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숨 - 가습기살균제 참사 이렇게 해결하자②] '가습기살균제 폐질환' 인정 범위 확대해야
최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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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2 04:43
'폐 이식' 필요한데,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대상 아니라니...
[빼앗긴 숨 - 가습기살균제 참사 이렇게 해결하자②] '가습기살균제 폐질환' 인정 범위 확대해야
오마이뉴스 2017 5 25
글 안종주
'안방의 세월호' '단군 이래 최대의 환경병'으로 일컫는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환경 비극입니다. 피해자가 나온 지 2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고 사건의 실체가 드러난 지도 6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사건의 전체 진상, 피해 배상, 재발 방지 대책 등과 관련해 해결된 부분보다 해결되지 않은 부분이 훨씬 더 많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엄청난 고통 속에 지내고 있습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문재인 정부 시대를 맞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그 가족모임, 환경보건시민센터와 함께 '빼앗긴 숨-가습기살균제 참사 이렇게 해결하자'란 연재물을 공동으로 기획해 10여 차례 싣습니다. 연재에서는 가습기살균제 참사 문제와 관련해 그동안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어떤 것이 있는지를 다룰 것입니다.
여기엔 피해와 진상 규명, 그리고 피해 배상, 재발 방지 대책 등이 포함됩니다. 또 정부와 국회, 사법당국, 전문가, 시민사회, 기업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자세를 취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겠습니다. 고통 속에 하루하루를 힘들게 버티고 있는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대통령에게 보내는 눈물의 편지도 몇 차례 싣습니다. 당신이 바로 그 피해자가 될 수 있었던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대해 관심과 지지를 부탁드립니다. -기자 말
▲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과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관계자들이 지난 1월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거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가습기살균제피해 엉터리판정을 규탄과 피해구제법안을 대폭 보안해 국회 법사위를 통과시킬것"을 촉구하고 있다. | |
ⓒ 최윤석 |
가습기살균제병은 우리에게 매우 특이하게 다가왔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대개 감기 유사 증상에서 시작돼 급격히 폐가 나빠져 호흡곤란이 생겼다. 이는 사람마다 달랐다. 어떤 사람들은, 특히 어린아이들은 갑자기 입술이 파래지고 숨을 헐떡이며 숨을 쉬지 못해 응급실을 찾았다.
병원 의사들은 세균성 내지 바이러스성 폐렴을 의심해 투약을 해보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어떤 경우는 병원에 오자마자 하루 이틀 만에 숨지기도 했다. 의사들은 당황했다. 평소 보아오던 급성 간질성 폐렴이나 폐섬유화 질병과는 질병의 경과와 증상이 분명 달랐다. 원인을 알 수 없으니 치료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폐를 선명하게 영상 촬영할 수 있는 고해상도 컴퓨터단층촬영(CT)도 하고 기관지내시경을 폐 속으로 넣어 폐 생체조직도 떼어내(생검) 병변을 살펴보았다. 의사들은 지금껏 보지 못한 매우 특징적인 질병 형태를 보고 놀랐다. 폐 영상 사진을 보니 불투명 유리, 즉 간유리 모양의 음영이 양쪽 폐 전체에 나타났다. 산소와 이산화탄소의 교환이 일어나는, 즉 생명 유지 현상에 매우 중요한 신체 부위인 폐포(허파꽈리) 입구에 해당하는 소엽중심에 염증이 생겨 폐가 딱딱하게 굳어졌다. 핏속 산소포화도가 급격히 떨어져 숨을 헐떡이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원인을 알 수 없었던 시절 이런 증상의 병은 괴질로 불렸다. 우리나라에서 최고 대학병원의 내로라하는 유명의사들도 답답해했다. 불가사의한 질병의 정체를 밝혀낸 것은 역학(疫學)이란 학문의 방법을 활용한 조사연구 덕분이었다. 소아과를 중심으로 한 임상의사들은 범인 쫒기에 나섰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범인은 알고 보니 정말 가까이에 있었다. 많은 가정에서 필수품처럼 사용해오던 가습기살균제였다. 지금은 영문 약자가 더 친숙한 가습기살균제 성분인 폴리헥사메틸구아니딘(PHMG)과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 그리고 염화메틸이소티아졸론(CMIT)과 메틸이소티아졸론(MIT)이 그동안 한국인을 대상으로 분탕질을 친 것이었다.
'전형적인' 증상이 나타나야 피해구제? 문제 있다
의사들은 비로소 이 질병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가습기살균제가 일으키는 증상들도 어느 정도 파악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시작에 불과했다. 가습기살균제의 독성과 이 성분들이 인체에서 일으킬 수 있는 장기와 조직은 결코 폐에 국한하지 않는다. 폐에서도 간유리음영과 소엽중심성 폐섬유화 등의 증거와 증상을 남기는 것만은 아닐 터이다.
하지만 가습기살균제를 오랫동안 사용해온 중증 환자들을 보아온 의사들은 자신들이 본 증상만을 가지고 피해자 판정 기준을 만들어 피해 판정을 벌었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임상의사와 피해 신고자·가족 간의 갈등과 불협화음은 여기서 시작됐다.
경마장에 가면 출발선에 선 경주마에 눈 옆 가리개가 있다. 앞만 보고 달리도록 하기 위해서다. 만약 앞만 보지 않고 옆으로 달리다간 큰 불상사가 생긴다. 옆 경주마와 부딪혀 큰 사고를 낼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질병과 증상을 매우 세부적으로 따져 진단하고 처방하는 의사들은 자신들이 본 것만 모든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모든 의사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임상의사들이 지닌 특징이자 한계이다.
가습기살균제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졌다.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것이 확실하게 입증되고 전형적인 가습기살균제 중증 폐질환자에게서 나타난 것과 똑같은 방사선 소견, 병리학적 소견, 실험실 검사소견을 보인 질환자에 대해서만 피해구제 등급(단계)에 해당하는 1단계와 2단계 판정을 내리는 것이다. 차이가 나는 질환자에 대해서는 가능성 낮음과 가능성 거의 없음이라는 3단계 또는 4단계 판정을 내린다.
피해자들과 가족들은 우리도 간질성 폐질환자인데, 간질성 폐렴 환자인데 왜 피해구제 단계 판정을 해주지 않느냐고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국가대표배구선수 출신의 50대 안은주 씨와 어느 날 교회를 가다 말다 숨이 차서 주저앉은 뒤 폐 이식 수술을 기다리는 서울의 60대 박영숙씨 등이 간질성 폐질환자임에도 피해구제 등급인 1·2단계 판정을 받지 못한 대표적 사례로 꼽을 수 있다.
가습기살균제 판매 시기 한국에서만 유독 청소년 폐렴 급증 주목
▲ 지난 2016년 5월 2일, 가습기살균제 사태와 관련 아타 샤프달 옥시레킷벤키저 대표이사가 영등포구 콘래드호텔에서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을 하는 가운데, 산소호흡기 없이 생활이 불가능한 피해자(만성폐질환) 임성준(13)군과 가족 및 피해자들이 기자회견장을 찾아 항의하고 있다. | |
ⓒ 권우성 |
지난해 가을 언론은 가습기살균제가 국내에서 출시된 직후인 1995년부터 사용이 금지된 2011년까지 국내 폐렴 사망자 7만 명 중 무려 2만 명이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사망자로 추산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는 충격적인 뉴스를 일제히 보도한 적이 있었다. 임종한 인하대 의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가 관련 학회에서 발표한 내용을 소개한 보도였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엄청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임 교수가 당시 추산한 수치는 뭉뚱그린 것이고 여러 가정을 전제로 한 분석이라는 한계가 물론 있었다. 국민의 20%, 즉 1천만 명이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고 폐렴 사망에 대한 가습기살균제가 기여한 비율을 30%가량으로 잡았을 때 나온 수치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비판적 시각도 있다. 1천만 명은 너무 많이 잡은 수치라는 지적이다. 최근 3백만 명으로 낮게 잡은 조사보고도 있다.
임 교수가 폐렴 사망과 가습기살균제와의 연관성에 주목한 계기는 우리나라에서 18세 미만 청소년 폐렴 사망자가 계속 떨어지는 추세에 있다가 가습기살균제 사용이 급증한 2005~2011년 급증했다는 통계 때문이었다. 여기에다 2000~2014년 일본·영국·아일랜드·미국·핀란드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회원국의 폐렴 사망률은 전반적으로 감소 추세지만 유독 한국만 증가세를 보였다는 점도 고려했다. 폐렴과 가습기살균제 관련성에 대한 합리적 의심을 해보기에 충분한 대목이다.
하지만 폐렴의 원인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리는 원인이 다양한 이런 특성을 지닌 질환을 비특이적 질환이라고 한다. 폐렴은 세균, 바이러스, 곰팡이 등과 같은 병원성 미생물에 의해서도 종종 생긴다. 면역 상태가 나쁜 환자나 노인들에게서는 더욱 흔하게 발생한다. 이물질 흡입, 약물이나 화학물질에 의한 폐렴도 생길 수 있다. 류머티즘성 폐렴도 있다.
가습기살균제 폐질환 대상을 확대하자고 주장하는 쪽은 모든 폐렴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간질성 폐렴에 국한해 가습기살균제 노출과의 연관성을 따지자는 입장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가습기살균제 노출 후 매우 특이적인 중증 폐손상, 즉 허파꽈리 입구에서 일어나는 소엽중심성 결절과 폐섬유화, 폐의 음영이 희뿌연 간유리 음영 등이 나타나지 않더라도 정부 피해 구제 대상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 전문가들이 여기에 대해 의견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다. 비특이적 간질성 폐렴이 피해 대상 질환 목록에 오를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우리 몸은 폐에서 공기 중 산소를 받아들인다. 코와 입으로 들이마신 산소는 허파꽈리, 곧 폐포라고 하는 기관지의 맨 끝에 있는 아주 작은 공기주머니까지 이른다. 그곳에서 산소는 주위에 있는 모세 혈관 속으로 녹아 들어간다. 혈액 속 산소는 심장을 통해 다시 우리 몸의 여러 조직에 공급된다.
'간질(間質)'은 폐포와 주위 모세 혈관 벽 사이의 공간을 말한다. 다시 말해 '산소와 이산화탄소의 교환이 일어나는 생명의 벽'이다. 간질에 염증이 생기고 조직이 굳어지는 섬유화가 일어난다면 기관지를 통해 아무리 많은 산소가 들어오더라도 별로 쓸모가 없다. 쉬고 있을 때는 그런대로 참고 견딜 만하지만 운동을 하거나 가파른 계단을 오를 때, 즉 우리 몸이 산소를 많이 필요로 할 때는 그 산소를 제때 조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헐떡거리며 숨이 차게 된다.
"응답하라! 국가와 전문가들이여"
▲ 2016년 8월 24일,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 관계자들이 "가습기 제품의 주성분 표시를 안 한 기업들의 편에 선 공정위의 결정을 규탄한다"며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
ⓒ 최윤석 |
간질성 폐렴과 폐섬유화는 대개 50대 이상에서 많이 생긴다. 흡연 경험이 있는 경우가 많지만 비흡연자에게서도 나타날 수 있다. 새의 배설물이나 동식물 유기물질, 유기성 먼지에 다량 노출되면 세기관지와 폐가 과민성 반응을 일으켜 간질성 폐렴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이를 과민성 폐렴 또는 알레르기성 폐포염이라고도 부른다.
간질성 폐렴은 전신 홍반성 낭창, 즉 루푸스나 류마티즘성 관절염, 피부근염과 같은 결체조직 질환의 하나로 나타나기도 하고 이런 질환과 관련 없이 단독으로 생기기도 한다. 원인 물질이나 특정한 원인 질환에 따라 발열, 체중 감소, 피로감, 근육통, 관절통 등을 호소하는 환자들도 있다. 간질성 폐렴은 매우 다양한 원인에 의해 생길 수 있는 비특이적 질환이다.
그 원인을 잘 알 수 없는 특발성 간질성 폐질환자들은 정부 피해 구제와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 기업한테서 피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 1단계와 2단계 판정을 받지 못했다. 대부분 3단계 판정을 받았다. 가습기살균제 노출과의 연관성을 배제할 수 없으나 현재로서는 관련성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이들은 그 어느 누구보다도 정부의 가습기살균제 피해 인정 대상 질환에 간질성 폐렴이 포함되어 자신들이 재판정을 받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새로운 기준에 따라 다시 판정을 받는다 하더라도 현재로서는 피해구제 대상이 될지는 속단할 수 없다. 하지만 3·4단계 판정을 받은 특발성 간질성 폐질환자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감당키 어려운 치료비로 인간답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 국가와 전문가들은 이제 이들의 요구에 응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