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의 진실 6] 가습기 연쇄 살인, 왜 한국만 당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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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의 진실 6] 가습기 연쇄 살인, 왜 한국만 당했나?

최예용 0 4970

가습기 연쇄 살인, 왜 한국만 당했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진실] 사법부가 나서야 한다 

프레시안 2016 5 23​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책임을 두고 옥시 등 가해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 책임 논란이 본격적으로 일고 있다. 윤성규 환경부 장관은 최근 국회에서 가습기 살균제 제품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은 맞지만 그것은 이를 엄격하게 관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법이 미비했기 때문에 정부의 책임은 없다고 밝힌 뒤 외려 정부 책임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윤성규 환경부 장관이 지난 5월 11일 열린 19대 마지막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이런 점을 분명하게 밝히자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일제히 반발하고 있다.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1심 손해 배상 소송에서도 패소했기 때문에 그의 주장이 완전히 뚱딴지같은 이야기는 아니긴 하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참사에서 책임 발 빼기를 하고 있는 윤 장관과 정부에 일격을 날릴 수 있는 비장의 무기가 있다. 그들이 정부의 면책 사유로 밝힌 제도와 법 미비가 그것이다.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사용했고 희생자 또한 가장 많이 만들어낸 가습기 살균제 성분인 폴리헥사메틸구아니딘(PHMG)인산염은 2000년 5월 20일 국립환경연구원(지금의 국립환경과학원) 고시집에 '유독물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물질'로 등재됐다(관보에 등재된 것은 1997년이다). 또 세퓨 가습기 살균제 제품의 초기 원료로 쓰인 것으로 보는 PGH도 2003년 유독물에 해당하지 않는 물질로 환경부에 등록됐다.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 조사에서 빠트린 CMIT/MIT는 1996년 12월 1일부(국립환경연구원 고시 제96-170호)로 유독물이나 관찰 물질, 취급 제한 물질의 범주가 아니라 기존 화학 물질로 고시되어 법적인 제재나 관리를 받지 않고 유통되기 시작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진실

① '악마의 변호사' 김앤장, 이렇게 움직였다
② 나는 악마와 거래한 '청부 과학자'입니다!
③ 가습기 연쇄 살인범, 환경부 탓에 놓칠 뻔!
가습기 살균제, SK 책임은 없나
⑤ 가습기 연쇄 살인, 일본에서 일어났다면…

윤성규 환경부 장관의 발언에서 찾아낸 살균제 피해 국가 책임

윤성규 환경부 장관은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가습기 살균제를 효과적으로 제제, 관리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미흡했다고 밝힌 것이다. 문제가 된 이들 가습기 살균제 성분은 독성학자나 화학자들이 보기에는 결코 안전성이나 유해성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일반 화학 물질이 아니다. 선진국에서는 유독성 때문에 이미 엄격하게 사용과 용도 제한을 받는 성분이었다. 

정부가 엄격하게 관리해야 할 유해성 물질인데도 이를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를 제때 마련하지 못해 피해가 생겼다면 이는 거의 전적으로 국가 책임이다. 물고 늘어지자면 입법부, 즉 국회의 책임도 일정 있다고 하겠다.

가습기 살균제의 안전성 즉, 위해 예방 조항은 국내 법률 어디에도 명확하게 명시되지 않았다. 사건 발생 원인 당시의 기준으로 보면 환경부. 보건복지부(식품의약품안전청). 지식경제부(지금의 산업통상자원부) 등 정부 어느 부처와 관련 법률에 관련 조항이 없다. 문제를 일으킨 가습기 살균제 성분과 같은 물질에 대해 당시 법률 조항에 흡입 독성을 포함한 독성 시험과 위해성 평가를 사전에 거치도록 돼 있었는데도 정부가 이를 외면했다면 국가의 책임을 확실히 물을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이를 문제 삼기 어려운 형편이다.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는 가습기 내부를 닦아내는 세정제로만 살균제를 사용하지 우리처럼 가습기 살균제 자체를 물에 타서 실내 공기 중으로 뿜어내는 형태로 사용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이들 국가에서는 문제가 된 성분과 관련한 법률 조항이 없었고 흡입 위해 사전 평가, 흡입 독성 평가 등도 아예 할 필요가 없었다. 

일본의 경우 우리가 사용했던 것과 같은 형태의 가습기 살균제(일본의 용어는 제균제)가 일부 시장에서 상품으로 팔리고 있으나 살균제 성분이 대부분 알코올계나 유칼립투스 등 식물 추출액 등이어서 우리의 PHMG, PGH와 바로 연결시키기에는 곤란하다.

가습기 살균제는 미생물, 특히 세균을 죽이거나 번식을 억제하는 능력이 뛰어난 화학 성분이다. 항생제와 항균제, 살균, 살충, 살서제와 제초제 등은 BT 독소(미생물 성분의 천연 살충제) 등 극히 예외를 제외하곤 다른 생물들에게 일정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과학계에서는 상식처럼 통한다. 다시 말해 사람과 동물에 사용하는 항생제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항균제, 항진균제 등은 사람의 피부, 호흡기, 구강 등을 통해 인체에 들어올 경우 그 농도에 따라 영향을 끼칠 수 있으며 심하면 생명까지 앗아갈 수 있다는 게 학계에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기업들이 모두 제품에 일체의 성분 표시를 하지 않고 어린이에게도 안전하다는 문구를 넣어 전문가나 정부 모두 이 성분이 인체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 매우 특수한 성분인 것으로 알고 위해성에 대해 오랫동안 전혀 의심을 하지 않아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국가의 책임을 면제할 수 있는 이유가 결코 될 수는 없다.

상품(제조물) 불량, 식중독 사고, 각종 재난과 사건으로 인명 피해가 발생할 때마다 물론 국가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유해성이 알려진 뒤에도 국가가 예방 조치나 관련 제도 정비 등을 소홀히 했다면 이는 분명 국가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요건이 된다.

일본, 석면 안전 관리 제도 미비로 생긴 석면 피해자 국가 책임 인정

2014년 일본에서는 지방법원에 이어 대법원(최고재판소)이 오사카 센난 지역 석면 방직 공장에서 일했던 재일동포를 포함한 노동자들의 석면 질환 피해에 대해 국가 책임을 인정했다. 석면의 위해성이 국제적으로 1930년대(석면폐증)와 1960년대(악성중피종, 폐암 등 석면암)에 이미 알려졌는데도 일본 정부가 1970년대 중반까지 공장의 배기 장치 의무화 등 관련 예방 조치를 할 있는 법과 제도 마련에 소홀히 한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석면의 위험성이 국제적으로 알려진 직후 제때 예방 조치를 했더라면 노동자들의 석면 노출과 석면 피해를 충분히 막을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으므로 국가 책임이 인정된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1970년대 중반 이후 석면 방직 공장에 배기 장치를 의무화하고 난 뒤 석면에 노출돼 발생한 석면 질환자에 대해서는 회사의 책임을 물었지만 국가 책임은 묻지 않았다. 

제도 미비를 이유로 국가 책임을 인정한 일본 석면 판결과 살균제라는 제품이 지닌 근본적인 위해성과 등을 고려해볼 때 우리나라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에서도 사법부가 국가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논리가 매우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금까지 생활환경용품이나 환경 관련 건강 피해와 관련해 우리나라에서 국가의 책임을 물은 판결은 없다. 2009년 터져 나온 베이비파우더 석면 탤크 사건과 환경성 석면 피해, 시멘트 공장 주변 주민들의 건강 피해에 대해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모두 패소했다. 

우리나라 헌법 34조 6항은 분명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만약 정부가 이런 헌법 조항을 제대로 실천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응당 법의 수호자인 사법부가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재해가 자연적인 것이든, 인위적인 것이든 국가 또는 정부(중앙 정부, 지방 정부) 책임을 물은 사례는 매우 드물다. 

'서울 우면산 산사태'는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인명과 재산 피해를 입은 주민들이 서초구와 서울시, 국가를 낸 손해 배상 청구 소송에서 사법부는 국가와 서울시의 예방 조치 소홀에 의한 인재가 아니라고 판결했다. 매우 좁은 범위에서 기초자치단체인 서초구의 책임만 물은 것이다. 

과거 판례가 없다고 해서 국가의 책임을 영원히 물을 수 없거나 그 가능성이 낮은 것을 결코 아니다. 사법부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시민의 편에 얼마나 전향적으로 서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일본의 사법부가 내린 결정을 한국 사법부도 내리지 못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이제 그 때가 무르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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