 한국판 '리치'로 불리고 있다. '리치'는 유럽연합(EU)의 신화학물질관리제도다. 만일 기업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이 위해물질로 판정이 날 경우 기업은 해당 화학물질을 사용할 수 없으며, 대체물질 사용 등과 같은 대체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화평법은 올해 안에 국회에서 통과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최 소장은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터진 만큼 화평법을 보다 철저하고 완벽하게 만들 수 있는 좋은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과 없는 가해기업에 징벌적 제도 필요"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대통령이 직접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을 만나 사과의 뜻을 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부처가 서로 책임 떠넘기기를 하면서 피해자 실태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은 책임이 바로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무관심했기 때문이라는 게 최 소장의 지적이다.
ⓒ 이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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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장본인인 가해기업에 대한 징벌적 제도도 필요하다. 가습기살균제 제조회사의 상당수가 영국·일본의 외국기업, 덴마크·아일랜드의 수입기업을 비롯해 PB상품을 판 홈플러스·이마트·GS리테일 등 국내 재벌기업인 만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얘기하면서 사과 표명 한 번 안하고 전부 법정 뒤로 숨는 모습을 보면 우리사회 기업들의 사회적 책임이 정말 있기나 한 건지 궁금하다"며 "미국 같은 경우는 사람이 죽지 않아도 커피마시다 화상을 입었다면 몇천만 불을 징벌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비슷한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엄하게 책임을 묻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100명이 넘는 사람을 죽여 놓고 많아야 1~2억의 벌금이요? 말이 안 됩니다. 기업들에 징벌적인 처벌을 할 수 있는 근거조항과 법령이 동시에 확보돼야만 아주 엄한 책임을 물을 수 있어요. 잘못하면 몇천억 벌금에 몇십 년 구속될 수 있도록 해야 기업들이 책임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대통령도 피해자 만나야 한다" 

지난 25일 보건복지부 진영 장관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피해가족을 만나 사과의 뜻을 전하고 국무총리실 등의 협조를 통해 피해자 조사 등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피해조사를 다시 실시한다는 등의 확실한 정부 입장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국회도 피해자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겠다는 뜻은 보였지만, 사건 발생 만 2년 동안 피해자 구제 법안은 고작 한 건에 불과하다. 아직도 피해자 그리고 피해자와 함께 하는 시민단체들이 가야할 길은 첩첩산중이다.

마지막으로 최 소장은 "지난 정부에서 환경부는 작년 환경보건위원회에서 가습기살균제를 환경성질환이 아니라고 했다"며 "새 정부가 들어온 만큼 환경부 장관과의 면담도 진행해서 입장과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박근혜 대통령도 가습기살균제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밝히고 피해자들을 만나 위로해줘야 한다"며 "일정 시간이 지나도 분명한 대책이 안 나온다면 차라리 국민모금을 통해서라도 비용을 만들고 양심적인 학자·전문가들의 민간 차원의 조사라도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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