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사건 책임 없다던 SK, 뒤로는 입막음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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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사건 책임 없다던 SK, 뒤로는 입막음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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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사건 책임 없다던 SK, 뒤로는 입막음 시도
경향 2018년 7월 28일자

3월 12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유가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특조위 활동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3월 12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유가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특조위 활동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주장해 온 SK케미칼이 사측에서 선별한 피해자에게 접근해 비공식적인 배상을 제안하며 회유를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SK케미칼은 사망자를 가장 많이 낸 가습기 살균제의 성분 PHMG를 독점 생산하고 폐손상 위해성이 입증된 CMIT·MIT(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메틸이소티아졸리논) 함유제품을 만든 업체다. 피해자에 대한 사과를 거부하고 일체의 배상을 진행하지 않았던 SK케미칼의 이 같은 ‘비공식’ 배상에 대해 정부의 진상조사를 앞두고 서둘러 피해자들을 입막음하려는 꼼수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책임 인정하게 돼 사과는 할 수 없다” 

주부 김모씨의 자녀는 지난 2012년 병원에서 폐 섬유화 진단을 받았다. 정부는 해당 질환의 발병 원인이 SK케미칼이 제조하고 애경이 판매한 ‘가습기 메이트’ 사용에 있다고 보고 ‘관련성 확실’ 판정을 내렸다. 정부로부터 진료비 등 치료비는 지원받을 수 있게 됐지만 그뿐이었다. 정작 발병 원인이 된 가습기 살균제를 만든 SK케미칼은 물론 판매사인 애경 역시 피해자에 대한 사과와 배상을 거부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국면이 전환됐다. 지난해 8월 문재인 대통령은 직접 피해자를 만나 사과하고 철저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대책 등을 약속했다. 이때부터였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책임이 없다던 국내 기업들이 사안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고발은 물론 시민사회 비판에도 꿈쩍 않던 SK케미칼도 물밑작업을 시작했다. 지난해 10월 SK케미칼 관계자들이 김씨의 집을 방문했다. SK케미칼 측과 마주한 김씨는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부터 요구했다. 이에 대해 SK케미칼 측은 “사과를 하게 되면 책임을 인정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사과를 할 수는 없다”고 거부하면서도 “다만 아이가 병원 치료를 받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도움을 주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이어 “원한다면 다음번에는 애경 대표와 함께 방문하겠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SK케미칼과 애경의 책임 있는 사과가 먼저라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당시 합의는 결렬됐고 배상도 이뤄지지 않았다. SK케미칼은 여전히 특정 피해자를 골라 회유작업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대해 SK케미칼 측은 “현재 사용제품과 건강피해 간의 인과관계에 대한 추가적인 규명이 정부 유관기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상황으로, 배상·보상과 관련된 논의 경과에 대해서는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피해자를 선별해 비공식적으로 이뤄지는 ‘SK케미칼식’ 배상은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피해자들 간 분리와 균열이다. 현재 SK케미칼이 제조한 가습기 살균제(애경 가습기 메이트) 단독사용자 가운데 정부로부터 공식 인정받은 피해자는 모두 10명이다. 환경부는 이들이 SK케미칼이 만든 가습기 살균제에 포함된 유해성분 CMIT·MIT로 인해 질병을 얻었다고 판단했다. CMIT·MIT는 지난 2012년 환경부가 유해화학물질관리법에 근거해 유독물로 지정한 성분이다. 전체 11명에 불과한 CMIT·MIT 함유 제품 단독사용 피해자들은 함께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SK케미칼이 특정 피해자만 골라 배상을 진행할 경우 피해자 조직은 와해되고 분리될 가능성이 높다. 피해자 간 연대의 고리가 끊긴다는 얘기다. 최예용 사회적 참사 특조위 가습기살균제사건 진상규명소위원회 위원장은 “기업이 사회적 책임은 져버리고 돈으로 피해자를 매수하려는 비도덕적이고 파렴치한 접근”이라며 “피해자가 처한 어려운 상황을 악용해 벌이는 분리 공작”이라고 말했다. 

완전한 면죄부 꿈꾸는 SK케미칼 

SK케미칼의 ‘선택’을 받은 피해자 역시 정당한 배상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SK케미칼은 자사가 제조한 가습기 살균제와 폐질환은 연관성이 없다며 사과와 배상을 하지 않았다. SK케미칼은 사건 초기부터 지금까지 자신들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상태에서는 피해자의 협상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피해자가 적절한 배상을 받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렇게 이뤄진 배상은 ‘시혜적 배상’에 그칠 수 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속 송기호 변호사는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사적인 관계에서 생긴 문제가 아니라 국가를 포함한 광범위한 문제인 만큼 기업에 사회적 책임을 물어야 하는 사안”이라며 “배상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이 되면 안 된다”고 말했다. 

SK케미칼은 개별 배상과 별개로 완전한 면죄부를 받기 위한 절차도 밟고 있다. 현재로서 SK케미칼이 받은 유일한 제재는 지난 2월 공정거래위원회가 표시광고법 위반 혐의로 내린 시정명령과 과징금 3900만원이 전부다. 당시 공정위는 시정명령과 함께 SK케미칼과 애경 등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업체들을 표시광고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지만 결국 공소시효 만료를 이유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이후 SK케미칼은 공정위를 상대로 시정명령 등 처분 취소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공정위가 내린 과징금과 시정명령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취지다. SK케미칼 측은 “공정위의 판단을 존중한다”면서도 “다만 가습기 살균제 제품의 표시광고법 위반 등 처분과 관련해 공정위와 당사 간의 법리적 해석에 이견이 있어 행정소송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SK케미칼이 차근차근 면죄부를 쌓아가는 동안 피해자들이 겪는 고통은 커지고 있다. 가습기 메이트를 썼다가 폐가 손상된 14살 박모양은 10년 넘게 치료약을 복용 중이다. 기침과 가슴통증 등의 증상이 차츰 나아지는가 싶더니 올해 4월부터 틱 장애와 무기력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박양의 부모가 수소문을 해보니 비슷한 증상을 앓고 있다는 피해자가 많았다. 약 부작용을 걱정한 박양의 부모는 담당 의료진과 논의 끝에 박양이 먹는 약을 끊기로 했다. 오랜 투병 끝에 새로운 질환을 얻은 셈이다. 박양의 어머니 손모씨는 “병이 나아지는가 싶더니 또 다른 증상이 나타나 걱정”이라며 “가습기 살균제를 사다 쓴 내 잘못 같아서 아이를 지켜보는 게 힘들다”고 말했다. 

가족을 잃은 유족들은 더 막막한 처지다. 주부 박모씨는 지난 2005년 중학생이던 어린 동생을 잃었다. 가습기 메이트가 화근이 돼 동생을 잃은 박씨는 2년 동안 기다린 끝에 정부로부터 1단계(거의 확실)로 판정받고 장례비 200만원을 포함한 4000만원을 구제급여로 받았다. 박씨는 억울한 마음에 제품을 판매한 애경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 사과와 배상을 요구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SK케미칼도 답을 피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우여곡절 끝에 담당직원과 연락이 닿았지만 답을 미뤘다. “내 동생이 폐가 아프다고 말한 지 두 달 만에 하늘로 떠났다”며 “해당 기업 게시판에 글을 남기고 환경부에 하소연을 해봤지만 아무런 진척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 2월 12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 소속 관계자들이 가습기 살균제 참사 관련 공정위 결정을 비판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지난 2월 12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 소속 관계자들이 가습기 살균제 참사 관련 공정위 결정을 비판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진상규명 나서는 특조위 

나름의 배상절차를 진행한 외국기업 옥시레킷벤키저(옥시RB)와 달리 국내 기업인 SK케미칼과 애경은 민·형사상 책임과 배상 책임에서 완전히 빠져 있다. 시민단체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SK케미칼을 검찰에 고발했지만 위해성 여부에 대한 판단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사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여기에서 위해성 여부를 판단하는 주요 근거는 동물실험이다. 

지난 2016년 8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환경부가 진행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 규명을 위한 흡입독성 평가와 원인규명 기술 개발’ 연구 결과,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분으로 알려진 CMIT·MIT와 폐섬유화와의 연관성 등 위해성을 확인하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2012년에도 질병관리본부는 CMIT·MIT 성분의 가습기 살균제품은 폐질환과의 인과관계가 규명되지 않았다는 결론을 냈다. 배상책임이 없다는 SK케미칼 주장의 근거이기도 하다. 

검찰과 달리 환경부는 동물실험 결과와 무관하게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와 유통사에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환경부는 “CMIT·MIT로 인한 폐손상에 대한 위해성은 이미 인정했다”며 “지금도 SK와 애경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 사안에 대한 부처 간 견해가 엇갈리면서 환경부 의견은 검찰의 수사 착수 여부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06년 발생한 미확인 폐질환의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라는 사실이 알려지기까지 꼬박 6년이 걸렸다. 2013년 8월 경제장관회의를 통해 피해자 의료비와 장례비 지원방안이 마련됐지만 사고에 대한 진상규명과 피해구제는 미흡했다. 물론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 분야에서는 나름의 성과가 있었다. 피해인정질환이 기존 2개에서 폐손상과 태아를 포함한 천식, 소아간질성폐질환 등 모두 4개로 늘었고 구제계정 지원대상 질환도 확대됐다.

지난해 8월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 특별법이 시행되면서 피해자 인정과 구제를 위한 제도의 틀이 마련됐다. 하지만 중요한 과제가 남았다. 관련 기업에 대한 명확한 책임소재를 가리는 일이다. 왜 사건이 발생했고, 당시 제조·유통사들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에 대한 진실은 여전히 규명되지 않았다. 지난 3월 사회적 참사 특조위가 출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조위 내 가습기 살균제 진상규명 소위원회는 앞으로 활동을 통해 가습기 살균제 참사 관련 기업에 대한 책임 여부를 확실하게 가려낼 계획이다. 여기에 피해입증 책임을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지도록 가해자 입증책임을 강화할 방침이다. 최예용 위원장은 “특조위 조사의 핵심 가운데 하나가 SK케미칼과 애경의 책임을 가리는 것이다”라며 “파렴치한 기업의행태에 대한 진상을 규명해서 철퇴가 내려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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