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기저귀 쓰면 미개한 엄마라니요?
새하얀 기저귀의 비밀이야기 2편
베이비뉴스 2014 11 21
일회용 기저귀가 사랑받는 가장 큰 이유는 편리함 때문이다. 천기저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일회용 기저귀는
편리하다. 흡수력도 엄청나게 뛰어나다. 일회용 기저귀를 한번 쓰기 시작하면 이 치명적인 매력에서 헤어 나오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에 일회용 기저귀가 출시된 지 31년 만에 연간 시장 규모가 6000억 원에 이르렀다는 것은 일회용 기저귀
파급력이 얼마나 큰 지 가늠케 한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일회용 기저귀를 쓰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 됐다. 절대 다수의 선택은 천기저귀가
아니라 일회용 기저귀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천기저귀를 쓰는 사람들에 대한 인식이 변했다는 것이다. 천기저귀를 ‘유난 떠는
엄마들이 쓰는 기저귀’, ‘집에서 한가하게 아이 키우는 엄마들이 쓰는 기저귀’로 치부하는 시선들이 있다. 천기저귀를 쓴다고 하면 미개인 취급하는
이들도 있다.
‘아이의 건강을 위해서 편리한 삶을 거부하는 것이, 그리고 화학물질의 위험으로부터 아이를 지키는 일이 언제부터
유난떠는 일이 되고 말았을까?’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까지 망각하게 만들고 있다. 기저귀 회사들은 그동안 일회용
기저귀의 발전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지만, 아직까지 안전성 문제를 말끔하게 해결하진 못했다. 특히 고분자흡수체의 안전성 문제는 반드시 점검해야
할 과제다.
우리 사회에는 소수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천기저귀를 쓰는 이들이, 그리고 천기저귀 보급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있다.
우리가 망각해버린,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서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소중한 존재들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편한 것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
생후 8개월 홍군이네서는 하루에 한 번 아이의 기저귀를 빠는 세탁기가 돌려진다. 홍군이 엄마는 수시로 홍군이의 표정과 몸의 상태를 체크하고 천기저귀를 갈아준다. 그후 곧바로 욕실로 기저귀를 들고가 애벌빨래한 후 한꺼번에 모았다가 늦은 오후 세탁실로 옮긴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
홍용이 생후 1주일 후부터 천기저귀를 사용하고 있다는 유연정 씨는 "대변은 분리해서 애벌빨래 해 두고, 소변은 그때 그때 애벌빨래 해서 모아 뒀다가 하루 한 번 세탁기에 돌린다"고 말했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
홍용이네 집 작은방에 널린 천기저귀의 모습.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
“나부터도 이게 몸에 좋은 걸 느끼는데 말 못하는 어린 아이는 오죽하겠느냐?”
8개월 아들을 키우는 유연정(32) 씨는 천생리대를 썼던 경험 덕분에 자연스럽게 천기저귀를 사용하게 됐다. “출산
전에 기저귀를 사놓으려고 인터넷을 뒤져보니 대부분의 정보가 업체가 고용한 리뷰단을 통해 단점은 배제되고 장점만 부각된 경우가 많아서 직접
오프라인 장터에서 제품을 비교해보고 사용할 것을 골라뒀다”고 그는 덧붙였다.
“처음에는 하루 15장도 사용하던 기저귀가 지금은 개월 수가 차가면서 하루 8~10장 정도로 줄었어요. 설사병에
났을 때 하루 20장까지 써봤고요. 총 25장 가지고 있는데 요즘은 거의 16~17개 내에서 빨아서 돌려서 써요. 자주 갈고 빨래하는 걸 두고
주변에서 ‘대단하다’, ‘그걸 어떻게 하느냐’는 말들을 종종 하는데, 제가 유난해서 천기저귀를 사용하는 건 아니거든요. 아이가 밤잠이
길어지면서부터 잘 때만 일회용 기저귀 채워주는데 많이 간지러워 해요. 명절 때 집을 비우면서 3일간 일회용 기저귀를 썼는데 그곳에 빨갛게
알레르기 반응이 바로 와서 놀랐어요.”
유 씨는 “천기저귀를 사용하며 느끼는 장점이 더 많아서 단 하나의 단점인 빨래 처리가 전혀 버겁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씨는 천기저귀를 처음 살 때 초기비용이 조금 들었지만 길게 보면 매월 기저귀 비용 부담이 없다는 것, 일회용 기저귀를
잠깐만 사용해도 발생하는 발진 문제에서 자유로워서 좋다는 것, 집안에서 냄새가 나도 차곡차곡 모았다가 버려야 하는 쓰레기 부담이 없는 것을
천기저귀의 장점으로 꼽았다.
24개월의 남자아기를 키우고 있는 한다솜(34) 씨는 출산 후부터 지금까지 천기저귀를 꾸준히 사용하고 있다.
천기저귀를 이미 쓰고 있던 친구에게서 추천을 받은 것도 그렇고, 임신 기간 중에 기저귀 공장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일회용 기저귀의 단점을 묻는
질문에 직원들의 회피형 동문서답을 듣고 천기저귀 사용을 확고히 마음먹게 됐다고.
“처음에 천기저귀 쓴다고 하니까 주변에서 모두 반대했어요. 너무 힘들고 귀찮은데 그걸 왜 하냐고요. 근데 그렇게
말씀하신 분들은 천기저귀 한 번도 안 써보신 분들이었거든요. 출산하고 친구 된 분들 중에 천기저귀 쓰시는 분들이 종종 있는데 현대적인 방법들을
지양하는 가치관 가진 분이 대부분이에요. 물론 일회용기저귀 사용하는 분들에 비해 기저귀 비용도 많이 아끼고
있습니다.”
◇ 천기저귀 쓸 수밖에 없었던 엄마의 이유
이제는 4살이 된 민경이는 기저귀를 차던 시절에 엉덩이에서 새빨간 진물이 마르는 날이 없었다. 너무 아파서 울어대는
딸을 보는 엄마 이은영(34) 씨의 마음은 항상 무거웠다. ‘내가 뭘 잘못해서 그런 것은 아닌지….’ 그러던 중 이 씨는 어린이집을 통해
천기저귀 사용을 권유받게 됐다.
“직장 때문에 아이 8개월 됐을 때 어린이집에 맡기느라 마음이 많이 무거웠어요. 그런데 기저귀 피부염 때문에 아기가
너무 고통스러워해서 어린이집에서 전화 받고 일하다 몇 번을 달려 가야 했어요. 선생님 권유로 천기저귀를 쓰고 3주 정도 지나고 나니 거의
호전되다시피 했고 기저귀 뗄 때까지 천기저귀를 사용했죠. 24개월 쯤 기저귀 뗐던 걸로 기억해요.”
이 씨에겐 그야말로 기적 같은 일이었다. 일회용 기저귀를 쓰다가 천기저귀로 바꾼 것밖에 없는데….
민경이를 돌봤던 키노어린이집 방대림 원장은 “지금까지 본 아기들 중 일회용 기저귀에 가장 민감한 아이였다. 정말
많이 신경 썼지만 아무 방법도 통하지 않았다. 어린이집에서 천기저귀를 내내 쓰다가 주말에 일회용 기저귀를 몇 번 쓰고 오면 월요일에 다시
재발돼있는 정도여서 결국 집에서도 사용하시기를 권유 드렸다”고 말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0~1세의 아기 14명 중 1명이 기저귀 피부염을 겪는다. 그리고 최근 들어
그 수치가 더욱 증가하고 있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 5년 새 21%가 늘어난 것이다. 가장 최근 조사인 2011년 통계를 보면, 한 해
동안 6만 6962명의 0~1세 아기가 기저귀 피부염으로 병원 치료를 받았다. 일산병원 관계자는 “기저귀 피부염 영유아 환자 대다수는 일회용
기저귀를 사용하다가 병원을 찾아온 경우”라고 말했다.
◇ 천기저귀 보급 위해 노력하는 이들
원아에게 천기저귀를 갈아 주고 있는 선생님과 아기의 모습. 서울 노원구 공릉동 키노어린이집의 오후 풍경이다. 일회용기저귀가 아닌 천기저귀를 갈아 주는 것에 대해 선생님들은 "불편한 점은 거의 없고 오히려 아이들이 편안해 해서 좋다"고 입을 모았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
천기저귀를 쓰는 어린이집이 있다는 점에 놀라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민경이가 어린이집을 통해 천기저귀를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서울시의 친환경 천기저귀 지원 사업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서울시는 지난 2012년부터 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첫해 시범사업 때 4개구 500명
의 아이가 이 사업의 혜택을 받았다. 현재는 15개구 1461명 규모로 사업이 확장됐다.
사업 내용을 살펴보면 어린이집에서 천기저귀 세탁을 맡는 게 아니다. 천기저귀 제공, 세탁, 배달을 진행하는 업체가
따로 있다. 바로 사회적기업 송지라는 곳인데, 전국에서 유일하게 천기저귀 서비스를 시행하는 기업이다. 영아 한 명당 5만 4000원가량을 내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데, 시가 70%의 비용을 지원하고 나머지는 학부모가 부담한다.
어린이집 관계자들은 아이의 정서, 건강을 위할 뿐 아니라 환경보호에도 일조하고 있다는 신념으로 친환경 천기저귀 지원
사업에 동참한다고 했다. 민경이가 다녔던 키노어린이집의 경우는 지난 2012년 시범사업 때부터 지금까지 천기저귀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방대림
원장은 “엄마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고 말했다.
“엄마들이 더 좋아하세요. 직장 때문에 바빠서 집에서는 못해주지만 어린이집에서라도 꼭 천기저귀 써달라고
당부하십니다. 손이 많이 갈 것 같아 겁내시는 분들도 많은데 저희가 이용 중인 서비스는 천기저귀를 갈아주고 그대로 따로 담아뒀다가 업체에
보내고, 세탁한 걸 묶어서 배달해준 상태로 바로 쓰는 거라서 힘들 게 거의 없어요. 그렇다보니 저희 통해서 가정에서도 아예 천기저귀로 갈아타시는
엄마들도 있고요. 쓰레기봉투 버리는 양은 절반 이상 줄었죠. 일회용기저귀 몇 개씩 넣어 버릴 때마다 마음이 많이 불편했는데 그런 걱정 없어
좋습니다.”
사회적기업 송지는 개인의 경우 영아 1인당 월 6~7만 원 선에 기저귀 제공, 수거, 세탁, 배송을 도맡아 해주고
있다. 천기저귀 사용을 고려하는 엄마가 비용이나 사용의 불편을 느끼지 않게 하고 쉽게 접근하도록 하는 게 서비스의 목표다. 천기저귀의 난점인
흡수력 미흡에 대한 개발도 진행 중이다.
황영희 송지 대표는 “사회, 환경적 측면에서 천기저귀 사용이 좋은 걸 모
르는 분들은 거의 없다고 본다. 다만 현대 사회에서 엄마들의 상황상 천기저귀 사용이 어렵다보니 사용을 주저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무조건 천기저귀 사용을 강요할 게 아니라 천기저귀를 고려하는 사람들이 각각의 상황에서도 편리하게 쓸 수 있도록 방법과 장치를
만들어 주는 게 우리가, 또 지자체가 해 줄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012년부터 서울시 친환경 천기저귀 지원 사업에 동참중인 키노어린이집의 문 앞에는 이를 인증하는 초록색 스티커가 붙어있다. 올해 키노어린이집의 아이들을 포함해 총 1461명의 영유아가 서울시의 친환경 천기저귀 지원 사업 혜택을 받았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
그런데 현재 서울시가 진행 중인 친환경 천기저귀 지원 사업은 추후 지속적인 시행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서울시
보육지원팀 관계자는 “시작 당시 한 서울시의원의 제의로 시범 운영이 됐었다. 그러나 내년 사업 예산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현재는
축소로 예상하고 있으나 중단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며 말을 아꼈다.
“늘 가렵고, 따갑고, 아프고…, 생리통으로 크게 고생을 하다가 면생리대를 쓰고 나서 치유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되면서 좋은 것을 널리 알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이 일을 시작하게 됐죠.”
에코생협, 두레생협 등에서 팔리는 면기저귀와 면생리대를 생산하는 개짐살이 허필자 대표는 면기저귀와 면생리대 보급을
위해서 활동한 지 벌써 20년이 넘었다. 허 대표는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면생리대와 면기저귀 직접 만들어 쓰기 교육도 하고
있다.
“면생리대 만들기 교육을 하면서 꼭 면기저귀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면기저귀를 무료로 나눠주는 일을 하기도
했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면생리대에 비해서 면기저귀 보급이 잘 되지 않아요. 세탁에 대한 부담을 매우 크게 느끼는 것 같아요. 불편할 것이라는
두려움도 큰 것 같고요.”
허 대표는 “어른은 스스로 아픈 것을 몸으로 느끼면서 면생리대를 선택하게 되지만, 아이들을 스스로 선택할 수가
없잖아요. 아이들이 아프고 답답하다는 것을 몸으로 이야기하고 있어요. 아이들의 마음을 부모님들이 잘 알아주셨으면 해요”라고
전했다.
◇ “천기저귀 쓰면 유난떤다는 편견 없어져야”
천기저귀를 사용한다고 유난을 떤다고 치부하는 것은 너무한 일이 아닌가?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
일회용 기저귀의 안전성을 확보하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 천기저귀도 친환경적이지 않다고 지적이 뒤따르곤 한다.
오래 전 이와 관련한 연구 조사가 진행된 적도 있다. 시민환경연구소 활동가로 일하던 10년 전 천기저귀와 일회용 기저귀의 환경성 비교 연구를
진행했던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천기저귀도 오물을 분리하고 세제를 써 빨래하기 때문에 환경오염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일회용
기저귀를 만들며 발생하는 자원과 에너지의 낭비, 일회용 기저귀 폐기 후 발생하는 환경적 문제와는 전혀 다를뿐더러 비교 자체도 되지
않는다.”
배재근 서울과학기술대학교 환경공학과 교수는 “일회용 기저귀를 지금 이대로 사용하고 폐기하는 걸 계속하면 그로 인한
환경 생태계 파괴는 결국 우리에게 돌아오는 게 당연한 것”이라면서 “일회용 기저귀를 만드는 기업이 제품과 성분의 안전성을 입증하고 정직하게
운영하며 재활용 방안 연구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끝으로 독자 몇 분의 의견을 옮겨본다.
“전 천기저귀랑 혼용하는데, 주변 엄마들이 미개인 취급을…. 엄마가 직장맘이거나 애가 걷기 시작하면, 또 외출하면
천기저귀 쓰기 쉽지 않아요. 천기저귀 세탁을 생각해보면 얘도 완전 친환경은 아니고…. 그래도 애기한테는 천이
좋더라고요.”
“무심코 당연하다며 사용하는 일회용 기저귀에 대해 명확하게 집어주는 기사 반갑습니다. 두 아이 모두 예민한 피부로
인해 천기저귀로 육아했고 지금도 하고 있는 엄마로서 아이들을 조금이라도 더 유해한 것들로부터 지켜줄 수 있었다는 점에 대해 감사하고, 나 혼자만
유난떠는 엄마가 아니었음에 안도합니다.”
“저는 천기저귀 유저입니다. 비록 소수지만 우리 아이의 건강과 환경을 생각해서 천기저귀 쓰는 엄마들이 있습니다.
소위 소창으로 대변되는 옛날 사각 기저귀뿐 아니라 요즘엔 팬티형도 천기저귀로 나오고 방수형도 있습니다. 심지어 미국에서 직구를 하기도 하지요.
의외로 외국에도 천기저귀가 다양하고 좋은 게 많거든요. 여하튼 요즘엔 예쁘고도 편리하게 나온답니다. 그래서 힘들지
않아요.
사실 엄마들도 생리대 쓰면서 가렵고 답답, 불편한 거 많이 겪으셨겠죠. 천기저귀는 힘들다, 유난떠는 것이다, 라는
편견을 깨는 좋은 기사 계속 부탁드립니다.”
“천기저귀 사용 못해준다고 해서 죄스러워하실 건 없습니다. 다들 열심히 키우는 건 똑같을 테니까요. 천기저귀의 단점을 보완할만한 천기저귀 신제품개발이 더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