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에 대한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이 나온 지난 2월6일 오후 서울 서초동 법원 삼거리에서 환경보건시민센터 주최로 피해자들의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에 대한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이 나온 지난 2월6일 오후 서울 서초동 법원 삼거리에서 환경보건시민센터 주최로 피해자들의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유가족에 대한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첫 판결이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됐다. 원심은 참사를 일으킨 책임이 국가에도 있음을 처음으로 인정한 판결로 주목받았으나, 배상 대상을 일부 피해자로 한정했고 배상액을 소액만 인정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심의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지난 27일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확정했다고 28일 밝혔다. 심리불속행 기각이란, 상고 사건 가운데 상고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되는 사건을 더이상 심리하지 않고 기각하는 것을 뜻한다. 원심 판결 직후 피해자들은 ‘대법원이 판결을 바로잡아 피해자 및 배상책임 이 확대되길 바란다’고 밝혔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유가족 등 13명은 지난 2014년 8월 가습기살균제 제조업체 세퓨 등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1심 법원은 2016년 11월 세퓨의 배상 책임만 인정했다. 국가의 배상 책임에 대해서는 공무원의 고의나 과실에 의한 위법행위가 없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그러나 이후 세퓨가 파산하면서 배상금을 받지 못한 원고 일부가 항소를 제기했고, 지난 2월6일 2심 재판부는 처음으로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2심 재판부는 “환경부 장관 등이 이 사건 화학물질(PHMG·PGH)에 대해 불충분하게 유해성 심사를 했고, 그 결과를 성급하게 반영해 ‘유독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안전성을 보장하는 것처럼 고시했다. 이후 이를 10년 가까이 방치했다”며 “국가가 안전성을 보장한 것과 같은 외관이 형성됐고, 이 때문에 (가습기살균제의) 화학물질이 별다른 규제를 받지 않고 수입·유통돼 지금과 같은 끔찍한 피해가 일어났다”면서 항소한 원고 5명 가운데 3명에게 국가가 300만~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에 대해 원고와 피고 모두 상고했으나 전날 대법원이 심리불속행 기각을 하면서 2심 판결은 최종 확정됐다.

환경단체들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에 대해 국가 책임을 인정한 첫 번째 판결이 확정됐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가습기살균제 문제가 드러난 지 13년, 판매된 지 30년이 됐다”며 “많이 늦었지만 이번 판례를 계기로 정부 각 부처가 어떤 잘못을 했는지 따져 물을 수 있는 계기가 생겼다”고 밝혔다. 이번에 국가 책임이 인정된 폴리헥사메틸구아니딘(PHMG) 계열 가습기살균제 외에 에스케이케미칼, 애경산업 등이 판매한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MIT) 계열 제품에 대한 국가 책임도 본격적으로 따져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강홍구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도 “그간 환경부는 법원 판결이 아직이라는 소극적인 입장을 보였으나, 국가 책임이 명백히 인정된 만큼 앞으로 적극적인 피해 구제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피해자 선정과 피해액 산정에서 한계를 보인 원심이 그대로 확정돼 아쉽다는 평가도 있었다. 

시민단체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성명을 내어 “이번 판결은 처음으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을 물은 것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지만, 배상 대상을 일부 피해자로 한정했고 배상액도 소액이어서 한계가 크다”고 밝혔다. 앞서 원고들은 2014년 처음 소송을 제기하며 세퓨 등 기업들과 국가에 10억여원을 배상하라고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