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조류독감 확산 주범 철새’주장, 성급하다
성/명/서
AI가 철새 폐사 직접 원인 아닐 수 있어,, 철새에서 가금류로 전파되었다고 보기도 어려워
정부는 철저한 원인 조사로 실효성 있는 방역 대책 수립해야
가축 사육환경 개선, 철새서식지 보호대책과 생물다양성관리계약제 확대 등 공존 모색해야
◯ 22일 현재 전북 고창·부안·정읍의 AI(조류독감) 발병 농가가 총 8곳으로 늘었다. 정부는 AI 확산 방지를 위해 고병원성 AI 발생농장과 반경 500m 이내 농장에서 사육 중인 가금류 20만3천 마리를 살 처분했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이미 사전 예찰을 받은 농장에서 발병한터라 더욱 충격이 컸을 농장주와 자식처럼 닭, 오리를 키우다 날벼락을 맞은 살 처분 농가에게 마음 깊이 위로를 전한다. 생명이 아닌 공산품처럼 회수 조치되어 폐기 처분된 20여만 마리의 가금류의 명복을 빈다.
◯ 농림식품수산부(이하 농식품부)는 21일 보도 자료를 통해 “18일 이후 다른 지역에서 추가 신고가 들어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방역활동은 효과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AI 확산이 주춤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축산 농가들의 불안은 쉬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AI 확산의 원인이 철새라는 ‘철새 주범론’ 때문이다. 하늘을 나는 철새를 어떻게 막는다는 말인가?
◯ AI 확산에 대한 공포가 일파만파로 퍼진 것은 가창오리 1,000마리 떼죽음 보도 때문이다. AI 바이러스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은 야생조류의 떼죽음 사례는 매우 드물다. 따라서 강력한 고병원성 AI가 나타난 것 아니냐는 예측 보도가 나왔고, 언론에서는 제대로 된 확인도 없이 이를 확대 재생산했다. 이후 고창 AI발병 농가의 폐사 오리와 동림저수지 폐사 가창오리에서 고병원성인 H5N8형이 발견되면서 농식품부는 야생철새에서의 유입 가능성을 기정사실화 했고, 언론은 농식품부 발표를 출처로 기사를 만들어냈다.
◯ 환경운동연합은 농식품부의 이 같은 판단이 발생 원인에 대한 충분한 조사와 규명 없이 내린 성급한 결론이 아닌지 우려스럽다. 정부 방역 체계의 혼선과 실효성 없는 방역 대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위험한 판단일 수 있다.
첫째, H5N8형 AI가 철새에서 가금류로 이동했다고 단정 짓기 어렵다. 농식품부와 전라북도는 H5N8형 AI 출현이 국내 최초라는 점을 근거로 들고 있다. 하지만 가금류 내에서도 AI 형질의 조합에 따라 새롭게 변이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의 의견이다. 즉 가금류 내에서 H5N8형으로 조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는 의미다. 또한 새와 축산 농가와의 감염 경로도 불분명하다. 고창 AI 발병 축산 농가는 지난 11월 사전 예찰을 받은 농가다. 일반적으로 씨 오리사는 일반 계사나 오리사에 비해 관리가 철저하며 사육환경도 나은 편이다. 그래서 관리부실로 바이러스가 침투할 가능성은 낮다. AI 잠복기가 21일인 점을 감안할 때 이미 11월 초에 도래한 가창오리가 12월말 경 AI를 퍼뜨렸을 가능성도 높지 않다. 가축방역협의회 전문가들이 밝힌 “야생 철새에서 H5N8형 바이러스가 나왔더라도, 농가 단위의 소독 체제와 농장 간 이동 제한을 철저히 이행하는 것이 위기 극복의 핵심”이라고 밝히고 있는 바, 이를 방역 계획의 중심에 두는 것이 타당하다.
둘째, 철새 폐사 원인을 병원성 AI로만 해석하기 어렵다. 사흘 동안 수거한 철새 사체는 모두 98마리다. 당초 보도된 야생 조류 1,000여 마리 떼죽음과는 거리가 멀다. 강력한 고병원성 AI로 죽었다고만 해석하기에는 적은 숫자다. 호남평야의 대표적인 철새도래지인 동림저수지를 찾아 온 철새 수는 약 20만 마리며, 폐사율은 0.05% 정도다. 폐사된 개체는 추수가 끝난 농가 대부분이 논의 볏짚을 곤포 사일리지(추수 후 볏짚을 비닐로 싸두기)로 만들기 때문에 먹이를 구하기 어려워져서, 또는 태생이 약했거나 장거리 여행에 따른 체력 약화, AI 증상 등으로 자연 도태되었을 가능성도 높다. 다시 말해 AI 바이러스가 나왔다 해도 직접적인 사인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바이러스 정밀조사 뿐만 아니라 사체 부검 결과와 함께 종합적인 원인진단이 필요한 이유다.
◯ 환경운동연합은 정부가 조류독감의 확산을 저지하고 농가를 보호하기 위해 들이는 수고는 높게 평가하지만, 정부가 발표한 조류독감의 원인과 대책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힘들다. 정부가 기존의 ‘철새 주범론’을 고집하려면 ‘자연 상태인 시베리아에서 고병원성인 H5N8이 발생하게 된 배경’, ‘수거된 폐사 오리의 현황과 H5N8과의 연관성’, ‘동림저수지와 영암호 등에서 추가 폐사가 발생하지 않는 이유’ 등에 대해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정부가 제시한 근거와 논리만으로는 AI가 철새에 의해 유발된 것이라 보기 어렵고, 따라서 이들을 감시하는 것을 주요 대책으로 삼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 환경운동연합은 농림부가 무리하게 철새 주범론을 거론하는 것이 ‘AI의 발생을 통제하지 못하고 확산경로를 파악하지 못한 책임을 피하기 위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이에 환경운동연합은 별도의 조사와 논의를 거쳐 정부의 정책방향을 바로잡기 위해 본격적으로 활동할 것임을 밝힌다. 나아가 2003년 이후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AI에 대해 다각적이며 체계적인 발병 원인 조사를 촉구할 것이다. 또한 AI가 철새 이동 경로나 사람을 매개체로 전파되는 가능성 이외에도 공장식 축산으로 밀식사육 되면서 면역력이 약화된 가금류에서 발생할 가능성과 황사에 의한 전파 가능성, 그리고 토착 가축전염병화 등에 대해서도 과학적인 조사 진행을 요구할 것이다.
◯ 나아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철새 도래지인 금강, 만경강, 동진강 권역은 새만금 간척사업과 4대강 사업 등 대규모 개발로 인해 서식지가 매우 크게 위협 받고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특히 생태계 보전을 위한 생물다양성관리계약제도 확대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서, 낱알 하나 남지 않은 들판이 철새들에게 척박한 땅이 되고 있음을 알리고자 한다.
◯ 우리는 2008년 1,000만 마리의 닭과 오리를 살 처분한 경험을 상기해야 하며 또다시 반복해서도 안 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도 우리가 사육하는 동물들을 생명으로 대하고, 자연 앞에서 겸허한 자세로 그들과 공존을 모색하는 성찰해야 할 것이다. 이번 사태는 우리 사회가 변화를 시작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2014년 1월 22일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이시재 장재연 지영선 사무총장 염형철
※ 문의 : 이정현 전북환경연합 사무처장 (010-3689-4342, leekfem@kfem.or.kr)
김현경 환경연합 생태사회팀장 (010-9034-4665, momo@kfem.or.kr)
사진은 창원시가 내건 플랜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