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배·보상 종합대책 발표
특별법 개정·추모 사업 추진
피해자들, 정책 방향성 반겨 
재원 우려·피해 범위 확대 요구

가습기 살균제 자료사진. /연합뉴스가습기 살균제 자료사진. /연합뉴스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 참사 피해지원 종합대책’을 발표하자 피해자들은 “늦었지만 진일보한 대책”이라고 평가했다. 무엇보다 기존 ‘피해 구제’ 중심 정책을 배·보상 체계로 전환하고, 단순 사고가 아닌 사회적 참사로 공식 규정한 점, 국가 주도 추모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점이 긍정적으로 여겨진다. 다만 국가가 실제로 부담하겠다고 밝힌 재원 규모를 두고는 우려도 제기된다.

뒤늦게나마 국가적 대응 확대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 2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법을 전면 개정해 이 사건을 사회적 참사로 명확히 규정하겠다”며 “또한 국가 책임에 기반한 배상과 지원 체계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김 총리는 “국가 책임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이 지난해 최종 확정됐다”면서 “정부는 참사의 공동책임자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이행하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약 6000명에 이르는 피해자와 가족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 뜻을 전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대책 핵심은 국가 책임 명문화다. 정부는 지원 방식을 배·보상 체계로 전환해 피해자가 국가와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게 제도 틀을 바꾸겠다고 밝혔다. 치료비뿐 아니라 일실소득(사고로 노동력을 상실한 피해자가 잃게 되는 미래 소득)과 위자료도 배상 범위에 포함한다. 피해자에게 기존 구제 방식과 배상 방식 가운데 하나를 정하도록 선택권도 보장한다.

정부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가습기 살균제 특별법 개정을 추진한다. 또한 피해자들과 협의를 거쳐 공식 추모일을 지정할 계획이다.

피해자들, 바뀐 정부 태도에 ‘반색’

피해자들은 정부 대응을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김정백(62·창원시 마산회원구) 씨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사고가 아닌 참사로 규정한 점은 의미가 크다”며 “아직 세부 내용은 더 지켜봐야겠지만, 정책 방향 자체는 맞게 잡혔다고 본다. 이재명 대통령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가습기 살균제 참사로 1994년 10월생 막내아들을 잃었다. 부친은 천식, 자신은 심한 가려움증에 시달리고 있다.

김 씨는 “그렇지만 보상체계가 약하면 반발이 나올 수밖에 없다”며 “일실수입 보상 지연 이자, 아동 사망에 대한 가중 배상, 사망자 유족 위자료 지급 등이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피해 시효 연장 문제도 법에 명확히 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재원 규모를 두고 우려 목소리도 있다. 정부가 밝힌 국가출연금은 내년 기준 약 100억 원 수준인데, “국가 배·보상이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적은 금액”이라는 반응도 있다. 2022년 기업과 피해자 간 조정 과정에서 논의됐던 1차 조정안 총액이 9000억 원 이상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국가 부담이 지나치게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1999년 11월생 막내딸을 잃은 정일관(66·진주시 명석면) 씨는 “전적으로 책임지는 배·보상이 돼야 한다”며 “지원금액이 충분해야 실질적인 배상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배상 전환과 추모사업만큼이나, 피해자 범위를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느냐도 중요하다”며 “현재 피해 등급 판정이 폐 섬유화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가습기살균제 피해는 폐뿐 아니라 전신에 다양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협소한 기준으로 피해자를 가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안희주(3년 전 사망한 배구선수 안은주 씨 언니) 씨는 말을 아꼈다. 그는 “지원대책에 대해서는 달리 할 이야기가 없다”며 “묵언만이 남은 친정 가족들의 평온을 지키는 길인 것 같다”고 말했다.

김순옥 씨가 2023년 10월 17일 오후 5시 창원시 의창구 경남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모임에서 한 손에 휴지를 들고 울먹이고 있다. 그는 이날 “몸이 아프고, 너무 고통스럽기까지 하다”면서 “삶이 지옥 같다”고 말했다. /최석환 기자김순옥 씨가 2023년 10월 17일 오후 5시 창원시 의창구 경남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모임에서 한 손에 휴지를 들고 울먹이고 있다. 그는 이날 “몸이 아프고, 너무 고통스럽기까지 하다”면서 “삶이 지옥 같다”고 말했다. /최석환 기자

추가 피해자 추적 의지 부족

아직 드러나지 않은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찾아내는 계획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경남만 보더라도 피해를 본 지 모르다가 뒤늦게 신고한 이가 많다.

정부에 신고된 전국 피해자는 지난달 30일 기준 8035명, 그중 공식 피해 인정자는 5942명이다. 사망자는 공식 통계상 1900여 명이다. 경남지역 가습기살균제 피해 신고자(올해 2월 기준) 333명이다. 이 가운데 사망자는 84명(25%), 생존 환자는 249명이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여러 면에서 진일보한 대책이기는 하지만, 가려진 피해자를 찾겠다는 의지가 부족하다”면서 “정부기관별 책임 표명도 없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다만 “이번 대책 핵심은 국가 배·보상 수준”이라며 “2026년 100억 원으로는 국가배상이라는 말이 무색하다. 최소 3000억 원, 전체 배상액의 30% 정도는 국가가 부담해야 실질적인 의미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입법과정에서 있을 정치적 변수와 기업 조정 수준, 법원 판결 결과가 향후 배·보상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