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 송전탑 2 "

전자파공해
홈 > 유해물질추방운동 > 전자파공해
전자파공해

" 겨울 송전탑 2 "

최예용 0 8822

일흔네살 이치우씨와 일흔세살 이상우씨는 경남 밀양시 산외면 희곡리 보라마을에서 나고 자란 형제지간이다. 형은 훤칠한 키에 의리가 있었고, 동생은 부지런하고 야무졌다. 형제가 일구어온 논 열마지기는 평당 20만원에 시가 4억원을 호가하는 땅으로 구순 노모를 모시고 사는 두 형제의 희망이었다.

그런데 2005년 신고리원전에서 생산된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는 765000볼트 송전탑 공사 계획이 발표되었다. 논 한가운데에 높이 100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철탑이 박히게 되었다. 이 끔찍한 고압전류 아래서 농사를 짓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일, 그들은 땅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보상금은 6000만원, 부동산 가치는 ‘제로’가 되어버렸다. 69개의 철탑이 지나가는 밀양지역 5개면 해당 주민들의 사연이 대개 그러했고, 그 삶들이 지난 6년간의 싸움으로 파탄이 났다. 시가 88000만원짜리 농지 위로 지나가는 송전선로에 대한 지상권을 30년간 임대해주는 조건으로 받는 보상금은 고작 680만원, 부동산 가치는 역시 ‘제로’가 되었다. 은행에서는 담보물로 잡아주지도 않았고, 농협은 슬슬 대출금 상환 압박을 해왔다.

밀양시장 엄용수와 지역 국회의원 조해진은 처음에는 함께 싸워주는 듯했으나, 어느새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상경투쟁, 노숙투쟁, 단식투쟁, 토론회와 공청회, 6년 동안 안 해본 것이 없었지만 막상 공사가 강행되었을 때 그들이 할 수 있었던 일이란 맨몸으로 용역과 기계에 맞서는 것밖에 없었다. 무릎이 좋지 않은 노인들이 기다시피 하며 산길을 오르내리면 그들의 격렬한 저항에 시달린 젊은 용역들은 ‘워리 워리’ 하며 노인들을 조롱했다. 하루종일 나무를 껴안고 벌목을 막아내기도 했다. 생활이 말이 아니었다. 새벽에 산에 올라 깨어나는 시내의 불빛들을 보며 그들은 외로웠다. 이 나라가 누구의 나라인가, 우리가 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가. 마을마다 ‘누구 하나가 죽어야 이 일이 풀릴 거’라는 소리들이 번져나갔다.

116일 새벽 4, 이치우 이상우 형제의 논으로 용역 50명과 굴착기가 들이닥쳤다. 젊은 용역들은 노인들에게 공공연히 욕을 했다. 여자 용역들은 할머니들에게 욕을 했다. 새벽 4시부터 온종일 논바닥에서 영하의 추위와 손주뻘 되는 아이들의 욕설을 견디며 일진일퇴의 싸움을 했고, 저녁이 되어 퇴근하는 용역들은 내일 다시 오겠노라 했다. 이치우 노인은 절망했다. 내일 또 오늘 같은 날을 지내야 하다니. ‘내가 죽어야겠다. 저 굴착기 불지르고, 나도 죽겠다.’ 동생과 주민들은 말렸다. 휘발유통을 빼앗아 땅에 부었다.

그날 저녁, 마을회관에서 이치우 노인은 최후

 

의 시간을 보냈다. 내가 죽으면 이 억울함을 세상이 좀 알아주겠지, 새벽마다 온 마을 노인들이 2교대 3교대로 산에 올라 용역들과 기계들과 맞서며 수도 없이 사진 찍히고 고소 고발에 성폭력까지 당하는 이 무간지옥을 벗어날 수 있겠지, 그리고 동생과 내가 일구어온 이 논 열마지기도 지킬 수 있으리라. 마을회관에서 온몸에 휘발유를 끼얹은 이치우 노인은 보라마을 어귀 다리 위에서 몸에 불을 붙였다.

일흔네살 이치우 노인은 이렇게 세상을 떠났다. 숯덩이가 된 노인의 주검은 용산참사의 희생자들이 그러하듯, 지금 냉동고에 있다. 이 죽음 앞에서 책임을 느껴야 할 이들이 조금이라도 참회하고 있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영하 10도를 넘나드는 한겨울 세상은 전기로 가득 찬 것 같은데, 이 전기가 어디서 왔는지, 어떤 지옥도를 거쳐 왔는지를 묻는 이도 없다. 끔찍한 국가폭력과 시민들의 무관심. ‘안락을 위한 전체주의’의 틈바구니에서 짓이겨진 어느 죄 없는 노인의 숯덩이 시신을 바라보며 나는 눈물이 난다.

이계삼 경남 밀양 밀성고 교사

한겨레신문 2012년 1월27일자에 실린 현직교사의 칼럼입니다. s.jpg

0 Comments
시민환경보건센터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