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세 번 부쳤고 세 번 닿지 못한 편지, 이재명 대통령에게

가습기살균제피해
홈 > Hot Issue > 가습기살균제피해
가습기살균제피해

[오마이뉴스] 세 번 부쳤고 세 번 닿지 못한 편지, 이재명 대통령에게

관리자 0 42
2026년 8월 11일, 가습기살균제 대참사 피해자연대 20개 단체를 이끌어온 서영철 총회장이 세상을 떠났다.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세 차례 대통령을 향해 호소한 직후였다. 유족과 피해자들은 고인의 유언에 따라 장례 대신 광화문광장에 빈소를 차렸다. “장례를 치르지 말고 광화문에서 싸워 이기라”는 것이 고인의 마지막 당부였다.

이 글은 고인의 곁에서 4년 8개월을 함께하며 기록해온 피해자연대 상임고문이자 공동장례위원장인 다큐멘터리 감독 류이(본명 유인열)가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다. 류이 감독은 지난 8월 28일 광화문 빈소 앞 기자회견에서 이 편지를 낭독했다. 8월 31일 참사 15주기를 앞두고 그 전문을 싣는다.

편지는 세 번 부쳐졌고, 세 번 모두 닿지 못했다. 2025년 겨울 새벽에 쓴 편지 한 통, 2026년 봄 국회의원 22명의 빈소 방문을 앞두고 놓인 편지 한 통, 그리고 2026년 한 사람이 자신의 목숨과 맞바꾸듯 청와대 앞까지 세 차례 들고 간 서류 뭉치.

그 사람,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연대 서영철 총회장은 지금 광화문 광장의 빈소에 누워 있다.
고 서영철 가습기살균제대참사 피해자연대 회장의 광화문광장 빈소 고 서영철 가습기살균제대참사 피해자연대 회장의 광화문광장 빈소에 꽃이 놓여 있다.
고 서영철 가습기살균제대참사 피해자연대 회장의 광화문광장 빈소고 서영철 가습기살균제대참사 피해자연대 회장의 광화문광장 빈소에 꽃이 놓여 있다. ⓒ 아나야 관련사진보기


이재명 대통령님.


광화문광장은 뜨거운 햇볕이 이글거리며 시멘트 바닥을 태울 듯이 달구고 있습니다. 빈소 앞에는 두 사람이 피켓을 들고 서 있습니다. 나는 두 사람이 뜨거운 시멘트 바닥의 열기를 두 발로 누르고 서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다가 고개를 젓고 맙니다.

가끔 아래에서 쏘아 올린 분수가 다시 떨어지며 그 열기를 식혀주기도 하지만, 두 사람에게는 닿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분수를 맞으며 뛰어다니는 장면을 바라보면서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당신에게 닿지 못한 종이들이 있어서요.

2025년 겨울 어느 날 새벽 내가 쓴 종이가 한 장 있고, 올봄 추위 속에서 피해자들이 국회의원들을 찾아가 건넨 종이가 있고, 올여름 한 사람이 목숨과 바꾸듯 청와대 앞까지 세 번이나 들고 간 서류 뭉치가 있습니다.

그 종이들은 모두 당신을 향해 떠났으나, 당신에게 닿지 못했습니다. 이 편지는 그 종이들의 이야기입니다.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싸우다 갔는지는 추도사 '우리는 왜 싸우는가'에 따로 적었습니다. 여기서는 되풀이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이 편지만은 부디 당신이 직접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1부 겨울, 부치지 못한 새벽 세 시의 편지

이재명 대통령은 2025년 12월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부는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사회적 ‘참사’로 명확히 하고,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 종합지원대책을 세워 피해를 온전히 배상하겠다”고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은 2025년 12월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부는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사회적 ‘참사’로 명확히 하고,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 종합지원대책을 세워 피해를 온전히 배상하겠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2025년 12월 24일 밤이었습니다. 창밖 어디선가 크리스마스 캐럴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나는 책상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벌써 새벽 세 시. 자야 하는데, 자야 하는데 하면서도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뇌가 흥분한 게 틀림없습니다. 아닌 척했지만, 나도 들떠 있었던 것이지요.

'드디어 바라고 바라던 그 이재명 정부가 움직였다.'

그날은 피해자들에게 역사적인 날이었습니다. 내가 2021년 4월부터 4년 8개월 동안 취재하면서 피해자들이 그렇게 큰 기대를 보내는 것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날 밤 내 전화기는 쉬지 않고 울렸습니다.

대통령이 우리를 '참사'라고 불렀다고 감격에 겨워하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이제는 해결되는 거냐고, 목소리들이 하나같이 들떠 있었습니다. 울컥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그 떨림이 전화기를 타고 내 몸으로 옮겨왔습니다. 피해자들에게 나도 전염이 됐나 봅니다.

잠들지 못한 데에는 얼굴들 탓도 있었을 거예요. 그동안 내가 카메라를 들고 만난 얼굴들입니다.

서울시 성북구에서 온 한상욱씨는 어머니의 마지막 밤을 이야기했습니다. 2013년 어느 날 저녁에 집에 들어가 보니 어머니가 눈을 뜨지 못하고 말도 하지 못해서 119를 불러 병원으로 달려갔답니다.

의사가 백혈병보다 더 무서운 병인지도 모르겠다고 진단했던 그 어머니는 그 길로 중환자실에 입원했고, 이듬해 초여름인 2014년 6월 22일 돌아가셨습니다. 안방에 가습기를 틀어드린 것이 자식들이었답니다. 그런데 피해자 인정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자기 손으로 어머니를 죽였다고 울고 있는 자식들, 폐렴과 혈액암을 진단받았는데 혈액암은 아예 인정을 받지 못한 채 투병 중인 변영웅씨, 아이를 잃고 그 방문을 열지 못하는 어머니들, 형과 아우가 나란히 폐 수술을 받은 형제들 등 그 얼굴들이 그날 밤 하나씩 지나갔습니다.

'이 사람들의 15년, 아니 34년이 이제 갚아지는가.' 그 생각에 가슴이 뛰다가도, 정말 그럴까에 이르면 심장이 가라앉고는 했습니다. 이 대참사에는 무너지는 건물이 없었습니다. 불타는 건물도 없었습니다. 끊어진 다리도, 물에 잠긴 지하도도 없었습니다. 침몰하는 배도 없었지요.

대참사는 안방에서 일어났습니다. 병원에서, 사무실에서 소리소문없이 진행됐습니다. 아이를 재우려고 머리맡에 가습기를 틀어주던 손, 그 손이 또르르 따랐던 살균제 한 마개. 참사는 그렇게 조용히, 뿌옇게 피어오르는 수증기의 모양으로 왔습니다.

그래서 이 참사는 1990년부터 2025년까지 약 35년간 이어진 보이지 않는 참사입니다. 한날한시에 죽지 않고 집집마다 흩어져 죽었기에 뉴스는 이 죽음들을 하나의 큰 사건으로 세어주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날 밤, 그 숫자를 다시 헤아려보았습니다. 특조위 관련 연구가 추산한 가습기살균제 제품 사용자·노출자는 약 894만 명, 건강피해 경험자는 약 95만 명, 사망자는 2만 명을 넘습니다. 서울 인구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이 참사에 노출된 것입니다.

전쟁이 아니고서야 이런 숫자가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전쟁에는 아직 종전 선언도, 전범 재판도 없습니다.

나는 당신의 문장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1994년부터 아무런 의심 없이 사용해 온 가습기살균제가 사랑하는 가족의 건강과 생명을 앗아갈 줄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현실에 얼마나 억울하고 참담하셨을지 감히 헤아리기조차 어렵습니다. 이제 정부는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사회적 '참사'로 명확히 하고, 피해를 온전히 배상하겠다. 많이 늦었습니다."

'많이 늦었습니다.' 그 일곱 글자 앞에서 목이 메었다는 피해자가 여럿이었습니다. 15년을 기다린 사람들에게는 늦었다는 말 한마디를 듣는 데에도 15년이 걸렸던 것입니다.

당신은 또 썼습니다.

"누적 피해 신고자는 8000명을 넘어섰고, 그중 약 6000명의 피해가 인정됐습니다. 학생, 군 복무 중 청년, 직장인 등 각자의 자리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을 세심히 살필 수 있도록 맞춤형 지원을 할 계획입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은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입니다."

김민석 전 총리도 그날 국가 책임에 기반한 배상체계로 전환하겠다고, 피해자의 생애 전 주기를 살피겠다고 말했습니다.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는 것처럼 디데이를 맞춘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선물이란 본디 뜯어보아야 아는 법입니다.

배상하겠다는 말, 그러나 빠져 있는 것들

그런데 새벽으로 갈수록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이 식어갔습니다. 기쁨의 안쪽에서 오래된 의심이 눈을 떴기 때문입니다.

나는 압니다. 그 문을 연 것은 정부가 아니라 피해자들이었습니다. 세퓨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 이겼고, 환경부는 끝까지 버티다가 대법원에 상고까지 하며 마지막까지 피해자들을 롤러코스터에 태웠습니다. 그러고도 대법원에서 과실과 위법이 확정되고 나서야 이 문이 열린 것입니다.

1심에서 지고도 항소심에서 이겨낸 그 소송을 환경부는 대법원까지 끌고 올라갔습니다. 판결이 확정되고도 윤석열 정부는 미적댔습니다. 뒤늦게 전국 10개 도시를 돌며 간담회를 열었고, 합의배상체계를 만든다며 기업 측과 정부 측 대표자가 나왔습니다. 피해자 대표도 여섯 명을 선출했습니다. 고 서영철 피해자연대 회장도 '고도·초고도 피해자 대표'로 선출됐지요.

이 선언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에는 한 차례의 정부 교체가 있었습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으로 이재명 정부가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새 정부는 무언가를 해결해줄 것처럼 국가 주도 배상체계를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왜 1년여 동안 힘들게 뽑아놓은 피해자 대표를 유야무야하다가 없던 일로 만들었을까요? '피해자 대표를 배상 합의의 대상에서 배제하려는 것인가'하는 의심이 드는 지점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지난 15년 동안 정부가 스스로 연 문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문을 연 손은 피멍이 든 손이었습니다. 그러니 이 선언이 어떤 의미인지,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지를 '해석'하는 일이 먼저였습니다. 발표문을 다시 읽자 거기 없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고 서영철 가습기살균제대참사 피해자연대 회장의 빈소 고 서영철 가습기살균제대참사 피해자연대 회장의 빈소가 광화문광장 이순신 장군상 앞에 설치됐다. 피해자들은 광장 빈소에서 조문을 받고 있다.
고 서영철 가습기살균제대참사 피해자연대 회장의 빈소고 서영철 가습기살균제대참사 피해자연대 회장의 빈소가 광화문광장 이순신 장군상 앞에 설치됐다. 피해자들은 광장 빈소에서 조문을 받고 있다. ⓒ 아나야 관련사진보기

거기에는 돈의 이름은 있는데 돈의 크기가 없었습니다. 배상하겠다면서 정작 배상금은 용역을 돌려보고 정하겠다고 했습니다. 피해자들은 2017년 대법원의 가중적 위자료 기준을 적용받을 수 있는지, 아니면 2016년에 배상을 받은 옥시레킷의 피해자 기준으로 받을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피해자들과 옥시레킷, 애경산업이 반대해서 무산된 2022년의 조정안 기준으로 배상안이 나올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도 돌았습니다. 거기에는 죄의 이름도 없었습니다. 누가 그 제품을 승인했는지, 누가 위험을 알고도 눈을 감았는지, 누가 처벌받아야 하는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발표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2016년 검찰 수사는 빈손으로 끝났고, 2020년 특조위는 공무원들의 범죄 혐의를 포착하고도 수사의뢰서 한 장 부치지 못한 채 모든 자료를 국가기록원으로 넘기고 해체됐습니다.

그 뒤의 일을 나는 잊지 못합니다. 피해자들이 국가기록원을 찾아가 열람만 허락된 그 기록을 일일이 손으로 베꼈습니다. 아픈 손으로, 몇 날 며칠을 베꼈습니다. 그 필사본으로 고발장을 썼습니다. 경찰은 '공소시효 만료', 여섯 자로 수사를 중단했습니다.

인과관계를 밝히는 연구에만 십 년이 넘게 걸리는 참사에서 공소시효는 죄를 지우는 지우개가 됩니다. 그런데 이번 발표는 민사의 소멸시효만 없애겠다고 했습니다. 죄는 그대로 두고 셈만 하겠다는 것입니다. 진상규명 없는 배상은 침묵의 대가일 뿐입니다. 나는 그것을 돈으로 하는 입막음이라고 부릅니다.

왜 우리는 그 불빛 바깥에 서 있어야 합니까

그리고 거기에는 국가범죄 인정과 공식 사과, 만남이 없었습니다.

당신의 청와대가 피해자들을 만난 자리라고는 전성환 경청통합수석비서관의 간담회가 있었을 뿐입니다. 그나마 '비공개'였습니다. 비공개. 그 석 자가 많은 것을 말해 줍니다. 만나되 보이지 않게 만나겠다는 것. 피해자가 부끄러운 손님이라는 것.

그 자리에서 피해자 대표들이 당신에게 보내는 서한을 수석에게 맡겼지만, 답은 오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그 겨울밤 나를 끝내 잠들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2025년 7월 16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2025년 7월 16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기억과 위로, 치유의 대화' 사회적 참사 유가족 간담회를 하며 참석 유가족들을 향해 허리 숙여 인사하고 있다. ⓒ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관련사진보기

당신은 2025년 7월 16일 세월호와 이태원, 오송과 무안의 유가족 200여 명을 청와대 영빈관으로 초청했습니다. '기억과 위로, 치유의 대화'라는 이름이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당신은 다른 참사 유가족들에게 사과했습니다.

"공식적으로 정부를 대표해서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날 영빈관의 불빛은 따뜻했을 것입니다. 울음도 있었을 것이고, 손을 맞잡는 온기도 있었을 것입니다. 나는 그 자리를 시비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참사의 유가족을 국가가 안는 일은 백 번이라도 옳습니다.

인류의 화학물질 문명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대참사입니다. 최소 2만 명이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약 95만 명이 건강피해를 경험했으며, 약 894만 명이 가습기살균제에 노출된 것으로 추산됩니다. 그런 대재난의 피해자들은 왜 그 불빛 바깥에 서 있어야 합니까?

초대받지 못한 사람의 마음을 아십니까? 잔치가 열리는 줄도 몰랐다면 차라리 나았을 것입니다.
불빛을 보면서 저 안의 위로가 얼마나 따뜻한지 알면서, 우리 이름만 명단에 없다는 것을 아는 일.
그것이 배제요, 두 번째 상처입니다.

그런데 어느 언론도 그것을 묻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2025년 12월, 무안 참사 1주기에도 일곱 개 참사의 피해자들이 무대에 올랐지만 우리는 또 초대받지 못했습니다.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입니다. 2만여 명이 죽었는데, 대표 두세 명을 부르는 일이 그렇게 어렵습니까?

그래도 나는 당신을 믿고 싶었습니다

그날 밤 나는 왜 그토록 마음이 쓰였을까요. 당신들이 남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믿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 때문입니다.

김민석 전 총리는 1990년대 초 민중정당을 만들자며 민주연합추진위원회에서 함께 활동했던 동지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소년공 출신입니다. 나는 노동운동을 했던 사람입니다. 공장에서 소년 시절을 보낸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나 같은 사람의 마음 한켠에 어떤 등불이 켜졌는지 당신은 아실 것입니다.

학교 대신 공장으로 가던 소년, 프레스에 다친 팔로 검정고시를 치르던 소년의 이야기를 나는 애정을 갖고 따라 읽었습니다.

"기계에 몸을 다쳐본 사람은 다친 사람의 편일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었습니다. 독가스에 폐를 다친 사람들 앞에서 당신만은 서류 너머의 몸을 볼 줄 알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더 아프게 쓰는 것입니다. 당신들이,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두 분은 이 대참사를 너무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알았다면 이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지난해 겨울에는 믿었습니다. 환경부 공무원들의 보고서가 아니라 피해자들의 얼굴을 먼저 보았어야 합니다.

나는 2017년의 겨울도 기억합니다. 그때 문재인 정부는 피해구제 특별법과 진상규명법(특조위법)을 함께 만들었습니다. 청와대는 피해자들을 불러 눈물을 닦아주겠다고 안아 주었습니다.

고 서영철 회장은 훗날 분수대 앞에서 그 장면을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저희는 표류하고 있습니다. 어느 정부가 우리를 구해 주시겠습니까?"

그 포옹 뒤에 온 것은 "진상규명 끝났다"는 선언이었습니다. 그렇게 말한 한정애 당시 환경부 장관은 지금도 여당의 요직에 있습니다. 포옹이 배신의 서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피해자들은 몸으로 배웠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포옹보다 먼저 약속의 알맹이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편지는 답장을 기다립니다

편지란 답장을 전제로 쓰는 글입니다. 벽에다 대고는 편지를 쓰지 않습니다. 편지를 쓴다는 것은 저쪽에 사람이 있다고 믿는다는 뜻이고, 그 사람이 읽고 마음이 움직일 수 있다고 믿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그 겨울밤 내가 편지를 쓰기로 한 것은, 아직 당신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성명서는 규탄하지만 편지는 기다립니다. 나는 규탄 대신 기다림을 골랐던 것입니다. 피해자들도 그랬습니다. 15년을 속고도 사람들은 또 믿을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속는 데 지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가운데서도 믿는 데 지치지 않는 사람들. 내가 4년 8개월 동안 곁에서 본 피해자들은 소수지만,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날 새벽 나는 편지의 결을 정했습니다.

하나, 지금이라도 '국가 주도'로 나선 것을 환영한다.
둘, 그러나 빠진 것들이 있으니 채워달라.
셋, 빠르되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광범위하게 수용되는 방향으로 가 달라.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발표를 했으므로 뭔가 변화가 있겠지. 기다려보자고 스스로를 다독였습니다.

창이 희끄무레해질 무렵에야 나는 펜을 놓았습니다. 창밖은 성탄절 아침으로 밝아오고 있었습니다. 거리에는 곧 멎었던 캐럴이 다시 흐르고, 사람들은 선물을 풀어볼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선물은 아직 포장도 뜯기 전이었는데, 나는 벌써 그 속이 비어 있을까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 겨울 편지는 그렇게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접혔습니다.

그리고 피해자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답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에 눈이 녹고, 봄이 왔습니다. 그러나 그 답은 여름이 지나가는 지금까지 오지 않았습니다.
 
위 글을 쓴 류이 감독이 최근 출간한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다룬 책 <숨;X> 시리즈와 중학교 국어교사 천지영의 소설 <하얀 손님>을 소개합니다. (클릭)
8b2ee63fb30ca1b56044227ce875a1b7_1788003940_1747.jpg
 
0 Comments
시민환경보건센터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