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이 건강해야25-2] 이 법 있었다면 달랐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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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이 건강해야25-2] 이 법 있었다면 달랐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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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참사... 이 법 있었다면 달랐을 것

환경이 건강해야 몸도 건강하다25-가습기살균제⑥-2] 드러나지 않았던 문제들

오마이뉴스 2014 11 7

강찬호 기자;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 공동대표

'의료비 지원 판정등급을 좀 더 세분화 해달라'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요구는 지난 환경부 국정감사에서도 거론됐다. 지난 4일 오후 2시 국회도서관에서 진행된 '가습기살균제 사건의 원인, 대책 그리고 교훈'이라는 토론회에서도 재차 논의되었다. 특히 이날 토론회에서는 그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문제가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성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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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일 오후 2시 국회도서관에서 진행된 '가습기살균제 사건의 원인, 대책 그리고 교훈'이라는 토론회.
ⓒ 강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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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참사, 이 법 있었다면 달랐을 것

성균관대 약학대학 김용화 교수는 주제발표를 통해 지난 3년 동안의 경과에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점들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고, 찾은 결과를 공개했다. 가습기 살균제 독성에 대해 충분하게 예견할 수 있었고, 했어야만 했음에도 그러지 못한 원인이 무엇인지 정말 궁금하다며, 안타까워했다.

해당 물질에 대해 외국의 경우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 국내에서는 왜 규제의 공백이 생긴 것인지 그리고 규제가 있었다면 그 독성은 당연히 규제될 수밖에 없는 물질이었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현행법상 정부나 기업이 법을 위반한 것은 아닌 것 같다고 판단했다.

과장 광고는 예외이다. 그렇다면 문제가 없다는 것일까. 아니었다. 김 교수는 옥시제품의 주원료인 피에이치엠지(PHMG)와 세퓨 제품에 사용된 피지에이치(PGH)의 독성 자료가 제출되지 않았다며, 왜 그 자료가 없는지 의문을 품았다. 독성자료 없이 해당 물질을 사용한 제품이 시장에서 사용된 경위를 물었다.

김 교수는 미국의 독성화학물질제도(아래 TSCA)와도 비교했다. 이 제도는 1977년 시행됐고, 1979년 이전 사용 물질은 제외했다. 한국의 경우, 1991년에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을 시행했고, 1991년 2월 2일 이전 국내 사용 물질을 제외했다. 피에이치엠지(PHMG)는 1997년 기존 물질로 고시돼 제외됐다. TSCA는 '위해성 평가'를 통해 독성, 노출 등 모든 자료를 요구한 반면, 국내 화학물질관리법은 유독물질 지정에 필요한 '유해성 평가'만 요구했다.

즉, PHMG, PGH도 '유해성 평가' 대상이어서 급성흡입 자료제출이 필요하지 않았다. 국내 규제 제도의 허점이다. 규제가 느슨한 것이다. 미국 TSCA는 1976년 법 제정 당시 새로운 용도의 경우 위해성 재평가를 실시하도록 했다. 반면 국내 유해화학물질관리법에는 용도변경시 위해성 재평가 조항이 없었다. PHMG, PGH가 흡입으로 용도를 변경해도 규제되지 않은 것이다. 규제의 공백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고 김 교수는 지적한다.

미국 TSCA는 1984년 고분자물질을 면제하면서 '양이온성 고분자 물질'은 면제에서 '예외'로 했다. 반면 국내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은 1997년 고분자 물질 시험성적서 제출을 생략했다. PHMG가 여기에 해당된다. 2005년 고분자물질 유해성 심사를 면제했고, PGH가 여기에 해당됐다. 즉 PHMG, PGH는 자료제출, 심사 면제 물질이었다. 98년 옥시싹싹이 출시되었고, 2009년 세푸 가습기살균제 제품이 출시되었다. 면제 시점 직후 출시된 것이다.

1991년 시행된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이 미국 TSCA 수준으로 제정됐더라면,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일어났을 것인가라는 안타까운 반문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김 교수는 미국처럼 위해성 평가가 시행됐더라면 PHMG, PGH는 당연히 개발 및 판매가 될 수 없을 정도로 위해도계수가 높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즉 위해도계수 1을 기준으로 PHMG는 11,000이고 PGH는 43,600으로 고독성 물질이라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또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말했다. 미국 TSCA가 양이온성 고분자를 왜 면제의 '예외'로 두게 됐는지를 살폈는데, 이 부류의 물질들이 물고기나 수계생물에 고독성이었기 때문에 생태계 보호차원에서 면제의 예외를 두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즉 미국에서는 생태계를 보호하고자 한 규제가 결국 사람 목숨을 살린 것이고, 우리나라는 엄청난 피해를 낳게 된 것이다.

반면 후발주자인 호주의 사례는 달랐다. 호주는 지난1990년 산업화학물질등록및평가법을 시행했고, 1993년 시행령에 양이온성 고분자 면제 '예외' 조항을 시작했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 TSCA와 같은 수준으로 도입한 것이다.

김 교수의 질문과 답 찾기는 여기까지 퍼즐을 맞췄다. 그러나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남았다. 1984년 미국이 면제의 예외로 규정한 양이온성 고분자물질(PHMG, PGH)에 대해 왜 한국은 '예외'로 두지 않았느냐에 대한 물음이다.

국내법으로 규제하기에는 과학적 기술능력이 부족했던 것인지, 아니면 국내기업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국내법은 왜 고분자물질에 대한 규제가 아닌 면제가 늘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남겼다.

또한 국내 제조물책임법과 관련해 당시 과학기술수준으로는 제조물의 결함을 알 수 없을 경우 면책하는 조항은 모호한 측면이 있다며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가습기살균제 사건 이후 제정된 화학물질등록및평가법(화평법)도 용도 변경에 대한 규제와 고분자물질 면제의 예외에 대한 세부사항에 대해 미국 TSCA 수준으로 보완해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칠 것인지, 아니면 소를 더 잃어야 하는 것인지를 다시 물어야 한다고 김 교수는 지적했다.

김 교수의 주제발표에 이어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피해대책을 주제로 발표했다. 최 소장은 개별 소송 방식이 아닌 '피해 기금'을 조성해 집단적으로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피해대상자와 질환범위를 확대해야 하고, 피해자 발굴에 대해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야 한다고 요구했다.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사과를 않는 가해 기업에 대해 '징벌적 처벌제도'를 도입해 엄벌해야 하며, 호흡기 노출 가능 제품에 대해 모두 흡입 독성 테스트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환경부 "3, 4등급 의료비 지원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이어 안종주 보건학 박사는 환경보건시민센터가 실시한 100종의 스프레이 생활제품의 위험도 조사 결과를 발표했고, 조사 결과에 따른 후속조치가 취해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스프레이 제품의 위해성 평가를 통해 안전허가를 받은 뒤 판매를 하도록 안전제도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스프레이 제품에 대한 건강피해신고를 생활화해서 기존 제품과 신규 제품에 대한 상시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피해사례를 점검하고 특별조사를 강화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토론자로 참여한 홍상범 울산대 의대 교수는 폐암과 가습기살균제 피해 유형은 뚜렷하게 구분되는 양상이었다며, 가습기살균제 피해는 독특한 임상 소견을 가진다고 발표했다. 중증이던 경증이던 모든 피해 유형에 대해 조사한 것이며, 경증 피해의 경우도 임상의 소견은 판단이 된다고 말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태아의 피해나 폐 손상 이외 다른 장기, 즉 심장의 피해 등에 대해서도 조사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호중 환경부 환경보건정책과장은 신규피해접수 연장 방안에 대해 전문가 등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년도에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의료비 예산을 25억 원 정도 책정할 예정이고 부족할 경우 다른 방안을 통해 조치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간병비 등은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어 애로사항이 있다며 난색을 표시했다. 3등급 지원 요구에 대해서는 건강모니터링은 가능하지만 의료비 지원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답변했다.

폐질환 이외의 질환에 대한 피해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판단이 필요하고 관련 절차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새롭게 등급을 세분화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난색을 표시했다. 피해자 장기 모니터링을 위해 보건센터로 의료기관을 추가로 1곳을 더 지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피해자의 정신적 피해에 대해서는 전문가 의견을 통해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기금조성에 대해서는 검토하지 않았지만, 옥시기부금을 포함해 검토하겠다고 답변했다.

안종주 박사는 환경부의 답변에 대해 80억여 원을 불용처리는 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적극적인 피해 구제에 나서야 한다고 요구했다. 80년대 원진레이온 피해구제 사건의 경우 산업의학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의 강력한 저항으로 피해구제 폭을 확대할 수 있었다며, 환경부가 자세를 전환해 피해자 입장에 서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는 가습기살균제피해자및가족모임 2기 공동대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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