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그들이 유죄인 10가지 이유”…가습기살균제 참사 ‘변곡점’ 될까?
관리자
0
2484
2022.10.28 12:03
“그들이 유죄인 10가지 이유”…가습기살균제 참사‘변곡점’될까?
KBS 2022.10.27
'가습기 살균제' 참사 11년. 다시 법정 싸움이 시작됐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책임 기업들에 대한 '업무상 과실치사상' 형사재판 항소심입니다. 1심 법원이 '무죄' 판결을 내린 지 22개월 만입니다.
재판을 앞두고 피해자와 유족들이 모였습니다. 얼굴에서 결연함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로 아이를 잃은 부모님의 얼굴이 그랬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 이번에는 책임 기업들의 '유죄'를 입증할 수 있을까요?
■ 그들은 왜 '무죄'였나?
지난해 1월 12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등 피고인 13명 '무죄'"
가습기 살균제 제조와 판매에 대한 업무상 과실치사와 과실치상 혐의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이랬습니다.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이 인체에 유해한지를 입증하기엔 증거가 부족하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다시 말해 가습기 살균제와 피해자들의 질병과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검찰은 즉각 항소했습니다.
■ "그들이 '유죄'인 10가지 이유"
지난 8월 25일, 서울고등법원 서관 303호 재판정. 6시간에 걸쳐 항소심 공판이 진행됐습니다.
검찰은 '1심 선고'에 중대한 '오류'가 존재한다며 100여 분에 걸쳐 10가지 항소 이유를 밝혔습니다. 환경보건시민센터가 오늘(27일) 공개한 그 10가지 이유입니다.
[항소 이유] 1심 재판부가 범한 '중대 오류 10' ● 폐 질환을 일으키려면 CMIT/MIT 체내 축적 ● 동물실험만으로 인과관계 판단 가능 ● CMIT/MIT 공기 중 '극미량'은 위해성 없음 ● CMIT/MIT는 의약외품용 보존제로 허용돼 위해성 없음 ● CMIT/MIT는 폐에 도달하지 않음 ● 질병관리본부 환자-대조군 연구에 CMIT/MIT 사용 사례 없음 ● 초고농도 동물실험과 일반 사용 환경 적용 어려워 ● 기관 내 점적투여 실험은 흡입독성과 달라 ● 피해자 구제라는 목적 달성을 위해 피해자 판정 폭넓게 인정 ● CMIT/MIT 단독 피해자는 다른 원인으로 인한 가능성 있어 - 자료 : 환경보건시민센터 |
이 중 주목해서 봐야 할 4가지가 있습니다.
● [오류 1] CMIT/MIT는 '축적'되어야 한다 검찰은 재판부가 'CMIT/MIT의 체내 축적'을 인과관계 3대 인정 요건 중 하나로 본 것은 중대한 오류라고 지적했습니다. 24시간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가습기 살균제의 경우, 독성 작용에 중요한 것은 '축적'이 아닌, '빈도'와 '노출 시간'이라는 게 검찰의 주장입니다. |
● [오류 2] 동물실험만으로 인과관계를 판단할 수 있다 재판부는 동물실험에서 확인되지 않으면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하지만 사람과 동물의 종간 차이를 무시하고, 동물 실험을 인과관계 증명에 필수요건으로 재판부가 오인했다는 게 검찰의 항소 이유입니다. |
● [오류 3] CMIT/MIT의 공기 중 농도는 '극미량'으로 위해성이 없다 검찰은 "가습기 수조 속 CMIT/MIT 농도가 0.000075%로, 소량 함유돼 위해성이 없다"는 재판부의 판단을 오류로 규정했습니다. 흡입독성에서는 최종 희석농도보단 용량이 중요하고 무엇보다 권장사용량 1배 조건에서 극미량이 아닌 사람의 신체나 건강에 위해가 있을 정도의 용량이 검출됐기 때문입니다. |
● [오류 4.] CMIT/MIT는 폐에 도달하지 않는다 재판부는 CMIT/MIT의 수용해성을 이유로 폐에 도달하기 힘들다고 봤습니다. 하지만 물리화학적 특성과 과학적 실험을 종합해 보면 '폐 도달 가능성'이 증명됐다는 게 검찰의 설명입니다. 가습기 살균제가 초음파가습기에 의해 에어로졸 형태로 공기 중에 분무 되면 일부는 미세입자로 존재하는데, 그 미세입자의 크기가 폐에 도달했음을 입자 발생 실험을 통해 이미 확인됐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
■ 11년 끌어온 참사, 변곡점 찾나?
항소심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외부 환경'도 1심 때와는 달라졌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달 29일 '공정거래위원회의 SK케미칼 무혐의 처분'이 위헌이라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헌재는 공정위가 '가습기메이트' 제조사·판매사의 표시광고법 위반 여부를 심사하면서 '인체에 무해하다'고 언급한 일부 기사를 심사 대상에서 제외한 것이 부당하다고 봤습니다.
그리고 지난 26일, 공정거래위원회가 애경산업과 SK케미칼 등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한 기업들에 1억 1,0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관련자 3명을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여기에 '가습기메이트'는 SK케미칼이 제조하고 애경이 판매한 제품으로, CMIT/MIT 성분이 포함된 것이 확인됐습니다.
검찰의 주장이 힘을 받을 수 있는 대목입니다. 가해 기업에 대한 유죄 입증이 수월해졌으니 재판 결과도 뒤집힐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참사 발생 11년. 그런데 책임자 처벌을 비롯해 아직 해결된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참사는 그래서 현재진행형입니다.
우리가 이 재판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항소심 결과에 따라 피해자·유족들에 대한 배·보상 방향이 가닥을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방향이 정해지면 나머지 문제 역시 쉽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번 항소심 재판이 참사를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변곡점인 까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