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평법 시행령, 시행규칙 제정앞둔 산업계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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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평법 시행령, 시행규칙 제정앞둔 산업계 반응

최예용 0 9856

[이슈분석]화평법 2라운드-"시행령에 담겠다" vs "법 개정하라"

화평법 논란 2라운드

전자신문 2013년 9월4일자 기사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화평법)이 관련 업계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화학·소재 업계뿐만 아니라 화학물질을 사용해 제품을 개발·생산하는 전 산업의 관심이 화평법에 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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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평법 제정·공포 당시에는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의원입법에 의해 불과 16일만에 처리돼 그 내용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것이 첫 번째 이유다. 정부는 2년여에 걸쳐 의견수렴을 거쳐 정부안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핵심 내용이 모두 바뀌어 통과됐다. 과징금 때문에 업계 관심이 온통 화관법(화학물질관리법)에 쏠렸던 탓도 있다.

전자신문은 화평법 공포 이후 꾸준히 업계에 끼칠 영향을 분석하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후 화평법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주무부처인 환경부가 하위법령인 시행령 제정 작업에 착수했다. 그 사이 독소조항이 불러올 엄청난 악영향이 업계와 전문가들에게 알려지면서 화평법은 이제 산업계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뿐만 아니라 한국 제조업과 협업을 위해 연구개발(R&D) 기지를 세웠던 글로벌 기업이 반발하면서 국제적인 문제로까지 확대됐다.

상황이 악화되자 환경부도 업계 의견을 우선 수렴하겠다며 급선회했다. 시행령 초안을 만들기 전 이해관계자 포럼부터 발족했다. 규제 일변도였던 환경부의 입장이 바뀐 것이다.

그럼에도 업계는 불안하기 그지없다. 지나치게 구체적으로 규제를 명시해 놓은 법의 한계 때문이다. 글로벌 기업들은 R&D 기지를 아예 외국으로 옮겨야 할 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전자신문은 2라운드에 접어든 화평법 쟁점을 점검하고 향후 방향을 전망한다. 이를 위해 4일 `글로벌 소재 포럼`을 열고 이해 당사자인 글로벌 소재 기업과 국내 소재 기업들을 초청해 토론을 진행했다.

◇쟁점은 4가지

지난 5월 공포된 화평법에서 가장 크게 문제가 된 것은 네 가지다. 그 중 가장 첨예한 문제는 `소량 면제` 조항을 없애고 모든 신규화학물질을 등록하게 한 점이다.

전문가들은 소량 면제 조항 삭제만으로 R&D 자체가 위태로워졌다고 분석한다. 등록에 통상 9개월에서 1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그 기간 만큼 혁신 자체가 늦어지는 셈이다.

라이프 사이클이 짧고 소재 혁신의 중요성이 큰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에는 청천벽력 같은 내용이다. 새로 개발한 모든 물질을 일일이 등록하다보면 시장 대응이 늦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테스트조차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14나노 이하 미세 반도체, 유기발광다이오드176(OLED), 경량 자동차 등 미래 먹거리로 꼽히는 모든 제품들이 소재 혁신에 기대고 있는 만큼 이들 품목의 발전도 불투명하다.

R&D용 화학물질 등록 면제 조항이 없어진 것도 쟁점 중 하나다. 새로운 제품과 공정을 개선하기 위해 실험실에서 개발하는 물질조차 오랜 기간이 소요되는 등록절차를 밟게 되면 우리 R&D는 경쟁국에 비해 그만큼 늦어진다. 이를 감안해 기존 유해법은 물론 정부가 2년여간 준비했던 정부입법안에도 면제 조항을 둔 바 있다.

세 번째 쟁점은 비용 문제다. 등록을 위해서는 서류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실험치와 사용 후 예상 시나리오까지 있어야 한다. 여기에 필요한 비용이 만만치 않다.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에 더 큰 문제다. 우리나라는 소재 산업이 취약해 소재 기업 대다수가 중소기업이다. 건당 7000만원에서 1억원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모든 물질을 등록해야 하는 중소기업에 연간 수십억원은 매우 큰 비용이다.

유럽도 화학물질관리제도(EU REACH)를 시작한 후 2차 등록기한 마감일인 지난 5월 31일까지 등록조차 하지 못한 물질이 984개나 나온 것으로 집계됐다. 유럽 현지 언론들은 이들 984개 물질을 대부분 중소기업이 개발한 것으로 분석했다. 비용 부담 때문에 등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네 번째는 영업비밀 유출이다. 화평법은 하위사용자와 판매자가 요청하면 안전에 관련된 정보 외에도 그 화학물질의 제조량·수입량까지 화학물질 제조·수입자가 제공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업계는 제조량과 수입량은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사항이라고 주장한다. 혼합비율이 정보 제공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해도 총량만으로도 혼합비율이 노출될 여지가 많은 점을 업계는 우려했다.

◇환경부 “소량물질 실험없이 최소한 신고 방안 검토”

4가지 쟁점이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자 환경부는 지난달 30일 상당 부분 완화된 향후 계획을 발표했다.

환경부는 당초 “화평법 자체에서 모든 신규화학물질을 등록하도록 명시했기 때문에 하위법령에서 이를 조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소량 면제 조항이 없어지면서 R&D 공동화 현상까지 일어날 것을 우려해 최소한의 간이 신고만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나섰다.

소량면제 조항은 R&D용 물질 면제 조항보다 산업계 R&D 연관성이 더 높다. 환경부는 화학물질·제품의 개발 또는 공정개선을 위한 R&D용 화학물질은 환경부 장관 확인을 거쳐 면제대상으로 검토하겠다고 방침을 밝혔지만, 업계는 여전히 R&D를 걱정했다. R&D용 물질은 기존법인 유해법에서도 면제됐지만, 업계는 그보다 소량면제 조항을 더 활용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우려 때문에 환경부는 R&D 범위를 넓히겠다는 입장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수요기업과 테스트하는 것을 포함해 시장에 출시되기 전까지 R&D로 볼 수 있다”며 “오히려 기존 법이 R&D 범위를 실험실 수준으로 너무 제한해 수정하려고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환경부는 화평법 시행령에서 소량 물질 신고를 최소화하는 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산업계가 어떤 반응을 보일 지 귀추가 주목되는 대목이다.

환경부는 비용 부담 해소를 위해 유연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영업비밀 침해 우려에 대해서도 유사 법률인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등의 취지를 고려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조은희 환경부 과장은 “산업계가 우려하는 사항을 잘 알고 있어 우려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다”며 “하지만 수천종의 신규 화학물질이 아무런 정보 없이 국내에 유통될 경우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사고가 재발할 수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업계 “이대로는 2015년 1월 실행 불가능”

환경부 입장이 다소 바뀌었어도 실질적으로 오는 2015년 1월 1일 시행은 무리수라는 얘기가 나온다.

진항교 한국화학연구원 센터장은 “국내 등록 물성평가기관의 처리 능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며 “EU REACH가 신규 화학물을 연 평균 300건 가량 처리하는 반면 국내 시험인증기관은 연간 평가 건수가 100건을 넘기 힘들다”고 말했다. 화평법 시행 전까지 전체 사용물질 등록이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1년 반이라는 시간도 대비하기에 부족하다. 일단 시행령이 나올 때까지 구체적인 조항이 없어 시험인증을 미리 신청하기 어렵다. 시행령이 나온 뒤에 부랴부랴 신청하더라도 국내외 인증 여건 상 스케줄을 맞추기 힘들다.

`신규물질`에 대한 혼선도 있다. 환경부가 공표한 물질 외에는 신규물질이 되는데 2012년 이후 유해성 심사를 받은 물질은 2015년 1월 1일부로 신규 물질이 된다. 현행법이 100kg 이상 화학물질 수입시 3년간 환경부가 공표를 하지 않는 `보호기간`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시행령 등 하위법령 협의체 규모로는 이해 당사자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기도 힘들다. 환경부의 `화평법·화관법 하위법령 협의체 구성·운영계획`에 따르면 전체 30명 이내로 법률 협의체가 구성된다. 대·중·소 기업과 범부처 관계자 등의 의견이 반영되기 힘든 구조다. 업계 전문가는 “특히 중소·중견 기업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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