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발굴 미흡한데 배·보상 신청은 6개월 한정…구제 확대 목소리
진주서 생후 110일 아이 잃은 가족도 피해 불인정…미신고 피해자 발굴 시급

 

진주에 사는 정아무개씨는 2000년 대안학교 교사로 일하던 당시 셋째 아이를 생후 110일 만에 잃었다. 사망 원인은 상세불명의 폐렴이었다. 첫째와 둘째도 천식과 폐렴, 기관지염 등으로 병원을 자주 찾았다. 정씨는 당시 옥시싹싹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고, 갓난아이 머리맡에 가습기를 늘 틀어뒀다. 

그러나 2014년과 2017년 두 차례 심사에서 셋째 아이의 사망과 가습기살균제 노출 사이의 관련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개정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법에 따른 배·보상 신청 절차가 지난 8일 시작되자 정씨는 숨진 셋째를 포함해 세 자녀와 부부 모두의 피해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경남지역 가습기살균제 피해신고자가 전체 사용자 추정 인구의 0.06%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자 상당수가 신고조차 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개정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법에 따른 배·보상 신청 기간이 6개월로 제한돼 피해구제의 실효성을 둘러싼 우려가 나오고 있다.

환경보건시민센터가 공개한 정부 집계를 보면, 지난 9월30일 기준 경남지역 가습기살균제 피해신고자는 335명이다. 이 가운데 사망자는 87명(26%)이다. 정부로부터 피해를 인정받은 사람은 254명이며, 이 중 63명(24.8%)이 사망했다.

지난해 2월과 비교하면 피해신고자는 333명에서 335명으로 2명, 피해 인정자는 248명에서 254명으로 6명 늘었다. 같은 기간 신고자 중 사망자는 84명에서 87명으로, 피해 인정자 중 사망자는 61명에서 63명으로 증가했다. 사망자 증가에는 신규 신고와 기존 피해신고자의 사망이 함께 반영됐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2019년 전국 5천가구(가구원 1만 5472명)를 대상으로 실시한 표본조사에서는 전국 가습기살균제 사용 인구가 약 894만명, 건강피해자가 약 95만명, 사망자가 약 2만명으로 추산됐다. 조사 결과는 2020년 한국환경보건학회지에 발표됐다.

이를 토대로 추산한 경남지역 가습기살균제 사용 인구는 57만 8324명이다. 건강피해 추정 인구는 6만 1602명, 이 가운데 병원 진료를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인구는 5만 893명이다.

그러나 정부에 피해를 신고한 사람은 335명으로, 전체 사용자 추정 인구의 0.06%에 불과하다. 사용자 1만명 가운데 6명꼴이다. 피해 인정자 254명 역시 건강피해 병원진료 추정 인구의 0.5% 수준이다.

다만 사용자와 건강피해 인구는 표본조사에 따른 추정치로, 정부에 접수된 피해신고 및 인정 인원과는 집계 방식에 차이가 있다.

피해신고 이후에도 정부의 판정기준에 따라 피해를 인정받지 못하는 사례가 있다. 폐렴과 천식 등은 가습기살균제 외에도 다양한 요인으로 발생할 수 있어 노출과 질환 사이의 관련성을 별도로 심사하기 때문이다. 피해 인정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지적이 이어지면서 정부는 인정질환과 판정기준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왔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정부가 피해자 발굴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서 피해신고가 사실상 피해자 개인의 자발적 신고에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실제 피해 규모가 충분히 파악되지 않은 상황에서 배·보상 신청 기간을 제한한 개정법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8일 시행된 개정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법에 따른 배·보상 신청 기간은 내년 4월7일까지 6개월이다. 센터는 신청 기간이 종료되면 아직 피해 사실을 알지 못하거나 신고하지 못한 피해자들이 구제 절차에서 배제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가해기업들이 요구해 온 이른바 '종국성'이 적용되면 추가 피해에 대한 책임을 묻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센터는 경남도와 중앙정부가 미신고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찾아내고, 국회가 피해신고와 배·보상 기회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국적으로도 피해를 인정받지 못한 신고자가 적지 않다. 지난 9월30일 기준 정부에 접수된 가습기살균제 피해신고는 8098건이며, 이 가운데 사망자는 1962명이다. 피해구제법에 따라 인정된 사례는 6080건으로, 사망자는 1427명이다. 신고 사례 중 2018건이 피해를 인정받지 못했으며, 여기에는 사망자 535명이 포함돼 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1994년 첫 제품이 출시된 뒤 2011년 원인 미상의 폐질환과 가습기살균제의 관련성이 알려지면서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올해로 참사가 공론화된 지 15년, 첫 제품 출시로부터 32년이 지났다.

한편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참사 15주년을 맞아 전국 순회 캠페인과 지역별 기자회견, 피해자 유품 전시, 북토크 등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