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안전 비용 아끼다 인도 가스 누출 참사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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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안전 비용 아끼다 인도 가스 누출 참사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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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안전 비용 아끼다 인도 가스 누출 참사 불렀다” 

인도 공장 스타이렌 가스 누출 사고, 현지 주민과 국제환경단체 활동가들의 증언
 

경향신문 2020년 6월13일 

인도·베트남·홍콩 등 세계 각국 노동자와 환경단체 회원들이 LG화학의 책임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 환경보건시민센터 제공

인도·베트남·홍콩 등 세계 각국 노동자와 환경단체 회원들이 LG화학의 책임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 환경보건시민센터 제공

그날 스타이렌 가스는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을 쓰러뜨렸다. 여섯 살 스레야와 열 살 시리샤는 LG화학 공장에서 누출된 스타이렌을 피하지 못했다. 아이들은 부모의 품에서 눈을 감았다. 열아홉 살 의대생 찬드라모울리는 집에서 100m 떨어진 곳까지 간신히 몸을 피했지만 목숨을 잃었다. 말·소·개가 숨이 끊긴 채 길가에 널브러졌다. 어떤 나무는 색이 하얗게 바랬다. 

지난 5월 7일 새벽 인도 남부 안드라프라데시주 비샤카파트남 LG폴리머스 공장에서 발생한 스타이렌 가스 누출 참사 이야기다. 이날 새벽 1시 15분쯤 LG폴리머스 공장에선 스타이렌 800톤이 새 나오기 시작했다. 

스타이렌은 합성수지 등 석유화합물 소재 원료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스타이렌을 발암물질로 분류한다. 고농도 스타이렌 가스에 노출되면 호흡곤란·어지럼증·구역질 등이 나타나고 장기 손상이 일어난다. 한국에선 2019년 5월 충남 서산 한화토탈 공장에서 스타이렌 97톤이 누출됐다. 인근 주민과 직원 3640여 명이 치료를 받았다. 

인도 피해 주민대표 나아링가 라오는 “공장 인근에 사는 모든 시민이 계속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했다. 사건 발생 직후 사망자는 12명이었다. 가스를 마신 1000여 명이 병원에 입원했다. 사망자는 계속 늘고 있다. 6월 11일 현재 총 사망자는 15명이다. 라오는 “호흡기 증상을 느끼는 주민들이 줄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인도 현지 주민, 국제환경단체 활동가를 비롯한 6명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LG화학 스타이렌 가스 누출 참사 직후부터 전 과정을 지켜본 이들이다. 인터뷰는 지난 6월 9일 밤 9시 온라인 화상회의 애플리케이션 ‘줌’으로 진행했다. 추가 인터뷰는 6월 10~11일 e메일과 텔레그램으로 이뤄졌다. 

“LG가 안전에 돈을 아꼈다”
 

인터뷰 참석자들은 모두 LG화학의 관리 부실을 참사 원인으로 꼽았다. 관리 부실은 안전에 들어갈 비용을 줄이다 발생했다. 인도 직업환경보건네트워크(OEHNI) 소속 자그디쉬 파텔은 “LG가 돈을 아끼려 했기 때문에 발생한 참사다. 안전 확보에 돈을 썼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기본을 지키지 않아 문제가 커졌다”고 말했다. 

파텔은 “인도는 지금 여름이다. 한낮엔 40도를 넘는다. 저장탱크 온도도 자연스럽게 올라갈 수밖에 없다. 저녁이 되더라도 온도가 잘 내려가지 않는다. LG는 온도를 제어할 수 있는 시설부터 제대로 챙겼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LG화학 소속 안전 관리·감독 부서도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현지에서 조사한 결과를 보면 가스가 새 나오자 감독자들은 모두 사라졌다. 환경 사고는 초동대처가 중요한데 아무 조치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람 차리트라 사는 “LG가 안전 이슈를 사소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돈을 아끼고 절차를 간소화하는 데 집중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며 “한국하고 다르게 느슨한 안전기준을 인도에선 적용한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차리트라 사는 네팔의 아시아직업환경피해자네트워크(ANROEV) 활동가다. 

인도 사법당국의 조사결과는 활동가들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인도환경재판소(NGT) 조사결과를 보면 ▲모니터링 없이 노후 탱크 방치 ▲응급 시 주민 대피 훈련 미비 ▲누출사고 시 경보 없음 ▲장비 관리 미비가 드러났다. NGT는 환경문제 발생 시 효과적이고 신속한 대응을 위해 2010년 만들어진 인도 사법기관이다. 

NGT는 조사 보고서에서 “LG 측 경영진이 가스 저장탱크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고 썼다. NGT는 “누출된 탱크의 중간과 상단 부분에 온도 센서가 없었다”, “증기 유실을 차단하기 위한 자동 스프링클러 장치가 존재하지 않았다”, “스타이렌 방출을 억제하는 화학물질 재고가 현장에 없었다. 2020년 4월 1일 이후로 방출 억제 물질이 스타이렌 탱크에 첨가되지 않았다”고 봤다. 스타이렌은 20도 이하에서 관리해야 하는 물질이다. 온도가 65도 이상 올라가면 제어할 수 없어 증발·폭발 위험성이 커진다. 참사 당일 LG폴리머스 공장에 있던 스타이렌 탱크 온도는 100도를 넘었다.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인명피해를 최소화하지 못한 건 LG화학 측이 평상시 매뉴얼을 구체적으로 만들고 대비 훈련하는 과정을 충실히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결국은 환경문제나 산업재해에 안일하게 대처하는 한국 기업들의 문화적 관습이 빚어낸 참사”라고 말했다.
 

한국 환경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6월 5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LG화학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환경보건시민센터 제공

한국 환경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6월 5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LG화학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환경보건시민센터 제공

인도 정부 규제 피해간 LG 

NGT 조사위원회는 지난 5월 28일 LG화학의 안전장비 확보 미비와 안전 절차 미준수가 참사의 근본 원인이라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위원회는 “LG화학의 경험 부족도 참사의 한 원인”이라고 했다. 파텔은 “LG화학이 사고 초기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하고 허둥댄 것이 단적인 예”라고 말했다. 

차리트라 사는 “이미 인도 정부 보고서에서 수차례 LG화학의 관리소홀 정황이 확인됐다”고 했다. 인도 노동부는 2016년 조사에서 탱크 한 개의 시멘트 클래딩에 손상이 가 교체가 필요하다고 했다. 2019년에는 탱크 한 곳의 스프링클러 파이프가 부식된 사실도 확인됐다. 스프링클러는 탱크 내부 온도를 낮추는 역할을 한다. 인도 노동부는 같은 해 또 다른 독성물질인 펜타인을 보관하는 탱크에도 결함이 발견됐다고 했다. 인도 노동부는 스타이렌을 담은 탱크 주변에 차단벽을 세우고 안전 감사를 할 것을 권고했다. 

이날 인터뷰에서는 LG화학이 인도 정부의 환경 규제를 지키지 않았다는 주장도 나왔다. 국제환경보건단체인 유해물질추방국제네트워크(IPEN)의 조 디간지 과학기술 고문은 “공정을 다섯 번이나 조정하고 공장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가스탱크는 여전히 낡고 부식된 상태를 유지했다”고 했다. 그는 “LG는 연방 정부의 허가(규제)를 우회하는 방식으로 공장을 확대해갔다. 정부의 규제를 받았더라면 그래도 관리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LG화학은 2006년에서 2018년 사이 공장을 다섯 차례 확장하면서 별도의 ‘환경 허가(Environmental Clearance)’를 받지 않았다. 2018년 인도 연방 정부의 조사결과 확인된 사실이다. 인도에선 2006년부터 환경 허가를 받아야만 공장 설립·확장이 가능했다. 인도 연방 정부는 2018년 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보고, 환경 허가를 받지 않은 LG화학에 자진 신고를 명령했다. 

LG화학 측도 별도의 환경 허가를 받지 않은 사실은 인정한다. 다만 LG화학은 주 정부에서 “환경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유권해석을 받은 뒤 환경 허가를 취득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인도 연방 정부 규제를 주 정부 유권해석으로 피해갔다는 의미다. 

조 디간지 고문은 “연방 정부와 주 정부 사이에 환경 허가를 둘러싼 입장 차이가 있었는지는 자세하게 조사가 필요한 부분”이라며 “LG화학 측이 규제를 우회하기 위해 주 정부에 별도로 유권해석을 요청한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이는 명백히 환경·안전 비용을 아끼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 LG화학 측은 “조사 중인 내용에 관한 입장은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LG 공장을 옮겨달라” 

인도 현지에선 LG화학의 스타이렌 누출을 보팔 참사에 비유한다. 1984년 12월 인도 중부 마디아프라데시주 보팔에 있는 화학기업 ‘유니언카바이드’ 공장에서 아이소사이안화메틸 가스가 대량 누출됐다. 참사 당시에만 3700여 명이 사망했다. 후유증으로 숨진 이들까지 더하면 희생자는 1만6000여 명에 이른다. 

피해 주민 대표 라오는 “시민이 보팔 참사를 떠올리는 건, 그만큼 느끼는 공포가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작 LG 측에서는 어느 누구도 현지인과 직접 만나 대화하지 않고 있다. 현지 주민들은 LG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잃은 상황”이라고 했다. 

LG화학 측은 인도 경찰이 주민들과 LG 임직원의 접촉을 막았다고 주장했다. 현지 경찰이 우발적인 상황을 우려했다고 한다. LG화학 관계자는 “식사 지원·민원 대응 등 지원과 사고 해결에 책임 있는 자세로 나서고 있다”고 밝혔다. LG화학은 추가 사망자 발생과 스타이렌 누출 사이 인과관계가 아직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다고 본다. 추가 사망자 중에는 기저질환이 있던 환자도 있어 인과관계를 단정할 수 없다는 취지다. 

공장 이전을 놓고도 입장이 엇갈린다. LG화학 측은 “일자리를 원하는 주민들의 목소리도 있기 때문에 다각도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현지 주민들의 야이기는 다르다. 라오는 “LG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공장 이전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현지 주민들은 거의 없다. 현지 노동자들도 돈만 바라보는 게 아니라 안전한 공장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더 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 6월 7일 주 정부에서 꾸린 회의체에서 유족·주민·정당이 모두 LG공장을 옮겨달라고 요청하기로 만장일치 의견을 냈다. 한국에도 이 같은 사실을 알려달라”고 말했다. 

피해자 보상과 보호를 위해선 인도 현지 법인인 LG폴리머스의 모회사인 LG화학에 직접적인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견해도 인터뷰에서 나왔다. 조 디간지 고문은 “NGT 보고서에도 LG화학은 언급되지 않는데 모회사의 책임성을 강조해야 사고 수습이 장기적으로 이뤄진다”며 “시민의 건강 추적 기간은 현지에서 거론되는 5년이 아닌 15년의 잠복기를 고려해 더 길게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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