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의 진실 ⑩] 세월호 사건 이어 또 ‘기레기’ 된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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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의 진실 ⑩] 세월호 사건 이어 또 ‘기레기’ 된 언론

최예용 0 4687

[가습기 살균제의 진실 ⑩] 세월호 사건 이어 또 ‘기레기’ 된 언론

 

안종주, 프레시안 2016년 6월 7일

 

'기레기'. '기자 쓰레기'를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2014년 4월 세월호 사건 때 우리 언론이 보여준, 너무나 어처구니없고 민망한 모습을 지켜본 누리꾼이 참다못해 언론인에게 붙여준 오명이다. 기레기가 다시 부활해 가습기 살균제 사건 보도에 훨훨 날아다니고 있다.

기레기가 날아든 곳은 일부 언론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 해결의 영웅 만들기이다. 언론이 영웅 만들기에 목을 매는 것은 오랜 전통 때문이다. 미국, 유럽 등 외국에서도 종종 벌어지는 일이다. 전쟁 영웅이나 미국 시민을 탈리도마이드 참화로부터 구한 영웅 등 우리는 수많은 영웅들의 모습에 감동을 받고 박수를 보낸다. 언론의 영웅 만들기는 특히 재난이나 위기 발생 때 잘 가동된다.

지난 5월 3일 TV조선은 "'가습기 의인' 홍수종 교수 '집요한 추적으로 원인 밝혔지만…'"이란 인터뷰를 내보냈다. 앵커는 "그래도 이런 분이 있어 살균제 사망 고리를 끊을 수 있었습니다. 서울 아산병원 홍수종 교수인데요, 병명을 알 수 없는 폐 질환의 발병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였다는 사실을 2006년부터 추적해 2011년에 결국 밝혀냈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기자는 홍 교수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수천 명의 목숨 살린 의인이라고 하는데?" 이에 홍 교수는 "그것까지는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 살린 건지 아직도 있는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앞으로 더 많은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은 확실하다는 생각이 듭니다"라고 답한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진실

① '악마의 변호사' 김앤장, 이렇게 움직였다
② 나는 악마와 거래한 '청부 과학자'입니다!
③ 가습기 연쇄 살인범, 환경부 탓에 놓칠 뻔!
④ 가습기 살균제, SK 책임은 없나
⑤ 가습기 연쇄 살인, 일본에서 일어났다면…
⑥ 가습기 연쇄 살인, 왜 한국만 당했나?
⑦ 의사들은 왜 가습기 연쇄 살인을 못 막았나?
⑧ 옥시와 합의를 권한 판사는 누구인가?
⑨ 가습기 살균제, 산자부가 웃는 이유는?
5년간 범인 잡지 못한 의사를 의인으로 둔갑시킨 TV조선, MBN 등

TV조선은 홍수종 교수를 원인 미상 폐 질환의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라고 밝힌 영웅으로 추어올렸다. 홍 교수는 자신이 원인을 밝혀낸 것이 아니라고 확실하게 부인하지 않고 애매한 대답을 했다. 이를 시청한 시청자들은 그가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가습기 살균제 피해의 원인을 진짜로 밝혀낸 것으로 안다. 밝혀낸 사람들은 따로 있는데도 말이다. 

전형적인 기레기 보도다. 졸지에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영웅 또는 의인이 된 의사는 단호하게 자신이 아니라고 밝히지 않는 바람에 다른 언론에 의해 계속 집중 조명을 받는다. 홍수종 교수 영웅 만들기는 이렇게 확대 재생산해 다른 방송으로, 신문으로, 각종 블로그로 퍼져나갔다.

종합 편성 채널 방송인 MBN은 한 술 더 떠 홍 교수가 10년 전, 그러니까 2006년 이번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알아차렸다고 보도했다. 김주하 앵커는 5월 17일 저녁 8시 뉴스에서 홍 교수와 한 인터뷰를 내보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번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10년 전 가장 먼저 알아챈 의사가 있습니다. 눈앞의 환자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죽어갈 때, 이 의사는 전국을 돌며 환자들의 상태를 알리고 의사들의 의견을 모으는데 앞장섰습니다. '가습기 의인'으로 통하는 홍수종 서울아산병원 환경보건센터장을, 조경진 기자가 만나고 왔습니다." 

TV조선이 말한 '가습기 의인'이란 말을 빌려와 홍 교수에게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의인이란 말은 일본 도쿄에서 철로에 떨어진 일본인 승객을 구하려다 숨진 한국 유학생 이수현 씨를 비롯해 '세월호 의인' 등 사회에서 추앙할만한 인물을 추어올릴 때 쓰는 말이다. 하지만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원인 밝혀내기와 관련해서는 아쉽게도 그런 인물이 없다. 의인도 아닌 사람을 억지로 의인으로 만들려고 하는 기레기 언론의 열정(?)이 눈물겹기만 하다. 

신문들도 홍 교수를 영웅으로 만드는 작업에 동참했다. <국민일보>는 5월 7일자 "'옥시 서울대 교수와 진짜 다른 분', 살균제 의심한 의사"란 제목의 기사에서 이렇게 보도했다.

"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과 관련해 옥시 측에 유리한 보고서를 써준 의혹을 받는 서울대와 호서대의 교수와 완전 딴판인 교수가 있다. '옥시 의인'으로 불리는 홍수종(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 호흡기알레르기과) 교수다. 홍수종 교수는 감기처럼 특이 증상 없이 시작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폐가 딱딱하게 굳는 폐 섬유화가 급격하게 진행돼 심한 호흡 곤란을 일으킨 환자들을 자꾸 접한 뒤, 이런 내용을 전국의 의사와 공유했다고 한다. 이후 이상 증상을 추적했고 결국 원인을 규명하는 논문을 2년 전에 발표했다." 

원인 규명은 질병관리본부와 이무송 교수 팀의 공로 

홍수종 교수가 논문을 국제 학술지에 낸 것은 맞지만 원인 규명은 그가 아니라 서울아산병원의 다른 동료들이 해냈다. 예방의학교실 이무송 교수 팀(김화정, 정미란, 유용민)이 역학 조사 끝에 범인을 가습기 살균제로 지목했다. 

홍 교수는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라고 의심한 적도 없다. 그는 어린이에게서 집단 발병한 2006년부터 줄곧 바이러스성 질환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추적하다 결국 범인을 놓친 장본인이다. 그가 진작 가습기 살균제라고 의심을 했더라면 참사를 막을 수도 있었다.

그는 사건 발생 5년이 지나도록 질병관리본부에 정식 역학 조사 의뢰조차 하지 않았다. 보는 시각에 따라 '죄인'(실은 죄인이 아니지만 양식 있는 학자라면 왜 당시 넓은 시각으로 아이들의 집단 사망 원인을 추적하지 못했는가라는 죄의식을 느낄 만하다)일 수도 있는 당사자다.

이 원인 미상 폐질환을 2011년 질병관리본부에 신고한 의사도 소아과 홍 교수가 아니라 원인미상 폐질환을 앓고 있던 임산부를 치료한 최상호, 홍상범, 임채만, 고윤석 교수 팀이었다. 물론 이들도 당시 범인으로 가습기 살균제를 의심하지 않았고 새로운 감염병 유행이 아닌가하고 신고를 했다.

이런 사실은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폐손상조사위원회)가 2015년 4월에 펴낸 <가습기 살균제 건강 피해 사건 백서>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 총괄편집인을 한 내가 분명하게 사건 인지와 이를 밝혀낸 역학 조사 부분을 홍 교수가 아닌 이무송, 고윤석, 홍상범 교수한테서 원고를 받았다. 이들은 질병관리본부한테서 이 사건의 원인을 밝히는 역학 조사를 해달라는 의뢰를 받은 연구진이다.

서울아산병원, 홍수종 교수가 동료의 공 가로채는 파렴치한 되는 것 막아야

이 백서에 '기레기' 언론인들이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의인'이라고 밝힌 홍수종 교수도 원고를 썼다. 그의 글 어디에도 자신이 가습기 살균제를 의심했다거나 원인 미상 폐 질환의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임을 밝혀냈다는 말은 없다. 

언론의 이런 비뚤어진 행태에 대해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장재연 교수(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는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서 '가습기 살균제 원인 규명, 누가 한 것인가?'란 제목의 칼럼을 실어 "언론이 인터넷 검색을 잠깐만 해보아도 진실을 알 수 있는데도 어떻게 이런 왜곡인 가능한지 이해할 수 없다"며 기레기 언론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규명과 관련한 가짜 영웅 만들기는 물론 언론 책임이 크다. 백서 앞부분 몇 페이지만 읽어보아도 알 수 있는 것을 게을러서 읽어보지도 않는 언론인이 수두룩하다는 방증이다.

이와 함께 아쉬운 것은 언론이 허위 사실을 토대로 한 영웅 만들기를 계속하고 있는데도 당사자가 강하게 부인하거나 정정 보도 신청을 내는 등 사실을 바로잡기 위해 적극 노력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아산병원이 보도 자료를 내거나 기자회견을 해서라도 홍 교수가 동료의 공을 가로채는 파렴치한으로 몰리는 것을 막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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