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다시 거리에 선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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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다시 거리에 선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

최예용 0 6251

2016년 10월 21일자 경향신문 


[기고]다시 거리에 선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가습기 살균제 사망 신고자가 1000명을 넘었다. 10월14일까지 1012명이나 된다. 생존 환자까지 포함된 전체 신고자는 4893명이다. 정부에 공식 접수된 숫자다. 이대로라면 10월 중으로 5000명이 넘을 것이다.

 

[기고]다시 거리에 선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대한민국 국민의 20%인 1000만명을 대상으로 집 안에서 17년 동안 ‘은밀하고 조용하게’ 벌어진 살인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30만명에서 200만명가량이 희생자로 추산된다. 피해자가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되었지만, 실제 1000명이 넘는 사망자 신고를 받고 보니 망연자실하다. 생활용품으로 단 한 명만 사망해도 큰 사건인데 1000명이라니…. 

국회 국정조사 특위에 제출된 8월 중순까지의 사망자료를 연령대로 분석해 보니 만 4세 이하 영유아가 제일 많다. 만 1세도 안된 영아와 만 2세 유아 사망이 각 56명씩으로 가장 많았다. 

올해 들어 신고되는 피해자들은 대체로 60~70대 노인층이 많은 게 특징이다. 노화나 질병으로 사망했다고 알고 있다가 거듭되는 언론보도로 가습기 살균제와의 관련성을 의심하게 되어 유족이나 자녀들이 신고하는 경우들이다. 

신고된 피해자들에 대한 정부의 조사도 너무 늦다. 신고자 중 14%인 695명에 대해서만 판정이 내려졌고, 나머지 4198명은 한없이 기다릴 뿐이다. 협소한 판정기준도 심각한 문제다. 농약 성분의 살균제에 전신이 노출된 피해자들의 건강피해가 다양할 수밖에 없는데도 정부는 초기 역학조사 결과인 폐섬유화를 중심으로 하는 제한적 임상 경험만을 판정기준으로 삼고 있다. 

이 때문에 판정 대상의 37.1%인 258명만이 정부지원 대상에 포함되었고, 나머지 절반이 훨씬 넘는 437명은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하고 사실상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도 하지 않은 무관한 사람들’로 취급받고 있다. 신고자 모두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것이 분명하고 사용한 이후에 각종 질병과 사망이 발생했다. 

신고한 후에도 제대로 지원을 받지 못해 질병이 악화되거나 사망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1차적 가해자인 기업이 전혀 피해신고 및 지원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고, 정부가 소극적인 태도로 수수방관하면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 문제는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 

판정기준의 설정과 진행이 판정자 중심이 아니라 피해자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피해는 있는데 관련성의 근거를 찾지 못하면 ‘관련성 없음’이 아니라 ‘현재로서는 모름’이어야 하지 않는가?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가 아니다’라는 확실한 근거가 제시되는 경우에만 ‘관련성 없음’이라고 할 수 있다. ‘비특이성’, 즉 원인을 모르거나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는 이유가 곧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이 아니다’라고 해석되어서는 안되며, ‘관련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되어야 한다. ‘기저질환’의 건강영향은 건강한 사람보다 더 큰 피해가 나타날 수 있다는 상식에 의거해 접근되어야 한다. 

검찰 수사로 드러난 옥시레킷벤키저의 증거조작에 대한 여론과 옥시 불매운동 그리고 여소야대의 총선 결과로 국회 국정조사가 3개월 동안 진행되었다. 그러나 진상규명, 피해대책 그리고 재발방지라는 3대 목적을 거의 달성하지 못한 채 마감해 버렸다. 옥시 영국 본사의 개입을 확인하고, 런던까지 쫓아가 엎드려 절 받기식으로 겨우 사과를 받아내고, 피해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제조사모임을 만든 게 실질적인 성과다. 

피해자들은 국정조사를 연장해 문제를 해결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야당은 동의하지만 여당인 새누리당은 ‘이만하면 됐다’면서 나머지는 국회 상임위에서 다루면 된다며 반대한다. 지난 19대 국회 환경노동위는 여러 법안이 제출되었지만 질질 끌다가 무엇 하나 이룬 것 없이 문을 닫았었다. 야당 출신 위원장이 싫고 정부에 대한 사과 요구가 계속되고 재벌기업들인 제조판매사에 대한 책임 추궁이 커지는 게 부담스럽다는 것이 실질적인 반대 이유란다.

국정조사를 연장하라며 피해자들이 다시 거리로 나서서 철야농성에 1인시위를 하고 있다. 1년 전 아버지를 잃은 딸이 매일 영정을 안고 새누리당과 국회 앞에서 호소하고 있다. 그녀가 서 있는 뒤로 새누리당의 대형 현수막이 보인다. ‘오로지 국민, 오로지 민생’이라고 적혀 있다. 새누리당은 그 말대로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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