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제돌이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바다의 제돌이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최예용 0 2202

바다의 제돌이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한겨레신문  2013.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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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후 4시20~30분께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목지곶 해안 인근 가두리 안에 있던 제돌이는 부리를 내밀고 서서 인사를 하는가 싶더니 곧 바다로 빠져나갔다. 허탈한 이별 뒤 고무보트를 타고 제돌이와 춘삼이를 찾아 나섰다. 서쪽으로 내달린 지 40여분. 김녕항에서 서북방으로 약 2.5㎞ 떨어져 있는 다려도 인근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제돌이를 발견했다. 멀리 김녕항 일대에 설치된 풍력발전단지가 보인다. 제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커버스토리 돌고래, 4년만의 귀향

▶ 긴 여정 끝에 제돌이와 춘삼이가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먼저 바다로 떠난 삼팔이처럼 제돌이와 춘삼이도 야생 무리와 합류한다면 공식적으로 인간이 돌고래에게 자유를 되돌려준 첫 기록이 됩니다. 돌고래쇼장이 아닌 푸른 바다에서 제돌이와 함께 사는 법은 무엇일까요. 쉽게 눈에 보이지 않아도, 자주 마주치지 않더라도 서운해하지 마세요. 가만히 돌고래가 우리 앞에 오기를 기다리다 보면 당신은 이미 자연과 가까워져 있을 겁니다.

“돌고래다!”

 

19일 오전 11시14분 제주시 구좌읍 동복리 앞바다를 바라보던 ‘제돌이 야생방류를 위한 시민위원회’(제돌이시민위) 소속 연구원이 소리쳤다. 옥빛 바다 너머로 돌고래 두 마리가 높게 솟구쳤다.

 

전날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가두리에서 야생방사된 남방큰돌고래 제돌이와 춘삼이를 찾기 위해 세 팀으로 나눠 해안을 수색하던 제돌이시민위 소속 연구·촬영팀이 분주해졌다. 약 5㎞ 떨어진 김녕항에서 선주동 서울대공원 사육사가 고무보트를 띄웠다. 가까이 다가가 등지느러미를 살펴봤다. 아무 표지가 없었다. “제돌이, 춘삼이는 아닌가 봐요!”

 

제돌이는 등지느러미에 1번, 춘삼이는 2번이 하얀색으로 새겨져 있다. 지난달 22일 제주시 성산항 가두리에서 야생적응 훈련 중 탈출한 삼팔이는 번호 표지가 없어 사진을 찍어 개체를 파악한다.

 

그러던 중 국립수산과학원 산하 고래연구소에서 전해준 소식이 퍼졌다. 춘삼이 등지느러미에 달린 위성위치추적장치(GPS)에서 보낸 신호가 잡혔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환호했다.

 

제주 앞바다에서 불법포획돼 돌고래쇼에 동원됐다가 고향으로 돌아간 남방큰돌고래 제돌이와 춘삼이가 야생에 순조롭게 적응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야생방사 40여분 뒤 제돌이가 다려도 앞바다에서 먹이사냥에 성공한 장면이 포착된 데 이어 춘삼이는 네 시간 동안 헤엄쳐 저녁 8시16분 우도 앞바다에 도착한 것으로 확인됐다.

 

가두리를 빠져나간 직후 수컷인 제돌이는 서쪽 방향을 택했고 암컷인 춘삼이는 동쪽을 택했다. 외국 사례를 보면, 돌고래 두 마리 이상이 동시에 야생방사되더라도 다른 길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두 돌고래는 야생적응 훈련 중에도 친하게 지낸 적이 없어서 제 갈 길을 간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전문가들은 본다.

 

아직 두 마리의 야생 무리 합류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먹이사냥에 성공하고 빠른 이동속도를 보임에 따라 적응에 성공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낙관하고 있다. 특히 춘삼이의 이동속도는 야생 돌고래에 크게 뒤지지 않는다. 춘삼이는 김녕리에서 우도까지 직선거리 20㎞를 네 시간 만에 주파했다. 야생방사를 지휘한 김병엽 제주대 해양과학대 교수는 “춘삼이는 제돌이에 비해 활동적이었다. 현재까지 확인된 먹이 섭취나 활동성 등을 볼 때 두 마리 모두 순조롭게 야생에 적응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삼팔이는 이미 지난달 25일 야생 무리와 함께 다니는 장면이 사진 식별을 통해 확인됐다.

 

제주도 남방큰돌고래 야생 무리는 114마리로 추정된다. 1~4마리로 다니다가도 70~80마리의 큰 집단을 형성하는 등 해안을 돌며 ‘이합집산’하는 행동을 보여준다. 제돌이시민위는 해안을 돌며 야생방사된 세 마리의 행동과 무리 합류 여부를 관찰할 예정이다.

 

제주/남종영 최우리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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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후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목지곶 해안 인근 가두리에서 남방큰돌고래 제돌이와 춘삼이 방사 행사가 열렸다. 제돌이는 사람이 다가가면 부리를 내밀고 섰는데, 이는 공연용 돌고래의 전형적인 행동인 스테이셔닝이다. 불법포획돼 돌고래쇼를 펼쳤던 지난 4년의 시간을 돌고래의 몸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제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푸우, 푸우, 푸우…드디어 제돌이가 생선을 사냥했다

돌고래가 사람의 곁을 떠나기 좋은 날씨였다.

18일 오후 2시,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목지코지 해안도로는 주차장으로 변했다. 남방큰돌고래 ‘제돌이’와 ‘춘삼이’의 귀향을 축하하는 ‘제돌이 야생방류를 위한 시민위원회’(제돌이시민위) 위원들과 취재진 70여명으로 북적였다. 바다는 잔잔했지만 사람들은 들떴다. 이날 아침 돌고래 한 마리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제돌이와 춘삼이를 돌보는 선주동(30) 서울대공원 사육사가 말했다.

“정확히 9시4분이었어요. 아침밥을 주기 위해 가두리에 도착했는데, 보트 옆으로 돌고래 한 마리가 떠올랐어요. 처음엔 제돌이나 춘삼이가 탈출한 줄 알고 깜짝 놀랐죠. 그런데 가두리 안을 보니 두 마리 그대로 있었어요.”

또 한 마리의 남방큰돌고래는 가두리를 툭툭 치면서 제돌이와 춘삼이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10분쯤 지났을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야생의 돌고래는 다시 먼바다로 떠났다.

이별 의식도 못 치른 허탈한 이별

이날 오후 제돌이와 춘삼이는 야생의 바다, 친구 곁으로 돌아갈 참이었다. 두 마리는 2009년 각각 불법포획돼 경기도 과천의 서울대공원과 제주 퍼시픽랜드로 옮겨져 돌고래쇼에 동원됐다. 2012년 3월 서울시는 제돌이의 야생방사 결정을 내렸고, 지난 3월 대법원은 사실상의 야생방사 결정인 춘삼이의 몰수형을 확정했다.

오후 4시, 지름 30m, 깊이 7m의 가두리 안. 제돌이와 춘삼이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야생방사를 위해 돌고래쇼를 중단한 이후 처음으로 많은 사람을 보아서인지 둘은 평소보다 활달하게 움직였다. 돌고래의 등지느러미가 언뜻 수면 위를 스쳤다. 휘어지는 유연한 돌고래의 몸은 투명한 제주 바다에 뜬 초생달 같았다. 수면 아래로 보이는 돌고래의 몸은 바닷물에 번져 희미해졌다.

오후 4시13분, 제돌이시민위원장인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와 동물보호단체 카라의 임순례 대표 등이 남쪽 김녕항 방향의 그물 끈을 풀었다. 가두리 3분의 1가량의 그물이 풀리자 물길이 열렸다. 드디어 제돌이와 춘삼이가 자유를 찾아 떠나는 걸까? 정적이 바다를 휘감았고 기자들은 카메라를 응시했다. 이별의 순간이었다.

그러나 세모난 지느러미는 여전히 가두리 안을 서성였다. 제돌이가 갑자기 다가와 ‘스테이셔닝’과 비슷한 동작을 취했다. 스테이셔닝은 사람이 다가가면 부리를 내밀고 서는 쇼돌고래의 전형적인 행동이다. 시간이 흘러도 제돌이와 춘삼이는 가두리 안을 맴돌 뿐이었다. 바닷속 탈출 장면을 찍기 위해 내려갔던 잠수부들이 숨이 차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여기저기서 탄식이 새어나왔다.

기다림이 길어지자 가두리를 빌려준 어민 박진우(49)씨가 칼을 들고 추자도 방향 북쪽의 그물을 끊기 시작했다. 가두리의 절반의 그물이 흘러내렸다. 돌고래들은 남쪽과 북쪽 양쪽으로 난 물길을 찾을 수 있을까. 이제 3~4m 이상의 탈출로가 생겼다.

“한 마리가 나갔답니다!”

방류행사 사회를 보던 동물자유연대 조희경 대표가 외쳤다. 4시28분이었다. 갑자기 소리도 없이 빠져나간 돌고래와의 이별에 사람들은 당황했다. 그때 잠수부가 수면 위로 올라와 손을 저었다.

“아직 안 나갔답니다.”

허탈한 웃음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수면 위로 부상하는 돌고래의 등지느러미가 보이지 않았고 잠수부들이 가두리 안을 다시 확인하기 시작했다. 10분도 지나지 않아 돌고래의 방류 사실은 최종 확인됐다.

“둘 다 없어요!”

이별 의식도 치를 사이가 없었다.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갑자기 고래가 사라졌다. 허탈하게 헤어졌다. 허둥대던 사람들은 한동안 멍한 표정으로 수평선만 바라봤다.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장이권 교수(동물행동학)가 말했다.

“사람들이 갑자기 너무 많이 와서 바로 못 나간 것 같아요. 이렇게 사람들 몰래 조용히 바다로 떠난 게 더 좋은데요?”

제돌이와 춘삼이는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남은 건 수중카메라에 잡힌 춘삼이의 자취뿐이었다. 두 대의 수중카메라 영상을 이어보니, 제돌이가 먼저 북쪽 탈출로로 나간 뒤 춘삼이도 뒤를 이어 나간 것으로 보였다. 찢겨진 그물 위로 춘삼이는 부드럽게 자유의 경계를 넘었다.

두 돌고래의 ‘탈출’이 확인되자, 고무보트의 시동이 걸렸다. 두 돌고래를 쫓아가 야생 무리와 합류하는 광경을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느낌상’ 서쪽을 택했다. 그렇게 내달린 지 40여분. 가두리에서 북서쪽으로 2.5㎞ 떨어진 다려도 주변에 도착했다.

“저기 있다!”

고무보트의 키를 쥔 선주동 서울대공원 사육사가 외쳤다. 푸우. 푸우. 푸우. 수면 위로 쓰윽 올라와서는 숨을 쉬는 1번 돌고래(제돌이)가 눈에 들어왔다. 얼마 뒤 생선 하나를 머금은 모습이 보였다. 제돌이와 사람들은 그 뒤 대여섯번을 숨바꼭질하듯 만났다 헤어졌다. 제돌이가 드디어 바다로 돌아간 것이다. 2009년 5월1일 제주 서귀포시 신풍리 정치망에 혼획(우연히 걸려듬)돼 불법으로 팔려나간 지 4년2개월 만이다. 자유를 되찾으면서 제돌이는 우리 사회에 많은 질문을 던졌다. 특히 2011년 7월부터 우리는 환경과 동물에 대한 긴박한 인식 전환을 이루었다.

쇼 막으려고 ‘핫핑크돌핀스’ 만든 황현진

2011년 7월 중순.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 활동가인 황현진은 제주도에 가는 비행기에 타고 있었다. 왜 제주도에 가야 하는지, 가서 무엇을 할지도 몰랐다.

“그냥 이건 아니라는 생각뿐이었어요. 우리가 보는 돌고래쇼의 돌고래들이 제주도에서 20년 이상 불법 포획되어 왔다니요!”

제주 서귀포시의 돌고래공연업체 퍼시픽랜드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는 쇼에 앞서 돌고래들이 대기하는 내실에 들어갔다. “우중충한 목욕탕 같은 수조에 돌고래 서너 마리가 맴돌고 있는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그는 회상했다. 이튿날 그는 혼자 피켓을 만들었다. 퍼시픽랜드 앞에서 1인시위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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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공원에서 훌라후프를 돌리던 제돌이 이야기를 처음으로 세상에 알린 2012년 3월3일치 <한겨레> 토요판 1면. 보도 직후 박원순 시장의 야생 방사 결정이 이뤄지면서 돌고래의 불법포획 문제는 한국 사회의 뜨거운 쟁점이 되었다.
이별의 순간 제돌이는 부리를 내밀고 섰다 공연때 배운 스테이셔닝이다. 서울대공원 돌고래쇼장에서 제돌이를 처음 만났을 때도 꼬리 까딱거리며 인사했다.

지난해 <한겨레>의 첫 보도 뒤 박원순 시장은 방사를 결정했다.
보수언론은 ‘정치적 의도’ 물으며 야생방사가 불가능하다 했지만 한달 전 빠져나간 삼팔이는 벌써 무리에 잘 적응하고 있다

그가 제주도에 간 이유는 7월14일 해양경찰청의 충격적인 수사 결과를 듣고서였다. 해양경찰청은 퍼시픽랜드가 1990년부터 제주 연안 정치망에 우연히 걸려든 남방큰돌고래 26마리를 한 마리당 700만~1000만원에 어민들에게 사들여 돌고래쇼에 이용하거나 서울대공원에 넘긴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황현진은 찜질방에서 자고 삼각김밥을 먹으며 1인시위를 이어갔다. 지치고 무서웠다. 관람객들은 차를 몰고 ‘쌩’ 지나갔다. 어느 날, 한 가족이 탄 차가 주차장에서 유턴을 해 돌아왔다. 한 어린이가 내려서 귤을 건넸다. “언니 때문에 돌고래쇼 안 보기로 했어요.”

그것은 그가 처음 외롭지 않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황현진은 제주도에 눌러앉았다. 국내 최초의 고래보호단체를 만들었다. ‘핫핑크돌핀스’라고 이름을 지었다. 그때 그의 나이는 25살밖에 되지 않았다.

“잘 지켜보고 있어요. 우리가 취재하러 제주 내려갈게요.”

그 뒤부터 <한겨레> 취재진은 황현진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동물보호단체인 동물자유연대도 현장 조사를 벌였다. 이듬해 초 본격적인 취재가 시작됐다. 퍼시픽랜드 퇴직 조련사를 만나고 돌고래 야생방사 경험이 있는 외국 전문가를 인터뷰했다. 그때까지 ‘제돌이’의 이름을 아는 건 서울대공원의 조련사들뿐이었다.

제돌이를 처음 만난 건 그해 2월22일 서울대공원 돌고래쇼장에서였다. 제돌이는 훌라후프를 돌리고 있었다. 애초 서울대공원은 취재 협조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불법을 저지른 퍼시픽랜드한테 2009년 바다사자를 주고 들여온 개체였기 때문이다. 관계자 증언과 고래연구소 자료를 통해 제돌이가 2007년 야생에서 발견된 ‘JBD09’(야생 식별번호)임을 밝혀냈다. 2012년 3월3일 <한겨레> 1면의 제목은 ‘제돌이의 운명’이었다. 핫핑크돌핀스와 동물자유연대 등도 기자회견을 열어 제돌이를 제주 앞바다로 돌려보내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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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후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목지곶 해안에서 열린 남방큰돌고래 제돌이와 춘삼이 방사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제돌이 방류 표지석을 제막한 뒤 박수를 치고 있다. 표지석에는 ‘제돌이의 꿈은 바다였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제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박원순 시장의 방사 결정, 그리고 시민위원회

박원순에게 돌고래는 낯설지 않았다. 변호사로 활동하던 1994년 그가 쓴 논문의 제목은 ‘동물권의 전개와 한국인의 동물인식’이었다. 그는 미국 하와이에 연구용으로 잡혔다가 야생방사된 돌고래 이야기를 논문에 썼다. 2012년 3월3일, 그는 제돌이의 이야기가 실린 <한겨레>를 읽고 있었다. 그는 마침 서울시장이었다.

2012년 3월12일 아침, 박원순 시장은 갑자기 서울대공원으로 기자들을 불러들였다.

“제돌이가 한라산과 구럼비가 있는 제주 앞바다에서 마음 놓고 헤엄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동물과 사람,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재검토하고 새롭게 설정하는 문제입니다.”

갑작스런 발표에 기자들은 술렁였다. 서울시 관계자가 당시를 회상했다.

“환경단체의 야생방사 주장을 박 시장은 유심하게 바라보고 있었어요. 부정적인 쪽으로 쟁점이 형성될 걸 알면서도 선제적으로 결정했지요.”

보수언론은 ‘제돌이의 야생방사 장소가 강정 해군기지가 있는 구럼비바위’라고 주장하며 끈질기게 제돌이를 정치화했다. 하지만 구럼비바위를 언급한 박 시장 스스로 빌미를 제공한 측면도 있었다.

박 시장은 민관 주도로 논란을 돌파하려 했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를 위원장으로 하는 ‘제돌이 방류를 위한 시민위원회’에 야생방사의 전권을 맡겼다. 시민위원회에는 서울대공원 동물원장과 시의원, 환경·동물보호단체 대표, 생물학과 해양공학자, 변호사 등 다양하고 이질적인 사람들이 모였다. 이들은 내부에서 각종 논쟁을 벌이며 제돌이를 비롯해 대법원의 퍼시픽랜드 유죄 판결과 돌고래 몰수형으로 서울대공원으로 넘겨진 춘삼이와 삼팔이(D-38)의 야생방사도 지휘했다.

김현우 고래연구소 연구원은 남방큰돌고래 전문가였다. 고래가 좋아 부산수산대의 후신인 부경대에 들어갔고, 대학 때부터 고래연구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애초 관심은 동해에서 멸종한 귀신고래에 있었다. 러시아 사할린에서 귀신고래를 관찰하던 그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제주도에 출몰하는 돌고래로 이어졌다. 그동안 야생에서 비교적 흔한 큰돌고래로 알려졌지만 그는 2009년 이와 다른 종인 남방큰돌고래임을 밝혀냈다. 매년 네 차례 김병엽 제주대 해양과학대 교수와 함께 조사를 벌인 그는 남방큰돌고래가 국내에선 제주에서 유일하게 서식하고 114마리밖에 없어 멸종위기에 처한 사실도 밝혀낸다. 그리고 그는 <한겨레> 인터뷰에서 ‘수족관에 불법포획된 남방큰돌고래의 야생방사가 가능하고, 야생방사를 통해서 멸종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맨 처음 야생방사 주장에 대해선 회의적인 의견이 많았다. 특히 보수언론은 ‘박원순 때리기’에 집중하면서 ‘2년 이상 감금된 돌고래의 야생방사는 성공한 적이 없다’는 논리를 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세계적으로 논문으로 기록된 돌고래 야생방사는 단 두 편. 2년 이하의 돌고래를 방사했던 연구사례는 성공했고, 최장 9년을 비롯해 다양한 감금 기간의 돌고래들을 야생적응 훈련 없이 한꺼번에 방류한 사례는 실패했다. 한 고래 전문가는 사석에서 “야생방사가 가능하다고 말하는데도 신문에서 정반대로 기사가 나간다”며 곤혹스러워했다.

이 논란의 해답은 지난 6월22일 제돌이, 춘삼이와 함께 제주 성산항에서 야생적응 훈련을 받다가 탈출한 삼팔이가 내놓았다. 김병엽 교수가 말했다. “삼팔이가 나간 거예요. 그물이 30㎝가량 찢어졌던 거죠.”

닷새 뒤인 27일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삼팔이가 대정읍 앞바다에서 남방큰돌고래 50여마리가 함께 헤엄치는 장면이 김현우 연구원에게 목격된 것이다. 제돌이, 춘삼이의 야생방사에도 청신호가 켜진 순간이었다.

제주 강정 해군기지 문제와 만나다

제돌이와 춘삼이가 바다로 나가기 직전, 제돌이시민위원들은 격한 논쟁을 벌였다. 돌고래의 등지느러미에 새길 ‘동결낙인’ 때문이었다. 드라이아이스를 이용해 제돌이에게 1번, 춘삼이에게 2번이라고 표시함으로써, 두 돌고래의 야생 관찰을 용이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16명의 위원 중 3명이 반대했고, 최예용 환경연합 바다위원회 부위원장은 반대하며 지난 10일 시민위원직을 그만뒀다. 야생방사 직전인 18일 아침, 그는 지인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등지느러미 1번 낙인은 인간의 흔적을 영원히 남기는 것입니다. 쇼에 동원됐던 돌고래를 자연에서도 관람하겠다는 잠재적 의도의 발로입니다.”

현재 야생 돌고래는 사진을 찍어 식별한다. 개체마다 다른 등지느러미를 무작위로 찍고, 나중에 대조작업을 통해 개체를 식별해낸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힘들다는 단점이 있지만 동물에게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반면 18일 등지느러미 1번 낙인이 찍힌 채 바다로 나간 제돌이는 100m 떨어진 곳에서도 육안 식별이 가능할 정도였다. 장이권 교수는 동결 낙인을 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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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에서는 등지느러미에 새길 1번·2번 ‘동결낙인’을 두고 ‘인간의 흔적을 남기는 것’ ‘더 많이 알아야 보존 가능’ 등 격렬한 찬반논란도 있었다

용왕님께 정성을 드린 덕인지 방사 뒤 40분만에 만난 제돌이는 벌써 생선 하나를 머금고 있었다.
‘왜 고래만 특별하느냐’고 묻지만, 우리의 인식의 폭이 넓어질수록 특별해질 동물은 점점 늘 것이다

“많이 알아야 잘 보존할 수 있습니다. 연구가 훨씬 용이하게 진행되면 남방큰돌고래의 생태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또한 1번, 2번이 선명한 제돌이와 춘삼이를 바다에서 본 사람들은 ‘돌고래 보호’의 메시지를 더 잘 이해하게 됩니다.”

제돌이 야생방사 과정에서 크게 세 가지 논쟁이 진행됐다. 첫째, 야생방사의 성공 가능성에 대한 과학적인 논쟁이다. 이 논쟁은 제돌이, 춘삼이, 삼팔이가 먹이사냥에 성공하면서 일단 ‘가능하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돌고래 야생방사에 있어서 돌고래가 야생에서 자급자족만 해도 무난하게 성공했다고 본다. 최적의 성공은 삼팔이처럼 야생 무리에 합류하는 것이다. 장이권 교수가 말했다. “제돌이 등은 최적의 성공 조건을 갖췄습니다. 우리는 이들의 서식지를 분명히 알고, 충분한 야생적응 훈련도 제공했습니다. 또한 남방큰돌고래는 연안을 가까이 돌기 때문에 무리에 합류하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둘째는 정치적인 논란이다. 일부에게 제돌이의 야생방사는 아직도 박원순 서울시장의 ‘포퓰리즘 정치’로 이해된다. 제돌이시민위는 18일 제돌이 야생방사 때 박 시장의 행사 참석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해 결국 행사 참석은 무산됐다. 서울시와 제돌이시민위는 정치적으로 보이지 않으려 애썼지만, 제돌이 문제는 제주 강정 해군기지와 얽히면서 정치적일 수밖에 없었다. 남방큰돌고래의 주요 이동경로가 강정 앞바다다. 황현진 핫핑크돌핀스 대표는 나중에 해군기지 반대운동에 뛰어든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생각하는 평화는 약한 사람, 약한 생명이 강한 사람, 강한 생명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거예요. 제돌이처럼 약한 생명체도 행복해야 하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돌고래 보호운동과 평화운동은 매한가지예요.”

 

셋째는 동물권 자체에 대한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왜 돌고래만 야생으로 돌려보내야 하는가? 왜 고래만 특별한가? 사실 정부가 나서 야생방사를 추진할 수 있었던 데는 제돌이 등이 불법으로 취득된 일종의 ‘장물’이었기 때문이다. 멸종위기종이라는 사실도 명분을 더했다.

 

하지만 위 질문에 정면으로 맞선다면 이렇게 대답할 수 있다. 돌고래는 인간이 가진 ‘인식론적 한계’ 안에서 특별하다. 유인원, 코끼리 등과 함께 고래는 거울을 통해 자아를 인식하는 몇 되지 않는 동물이다. 문화를 전승하고 교류한다. 인간과 견줄 만한 고등생물체다. 과학이 고래에 대해서 아는 건 많지 않다. 하지만 과학이 알려주는 한에서 우리는 그들을 존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우리의 인식의 폭이 넓어진다면, 사자와 호랑이도 고래만큼 특별해질지 모른다. 이렇게 인간과 동물은 새로운 관계를 맺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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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그물에 걸리지 말고 잘 살아!”

제돌이와 춘삼이가 떠난 직후 바다에는 고요함이 찾아왔다. 가두리의 그물을 직접 자른 박진우씨가 소리질렀다.

“자자, 떠난 돌고래들을 위해 용왕님께 정성을 드립시다.”

박씨가 검은 봉지에서 흰쌀로 뭉친 주먹밥을 꺼내 가두리에 남은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해녀들이 치성을 드릴 때 그해 얻은 햅쌀로 지은 밥을 흰색 한지에 담아 바다에 던진다고 그가 설명했다. 제주말로 ‘지(종이)드리는’ 풍습이다. 쌀이 귀한 제주에서 용왕에게 귀한 것을 바치면서 행운을 빈다.

“서울 사람들은 미신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과학 너머에 과학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가 흰쌀밥을 던지며 “제돌아, 춘삼아 잘 살아라!” 외쳤다.

화려하게 준비한 돌고래 방류 행사는 허탈하게 끝났다. 우리가 알 수 없는 방식으로 두 마리의 돌고래는 갑자기 떠났다. 예전에 그렇듯 잠영했고, 물이 흐르는 대로 바다로 돌아갔다. 수족관에서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던 돌고래는 ‘바다는 너희들이 모르는 곳이야’라고 속삭이듯, 우리의 시야를 몰래 빠져나갔다.

인간에게 돌고래는 어떤 존재일까. 그리고 돌고래에게 사람은 어떤 동물일까. 우리는 제돌이에 대해 아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더 많다. 가두리에 남은 사람들도 손에 쥔 쌀밥을 바다를 향해 던졌다. 그리고 외쳤다.

“제돌아, 춘삼아! 다시는 그물에 걸리지 말고 잘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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