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20170602] 우리 아이들은 '설험쥐'가 아닙니다. 나라가 지켜야 할 국민이었습니다.

환경보건시민센터 활동 언론보도
홈 > 정보마당 > 환경보건시민센터 활동 언론보도
환경보건시민센터 활동 언론보도

[경향 20170602] 우리 아이들은 '설험쥐'가 아닙니다. 나라가 지켜야 할 국민이었습니다.

최예용 0 4835

2017년 6월2일자 경향신문의 1면과 11면 전면에 보도된 가습기살균제 기사입니다. 6월1일에 이은 경향의 집중 보도입니다. 오늘 11면 기사는 아이 두명을 잃은 대구의 엄마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글입니다. 

 

82f51aa4542583097bfb307e104720d4_1496440305_8776.jpg
 

 

11cd50a0e12a1f8c39a8327991cd0049_1496347480_0911.jpg
 

11cd50a0e12a1f8c39a8327991cd0049_1496347480_2299.jpg
 

82f51aa4542583097bfb307e104720d4_1496440349_5175.jpg
 

 

11cd50a0e12a1f8c39a8327991cd0049_1496347480_3615.jpg
 

11cd50a0e12a1f8c39a8327991cd0049_1496347480_5538.jpg
 

 

ㆍ“세상은 묻습니다, 왜 엄마인 당신은 살아 숨쉬냐고”

ㆍ가습기 살균제로 두 아이 잃은 엄마의 편지 

[가습기 살균제로 두 아이 잃은 엄마의 편지]“길을 잃은 지금, 다시 대통령께 외쳐봅니다”

권민정씨(40)는 둘째와 셋째 아기를 모두 저세상으로 떠나보냈다. 2005년 찾아온 ‘밤톨이’는 세상에 나오지도 못한 채 엄마 품을 떠났다. 이듬해 태어난 동영이는 정체 모를 병과 사투를 벌이다 120여일 만에 천국으로 갔다. 권씨는 밤톨이와 동영이를 임신했을 때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다.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말하는 권씨는 싸움에 나섰다. 각종 기자회견과 토론회에 나가 발언하고 수많은 인터뷰를 했다. 그러나 권씨는 지금 “길을 잃었다”고 말한다. 정부는 동영이가 피해자가 아니라고 판정(4등급)했다. 특정 형태를 띠는 폐섬유화 질환자만 피해자로 인정하고 있어서다. 권씨는 마지막으로 문재인 대통령에게 편지를 썼다. 문 대통령은 대선기간 가습기 살균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법안 마련을 공약했으며 최근에는 참모진에게 공약 실행 방안을 지시했다. 권씨는 “대답이 없을 메아리지만 다시 한번 외쳐본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께 
 

진실과 만나고 싶습니다.  

수많은 인터뷰, 낯선 방송출연을 끝없이 반복했습니다. 아기의 이름조차 되뇌기 아까워 입에 담지 못하며 살아왔지만, 주먹 불끈 쥐고 이 싸움에 동참하리라 결심했을 때는 국가가 도와주리라는 믿음과, 진실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들끓어 오르는 분노를 가라앉히며 가해기업을 벌하리라는 굳은 결심으로 감당하기 힘든 기억과 묻어둔 눈물을 만나기로 다짐했습니다. 
 

경향신문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낸 권민정씨. 권씨는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다 아이 둘을 잃었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제공

경향신문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낸 권민정씨. 권씨는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다 아이 둘을 잃었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제공

그 후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전 지금 길을 잃었습니다.  

저에게 국가는 또 다른 가해자가 되었고, 출발은 했으나 결승지점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길 한가운데 혼자 버려진 듯합니다. 
 

10년도 더 된 일입니다.  

둘째를 임신하고 31주 됐을 무렵 갑자기 배 속 아기의 신장이 하얗게 보인다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병명도 알 수 없었습니다. 2005년 3월26일 저에게 찾아온 아기 ‘밤톨이’의 손을 저는 끝내 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다시 ‘동영이’가 찾아왔습니다. 저의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출산이 다가오면서 동영이의 신장도 밤톨이의 신장처럼 하얗게 보이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반드시 살리고 싶었습니다. 종합병원으로 옮겨 출산을 했습니다. 
 

하지만 동영이는 세상에 나온 지 120여일 동안 수많은 검사와 약 투입을 받아야 했고 주삿바늘, 인공호흡기, 산소마스크, 기관지 확장패치를 달고 있어야 했습니다. 열이 오르고 산소수치는 떨어지면서 동영이는 엄마 품에 제대로 안겨보지도 못하고, 엄마와 눈도 제대로 못 맞추어보고 지금 차디찬 동해 포항바다에 혼자 있습니다.
 

의사선생님은 확실하지는 않지만 유전질환이 의심된다면서 서울의 전문의를 찾아가보라고 추천서를 써 주었습니다. 그 추천서를 쥐고 의사들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렇게 해서까지 제가 다시 아기를 갖고자 한 것은 삶의 잔인한 운명과 다시 만나게 된다면 저 또한 먼저 간 아이들과 같은 길을 가리라는 결심에 흔들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가습기 살균제로 두 아이 잃은 엄마의 편지]“길을 잃은 지금, 다시 대통령께 외쳐봅니다”

소용돌이치는 제 삶에서 막내 아기가 무사히 와 주었습니다. 그렇지만 불안했습니다. 가족력이 없는 ‘유전병’이 언제 발현될지 모른다는 초조함과 두려움 속에 한껏 웅크렸습니다. 아이 둘을 먼 곳으로 보내고도 살아내고 있는 저의 이중성에, 마음이 아픈 것조차 사치였지요. 
 

그런 시간을 보내는 동안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이슈화되면서 충격적인 진실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임신 내내 숨이 가빠왔던 기억, 국내에서는 본 적이 없는 질환이라는 의사선생님들의 난처한 표정, 동영이 머리 위로 달려있던 수많은 링거 병들, 기저귀 무게를 체크하는데 소변조차 나오지 않는 동영이. 서서히 엄마를 떠나가려고 내딛는 아이의 생의 끝자락. 지나간 나날들이 필름영상처럼 뇌리를 스쳐가던 고통스러운 시간 속에 TV를 틀면 어김없이 쏟아지는 가해기업의 광고. 
 

진실을 만나리라 다짐하고 행동에 나선 후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저는 제 아이 이름 옆에 붙은 ‘4등급’이라는 게 뭔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아이에게 이상한 낙인이 찍혀 있는데, 저는 허망하게 주저앉습니다. 저는 ‘죄인’인 엄마입니다. 

못난 제가 가진 삶의 그릇은 협소하기만 하기에, 제 그릇을 넘어선 슬픔을 만날 용기조차 없기에, 저는 TV 속 세월호 화면도, 아픈 아기들도 쳐다보지 못합니다.  

감히 그들의 ‘고통’을 보면서 못난 저는 ‘위로’만 챙깁니다. ‘너만 아픈 것은 아니다’라는….
 

이 편지를 쓰는 이 순간에도 저는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피해자니까 알아달라’ ‘복수의 자격을 달라’고 울부짖으며 누군가 만들어놓은 ‘벽’ 안에 갇혀 있습니다. 소중한 아기에게 유해물질은 걸러주지 못했는데도 끈질기게 살아남은 이 이기적인 엄마의 외침을 신조차도 외면하고 싶은가 봅니다. 가습기 살균제를 사서 가습기에 넣고 작동해 두 아이를 모두 떠나보냈다는 저의 ‘무지함’의 죄. 그 죄를 가해기업과 그런 ‘악의 제품’을 승인해준 정부에 조금만 나누어 달라는 기도는 저의 욕심인가 봅니다. 
 

유해물질이 인체 내에 흡입되면 개인의 신체상태나 여러 조건 환경에 따라 달리 반응하고 판단 내리기가 애매한 문제라는 것을 100%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 사건은 전 세계 유일무이한, 인간이 만들어낸 환경재앙 사건으로, 대한민국이 해결하고 연구해야 할 과제는 확실하다고 봅니다. 피해등급 판정을 확정하기 전 ‘보류’하는 배려, 대한민국 국민의 아픔에 동참하고 진상을 밝혀내기 위해 연구를 하고, 고통받는 국민의 편에 서서 한걸음씩 같이 나아가고자 하는 정부. 그런 정부의 모습은 이제까지 없었습니다. 
 

가해기업으로부터 의뢰를 받아 그들 편에서 유리한 실험조건으로 진실을 외면했던 지식인들도 있었지요. 그나마 그들이 은폐한 실험 결과 보고서가 언론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실험쥐’와 인간의 경우가 완전히 일치되지 않는다 해도, 모체 내 유해물질이 혈액을 돌다가 태반을 통과해 태아의 장기에 이상을 일으켜 기형을 유발한다는 결과가 발표됐을 때, 저는 우리 아기의 억울한 죽음을 엄마가 포기하지 않고 싸워 끝내 진실을 만났다고 목놓아 울면서 안도했습니다.  

그런데 거기까지였습니다. 섣부른 안도였지요.  

‘엄마인 당신은 왜 살아숨쉬고 있냐’라고 묻습니다. 전 의사도 아니고, 환경학자도 아닙니다. 다만 나타난 현상만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제 몸이, 제 삶이, 제 운명이 죄스럽기만 합니다. 
 

피해 ‘등급’은 깨지지 않는 벽이었습니다. 사회적 관심도 이제 이 문제를 떠나려 합니다.
 

약해진 몸을 다잡으려고, 습도 조절을 위해 가습기 살균제에 손을 내밀었던 엄마와 어린아이에게 나타난 피부질환, 심장이상, 면역체이상…. 그 피해자들이 눈물로 호소하고 있습니다. 피해자 편에서 이론을 제시하고 연구하는 몇몇 전문가들의 용기있는 주장이 있지만 세상은 귀를 기울여주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잠들 때까지 하루 종일 화학물질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화학물질과 일상생활은 현실에선 떨어뜨려 놓고 볼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그래서 가습기 살균제의 해결과 연구는 여기서 끝낼 수는 없는 과제입니다. 
 

은폐되거나 축소된 진실에 관심을 주세요.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화학물질 규제에 관한 엄격한 시스템을 만들어주세요. 서로 책임소재를 미루는 이들로 인해 피해자들이 눈물짓는 일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명확한 기준과 체제가 갖추어지길 바랍니다.
 

죗값을 다 치른 줄 알고 또다시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물건을 ‘꿈틀꿈틀’ 내다 팔 궁리를 하는 가해기업에 죽어간 아이들의 가빴던 호흡과 고통, 살고자 했던 애절함, 살리고자 했던 애절함을 그들이 느낄 수 있도록 다시 한번 각인시켜 주세요. 
 

대답이 없을 메아리지만 다시 한번 외쳐봅니다.  

꽃보다 예뻤던 저의 아기 밤톨이와 동영이는 실험쥐가 아니었고 우리나라가 지켜내야 했던 국민이었습니다.
 

대구에서 동영이 엄마 권민정 드림

 

0 Comments
시민환경보건센터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