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이 건강해야25-1]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축소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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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이 건강해야25-1]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축소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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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축소하기...지원금 80억 반납 '웬 말'

[환경이 건강해야 몸도 건강하다25-가습기살균제⑥-1] 108억 중 5분의1만 집행

오마이뉴스 2014 11 7

강찬호 기자;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 공동대표

가습기살균제 피해로 인한 사망사건 피해자는 144명, 폐 이식을 한 사례는 10건, 생존환자는 500여 명, 연간 가습기살균제 사용자는 800만 명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사건이 외부로 알려진 것은 지난 2011년이다. 그 해 8월 31일 정부는 독성실험을 통해 피해 원인 물질을 '가습기살균제'로 지목했다. 만 3년이 흘렀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해결된 것은 무엇이고, 남은 과제는 또 무엇일까.

혹자는 말한다. 가습기살균제는 세월호 참사를 닮았다고. 관련 분야 전문가에 따르면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전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바이오사이드(생물에게 있어 유해한 화학물질) 참사 사건이다. 그런데도 지난 정부에서는 가습기살균제 피해 책임을 부처 간에 떠넘기기로 일관하며 시간을 흘려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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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인죄로 형사고발" 8월 26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가족들이 정부와 15개 업체를 대상으로 서울중앙지법검찰청에 살인죄로 형사고발했다.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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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이 바뀌면서 정부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에 대해 의료비를 지원하기로 하고 올해부터 지원하고 있다. 가해기업은 아직까지 단 한 마디 사과가 없다. 정부도 사과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사건'이라고 입을 모은다. 진상규명과 그에 따른 책임자 처벌도 미궁이다.

그러나 피해자들 생각은 다르다. 정부도 책임이 있고, 가해기업도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기업이 돈벌이를 했으니까. 정부의 규제 완화, 관리 공백의 흔적이 목격되니까. 하기에 피해자들은 가습기살균제 피해도 안전불감증이 불러온 참사이며, 그 사건의 대응과 처리 과정이 세월호와 닮았다고 하는 것이다.

의료비 지원 나선 정부... 가습기살균제 문제는 해결됐을까?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고통을 감내하고 견디고 있다. 처음에는 원인도 몰랐다. 의사도 몰랐고, 환자도, 보호자도 몰랐다. 가습기살균제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 대다수가 '원인미상 간질성 폐질환'이었다. 속수무책 죽어가는 환자를 지켜보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그만큼 무서운 질환이기도 하다. 이 제품이 처음 제조된 것은 1994년이다. 많게는 800만 명이 사용했다는 보고다.

사람들이 이 제품을 사용하는 유형은 다양하다. 노출 정도 등 사용환경에 따라 끼치는 영향도 다 다르다. 사용자의 면역체계에 따른 반응도 다르다. 주로 약자인 유아나 임산부, 노약자의 피해가 컸다. 가습기에 넣은 살균제 성분이 분무되면서 미세입자가 폐포 세기관지에 이르러 치명적인 영향을 끼쳤다. 급성호흡곤란으로 인한 사망, 폐 섬유화 피해가 이 질환의 결과들이다.

생존했어도 폐를 사용할 수 없어 이식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관련기사 :
가습기살균제 때문에...온몸이 이렇게 망가졌어요). 사망자는 말할 것도 없고, 중증 폐질환을 앓아야 하는 환자 본인의 고통 그리고 가족들이 겪어야 할 피해들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자신의 손으로 아이를 혹은 사랑하는 아내를 죽게 만들었다는 자괴감은 이들의 또 다른 트라우마이다.

피해자와 가족들 한 명 한 명의 속사정을 거론하는 것은 생략하자. 고맙게도 이미 몇몇 언론에서 이들의 절실하고 절절한 상황이 보도된 바 있다. 세월은 망각을 낳는다. 피해 참상이 드러나고,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대중들은 관심을 거둔다. 불편한 진실을 오랫동안 지켜보고 싶지 않아서다. 그런 심리는 해당 사안이 쉽게 해결됐을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2011년을 전후로 언론매체를 통해 종종 다뤄져 왔다. 대중들은 안타까운 시선으로 이 문제를 지켜봤다. 그리고 원인 물질이 '가습기살균제'임이 밝혀지고, 정부의 의료비 지원 소식이 보도되면서 국민들은 이 문제가 잘 해결된 것으로 간주해 버렸다. 진짜 그럴까?

앞서 언급한대로 진상규명과 책임자 규명은 지금까지 없다. 따라서 처벌도 없다. 정부의 의료비 지원은 또 어떤가. 정부는 올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의료비 본 예산으로 108억 원을 세웠다. 이 중 5분의 1정도만 집행하고, 나머지는 불용처리해 반납될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들은 당연히 분노하고 있다. 환경보건시민센터와 질병관리본부 등에 접수된 피해자 규모는 600~700명에 이른다. 지난 3월에 1차 심사때 361명이 피해자로 접수했다.

정부는 접수된 피해자들을 네 개 등급으로 나눠 1, 2등급 대상자 168명에 대해서만 의료비를 지원했다. 나머지 3, 4등급은 제외됐다(지난 3월 1차로 판정받은 4단계는 '①가능성 확실 ②가능성 높음 ③가능성 희박④가능성 없음'이다). 정부는 당초 예산 추계가 잘못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피해자 규모가 당초 예상보다 줄었다는 것이다. 내년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의료비 예산도 25억 원 이내로 책정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피해자가 줄어든 게 아니다. 정부의 지급기준 범위 내에 들어가는 피해자 규모가 줄어든 것뿐이다. 당연히 피해자들은 정부의 피해판정 방식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3, 4등급에서 억울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부는 전문가들로 판정위를 구성해 임상적 판단과 사용 환경을 조사한 환경적 판단을 갖고서 판정했다.

이 중에서 결정적인 것은 '임상적' 판단이다. 즉, 의료 전문가들이 뚜렷한 양상으로 인정할 만하다는 임상적 소견을 일차적 판단 근거로 삼았다. 따라서 여러 사정으로 의료 자료를 제출할 수 없는 이들은 판정에 불리할 수밖에 없다. 제출했다 하더라도 소견이 뚜렷하지 않으면 제외되었다.

의사의 '임상적' 판단으로 3, 4등급 피해자는 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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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습기살균제에 하늘로 떠난 어린천사 지난달 28일, 서울역 앞 계단에 전국에서 도착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의 유품이 전시됐다.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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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이런 경우다. 부인이 사망했는데, 가습기살균제에 노출되기 전 다른 질환을 앓고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살균제를 사용했고, 이후 사망했다. 그런데 사망 원인으로 다른 원인이 지목됐다. 상식적으로는 다른 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다면 그 피해 정도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판정은 3등급을 받아 의료비 지원에서 제외되었다. 이는 현재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모임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최주완씨의 사례이기도 하다.

권민정씨의 사례는 더욱 안타깝다. 2005년 둘째 아이 출산을 50일 남겨두고 아이를 포기해야 했다. 태아의 폐 이상이라는 의사 소견이었다. 이후 권씨는 다시 임신했고, 둘째 아이를 잃은 아픔에 무리를 해서 아이를 출산했다. 그러나 그 아이도 인공호흡기를 끼고 사망했다. 원인을 몰랐던 엄마는 그저 가슴만 치다, 지난 2011년 정부가 '가습기살균제'의 독성 물질을 발표하면서 이유를 알게 됐다. 가습기 살균제 사용으로 어이없게 두 아이를 잃은 권씨의 판정등급은 4등급이다.

가습기살균제는 한 가족이 사용했어도 가족 안에서 피해 유형이 다르게 나타난다. 앞서 노출 정도, 면역체계 등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결국 가족 안에서도 유사한 노출 환경에서 피해를 입었지만, 결과적으로 피해자 등급이나 규정이 달라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고,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다. 같이 사용했는데 누구는 피해자이고 누구는 아니라니. 위험 물질이 노출 되었고 그 결과로 피해를 입었다면 그 정도가 크던 작던 피해자로 봐야한다는 게 피해자들의 주장이다. 피해 정도에 따라 그에 맞게 의료비를 지원해 주면 되는 것이다. 적게 쓴 사람은 적게, 많이 쓴 사람은 많이.

그런데 정부는 매우 협소하게 판정 기준을 적용했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그에 부합하지 않으면 배제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그래서 피해자들은 '네 단계로 나누어 피해자를 판정한 종전의 방식으로는 누락자가 많으니, 추후 새로운 판정기준을 설계해, 다른 관점에서 피해자 구제에 나서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를테면 이런 경우다. 4단계로 나누지 말고, 10단계로 나누어 피해자 유형을 좀 더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단계에 맞게 구제를 해달라는 주문이다. 최소한 피해자들이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해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 일단 수용하라는 게 전제다. 임상적·의료적 판단이 부족해도, 사용했다는 것이 인정되는 여러 환경 조사의 판단이 있다면 최하 10단계부터 적용해 구제를 하는 등 세분화해 달라는 것이다.

그간 진행된 구제 방식은 그 방식대로 수용하고, 2단계 피해구제 절차를 추진해 종전의 탈락자와 신규 접수자들에 대해서는 새로운 합의와 그에 따른 판정 기준을 마련해 적용해달라는 것이다. 정부가 전문가의 책임과 시각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결국 정부가 책임이 없다고 발뺌하는 것과도 맞닿아 있다.

정부는 가습기살균제 문제에 대해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가해 기업이 책임이라는 입장이다. 그래서 피해자들에 대한 의료지 지원도 기업에 대한 구상권을 전제로 지원하고 있다. 즉, 피해자들에게 지원된 예산은 추후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통해 다시 받아야 하는 돈이므로, 피해자 판정 결과는 소송을 통해 승소할 수 있을 만큼 근거가 충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피해자 구제에 소극적이고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가습기살균제에 대한 정부의 의료비 지원의 현주소이자 문제이다. 그래서 피해자들은 국회에서 정부를 상대로 새로운 판정기준을 마련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는 가습기살균제피해자및가족모임 2기 공동대표입니다.

<오마이뉴스>는 대표적인 환경보건 운동 엔지오인 '환경보건시민센터'와 함께 '환경이 건강해야 몸도 건강하다'란 타이틀로 우리 사회에서 시민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방사능 안전, 미세먼지, 석면, 유해 식품, 시멘트 먼지 공해, 전자기파 공해, 환경호르몬, 중금속 중독 등의 문제를 공동기획해 매주 한 차례 연재합니다. 이 글에 대한 원고료는 환경 피해를 입은 주민들을 위한 활동에 쓰일 예정입니다. 독자들의 성원을 바랍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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