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희생자 외면하고 런던에서 돈펑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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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희생자 외면하고 런던에서 돈펑펑...

최예용 0 36669

삼성 반도체 산재 피해자와 가족들, 삼성본관 앞에서 기자회견

오마이뉴스
12.08.08 10:39l최종 업데이트 12.08.08 10:39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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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전 태평로 삼성본관 앞에서 반도체 노동자의 산재와 직업병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시위가 열렸다.
ⓒ 안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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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올림픽 스폰서 삼성전자는 산재, 직업병문제를 해결하라!"


6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태평로의 옛 삼성본관 건물 앞. 일주일 넘게 이어지는 불볕더위로 숨이 탁탁 막힐 것 같은 거리에서 15명의 남녀가 비장한 표정으로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이들은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등에서 일하다 직업병으로 의심되는 백혈병과 악성림프종, 비호지킨림프종 같은 희귀암에 걸린 노동자와 유가족, 그리고 이들을 돕는 시민운동단체 관계자들이다.

사람이 우선인가, 올림픽이 우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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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공장 산재노동자 한혜경씨의 어머니 김시녀씨와 대학원생 김푸른솔씨(사진 왼쪽부터)
ⓒ 안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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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째 투병하는 제 딸의 고통을 누가 아십니까? 삼성은 치료기회도 주지 않습니다. 사람이 우선입니까? 올림픽이 우선입니까?"


삼성전자 엘시디(LCD) 기흥사업장에서 납땜 업무를 하다 지난 2005년 뇌종양 판정을 받은 한혜경(35)씨의 어머니 김시녀(56)씨는 이날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호소했다. 한씨는 최근 법원에서 산업재해를 인정받았지만, 근로복지공단과 삼성이 항소한 상황이다.

김씨는 "런던올림픽 후원금의 일부만 써도 피해자들을 구할 수 있다"며 "올림픽과 자기 회사 피해 노동자 중 어느 쪽이 우선인지도 모르는 삼성을 어떻게 국내 최대기업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최예용 소장은 "삼성이 런던올림픽 공식 후원사로 경기장 안팎에서 얼굴을 드러내며 시청자와 친숙해지는 사이 백혈병, 악성림프종과 같은 희귀암에 걸린 삼성노동자들의 고통은 잊히고 있다"며 삼성이 대기업으로서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을 외면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이어 김씨와 최 소장, '반올림(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의 이종란 노무사 등 참가자들은 옛 삼성본관과 인근의 삼성생명, 종로1가 삼성모바일, 광화문광장 등에서 동시다발 1인 시위를 벌였다. 시위에 참여한 김푸른솔(24·서울대로스쿨 학생)씨는 "사람보다 제품, 생명보다 이윤을 중시하는 삼성그룹은 올림픽 후원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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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 황유미씨. 황씨는 삼성반도체공장에 다니던 2005년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2007년 사망했다.
ⓒ 안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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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2012년 런던올림픽의 11개 공식후원사 중 유일한 한국기업이다. 하지만 삼성이 자기 회사에서 발생한 직업성 암 사건을 다루는 태도는 세계적 스포츠행사를 후원하는 대기업에 어울리지 않는 저급한 수준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삼성전자는 지구촌 휴대전화 시장을 석권하며 엄청난 이익을 올리고 있지만 삼성 반도체 공장 등에서 일하다 중병에 걸린 노동자들은 직업병 인정도, 보상도 못 받고 있다. 오히려 회사 측은 피해노동자들과 가족들에게 개별적인 위로금을 제시하며 산업재해 신청을 포기하도록 회유하고 있다고 관련자들은 증언했다.

반올림 등에 따르면 현재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직업병 의심 증상으로 사망한 노동자가 56명이고 전체 피해자는 146명에 이른다. 산업·환경보건 분야의 국제학술지 <직업환경보건국제저널>(IJOEH) 최신호(계간 4~6월호)에 실린 논문 '한국 반도체산업 노동자들에게 나타난 백혈병과 비호지킨림프종 문제'는 삼성 직업병 사례들을 학술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논문은 2007년 11월부터 2011년 1월 사이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에서 발생한 백혈병과 비호지킨림프종 사례 17건을 다뤘는데, 병에 걸린 노동자들의 진단 당시 평균연령은 28.5살이며 입사에서 진단까지 평균 잠복기는 8년 7개월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저널의 표지에는 삼성반도체공장에 다니다 백혈병에 걸려 숨진 황유미씨 사진이 실렸다. 황씨의 죽음은 삼성을 비롯한 반도체 기업들이 은폐하고 있는 직업병 문제를 밝혀 노동자의 건강권을 지키자는 취지에서 2007년 시민단체 '반올림'이 결성되는 계기가 됐다.

반올림은 황씨를 포함한 피해자 11명의 사연이 담긴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책을 통해 이 문제의 심각성을 대중적으로 알리기도 했다. 이 책은 소비자 대상 광고에서 '또 하나의 가족'이라며 친근감을 강조하는 삼성이 정작 자사의 노동자들을 어떻게 외면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분칠한 얼굴, 거짓 웃음 대신 '인간 존중'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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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올림픽 후원기업 삼성의 사회적 책임을 촉구하는 캠페인 이미지. 백혈병과 희귀암에 걸려 사망한 56명의 삼성 노동자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 환경보건시민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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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런던올림픽에서 삼성과 함께 메인 스폰서로 나선 다우케미칼도 1984년 인도에서 수 만 명의 희생자를 낸 환경공해사건 '보팔참사'의 주역 유니언카바이드를 인수한 화학회사로, 보팔 피해 해결을 외면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런던올림픽의 슬로건은 '하나의 삶(Live as one)'이다. 올림픽에 참가한 205개국이 스포츠로 하나가 되고 화합하자는 취지다. 이런 거창한 목표에 비하면 기업이 자신의 존립을 가능케 하는 노동자 및 지역주민들과 '하나의 삶'을 이루는 것은 그리 어려운 숙제가 아닐 것이다.

노동자들의 헌신과 희생을 정당하게 보상하고, 회사가 일으킨 문제에 대해 제대로 적극책임지는 '기본'을 다하지 못하면서 올림픽 정신을 거론하는 거대기업들에게 그래서 지금 '위선'이란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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