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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25일 (목) 16:34
파리서 열린 제1회 국제석면피해자의날 행사 참가기

한겨레신문 <환경뉴스>블로그 물바람숲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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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면 없는 세상을" 피해자 국제 연대 운동 활기

파리서 열린 제1회 국제 석면 피해자의 날 행사 참가기

석면 질환 적극 보상과 조기 은퇴 허용 등 피해자 권리 보장 흐름

as0.jpg » 지난 13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1회 국제 석면피해자의 날 참가자의 가두 행진 모습. 사진=프랑스석면피해자협회(ANDEVA)

지난 10월13일 오전 프랑스 파리 대학에서 열린 석면추방전략회의를 마치고 오후 2시부터 시내에서 열리는 ‘국제 석면 피해자 대회’에 참석했다. 미국, 남아공, 아시아 참가자들과 택시로 행사장인 파리 시내 중심가로 이동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대부분 형광색의 조끼를 입고 있어서 처음에는 경찰인가 했다. 하지만 그룹별로 입고 있는 조끼의 색이 달랐다. 나중에 알았는데 참가자 대부분은 프랑스 각 지역별 노동조합 소속으로 프랑스 전국 석면 피해자 협회(ANDEVA)의 지역조직들이었다. 따라서 대부분 노동자들로 이미 석면질환이 발생한 환자들이거나 석면작업장에서 일하다 석면에 노출된 노동자들이었다.

as1.jpg » 파리 시내의 ‘국립 오페라하우스’ 앞에서 열린 집회장, 한국서 필자가 가져간 대형 현수막이 펼쳐져 있다.


as2.jpg » 파리 한복판에서 벌어진 ‘제1회 국제 석면 피해자의 날’ 가두행진을 맨 앞에서 이끌고 있는 프랑스 석면 피해자 협회 여성 회원들.


이탈리아에서 온 에터니트(Eternit, 석면 시멘트 회사) 석면 피해자들은 그들 특유의 방식으로 에터니트 문제를 새긴 이탈리아 국기를 등과 목에 둘렀다. 에터니트는 스위스와 벨기 소유인 다국적기업으로 1900년 초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세계 곳곳에 석면 시멘트 공장을 세워 운영하다 수천, 수만의 석면피해를 발생시킨 기업이다.

유럽의 벨기에, 이탈리아, 프랑스, 아프리카의 콩고, 아시아의 일본과 인도, 그리고 남미의 브라질 등에서 에터니트 석면 시멘트 공장이 가동되었다. 회사 이름의 에터니트는 영어로 ‘영원, 불멸’을 뜻한다. 석면이 불에 타지 않는 물질이라는 점을 아예 회사 이름으로 만든 세계 최대의 유럽계 석면회사다.

그런데 이탈리아에 있는 5개의 에터니트 석면 공장의 노동자들과 인근 주민 2200명이 석면질환으로 사망했고 수백명이 석면질환자로 이들 3000여명과 유족 등 6000여명의 피해자와 가족들이 에터니트의 스위스 사장과 벨기에 사장 두사람에 대해 민사가 아닌 형사소송을 제기했고 올해 2월 이탈리아 토리노 법원이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주면서 피고 두 사람에게 16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이 사건은 이탈리아는 물론이고 유럽사회에서 큰 사회 문제가 됐다.

as6.jpg » 2200명의 석면 사망자를 낸 석면 기업 에터니트를 규탄하는 이탈리아 참가자들

에터니트로 인한 석면 피해자는 이탈리아에서뿐 아니라 벨기에 공장에서도 수백명이 넘는 노동자, 주민 피해가 발생했다. 피해자 에릭은 아버지, 어머니, 형제 3명이 모두 석면중피종으로 사망하기도 했다.

에릭 자신도 흉막판이라는 석면폐질환 환자다. 아버지가 에터니트 공장에 다녔고 집이 공장사택이었기 때문에 석면에 오염된 환경에서 살았다. 특히 어머니는 석면이 묻은 작업복을 오랜 기간 세탁하는 과정에서 석면에 노출됐다. 프랑스에서도 많은 에터니트 석면 피해자가 발생했다. 이렇게 이탈리아의 에터니트 소송투쟁을 이끌어온 피해자들과 벨기에, 프랑스 전역의 석면 피해자들이 파리 행사에 대거 참여했다.

as3.jpg » 프랑스의 석면피해예방과보상위원회 (C.A.P.E.R) 현수막을 들고 파리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성아우구스틴 성당 앞 광장을 지나는 집회 참가자들.


이번 행사에는 전세계 16개 국가에서 참가했다. 유럽지역에서는 프랑스, 독일,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벨기에, 네델란드, 알바니아 등 8개국, 미주지역에서 캐나다, 미국, 멕시코, 브라질 등 4개국, 아시아태평양에서 일본, 한국, 인도, 호주 등 4개국 그리고 아프리카의 남아공 등이다.

파리 대회는 석면 피해자 단체가 조직한 행사답게 프랑스, 이탈리아, 브라질, 벨기에, 미국 등에서 피해자들이 직접 참가했다. 각 나라에서 석면추방운동에 앞장서는 정치인들도 여럿 참석했는데 주최측인 프랑스의 상원의원, 캐나다의 국회의원, 호주의 상원의원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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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5.jpg » ‘석면없는 세계를 위하여’ 영어 구호(위 왼쪽), 프랑스어 구호(위 오른쪽), 포르투갈어 구호(아래 왼쪽), 이태리어 구호(아래 오른쪽)


주최측에서는 여러 나라 참가자들을 위해 각 나라의 국기를 준비했다. 주최측은 ‘석면없는 세상을위하여’라는 내용의 문구를 프랑스어, 영어, 이태리어 그리고 포르투갈어로 만들어 국제대회의 특징을 살렸다. 막 행진을 시작하는데 누군가 나에게 태극기를 건넸다. 아시아 참가자가 인도의 모힛, 일본의 수기오와 필자 셋뿐이어서 바로 한국 사람임을 알아본 모양이다.

인도의 모힛과 나는 일본의 수기오가 준비해온 현수막을 들고 행진에 나섰다. 참가자는 얼핏 보기에도 수천명 규모의 참가자가 주요 도로의 교통이 전면 통제된 파리시내 중심가를 2㎞ 이상 2시간여 동안 행진했다.

대회를 주최한 프랑스 석면 피해자 협회(ANDEVA)의 마크는 "이번 행진에 참가한 인원이 5000여명"이라고 했다. 그룹별로 자신들의 구호가 담긴 플래카드를 중심으로 모여서 행진했다. 행진 내내 경찰이 교통통제를 잘 해주었는데 자전거를 타고 교통을 통제하는 여성 경찰들이 모습이 이색적이었다.

as10.jpg » 자전거를 타고 교통통제를 하고 있는 프랑스 여경


나는 캐나다의 석면수출을 반대하는 영문 구호와 아시아 지도가 그려진 가로 5m 세로 4m 크기의 대형 현수막을 준비해 갔는데, 너무 커서 행진 때는 꺼내지 못하고 국립오페라하우스 앞에 모여 정리집회를 할 때 연단 앞에 펼쳐놓아 주목을 받았다. 이 현수막은 서울의 캐나다대사관 앞에서 두차례 사용했던 적이 있다.

as14.jpg » 아시아로의 석면수출 중단을 촉구하는 대형 펼침막

캐나다에서 온 참가자들이 이 현수막을 크게 반기며 연신 사진을 찍었다. 전날 12일 프랑스 상원의회 건물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캐나다 국회의원과 퀘벡주의 환경장관이 참가하여 퀘벡에서 더는 석면 광산 개발을 중단할 것이고 세계 석면문제 해결에 앞장서겠노라고 발언했다.

이들은 모두 전에 환경운동가들이었는데 특히 국회의원은 발언 모두에서 "그동안 캐나다 산 석면으로 지구촌 시민들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한 데 대해 사과한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발언하여 참석자들로부터 큰 박수와 환영을 받았었다. 참고로, 캐나다 대표들이 이런 발언을 한 배경에는 지난 8월말 퀘벡 주의 지방선거에서 석면 광산 폐쇄를 공약으로 내건 야당이 승리하여 석면 광산을 보호하고 지원한 보수당이 물러났기 때문이다.

as7.jpg » 남편을 석면암으로 잃은 브라질의 미망인

대회 내내 비가 내렸다. 중간에는 제법 쏟아졌는데 국립 오페라하우스 앞에서의 정리집회가 마무리되어 갈 즈음에 서쪽 하늘이 개기 시작했고 곧 햇빛이 비쳤다. 주최측은 대형 트럭을 준비하여 연단으로 사용했는데 특히 해외 참가자들을 하나하나 연단으로 불러 소개하며 격려했다.

2000년 처음으로 국제 규모의 석면 추방 행사가 브라질의 오사스코(유럽계 석면 시멘트 회사 에터니트 공장이 있는 곳)에서 열린 이후 2004년 동경의 ‘국제 석면회의 (GAC)’, 2006년 태국의 국제대회, 2008년 한국 석면 추방 네트워크(BANKO)를 출범시킨 서울국제대회 그리고 2009년부터 매년 열리는 아시아 석면 추방 네트워크 연례회의 등 여러 차례 석면추방 국제행사들이 열려 왔다.

그런데 2012년 10월의 파리 행사는 명칭이 ‘국제 석면 피해자 대회’로 석면 피해자 단체가 주최하여 석면 피해자를 위한 국제대회로서는 처음 열리는 것이다. 이전의 국제행사들은 석면 문제의 심각성을 논의하는 학술적 심포지엄의 성격을 띤 것이거나 석면 추방 단체들이 주최한 행사들이 대부분이었다.


as8.jpg » 더는 석면 사망이 없기를’ 촉구하는 영어와 일본어로 된 펼침막을 들고 행진하는 아시아 참가단

이번 행사가 열린 프랑스는 노동자 피해와 일반 시민의 환경성 피해에 대해 가장 적극적으로 보상하는 제도가 시행되는 곳이다. 피해보상의 수준이 충분하지 않고 형사적 책임을 묻지 못하도록 면죄부를 주었다는 비판과 지적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흉막판, 후두암 등 석면이 원인이 된 모든 질병을 보상 대상으로 하고 질병 양상의 정도에 따른 피해구제를 한다는 점에서 가장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본이나 한국에서는 중피종암, 폐암, 석면폐 3가지 질병만 구제 대상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석면 피해자 운동이 앞서가는 내용이 하나 더 있는데 석면 노출 노동자들의 조기 은퇴 주장이다. 우리는 은퇴를 일찍하면 수입과 일거리를 잃게 되어 힘들다는 인식이 있지만, 어느 정도의 연금이 보장되고, 석면 피해 보상금이 지급되는 유럽 사회의 사회보장 배경에서 나올 수 있는 주장이다.

석면에 노출된 노동자들은 언제 석면질환이 발병할지 모르는데 일단 발병하면 중피종암이나 폐암의 평균 잔여수명이 1~2년으로 매우 짧다. 따라서 조기 은퇴하여 삶의 질이 보장된 상태에서 일년이라도 남은 여생을 살아야 한다는 피해자의 권리 표현이라고 할 수 있어 우리도 도입을 검토해볼 만한 내용이다.

참고로 한국에서는 연간 십여명 정도만 석면 관련 산업재해가 인정되는 형편이지만 2011년부터 실시된 환경성 석면 피해자를 구제하는 석면 피해 구제법에 의해 2012년 9월까지 모두 1124명이 석면 질환 인정 판정을 받고 500만원에서 3000만원 사이의 구제금을 지급받고 있다. 이는 같은 질병의 산재보상금의 10~20%에 불과하다.

이중 533명은 피해자가 이미 사망했고 591명은 생존한 환자들이다. 질환 종류별로는 약성중피종암이 616건으로 가장 많고, 진폐의 일종인 석면폐가 398건, 폐암 110건 등이다. 한국은 2009년부터 석면사용을 금지했지만 1992년도에 석면 사용량이 가장 많았다.

as13.jpg » 태극기와 영문 손 펼침막을 들고 대회에 참가한 필자

전문가들은 한국에서 석면피해발생이 최고조에 이를 시기가 2040~2045년 정도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긴 잠복기 때문이다. 일본도 2020~2030년까지 석면 피해자가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는데 현재 매년 3000여명이 석면질환으로 사망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 국제노동기구 등 국제기구와 각국 정부는 물론 국제적인 의학계, 환경계, 노동계가 모두 석면은 1급 발암물질로 사용을 금지하는 것 만이 유일한 피해 방지 대책이라고 입을 모은 지 오래다. 2010년 7월에 발표된 세계보건기구의 보고를 보면, 연간 1억 2500만명의 노동자들이 작업현장에서 석면에 노출되고 있고 연간 10만 7000명 이상이 직업성 석면노출로 인한 석면 질환으로 사망한다.

또 수천명의 시민들이 환경성 석면노출에 의해 사망한다. 1983년 북유럽의 아이슬랜드를 시작으로 2009년 한국까지 현재 모두 54개 국가에서 석면사용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참고를 위해 권역별 석면 사용금지 국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출처, IBAS)

as9.jpg » 지역별 석면 사용 금지 국가 실태

그러나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등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과 러시아, 브라질 여러 개발도상에 있는 국가들에서 석면 사용이 증가하고 있어 아직도 국제적으로 연간 200만~230만t이 소비되고 있다.

최근 캐나다에서의 석면광산 폐광소식이 들려왔고 브라질에서도 대법원이 석면기업의 불법행위를 단죄할 것이라는 뉴스가 들려오고 있다. 앞서 소개한 바 이탈리아 등에서 과거 석면기업에 대해 범죄자로 규정하며 엄벌하고 있어 석면 산업계가 지구상에서 더는 발을 못 붙이도록 하는 지구촌의 노력이 조금씩 결실을 거두고 있다. 이는 모두 수만, 수십만의 노동자들과 주민들의 희생 위에서 이루어진 ‘목숨 값’이라고 할 수 있다.

석면은 노출되어도 20~40년의 긴 잠복기를 거쳐 중피종암, 폐암과 같은 치명적인 폐질환을 일으키는 특징 때문에 지금 당장 모든 나라가 석면사용을 중단하고, 현재 사용중인 석면제품을 완전히 폐기한 뒤에도 30~40년 동안 계속 석면피해자가 발생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파리시내 한복판에서 울려 퍼진 ‘석면 피해 없는 지구촌을 만들자’는 석면 피해자들의 외침과 호소가 하루빨리 이루어지길 기원한다.

as11.jpg » "석면은 우리의 생명을 단축시킨다. 조기 은퇴는 특혜가 아닌 권리다."

as12.jpg » 노동은 해방이어야 하지, 질병이나 사망을 불러선 안된다, 프랑스 전국노동조합연합의 하나인 CGT소속 조합원

글·사진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한국 석면 추방 네트워크 집행위원장, 아시아 석면 추방 네트워크 부조정관

이 글은 한겨레신문 환경뉴스 블로그 <물바람숲>에 2012년10월25일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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