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24일 울산교육청 기자회견 및 노옥희 울산교육감 면담
2022년 8월 24일 울산시 교육청 기자회견장에서 열린 기자회견과 이어 노옥희 교육감과의 간담회 사진입니다.
( 12월8일 별세한 노옥희 교육감의 명복을 빕니다... 이 기자회견과 교육감과의 간담회를 마련했던 이상범 울산환경연합 사무처장의 추모글을 밑에 붙입니다. )
기자회견에 이은 노옥희 교육감과의 간담회 사진입니다.
노샘의 영정 앞에서 이 글을 씁니다.
노샘 개인텔을 노크하니 어제 11시 57분까지 접속했다는 메시지가 뜨네요. 그 바쁜 와중에도 잠깐씩 짬을내어 sns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던 노샘이 '6인의 기관장 모임' 참석 직전까지 접속한 기록이겠지요.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직무수행 중이었던 노샘을 어찌 보내야 하나요.
어떻게 보낼 수 있을까요.
하늘이 무너지는듯한 슬픔이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이겠지요.
청천벽력 같은 비보를 접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누기 힘든 비통함과 슬픔에 젖어있는 모습을 굽어보고 계신가요? 노샘을 사랑하는 이들의 애끓는 울음소리를 듣고 계시나요? 어찌 가시렵니까?
울산 지방선거 참패이후 노샘 혼자 외롭게 짊어져야 했던 무게가 얼마나 컸을지, 얼마나 고독했을지 노샘이 쓰러지고 나서야 깨달은 무심함에 가슴을 칩니다.
지난 토요일
휴일임에도 참석해야 할 일정이 너무 많다는 수행비서님께 그래도 교육감님이 꼭 보셔야 할 환경전시가 있다고 무리한 청을 넣기는 했지만 큰 기대를 안했는데 시간을 쪼개서 오셨더군요.
오길 참 잘 했다며, 독창적인 환경작품 전시를 일회성으로 마치기엔 너무 아쉬우니 연장전시와 이후 환경교육 프로그램으로 접목시켰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주셨지요.
이심전심 그럴거라 예상했습니다.
노샘은 그런 분이십니다.
이어 울산불교환경연대 주최 환경콘서트에서도 만나 하루에 두번이나 보는 날도 있다며 밝게 웃었지요.
그런데 그 만남이 이승에서의 마지막이 되다니요.
노샘과의 인연은 87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교육민주화선언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해직교사가 된 노샘을 노동운동 학습모임 멤버로 만났지요.
남의 눈을 철저히 피해야 하는 비밀학습 모임이었기에 한 장소를 두번 사용하기 조심스러워 이곳저곳을 옮겨다니느라 아직 독신이었던 노샘의 돌안아파트와 염포아파트에서 비좁았던 소모임도 어제 일처럼 떠오릅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일컬어지는 현대엔진 현대미포조선 현대중공업에 이어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을 결성했을 때 울사협 간사로 일하면서 타자를 쳐서 등사기로 민 '현대자동차 민주노조 건설하다' 속보를 만들어 현대차 정문으로 달려오셨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해직교사로서 지식인 노동자였던 노샘은 전교조 결성에 앞장섰을뿐만 아니라 육체노동자들의 벗이었고 대변자였습니다.
젊은시절 황금기 대부분을 해직과 구속 수감으로 보내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지켰던 노샘은 최초의 해직교사이자 최후에 복직한 교사였습니다.
단 한 순간도 비켜서거나 굽히지 않고 평생을 민주화운동에 바친 투사 노옥희. 불꽃처럼 살다가 삶을 마감하는 순간까지도 막중한 책무를 다하신 노샘을 떠나 보내려니 주체할 수 없는 슬픔으로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역사의 현장에서 함께 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릅니다.
혈기왕성했던 20대에서 시작된 인연이 할매 할배가 된 지금도 나는 사석에선 교육감을 '노샘'이라 부르고, 노샘은 나를 '상범씨' 로 부를만큼 친구이자 동지였던 노샘이 이렇게 황망하게 떠나시다니 분하고 원통합니다.
과중한 업무와 휴일에도 쉼이 없는 일정으로 인한 과로와 지방선거 이후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 시장, 시의원들의 핍박은 도를 넘었지요. 행정사무 감사에서는 인권마라톤대회 개회식에 참석한 노샘이 탈핵부스를 방문하여 기념사진 찍은 것을 가지고 "교육감이 왜 그런자리에 가냐"고 트집 잡았다는 보도를 본 노샘 지지자들이 분기탱천했으나 정작 노샘은 분한 마음을 전혀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노샘이 재선 과정에 내걸었던 주요 공약사업을 위한 내년도 당초예산 대부분이 묻지마식 삭감을 당한것에 얼마나 큰 스트레스를 받았을지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앞에 행정사무감사에서의 핍박이 개인적 괴롭힘이었다면 일하려는 예산을 무우자르듯 잘라버린 것은 집단폭행에 다름아닙니다.
내 편을 들어줄 시의원 한 명 없는 고립무원에서 얼마나 아프고 서러웠을까요.
노샘은 참기 힘든 분노와 낙심을 꾹꾹 눌러참으며 상임위에서 삭감된 예산을 어떻게든 예결위에서 살려보려고 동분서주 하다가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노샘이 누구보다 건강했다는 사실은 평소 지병이 없었고 지난 4년 5개월여동안 살인적인 일정을 거뜬히 수행해 온 것 만으로도 충분히 입증됩니다. 그런 노샘을 쓰러지게 만든 장본인들도 잊지않고 기억하여 심판하겠습니다.
이 분노와 슬픔을 노샘이 남긴 유지를 받드는 것으로 승화 시키겠습니다. 친구요 동지였던 노샘, 이제 무거웠던 짐 내려놓으시고 부디 편히 쉬시기 바랍니다.
2022년 12월 9일 오전에
울산환경운동연합 이상범 사무처장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