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가습기 살균제 악몽... '모르쇠' 일관한 SK케미칼의 도덕적 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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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가습기 살균제 악몽... '모르쇠' 일관한 SK케미칼의 도덕적 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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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경제=윤성균 기자]검찰이 지난 15일 SK케미칼, 애경산업, 이마트를 압수수색하며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의 수사재개를 알렸다. 그동안 피해사실이 인정돼 법적인 처벌을 받은 옥시와는 달리, 유해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과조차 거부했던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이 이번에는 수사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앞서 SK케미칼과 애경산업에 대한 고발이 수차례 있었지만, 이들이 제조‧유통한 ‘가습기메이트’의 유해성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소가 중지된 바 있다. 이번에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된 것은 환경부가 지난해 국정조사를 통해 ‘가습기메이트’의 유해성이 입증됐다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 이후 환경부가 검찰에 관련 자료를 넘기면서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에서 최초로 ‘가습기살균제’라는 이름으로 판매되기 시작한 가습기메이트. 그러나 정작 가습기살균제가 폐 질환의 원인으로 지목돼 관련 기업이 지탄 받을 때 가습기살균제의 원료와 제품을 만든 SK케미칼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어떤 사과도 하지 않았다. 피해자의 사과 요청에 “유해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그러나 가습기메이트의 유해성이 입증된 지금, 과연 SK케미칼이 계속 책임을 회피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검찰, SK케미칼‧애경‧이마트 본격 압수수색

환경부, ‘가습기메이트’의 인체 유해성 확인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는 지난 15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과 관련 SK케미칼, 애경산업, 이마트를 압수수색했다. 검사와 수사관들은 이들 업체의 제품 제조와 판매, 유통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

이들이 유해성이 입증된 옥시 제품과는 다른 원료인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과 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을 사용한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유통한 혐의를 받고 있다. SK케미칼이 원료를 개발해 가습기살균제인 ‘가습기 메이트’를 만들었고, 애경산업은 2002년부터 2011년까지 해당 제품을 판매했다. 이마트는 이 제품을 납품받아 ‘이마트 가습기 살균제’라는 이름으로 판매했다.

이번 수사는 지난해 11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 모임인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가습기넷)가 SK케미칼, 애경산업 등의 전‧현직 임원 14명에 대해 업무상과실‧중과실 치사상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데 따른 것이다.

피해자들은 이에 앞서 지난 2016년에도 검찰에 동일 기업들을 고발한 바 있지만, 증거불충분 등으로 기소 중지됐다. 가습기메이트에 사용된 원료의 유해성이 명확히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검찰이 이번에 압수수색 등 본격적인 수사에 나선 것은 환경부가 지난해 11월 이들 기업이 만든 살균제의 유해성을 입증하는 연구 결과를 검찰에 제출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환경부, ‘가습기메이트’ 유해성 확인…“관련 기업 책임져야”

SK케미칼이 제조한 가습기메이트의 유해성이 재조명된 것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장에서였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환경부 국정감사에 출석한 박천규 환경부 차관은 SK케미칼과 애경의 책임을 묻는 더불어민주당 전현희 의원의 질의에 “환경부는 SK케미칼과 애경이 제조‧판매한 CMIT‧MIT 함유 제품 단독 사용자에게서도 옥시 제품에 쓰인 독성물질인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로 인한 피해자와 동일한 질환이 나타난 것을 확인했다”며 “해당 기업 제품 사용으로 인한 ‘폐 손상’ 피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부가 피해를 공식 인정한 만큼 SK케미칼과 애경도 그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박 차관은 과거 동물실험에서 CMIT‧MIT의 독성이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실험에 사용된 쥐의 종(種) 특이성으로 인해 확인되지 않은 동물실험 결과가 나온 것으로 보고, 해당 물질의 독성이 사람에게 발생할 수 있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며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가해기업으로부터 피해자들이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역학조사나 인과관계 규명 등 다양한 방면에서 도움을 주겠다”고 밝혔다.

이날 국감장에 증인으로 출석한 홍수종 서울아산병원 교수도 SK케미칼이 제조한 가습기살균제 원료도 ‘전형적인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 손상’을 일으킨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고 증언했다.

이후 환경부는 지난해 11월 넷째 주에 CMIT‧MIT 유해성을 입증한 동물실험 결과를 검찰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시기에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의 재고발도 이루어졌다.

이처럼 정부와 전문가들의 의견이 명확한데도 그동안 SK케미칼에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었던 이유는, 2012년 2월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가 실시한 동물 실험에서 CMIT‧MIT의 흡입 독성을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옥시레킷벤키저(옥시),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이 제조‧유통한 가습기살균제 성분인 PHMG·PGH의 유해성만 입증됐다.

지난 2016년 환경부에서 진행한 동물실험에서도 CMIT‧MIT와 폐 질환 간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찾지 못했다. 검찰로서는 인과관계를 확인할 수 없으니 SK케미칼 등에 대한 수사를 진행할 수 없었다. 피해자들이 폐 질환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지만 이들 기업들은 민형사상 배상 책임에서 완전히 빠진 셈이다.

하지만 원료가 되는 물질의 유해성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해서 SK케미칼 등이 가습기살균제 사태의 책임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가습기메이트가 살균제를 가습기 수조에 직접 첨가한다는 발상을 처음 구현한 제품이라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최초 ‘가습기살균제’ 만들고도 SK케미칼이 처벌 면할 수 있었던 까닭

SK케미칼(당시 유공)은 지난 1994년 11월 가습기메이트를 개발해 세상에 내놨다. 가습기 수조에 소량 넣기만 하면 완전 살균이 가능하다고 광고했다. 인체에 무해하다는 수식어도 붙었다. 가습기를 사용하면서 수조의 세균 번식과 물때 제거를 고민하던 주부들에게 특히 인기 상품이 됐다. 가습기메이트 출시 2년 뒤인 1996년 출시된 옥시의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을 시작으로 관련 제품들이 우후죽순 늘어났다. 30여개 제품들이 2011년까지 매년 약 60만 통 이상 판매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2011년 한 해 동안 임산부들이 잇따라 호흡부전과 폐 손상 등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같은 해 8월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가 가습기살균제를 주요 원인으로 지목하면서 가습기살균제의 실상이 드러나게 된다.


최초 가습기살균제는 가습기메이트였지만 정작 문제가 된 것은 원료로 PHMG를 사용한 옥시와 대형마트의 PB(자체브랜드 제품)제품이었다. 당시 질병관리본부 동물실험에서 PHMG·PGH의 유해성만 입증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PHMG·PGH 역시 제조는 SK케미칼이 담당했다. 가습기메이트 이후 수많은 제품이 탄생했지만, 가습기살균제의 원료가 되는 PHMG와 CMIT‧MIT의 90%는 SK케미칼이 제조해 공급했다. 당시 시중에 판매된 대부분의 가습기살균제가 SK케미칼의 손을 거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SK케미칼 측은 “PHMG를 옥시 등의 제조사가 아닌 중간도매상에게 판매했기 때문에 그 물질이 가습기 살균제 용도로 쓰이는 줄도 전혀 몰랐다”며 “환경부가 2000년 PHMG를 ‘유독물 등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화학물질’로 관보에 개정 고시(관보 14497)한 것을 이유로 PHMG가 흡입독성을 가지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말로 책임을 모면해 왔다.

그러면서 SK케미칼은 가습기메이트에 의한 단 한명의 피해자도 인정하지 않았다. SK케미칼은 “2012년 질병관리본부가 동물실험에서 해당성분의 흡입독성을 확인하지 못했다.

2016년 환경부가 진행한 연구결과도 가습기살균제 유해성분으로 알려진 CMIT‧MIT와 폐 섬유화 연관성 등 위해성을 확인하지 못했다”며 “전문가들이 CMIT‧MIT를 넣은 가습기살균제 제품으로 사망이나 중증 피해가 나오기 힘들다고 밝혔다”고 설명했다. 가습기메이트에 의한 피해사실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CMIT‧MIT가 인체 유해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오면서 분위기는 반전되고 있는 양상이다.


SK케미칼, 가습기살균제 원료 생산하고도 처벌 면한 까닭

분담금만 내면 책임 다한 것?…피해자는 진정한 사과 원해


CMIT‧MIT도 동일한 폐 질환 초래…“예전 실험은 설계 잘못”

정부가 주도한 역학조사로는 CMIT‧MIT의 유해성을 입증하는 데 실패했지만, 가습기살균제의 문제를 인지한 학계에서 연구가 지속되면서 유해성을 입증할 연구결과가 축적됐다. 아울러 과거 실시된 흡입독성시험의 설계가 잘못됐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대구가톨릭대 GLP(비임상시험기관)센터가 2017년 8월 발표한 ‘마우스의 기도 내 점적을 통한 가습기 살균제 CMIT‧MIT와 사망 간의 원인적 연관성에 관한 연구’(김하영‧정용현‧박영철)에 따르면, 임신한 실험 쥐의 기도를 통해 CMIT‧MIT를 주입한 결과 실험쥐의 폐와 전신 혈관계, 태반으로까지 CMIT‧MIT가 이동해 새끼 쥐의 사산에 영향을 미쳤다. 고농도 투입군 중 생존한 어머 쥐가 임신한 26마리 중 14마리가 사산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연구진은 “해당 성분은 미생물을 제외하고 종 차이 없이 동물, 사람 등에게 유해할 수 있는 물질”이라고 설명했다.

연구를 주도한 박영철 대구가톨릭대 GLP센터 교수는 과거 실험의 설계 오류도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키뉴스’ 보도에 따르면, 독성시험은 가이드라인 독성시험과 인과관계를 위한 독성시험으로 나뉘는데, 문제는 과거 진행된 시험이 인과관계를 밝히는 것이 아닌 가이드라인 독성시험으로 설계됐다는 점이다.

박 교수는 “가습기살균제 관련 연구와 시험은 가이드라인 독성시험으로 이뤄졌다. 따라서 기존에 내놓은 자료(과거 실험결과)들을 참고할 수는 있어도 맹신해선 안 된다”며 “인과관계 확인을 위한 새로운 모델을 개발해 독성시험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아산병원 연구팀도 지난해 10월 국제학술지에 2012년 말 무렵 가습기메이트를 사용한 뒤 폐 질환이 시작된 쌍둥이 자매의 병증을 연구한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했다. 연구팀은 이들 자매가 앓는 병증이 전형적인 가습기살균제 폐 질환과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연구를 진행한 홍수종 서울아산병원 환경보건센터 교수도 과거 진행된 동물실험의 오류를 지적했다. 그는 “의학계는 사람의 소견이 동물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사람에게 미칠 독성이 없다고 판단하지 않는다”며 “동물실험은 상당히 일방적 조건의 실험”이라고 말했다.

이는 2012년 질병관리본부에서 실시한 동물실험에서 CMIT‧MIT의 유해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며 책임을 회피한 SK케미칼 측의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2017년 한국환경보건학회지에 실린 논문인 ‘가습기살균제 제품에 표기된 안전보건정보 고찰’(박동욱‧이승희‧임홍규‧배서연‧류승훈‧안종주 등)에서 “가습기 살균제 제품 허가 이전(1994년)에도 외국 문헌에서 CMIT‧MIT는 피부 과민성 질환을 초래하는 것이 잘 알려져 있다.

이뿐만 아니라 천식 등 호흡기 질환을 초래하는 것으로 보고된 바 있었다. 심지어 동물실험에서는 뇌 독성이 있다는 연구결과도 보고되었다”고 지적했다.

책임 없다던 SK케미칼…피해 입증됐으니 사과할까?

환경부 한국환경산업기술연구원에 신청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6246명, 이 중 사망자는 1375명이다. 이들 중 SK케미칼에서 제조한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것으로 집계된 인원은 1362명이며, SK케미칼 제품만을 단독으로 사용한 피해자는 245명이다.

이중 피해사실이 인정돼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는 인원은 10명에 불과하다. CMIT‧MIT 성분의 유해성이 입증되기 전이라 대부분의 신청이 반려됐기 때문이다.

SK케미칼은 자사 제품을 사용하고 피해사실이 인정된 10명에 대해서도 사과하지 않았다. SK케미칼은 ‘피해구제 분담금’을 납부하고 있으니 법적 책임을 다했다는 입장이다.

2017년 8월 환경부와 환경산업기술원이 가습기살균제 제조업체와 원료 제조업체 등에 총 1250억원의 분담금을 부과했고, SK케미칼은 이중 212억8100만원을 부담하고 있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 따르면 SK케미칼은 내년 6월까지 분담금을 완납할 예정이다.

문제는 SK케미칼측이 사과 한 마디조차 안하고 수수방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가습기살균제피해자들이 SK케미칼 등 전‧현직 임원들을 검찰에 재고발하면서 “가습기 살균제 원료로 쓰인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 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 제품의 인체 유해성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검찰, 공정거래위원회 등이 해당 기업들을 수사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들 가해 기업은 피해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은커녕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피해자가 있으면 가해자가 있기 마련이다. 피해자는 지속해서 가해자를 지목 중인데, 가해자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이제 수사가 재개된 마당에 사과하기도 너무 늦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와 관련해 SK케미칼의 입장을 들어보기 위해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했으나, 담당자와 연결되지 않았다.

(사진제공=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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