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성 석면희생자 이정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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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성 석면희생자 이정림

첨부된 자료 (환경보건시민센터 보고서 2011-35호 이정림사례> 를 참고하세요 

2011년 12월21일 46세의 나이로 사망한 이정림씨는 환경성 석면노출 희생자이다. 1966년생인 그녀는 고교재학시절인 1981년부터 1984년초까지 3년간 대전살았는데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 학교 인근에 한국에서 가장 큰 석면시멘트공장의 하나인 벽산대전공장이 있었다. 고교졸업후 대학을 나와 결혼하여 신혼살림을 차린 곳이 대전 서구 오류동의 한 아파트였다. 자신이 다녔던 고등학교에서 가까운 곳이었고 역시 나중에 알았지만 인근에 문제의 벽산석면시멘트공장이 가동중이었다. 1991년부터 2년간 그곳에서 살았다. 이후 그녀는 남편의 직장을  따라 경북 김천으로 이주했다. 그리고 10년이 훨씬 지난 2006년 어느날 그녀는 몸이 이상하여 대전의 대학병원을 찾았다. 몇번을 다니면 검진을 했지만 정확한 병명을 알지 못했다. 서울삼성병원으로 가서야 그녀의 몸에 '악성중피종'이란 치명적인 암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았다. 의사는 이 병이 석면노출에 의한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서울대학교보건대학원장 백도명 교수는 몇년전부터 전국각 지역중에서 대전지역에 악성중피종암환자 통계치가 높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기회가 있을때마다 이 사실을 지적했다. 2007년이후 석면문제가 주요 사회이슈화하면서 백교수의 지적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2009년 하반기부터 대전시가 나서 대전발전연구원으로 하여금 문제의 벽산대전공장 주변에 대한 역학조사를 실시했다. (벽산대전공장은 1996년까지 가동하고 이후 전북 익산으로 옮겨갔고 대전공장자리에는 벽산아파트가 세워져 있다) 환경보건시민센터와 한국석면추방네트워크 그리고 전국석면피해자와가족협회 회원들은 2010년 초 대전의 한 대학병원에서 열린 악성중피종암환자와 가족모임에 참가했다. 대전시의 석면피해역학조사의 한 프로그램이었다. 그곳에서 이정림씨의 사례를 알게되었다. 그녀는 5년째 항암치료를 받으며 투병중이었다. 놀랍게도 그녀가 살았던 아파트에는 악성중피종으로 사망한 주민이 2명이나 더 있었다.

이후 그녀와 함께 그녀가 다녔던 고등학교와 신혼시절 살았던 아파트를 둘러봤다. 그녀는 기가막혀했다. 자신이 듣도보도 못했던 석면공장이 바로 인근에 있었다니... 그녀는 분노했다. 왜 40대중반의 내가 이런일을 당해야 하나. 아직 어린 우리아이들은 어떻게 하나.. (그녀는 고등학생 아들과 중학생 딸을 두고 있다) 이후 그녀는 석면추방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전국에서 벌어진 석면피해특별법제정 서명운동에 발벗고 나섰고 서울과 전국에서 개최되는 각종 석면추방행사에 참여했다. 2010년 10월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열린 아시아석면추방네트워크 국제회의에 그녀가 참석했다. 잊혀진줄 알았던 그녀의 숨은 영어실력이 빛을 발했다. 오랫동안 석면추방을 해온 운동가들은 악성중피종환자가 직접 국제회의에 나와 피해사례를 발표하고 석면의 위험성을 강조하는 그녀의 모습에 놀라고 반가와했다. 국제석면추방사무국(IBAS)의 Laurie Kazan Allen 대표는 "레이첼(이정림의 영어이름)은 놀라운 여성이다. 자신의 몸을 갉아먹는 암의 원인이 석면때문이란 것을 알고 또 아직도 아시아 여러나라가 석면을 사용하는 것을 알고 몸소 나섰다. 특히 한국이 인도네시아에 석면공장을 팔아먹었다는 사실을 미안해하며 아시아지역에서의 석면추방에 앞장섰다"고 말했다.

2011년부터 시작된 석면피해구제제도에 피해신청을 했다. 그러나 심의위원회의 의사들은 그녀의 사례를 판정보류했다. 의사들이 알기로 악성중피종암은 평균잔여수명이 1년에 불과한데 그녀는 5년이나 살고 있어 질병진단에 제대로 된것인지 의문이라는게 이유였다. 그녀는 분통을 터트렸다. "서울의 대학병원에서 진단받고 항암치료만 수십차례했다. 내가 일찍 죽었어야 당신들 구미에 맞는단 말이냐. 당신들 엉터리 의사들이 놓쳐온 석면피해자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아느냐" 이후 그녀의 사례는 인정되었다.

2011년 들어 그녀의 상태는 악화되어갔다. 9월경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인도회의에 갈 수 있겠어요?", "그럼요, 당연히 가야죠. 항암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일정을 조정하고 있어요. 의사선생님이 못가게 할까봐 아프다고 말도 못해요. 아들을 데려갈 수 있으면 좋겠는데 고3이라 학교에서 허락을 안해요" 그녀는 휄체어에 몸을 싣고 11월 일주일간 인도를 방문했다. "인도에서 석면사용을 당장 중단해야 합니다. 저와 같은 석면피해자가 더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연단에서, 기자회견장에서의 그녀의 호소는 절절했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의 마지막생을 국내외 석면추방운동에 불살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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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이정림씨의 사례를 다룬 경향신문 석면특집기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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