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구광모 회장 책임 통감한다는데…신학철 LG화학 대표 인도 사고 뒷짐만
지난 5월 LG화학의 인도공장인 LG폴리머스 인디아에서 발암물질인 스타이렌 가스 누출이 일어난 지 3개월이 지났다. 인도 주민 15명이 사망했고, 인도 남부 안드라 프라데시 주정부는 사고 직후 구성됐던 사고위원회 보고서를 지난 7월 7일 발표했다. 2개월간 면밀한 조사 끝에 나온 보고서였다. 주 정부는 “업체가 안전 규칙을 준수하지 않았고, 시의적절한 응급 대응 조치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사고 원인에 대해서도 “21가지 구체적인 사고 원인 가운데 20개가 경영진 책임과 연관돼 있다”며 “사고가 난 노후탱크는 50년이 더 됐고, 2주 전 사고가 날 조짐을 보였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명확히 밝혔다.
대규모 인명 사고와 피해로 이어진 심각한 가스 누출 사고임에도 LG화학은 사고원인이나 사고대책 등에 대한 공식적인 발표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LG폴리머스 인디아는 LG화학이 1996년 12월 인수했고,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로 인해 “한국 본사가 100% 투자하고 이익을 가져가는 구조 속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LG화학 본사가 민형사상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목숨까지 앗아갈 수 있는 발암물질인 스타이렌이 무려 800톤이나 유출됐지만 경보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아 피해를 더욱 키웠다. 공장에서 반경 5km 내 6개 지역 주민 1만7000가구의 2만여 명이 서둘러 대피해야 했다. 이 지역의 농작물 중 곡물 50%, 파파야 90%는 오염으로 폐기 처분됐다. 상수원의 물 색깔이 적포도주처럼 변하는 등 오염돼 음용수를 별도로 공급하는 등 실생활 전반에 손해를 끼쳤다. 특히 토양 오염이 가장 심각하다. 농작지의 안전기준 스타이렌 검출량은 0.01mg/kg. 그러나 오염지역 내 9곳의 시료 분석 결과 1215mg/kg에서 최대 5950mg/kg까지 농도가 치솟았다.
LG화학은 지난 5월 13일 노국래 석유화학사업본부장을 단장으로 한 8명의 지원단을 사고 수습을 위해 현지에 파견했다. 사안이 엄중해 신학철 LG화학 대표가 현장에 갈 계획이었지만 지원단의 예우 등을 이유로 지원단장의 급이 부사장으로 낮아졌다. LG화학 관계자는 “공장 안정화가 목적이었기 때문에 엔지니어들로 대부분 구성됐다”고 설명했다.
인도 주정부와 경찰은 LG화학 본사의 책임을 묻기 위해 지원단의 출국 제한 조처를 내렸다. 하지만 인도 고등법원에 청원을 제기한 끝에 6월 말 귀국길에 오를 수 있었다. LG화학은 법무부 장관 출신인 고위직 변호사를 고용해 법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 중앙정부 조사기관인 인도환경재판소 조사에 대해서도 중복 조사라는 이유로 회피하고 있다.
인도 시민단체는 “LG화학이 법적 대응 활동에만 집중해 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기보다는 모면하려 한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아시아직업환경피해네트워크와 환경보건시민센터 등은 LG화학의 책임 있는 자세와 대처를 촉구하기 위해 국제 온라인 토론회를 3차례 개최한다. 첫 토론회인 11일에는 가스 누출 사고의 유가족과 피해자 5명이 발표자로 나와 처참한 ‘건강과 환경 피해 문제’에 대해 털어놔 모두를 안타깝게 했다.
환경보건시민센터 관계자는 “LG화학에서 신속하고 책임 있는 사태 해결을 위해 종합적인 지원 대책을 만들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지원과 대책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실제 피해자들은 철저히 제외되고 있다"고 말했다.
LG화학은 지난 5월 24일 이후 음식 제공과 현지 콜센터 등의 주민 케어 활동도 중단한 상황이다. LG화학 측은 “주 고등법원의 공장 봉쇄 명령으로 잠정 중단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가스 누출 사고 이후 계속해서 공장은 봉쇄된 상황이었고, 주민 케어 활동과 공장 봉쇄는 별도라는 지적이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지난 5월 1명의 인명사고가 났던 LG화학 대산공장 현장에 헬기를 타고 방문했다. 구 회장은 “잇따른 안전·환경 사고에 대해 모든 경영진은 무거운 책임 통감해야 한다”며 원점에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신학철 LG화학 대표는 올 2분기 영업이익이 131%(5716억원) 이상 늘어나자 해외 매체와 인터뷰를 하는 등 실적 홍보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반면 인도공장의 가스 누출 사고에 대해서는 뒷짐만 지고 있다.
“기업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은 경영실적이 아니라 안전환경과 품질사고 등 위기관리에 실패했을 때 한순간에 몰락하는 것”이라는 구 회장의 경고를 되새겨야 할 시점이다.
김두용 기자 kim.duy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