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후유증으로 목에 구멍 뚫은 4살 나원이 이야기
‘가습기 살균제’ 후유증으로 목에 구멍 뚫은 4살 나원이 이야기
[인터뷰] 나원이 아버지 박영철 씨
4살 나원이는 ‘애경 가습기 살균제’ 사용의 후유증으로 목에 구멍을 뚫었다. 어린나이에 인공호흡기를 오래 꽂다 보니 기도에 문제가 생겨서 호흡보형물을 달지않고 생활이 불가능하다. 나원이는 숨이 가쁜지 계속 깊은숨을 들이 마셨고, 가래 섞인 기침이 나왔다. 아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아버지 박영철(44)씨 표정은 일그러졌다.
박씨 부녀는 7일 가습기 살균제 판매업체인 애경의 전·현직 임원 19명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하기 위해 부산에서 이른 아침에 기차를 탔다. 고발장을 접수하기 직전 박씨는 서울 종로구 혜화동 환경보건시민센터에서 열린 피해사례 발표 기자회견에도 참석했다.
나원이 가족의 눈물 “아이 건강 위해 사용했는데”
기자회견장에서 만난 박씨는 나원이의 상태를 묻는 질문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매일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습니다. 대신 아파줄 수도 없고, (나원이가)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없고···”
나원이는 돌이 지난 후부터 폐 기능이 급격히 나빠졌다. 감기가 심하다 싶어 대학병원에 갔는데 중환자실에 입원했고 인공호흡기를 끼고 치료를 받아야 했다. “나원이가 왜 아픈지 모를 때는 제가 벌을 받는다고 생각했어요. 아이 엄마랑 평생 흘릴 눈물 다 흘린 것 같아요. 이후 의사선생님께서 나영이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증상과 유사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나원이는 쌍둥이 동생 다원이와 태어난 지 4개월이 지난 영유아 때 애경 가습기살균제에 노출됐다. 집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잠시 외할머니 집에서 살면서 아이들을 위해 틀어놓은 가습기가 화근이었다. “나원이 이모가 가습기에 살균제를 섞으면 아이들 건강에 좋다고해서 썼나봐요. 한 겨울 3~4개월 동안 애경 가습기 메이트 제품을 2통 썼데요. 나원이, 다원이 뿐만 아니라 같은 방을 썼던 이모와 이모부도 폐 기능에 문제가 생겨 조사를 신청해놓은 상태에요.”
쌍둥이 동생 다원이는 가습기 살균제 사용 2개월 뒤인 생후 6개월째 폐에 구멍이 생겨 공기가 새는 증상인 ‘기흉’ 수술을 받았고, 나원이는 돌이 지나면서부터 폐가 딱딱하게 굳어 수축하는 폐섬유화가 진행됐다. 나원이는 작년 4월 가습기 살균제 관련 정부 조사에서 1등급 ‘가능성 확실’ 판정을 받았고, 오는 4월 자신의 갈비뼈의 연골을 이식해 쪼그라든 기도를 확장시키기 위한 수술을 앞두고 있다. 당시 같은 방을 썼던 이모와 이모부도 폐 기능에 이상이 생겨 3차 정부 조사를 요청해 놓은 상태다.
“살인기업 애경 임원들, 정당한 처벌 받아야”
환경보건시민센터에 따르면 현재까지 애경이 제조한 가습기 살균제(가습기메이트, 이플러스) 피해자만 380명에 이른다. 이중 사망자는 54명이다. 하지만 이런 피해 상황에도 불구하고 애경 제품에 관한 연구결과 실험쥐에서 폐섬유화 소견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애경 관계자들은 검찰의 기소대상에서 제외됐다.
“아이들이 자라는 상황이라 (언론에) 알리는 게 꺼려졌지만, 애경 살균제를 사용한 피해자들이 상대적으로 경증인 천식 (호흡기 질환)을 앓는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조치도 받지 못한다는 상황을 보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해서 이 자리에 나왔어요. 잘못된 제품을 만들어서 사람들이 아프다면 당연히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최소한 이렇게 아픈 아이들에게라도 진심어린 사과를 해야하는 거 아닌가요.”
피해사례 발표를 마친 박씨 부녀는 서울중앙지검 앞으로 이동해 애경의 장영신 전 대표이사 등 19명의 전현직 임원을 구속 처벌해달라는 내용이 적힌 피켓을 들고 1인시위를 진행했다. 이후 가습기 피해자들과 함께 “영국 옥시레킷벤키저 제품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피해자를 낸 애경 임원들을 처벌해야 한다”며 서울중앙지검에 애경의 전·현직 임원 19명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