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의 진실3] 가습기 연쇄 살인범, 환경부 탓에 놓칠 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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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의 진실3] 가습기 연쇄 살인범, 환경부 탓에 놓칠 뻔

최예용 0 4839

가습기 연쇄 살인범, 환경부 탓에 놓칠 뻔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진실 ③] 환경부 이기주의  

프레시낭 2016 5 ​16

해마다 8월 31일이 되면 국회에서 가습기 살균제 사망자 추모 대회를 연다. 올해도 그럴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 모임이 환경보건시민센터와 함께 2012년부터 이날 추모 대회를 여는 것은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가 2011년 8월 31일 아이들과 임산부를 중심으로 발생하던 원인 미상 폐 손상을 일으킨 사실상의 범인으로 가습기 살균제를 지목하는 기자회견을 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경부와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 간 해묵은 갈등 때문에 가습기 살균제 재앙의 원인을 2011년에도 밝혀내지 못할 뻔 했던 사실이 이종구 전 질병관리본부장(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전 세계보건기구(WHO) 메르스 합동평가단 공동단장)의 증언으로 드러났다.

2000년대 후반부터 간헐적으로 원인을 알 수 없는 폐 손상 사망자 등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가 나왔지만 의사, 정부 당국 누구도 이를 잘 알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고 있었다. 2006년에 서울아산병원, 서울대병원 등 몇몇 대학병원 소아중환자실에 호흡이 급격히 나빠지는 갓난아기와 아이들이 3~4명씩 거의 같은 시기에 입원했다. 의료진은 바이러스나 세균에 의한 질환을 의심하고 조사했으나 허탕을 치고 말았다. 2006년 초 위중한 상태로 병원을 찾은 어린이 환자만 15명이나 됐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진실

① '악마의 변호사' 김앤장, 이렇게 움직였다
② 나는 악마와 거래한 '청부 과학자'입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범인은 초범인데도 전과자에만 초점 맞춰

서울아산병원 소아과 홍수종 교수 등은 2006년 집단 발생했던 급성간질성폐렴 어린이 환자 15례와 전국 현황을 2008년 3월과 2009년 4월에 각각 <대한소아과학회지>에 논문으로 보고했다. 2009년과 2010년에도 환자는 계속해서 발생했다. 의사들은 환자의 폐 조직 검사도 했지만 끝내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다. 과거 말썽을 부린 적이 있는 병원성 바이러스나 세균 등에만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범인은 전과자 출신이 아니라 초범이었는데도 전과자만 뒤지니 초범이 잡힐 리 없었던 것이다. 

2011년 2월 말~4월초에는 서울아산병원에서 임신부와 출산 직후의 산모 4명이 아이들이 겪었던 것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며 죽음과 싸웠다. 한 젊은 여성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기를 출산했으나 호흡 기능이 갑자기 떨어져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기쁨도 누리지 못한 채 병원에 응급 입원해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몸의 피를 밖으로 빼내 기계 장치에서 산소를 공급한 뒤 몸속으로 집어넣는 최첨단 에크모(ECMO) 장치의 도움을 받는 치료까지 받았으나 그녀는 끝내 숨지고 말았다. 의료진은 이에 당황하고 침울했다.

4월 19일 서울아산병원 의료진은 다른 병원에도 유사한 환자가 있는지 알아보았다. 놀랍게도 4곳의 병원에서 임신부 또는 출산 직후 여성들이 서울아산병원 환자들과 비슷한 증상으로 사경을 해매고 있었다. 전국에서 한둘이 아니라 집단적으로 뭔지 심상찮은 일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났다.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치명적 호흡기 감염병이면 어떻게 하나"하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4월 25일 감염병 예방, 방역, 관리 업무를 맡은 질병관리본부에 부랴부랴 전화로 신고를 했다. 질병관리본부 역학조사관은 다음날 바로 현장 조사를 벌였다. 그리고 원인을 알 수 없는 치명적 중증 폐질환이 어린이와 임산부를 중심으로 전국 곳곳에서 유행하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급히 환자에게서 검체를 확보해 질병관리본부가 확보하고 있는 각종 호흡기 감염병 바이러스와 세균 항체-항원에 반응을 시켜보았다. 전혀 반응이 없었다. 적어도 과거 유행한 적이 있는 호흡기 감염병은 아니라는 것이다. 

환경성 질환을 환경부가 아닌 질병관리본부가 밝혀낸 까닭

당시 사령탑은 이종구 질병관리본부장이었다. 2003년 세계적인 사스 대유행 때 국립인천국제공항검역소장으로 있으면서 온몸으로 사스의 국내 유입을 성공적으로 막아냈던 그는 질병관리본부장을 두 번씩이나 연임하며 최장수 본부장 자리를 지키다 5월 31일 퇴임할 예정이었다. 

그는 직원들에게 감염병이 아니더라도 원인을 밝혀낼 때까지 역학 조사를 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직원들의 생각은 달랐다. 감염병이 아니면 환경성 질환일 가능성이 높은데 환경부가 해야 할 일을 우리가 해야 할 까닭이 있느냐며 난색을 드러냈다.

질병관리본부 간부들이 이런 태도를 보인 것은 환경성 질환과 관련해 환경부와 겪은 마찰 때문이었다. 특히 2007년 12월 충청남도 태안 앞바다에서 발생한 허베이스피리트 호 기름 유출 사고 직후 피해 지역 주민에 대한 건강 영향 조사를 벌이면서 두 기관은 대립한 적이 있다. 당시 환경부와 질병관리본부의 갈등에 대해서는 태안군이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불거지기 2개월여 전인 2011년 3월에 펴낸 <허베이 스피리트 호 유류 유출 사고 환경 보건 백서>에서 엿볼 수 있다. 

"당시 정부는 환경부와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가 기름 유출 사고 건강 영향 조사와 관련하여 일부 책임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사 방법과 관련하여 질병관리본부에서는 검진 위주의 방법론을 제시한 반면 환경부는 환경 노출 평가 등 환경정책기본법과 환경보건법이 규정하고 있는 건강 피해에 대한 영향 조사 등의 방법론이 제시되었다. (…) 결국 이 논란은 기획재정부의 예산 심의에서 환경부의 집행 예산으로 확정되면서 환경부가 기름 유출 사고 건강 영향 조사를 추진하는 책임 부처가 되면서 마무리 되었다." (94~95쪽)

환경성 질환과 관련해 환경부가 2009년 환경보건정책관 직제를 만들고 그 밑에 몇몇 전담과를 두면서부터 질병관리본부와 사이는 더욱 좋지 않았다. 환경부에는 환경 질환을 제대로 다룰만한 전문 의료 인력이 없는데다 역학 조사를 직접 하거나 역학 조사를 관리할 능력이 있는 인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질병관리본부의 생각이었다.

환경부, 태안 기름 유출 사고 때도 초기 주민 건강 영향 조사 늑장

허베이 스피리트 호 기름 유출 사건처럼 환경 유해 물질 노출이 생길 때는 초기 건강 피해 조사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당시 어른, 어린이, 자원봉사자, 군인 등 지역 주민과 기름 제거 자원, 동원 인력에 대해서는 1주일이 지나도록 건강 영향을 알 수 있는 생체 시료조차 확보하지 못했으며 3주 후부터 건강 영향 조사가 시작됐다. 

이종구 본부장은 "환경부는 역학 조사와 그 관리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오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우리가 끝까지 원인을 밝혀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감염성 질환이 아니더라도 동물 실험을 비롯해 환경 요인까지 포함해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며 범인 찾기를 계속했다고 밝혔다. 

2006년이나 2009년, 아니 그 이전에라도 의사들과 정부가 끈질긴 범인 추적에 들어가 폐 손상을 일으킨 범인을 잡았더라면 원통하게 숨진 많은 희생자들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나마 뒤늦게라도 질병관리본부가 범인을 잡은 것은 불행 중 다행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최근 몇 년간 환경부장관은 가습기 살균제 재앙과 관련해 살균제의 유해성을 시판 전에 알아낼 수 있는 능력이 인간에게는 없었다거나 살균제 피해가 환경성 질환이 아니며 피해 배상은 피해자들이 가습기 살균제 제조, 판매 업체와 개별 소송을 통해 받을 수밖에 없다고 누누이 강조한 바 있다. 이런 발언과 행태를 보면서 이 본부장의 결단이 아니었더라면 범인은 더 오랫동안 활개를 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2011년 당시 질병관리본부가 환경 요인에 의한 환경성 질환은 자신들의 관장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더 이상 역학 조사를 하지 않겠다고 버텼다면 어떻게 됐을까? 역사에서 가정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2011년 8월보다는 범인 체포 시기가 훨씬 늦추어지지 않았을까. 환경부와 질병관리본부 간 알력으로 하마터면 범인을 놓치거나 검거 시기가 한참 뒤로 미루어졌을 것이란 생각을 하면 정말 아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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