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사례 23, 최소담] 엄마 잃은 아이 위해 '작은 아버지' 되기로 한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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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사례 23, 최소담] 엄마 잃은 아이 위해 '작은 아버지' 되기로 한 아빠

최예용 0 7006 0 0

프레시안 2014년 4월 17일

 

박창준(가명·36) 씨의 아내 최소담(가명) 씨는 30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일반 병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겨지기 직전 아내는 박 씨에게 이렇게 속삭였다. "내가 죽으면 당신 누나한테 우리 애들 좀 키워달라고 부탁해줘." 박 씨는 이렇게 답했다. "헛소리하지 마. 죽긴 누가 죽어."

그것이 마지막 대화였다. "유언 같지도 않았던" 아내의 마지막 말을 회상하며 눈물을 흘리는 박 씨의 손가락이 떨렸다. 아내가 죽은 후 슬픔에 몸서리치며 살아온 박 씨를 16일 오전 경기도 남양주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떨리는 입술에서 어렵게 나오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가득 묻어 있었다.

아이는 인큐베이터에, 부인은 중환자실에

아내 최소담 씨는 2010년에 둘째를 임신했다. 최 씨는 임신 8개월이던 그 해 12월 무렵부터 심한 감기 증세를 보였다. 박창준 씨는 제 몸 가누기도 힘들 정도로 부른 배를 안고 연신 기침하는 아내를 보며 속만 끓여야 했다. 한창 임신 중이라서 병원 가기가 꺼려졌지만, 마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동네 병원을 찾았다. 의사가 엑스레이를 찍어보더니 당장 큰 병원으로 가라고 다급하게 재촉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서울아산병원이었다. 최 씨가 이 병원을 거쳐 간 그 많던 '원인 미상 폐 질환 환자'가 되는 순간이었다. 물론 그때만 하더라도 폐 질환의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 임신 8개월의 몸으로 아내가 병원에 실려 갔으니 온 가족이 그야말로 '패닉' 상태에 빠졌겠군요. 이후에 어떤 일이 있었나요?

"서울아산병원으로 옮기고 나서 상태가 더 안 좋아졌어요. 산소 호흡기를 꼈는데도 몸속 산소 포화도가 계속 떨어지더군요. 결국 둘째 아이를 강제 분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팔삭둥이 아이 몸무게가 2.5킬로그램이었어요. 아이는 인큐베이터에 있고 아내는 더 심각한 상태로 누워 있었으니…. 정신없이 신생아 중환자실과 성인 중환자실을 오가며 지냈습니다."

결혼 전에 아동을 관객으로 하는 극단의 연극배우로 일했던 최 씨는 아이를 다 키우면 극단을 만들고 싶다고 했었다.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한 지 1주일 만에 의사는 그 꿈 많던 아내의 임종을 준비하라고 했다. 박창준 씨의 아내는 병원에서 약 20일을 버티다 지난 2011년 3월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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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딸 유정이(가명)와 30세에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목숨을 잃은 박창준(가명) 씨의 아내. ⓒ프레시안(남빛나라)

 

끝내 못 지킨 약속, 신혼여행

- 5살 큰 아이 또 갓 태어난 둘째 아이와 남겨졌으니 더욱 어찌할 바를 몰랐을 것 같아요. 특히 큰딸 유정이(가명)가 충격을 받았죠?

"유정이에게 '엄마를 다시 볼 수 없다' 이렇게는 도저히 말을 못 하겠더군요. 경기도 가평군에 가면 아내와 제가 데이트하던 시절에 즐겨 찾던 곳이 있어요. 유정이를 그곳으로 데려가서 '엄마!' 하고 크게 외쳐보라고 했지요. 그러면 엄마도 들을 수 있다고요.

어느 날 유정이가 '아빠는 왜 여기 올 때마다 엄마를 부르라고 해?' 하고 묻더군요. 그러더니 언제부터인지 거기만 가면 제가 알아서 엄마를 크게 불러요. 엄마를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을 그렇게 스스로 알게 된 것 같아요."


박 씨와 함께 사는 유정이는 이제까지 엄마를 찾은 적이 없다. 가끔 그에게 혼나면 "나 엄마한테 갈 거야" 하고 입을 삐죽이긴 하지만 그뿐이다. 그는 "애가 너무 일찍 철이 든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 혼자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아내 생각이 많이 날 때는 언제인가요?

"항상 납니다. 혼자 차를 운전할 때면 저절로 눈물이 줄줄 흐르고요. 그렇지만 미안한 게 특히 더 생각나요. 우리 부부신혼여행을 못 갔어요. 아내는 늘 '애들 크면 애들 데리고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신혼여행 한 번 못 가고 그렇게 죽었다는 게…. 애들 키울 걱정에 돈 걱정이 너무 컸어요. 그 탓에 여기저기 놀러다니지 못하고 늘 '아끼고 모으자'고만 했던 게 참 후회됩니다."

박 씨는 당연히 아내와 몇 십 년을 함께 하리라고 생각했다. 보통 사람들이 모두 그렇듯이 '미래'를 위해 '현재'의 즐거움은 잠시 접어두었을 뿐인데, 그것이 그의 평생 한으로 남게 됐다.

엄마 잃은 둘째 아이, 눈물 머금고 형에게

태어나자마자 엄마를 잃은 둘째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둘째 아이 안부를 묻자 박 씨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의 둘째 유진이(가명)는 현재 형이 키우고 있다. 단순히 키워주는 것이 아니라, 서류상으로도 완전히 형의 딸로 되어 있다.

- 쉽지 않은 선택을 했네요.

"애들 엄마가 죽고 나서 도저히 살 수가 없어서 시골로 내려가서 살았습니다. 유정이랑 유진이를 데리고 내려갔는데 정말 무엇을 해야 할지 아무것도 모르겠더군요. 이렇게 키우면 안 되겠다 싶었지요."

박 씨와 형은 나이 차이가 꽤 많이 난다. 그 덕에 어릴 때부터 많은 의지가 된 형이었다. 아이를 갖고 싶었지만 좀처럼 아이가 생기지 않던 형네 부부가 먼저 그에게 유진이를 키우겠다고 말했다. 당연히 선뜻 그렇게 하라는 답이 나오지는 않았다.

"유정이는 저를 닮았고 유진이는 엄마를 닮았거든요. 보고 있으면 정말 너무 예뻐요."

유진이 이야기를 하던 박 씨가 인터뷰 중 처음으로 웃으며 말했다. 그는 그토록 예쁜 유진이가 어느 집에서 더
행복하게 자랄 수 있을지 고민하다 결국 형의 딸로 호적에 올렸다.

"형이 완전히 공주님처럼 키우고 있어요. 업어 키운 자식이란 말이 딱 맞아요."

유진이의 '
아버지'가 아닌 '작은아버지'로 살겠다는 박 씨의 결심은 매우 확고했다. 그는 유진이가 어두운 기억이 없는 가정에서 큰 상처 없이 밝게 자라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아내를 잃은 슬픔에 죽고 싶었지만 첫째 아이 때문에 용케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는 둘째 아이를 위해 아버지 자리도 포기했다.

이 비극의 원인은 거의 10년 동안 사용해온 가습기 살균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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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각한 폐 질환을 유발해 약 100명 이상의 생명을 앗아간 가습기 살균제. ⓒ프레시안(남빛나라)

 

 

"차라리 내가 죽었으면…"

- 다른 피해자처럼 뉴스를 보고 가습기 살균제가 죽음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알았나요?

"2011년 여름이었을 겁니다. 질병관리본부라는 데서 전화가 와서 '역학 조사를 하겠다'고 하더군요. 전염병으로 죽은 것도 아닌데 웬 역학 조사를 하나 싶어서 어리둥절했지요. 저를 만나고 싶다고 찾아와서는 가습기 살균제 사진을 보여주는 거예요. '이걸 썼냐'고 하기에 썼다고 했지요."

옥시레킷벤키저의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이었다. 옥시레킷벤키저는 '옥시크린' '물 먹는 하마' '데톨' '개비스콘' 등으로 유명한 영국계 초국적 기업(레킷벤키저)의 한국 법인이다.

박 씨는 질병관리본부의 설명을 들어도 믿을 수가 없었다. "깨끗해지라고 쓴 건데 그것 때문에 죽었다니!" 얼마 지나지 않은 2011년 11월, 보건
복지부는 1차 동물 실험 결과 가습기 살균제의 주성분인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디닌)와 PGH(염화에톡시에틸구아디닌)의 독성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2012년 2월에 이뤄진 최종 결과 발표도 마찬가지였다.

- 다른 피해자처럼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가봤죠?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모임' 카페에 가서야 아내랑 비슷한 증세의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정말 가습기 살균제가 문제구나 싶었습니다. 양가 부모님께는 제가 알렸습니다. 딸을 잃은 장모님께서 "왜 그걸(가습기 살균제) 썼어…" 하고 말씀하시는데 아무 말도 못 하겠고 그냥 내가 죄인이구나 싶었습니다."

세상을 뜬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의 살아남은 남편, 아버지, 어머니를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바로 이 '죄책감'이다. 집에서 손쉽게 쓴 생활용품이기 때문에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은 더욱더 크다. '내가 쓰지 말라고 해야 했는데', '내 손으로 직접 넣었는데' 이런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쉴 새 없이 눈물을 흘리는 박 씨는 인터뷰 내내 이렇게 중얼거렸다.

"내가 죄인이에요. 차라리 제가 죽었어야 했는데. 정말 제가 죽었으면 좋겠어요."

초국적 기업과 '김앤장'과의 두려운 싸움

그는 현재 옥시레킷벤키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이 기업은 '김앤장'을 대리인으로 내세웠다. 소송 얘기가 나오자 그는 한숨부터 쉬었다.

"솔직히 두렵습니다."

- 사측이 사과 한마디 하지 않고, '김앤장'으로 맞선 것으로 봐서는 쉽게 끝나지 않을 싸움일 듯합니다.

"양가 부모님 모두 그냥 잊고 살라고 하십니다. 소송에는 돈과 시간이 너무 많이 드니까요. 그렇지만 너무 억울해서 살 수가 없어요. 처음에 소송을 시작할 때는 1년 반 정도를 예상했는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훌쩍 흘렀습니다. 이제 3년, 5년을 각오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두려워요."

죄를 지은 자는 하늘이 두렵다고 했지만 오히려 피해자인 박 씨가 '돈'과 '시간'에 짓눌려 두려워하고 있었다. 정부의 무심함도 그를 더욱 두렵게 만든다.

- 최근 가습기 살균제 피해 상황을 조사하던 '폐 손상 조사 위원회'의 조사 위원 전원이 사퇴한 사실을 아시나요?(☞관련 기사 :
가습기 연쇄 살인, 복지부 진상 규명은커녕 훼방만…)

"네. 압니다. 솔직히 기업보다 정부에 더 화가 납니다. 112명이 죽었는데, 정말 착하게 살아온 서민만 죽었는데, 정부는 알아서 하라고만 합니다. 보건복지부는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이라고 발표했으면 책임을 져야지 발표만 해놓고 끝입니까? 이럴 거면 그냥 다 잊고 살게 발표나 하지 말지….

발표 결과를 들은 피해자는 억울해서 죽을 것만 같은데 정부는 보고만 있습니다. 이제까지 싸우면서 정부가 피해자의 편에 서 있단
느낌이 든 적이 단 한 순간도 없었습니다."


박 씨가 큰딸 유정이에게 '엄마가 가습기 살균제 탓에 세상을 떴다'고 말하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상처받는 것은 저 하나로 충분하니까요."

언제까지 피해자가 모든 상처를 끌어안아야 할까? 그의 상처를 보듬어줄 이는 정말로 없는가? 왜 만날 당하는 사람만 당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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