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면쇼크 부산이 아프다]시민절반 160만명이 '잠재적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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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면쇼크 부산이 아프다]시민절반 160만명이 '잠재적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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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면 쇼크 부산이 아프다] 시민 절반 160만 명이 '잠재적 피해자'

부산일보 석면특집 2014-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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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슈퍼 
 
새벽 2시. 왼쪽 가슴 아래가 바늘로 쿡쿡 찌르는 듯 아프다. 가슴 전체가 확 조이고 숨도 가빠 온다. 이렇게 죽는 게 아닐까…. 두려움이 엄습할 때쯤 서서히 통증이 풀린다. 이달 들어서만 벌써 7번째다. 김옥화(64·여) 씨에게 정체 모를 고통이 찾아온 건 4년 전. 처음엔 심장 쪽 이상인 줄 알았다. 병원 검사를 받았다. 아무 이상이 없었다. 폐 엑스레이 사진도 깨끗했다. 
 
정체 모를 병마와 싸우기를 2년여. 2012년 11월 딸아이(39) 집으로 우편물 하나가 날아들었다. 연신초등학교 졸업생은 석면 피해가 의심되니 가족 모두 검사를 받으라는 내용이었다. 부산 연제구 연산1동 '제일화학'. 국내에서 가장 컸던 이 석면방직공장은 김 씨가 운영하던 '금성슈퍼'와는 300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정밀검사 결과 지난해 4월 24일 '석면폐증 2급' 판정을 받았다. "선생님, 무슨 약을 먹으면 되나요?" 곧 바보 같은 질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전 세계 어디에도 석면질환 치료약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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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화학 피해자 김옥화 씨가 공장 근처에서 슈퍼를 운영하던 시절 기억들을 털어놓고 있다.

■제일화학
그는 자랑스러운 제일화학 직원이었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 박영구(59) 씨는 누나의 뒤를 따라 1971년 제일화학에 취직했다. 당시 제일화학은 국내 석면방직공장 중 규모가 가장 크고, 보수도 높은 편이었다. 부러움 속에 회사 동료인 아내를 만나 결혼도 했다. 석면 가루가 눈처럼 쌓인 작업 현장에서 도시락을 까먹고 야식을 먹었다. 휴식시간에는 석면포를 이불 삼아 덮고 자기도 했다.

박 씨는 아내와 함께 1978년 제일화학을 나왔다. 8년 뒤 둘째를 낳은 아내는 자주 마른기침을 하고 숨가빠했다. 가슴을 바늘로 찔린 것처럼 아파했다. 진통제로 버티고 산소 호흡기를 달았다. 10년여의 지옥 같은 병치레 끝에 아내는 서른여덟의 나이로 세상을 등졌다.

"아내는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석면 때문에 죽는 건지도 몰랐습니다."

2007년 박 씨 역시 석면폐증 진단을 받았다. 

부산일보 인터랙티브 뉴스 석면 쇼크 부산이 아프다 기사보기 => http://shock.busan.com


■석면도시 

부산은 '석면도시'다. 전국의 옛 석면공장 40여 곳 중 30곳 이상, 특히 분진이 많이 발생하는 제일화학 같은 석면방직공장은 14곳 중 9곳이 부산에 있었다. 

석면포 외에도 천장재(석면텍스)와 지붕재(슬레이트), 개스킷과 브레이크 라이닝 등 각종 석면제품을 생산하는 공장들이 1970년대 잇따라 부산에 둥지를 틀었다가 199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하나둘 문을 닫았다.  

현재까지 부산시에서 파악하고 있는 석면공장은 29곳. 이 가운데 주소지는 같은데 이름만 바뀐 업체들을 제외하면 22곳이 남는다. 

2014년 6월 현재, 제일화학 주변에 살다 석면질환 판정을 받은 주민피해는 32명. 이 가운데 9명은 이미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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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신초등학교와 길 하나 사이를 두고 있던 제일화학 자리에는 현재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부산지역 석면공장 중 두 번째로 규모가 컸던 동양S&G(사상구 덕포동)의 주민피해자는 7명, 한일화학(사하구 장림동)도 5명이나 된다. 이외에도 성진물산(6명), 유니온공업(3명), 아주화학기계공업사(2명), 성진화학공업사(2명), 동기브레이크(1명), 한상석면(1명) 등 부산 전역에서 석면 주민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시작일 뿐 

국내에서 석면공장은 사라졌다. 석면제품 사용도 금지됐다. 하지만 여전히 석면은 현재진행형 문제다.

석면질환의 특징은 짧게는 10년, 길게는 50년 뒤에 발병한다는 점이다. 석면폐증의 잠복기는 15~40년, 악성중피종은 20~35년이다. 

국내에서 석면이 광범위하게 사용된 시기는 1970~1990년대. 1990년을 기준으로 40년 뒤 석면질환이 최고조에 이른다고 예상하면 2030년 '석면질환 대발생기'가 도래할 것이다.

우려는 점점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최근 몇 년 사이 석면질환자 발생수가 가파르게 상승하는 조짐이 보인다. 부산시와 환경부는 석면공장 주변 주민들을 대상으로 무료로 건강영향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2012년 부산시민 1천507명이 조사를 받았고 이 중 5명(0.3%)이 석면질환 판정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검진자 1천307명 중 32명(2.4%)이 석면질환자로 드러났다. 1년 새 숫자로는 6배, 비율로는 8배나 늘어났다. '불편한 진실'은 부정한다고 감춰지지 않는다. 이제 시작이다.

  
■부산 절반 

업체 가동시기에 반경 2㎞ 안에서 6개월 이상 거주하였거나 직장·학교 등에 재직 또는 재학했던 사람. 2012년 5월 제정된 '부산시 석면 관련 건강영향조사 지원에 관한 조례' 제7조에 규정한 지원 대상이다. 

그렇다면 이 조례 기준에 따라 건강영향조사를 받아야 하는 '잠재적 피해자(석면노출 인구)'는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부산시에 문의한 결과 '파악 불가'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취재팀은 직접 대상자 수를 알아보기로 했다. 국내에서 석면 사용이 최정점이었던 시기인 1995년도 통계청 인구총조사 동별 인구 자료를 바탕으로 했다. 지도 위에 석면공장을 점으로 찍고 반경 2㎞의 원을 그렸다. 원 안에 어떤 동이 몇 %나 포함되는지를 계산해 비율에 맞게 인구를 추산했다. 여기에 공장별로 중첩되는 지역의 인구는 다시 뺐다. 

최종 집계된 숫자는 162만 5천445명. 무려 160만 명이 넘는다는 계산이 나왔다. 이 또한 유동인구를 뺀 보수적인 수치다. 2010년 기준 부산 인구는 341만 5천 명(통계청 인구총조사). 부산시민 2명 중 1명은 석면에 노출된 적이 있는 '잠재적 피해자'라는 결론이 나온다. 석면은 나와 당신 가족의 문제다.

 취재=박태우·김경희·이대진·박진숙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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