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합의 통한 돌고래방류는 최초… 생태선진국 도약발판

사회적합의 통한 돌고래방류는 최초… 생태선진국 도약발판

최예용 0 3710

경향신문 2013년 6월22일자 기사

ㆍ동물권·동물복지에 대한 인식전환의 ‘산 경험장’
ㆍ정부선 돌고래 보호 손 놓고 거제시는 ‘수입’ 추진 시대역행 등 아직 갈 길은 멀어


남방큰돌고래 제돌이가 포획된 지 4년 만에 바다로 돌아가는 것이 국제적
이벤트가 되고 있다. 단순히 돌고래 3마리가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는 것만이 아니라 동물에 대한 인식을 달리하는 ‘산 경험장’도 되고 있는 것이다. 국내외 전문가와 환경단체들은 “제돌이 방류가 한국이 생태 선진국으로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해외 비정부기구(
NGO)들은 사회적 합의에 의해 돌고래를 바다로 방류하는 세계 최초의 사례를 만들어낸 한국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세계동물보호협회(WSPA),
미국의 환경단체 어스아일랜드인스티튜트, 휴메인소사이어티인터내셔널 등 다수의 동물 관련 비정부기구들이 앞다퉈 환영 의사를 밝혔고, 제돌이를 보기 위해 한국을 찾는 사람들도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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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퍼시픽랜드 돌고래 쇼공연장에서 서울대공원으로 데려와 휴식을 취하고 있는 복순이가 지난 1일 먹이를 주는 사육사 앞에서 재롱을 부리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제돌이 심포지엄 등에 참석키 위해 2차례 방한했던 미국 돌고래 보호활동가 릭 오베리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제돌이 방류라는 ‘올바른 일’을 함으로써 한국이 자연을 존중하고 있다는, 강하고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 세계에 보내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자연으로 돌아갈 만한 상태가 아닌 다른 돌고래들도 수족관을 떠나 다시 하늘을 보고 파도와 바람, 햇빛을 느낄 수 있는 자연에 가까운 환경에서 살아가도록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오베리는 세계 각지에서 30여마리의 전시 돌고래가 바다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운 인물이다. 그가 매년 돌고래 수천마리를 학살하고 있는 일본 다이치 지역의 고래잡이를 중단시키기 위해 펼친 노력은 2010년 아카데미영화제 장편 다큐멘터리 부문 수상작 <더 코브>로 만들어졌다.

제돌이 방류가 결정된 후 국내에서도 전시동물 실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현재 환경단체들을 중심으로 베일에 싸여 있는 민간기업 소유의 수족관들에 대한 조사가 추진되고 있다. 유기견과 길고양이를 보호하기 위해 조례를 만들려는 자치단체들도 나오고 있다. 서울시는 제돌이 방류 결정 후 지난해 8월 동물 보호·보건 정책을 추진할 동물복지과를 신설했다. 제돌이 방류 시민위원회 간사인 이화여대 에코
과학부 장이권 교수는 “이번 방류를 계기로 동물권, 동물복지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게 될 것”이라며 “동물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이 한 단계 올라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 “제주퍼시픽랜드 돌고래 새끼도 국가서 몰수” 여론

제돌이 방류를 위한 여론 조성에 큰 역할을 한 동물자유연대는 “제돌이 방류가 ‘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기회’라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입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밝혔다. 동물자유연대는 “이번 방류는 동물을 상업적 이용 대상으로만 보는 관점에 대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갖고, 보다 다양한 생물이 제 모습을 영위하면서 살 수 있도록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봤다. 제돌이가 원래의 자연 서식지로 돌아가 사는 모습은 청소년들의 교육에도 긍정적 효과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제돌이 방류는 서구 선진국에만 국한돼 있던 돌고래류의 방류를 아시아권으로 확장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는 아예
포경을 허용하고 있으며, 다이치 등 일부 지역에서는 연간 수천마리의 돌고래를 학살하고 있다. 일본은 국제포경위원회 가입국 중 과학 목적의 포경을 허용하는 유일한 나라이기도 하다. 한국은 지난해 7월 과학 목적의 포경을 허용하려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철회한 바 있다. 오베리는 “이번 방류는 아시아 국가들 내에 포획되어 있는 상태의 다른 돌고래들을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문을 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국내외의 학술적인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돌고래 종 중에서 남방큰돌고래를 방류하는 것은 제돌이가 세계 최초이기 때문이다. 지난 4일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는 돌고래 방류 심포지엄이 열렸다. 해외의 돌고래 학자와 돌고래 전문 수의사들이 참여해 돌고래 방류 경험을 공유하고, 남방큰돌고래의 성공적인 방류 방법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다음달로 예정된 방류 때는 해외 학자와 해외 동물보호단체들의 방한과 환영 성명도 잇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11월에는 세계적 동물학자인 제인 구달이 이화여대 최재천 석좌교수의 주선으로 한국을 찾아 제돌이를 직접 만나기도 했다. 당시 구달 박사는 서울시의 제돌이 방류 결정에 대해 “사람들이 동물을 점점 더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다는 증거”라며 민간이 아닌 서울시가 나선 점에 대해서도 높이 평가했다.

전문가와 동물보호단체들은 제돌이의 방류가 한국 사회의 전시동물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시작일 뿐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돌고래 연구가 걸음마 단계이고, 보호법안도 정비돼 있지 않으며, 국내의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전시동물의 실태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6월 말쯤 제돌이와 춘삼이, 삼팔이의 등지느러미에 낙인으로 1~3까지의 번호를 새길 계획이다. 연구자들이 관리하는 첫번째 돌고래라는 의미의 숫자 1이 새겨질 돌고래는 제돌이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방류 책임자인 제주대 해양과학대 김병엽 교수는 “드라이아이스와 알코올을 섞어 등지느러미를 얼린 후 숫자 낙인을 찍는 방법을 쓸 것”이라며 “해외에서는 이미 일반적인 방식”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숫자를 새겨놓으면 연구자들은 물론 시민들도 가까운 바다에서 육안으로 쉽게 제돌이의 등을 구분하는 것이 가능하다”며 “돌고래들은 대부분 육지에서 가까운 연안에서만 활동하기 때문에 숫자를 새겨놓는 것만으로도 다시 목격했을 때 제돌이나 춘삼이, 삼팔이를 구분해낼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조류 연구자들이 철새에게 가락지를 끼워 보내면 해외 연구자들이 서로 목격한 정보를 공유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이다. 방류하는 돌고래에게는
위치추적장치도 부착될 예정이다. 다만 이 장치는 배터리 문제로 6개월가량만 사용이 가능하다.

등지느러미에 번호를 새기는 방식은 제돌이 목숨을 구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장이권 교수는 “제돌이나 춘삼이, 삼팔이가 만약 어민들의 그물에 걸려들 경우 번호가 새겨져 있어 어민들이 방치하거나 팔아버리지 않고
구조대나 해양당국에 신고할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연구진은 돌고래들이 먹이를 찾기 위해 어민들이 펼쳐놓은 정치망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 숱하게 발생하고 있어 돌고래 보호에는 어민들의 협조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연안의 해양동물들이 그물에 포획돼 불법거래되거나 죽음에 이르게 되는 일을 막으려면 육지의 야생동물구조센터와 같이 해양동물구조센터를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사비를 털어 돌고래와 해양동물 구조 활동을 벌여온 김 교수는 “올해에만 돌고래, 바다사자를 5~6건 구조했다”며 “그물에 걸려든 해양동물을 어민들이 귀찮아서 방치한 후 버리거나 몰래 팔아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는 “해양동물구조센터를 만든 후 정부가 어민들에게 소정의
보상금을 지급한다면 어민들의 신고도 훨씬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시민단체들은 향후 과제로 제주퍼시픽랜드에 있는 불법포획 돌고래 새끼들도 국가가 몰수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대법원 판결을 통해 퍼시픽랜드에서 국가가 몰수한 돌고래 4마리 외에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새끼 돌고래들도 퍼시픽랜드의 소유권을 박탈해 몰수한 후 부모와 함께 방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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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제시가 지세포항에 추진 중인 돌고래파크 조감도.


■ 국회 고래류 보호 법안 등 통과 땐 또 하나의 전기

해외 비정부기구와 학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동물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도 빠르게 성숙해지고 있는 것과 달리 정부는 돌고래 방류와 보호에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대법원이 제주퍼시픽랜드의 불법포획 돌고래들을 몰수하도록 결정한 만큼 퍼시픽랜드에 있던 춘삼이, 삼팔이, 태산이, 복순이의 관리와 방류에 적극 나서야 하지만 해양수산부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춘삼이와 삼팔이는 제돌이 방류를 위해 서울시가 예산을 지원한 시설에 현재 덤처럼 맡겨져 있는 상황이다. 현재 서울대공원에 있는 태산이와 복순이도 정부가 이송비용을 대야 야생 적응훈련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해수부도, 멸종위기동물 관리 주무부처인 환경부도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거제시가 새로 돌고래 체험시설을 만들려는 것도 여론의 집중포화를 받고 있다. 거제시는 돌고래 체험 전시시설 건립을 추진하면서 국제적 비난을 받고 있는 일본 다이치 지역의 돌고래를 수입하기로 했다. 돌고래보호단체 핫핑크돌핀스와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 등 국내 환경단체와 대표적인 고래류 보호 국제기구인 ‘고래와 돌고래 보호(WDC)’ 등 31개 단체가 이미 반대 성명을 발표한 상태다. 환경부가 다이치 지역 큰돌고래 4마리의 수입을 허가해 달라는 거제시의 요청을 승인한 것도 논란에 휩싸여 있다. 오베리는 “한국은 돌고래와 고래류의 포획과 수출입은 물론 전시까지 금지해야 한다”며 “인도 정부도 최근에 금지 결정을 내렸다”고 전했다.

국회에는 돌고래와 고래류의 보호를 위한 법안이 지난해 발의돼 계류 중이다. 환경노동위원회 장하나 의원(민주당)이 발의한 ‘해양생태계의 보전·관리법 개정안’과 ‘수산자원관리법 개정안’에는 모든 고래류의 살상과 포획, 전시·공연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장 의원은 멸종위기종으로 제주 연안에 110여마리만 서식하고 있는 남방큰돌고래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자고 제안한 상태다.

이 법안에 대해 세계동물보호협회(WSPA)는 경향신문에 전한 메시지에서 “두 법안은 포경과 고래, 돌고래류 포획의 잔인성을 종식시키고 한국이 고래·돌고래 학대를 금지하는 나라의 대열에 합류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 법안이 채택될 경우 한국은 해양동물 복지에 있어 세계에서도 지도적인 국가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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