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이건강해야24] 국감방청12시간 만에... 단 한번 박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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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이건강해야24] 국감방청12시간 만에... 단 한번 박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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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살배기 딸 잃은 제가 재수없는 건가요?

[환경이 건강해야 몸도 건강하다24가습기살균제⑥] 살균제 피해가족 국감 방청기
2014.10.28 백승목(acceh)
<오마이뉴스>는 대표적인 환경보건 운동 엔지오인 '환경보건시민센터'와 함께 '환경이 건강해야 몸도 건강하다'란 타이틀로 우리 사회에서 시민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방사능 안전, 미세먼지, 석면, 유해 식품, 시멘트 먼지 공해, 전자기파 공해, 환경호르몬, 중금속 중독 등의 문제를 공동기획해 매주 한 차례 연재합니다. 이 글에 대한 원고료는 환경 피해를 입은 주민들을 위한 활동에 쓰일 예정입니다. 독자들의 성원을 바랍니다. [편집자말]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발생한 지 3년이 지나고 있다.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를 다룬 지도 3년째다. 올해 국정감사가 끝나가는 무렵인 지난 23일 환경부 국감에서 가습기살균제 문제가 다뤄졌다.

피해자들의 실상을 알리고자 가습기살균제 사용으로 폐 손상을 입은 김성태(2011년 폐이식)씨가 참고인으로 나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김씨가 갑자기 병원에 입원하게 되어 피해자 진술이 어려워졌다(관련기사 :
가습기살균제 때문에...온몸이 이렇게 망가졌어요).

국정감사 마지막 날인 27일,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 모임 백승목씨가 환경부 국정감사를 방청한 소감을 환경보건시민센터로 보내왔다. 백승목씨는 가습기살균제 사용으로 지난 2006년 당시 세 살짜리 딸을 잃었다. 지난 3월 질병관리본부 폐손상조사위원회로부터 2등급 '가능성 높음' 판정을 받았다.

가습기살균제 세 번째 국감... 발걸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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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8월3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추모제에서 백승목씨가 국화꽃을 헌화한 후 분향하고 있다.
ⓒ 환경보건시민센터


[아침 6시 30분] 좀 더 자도 되는데 선듯한 새벽 내음에 몸을 일으킨다. 커피 한 잔에 담배 하나 물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니 오늘(23일) 24절기 중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다는 '상강(霜降)'이란다. 큰아이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내 맘 속에 내렸던 서리가 새삼 느껴지는 아침 날씨다.

오늘은 정기 국정감사 환경노동위원회 방청객으로 참석하기로 한 날이다. 이미 한 번의 방청 경험이 있음에도 새삼 긴장된다. 가습기살균제 피해 사건이 발생하고 이슈화 된 지 수 해가 흘렀음에도 답답하게 진행되어 온 이 일은 올해도 국감에서 다뤄진다. 막연한 기대감과 안타까운 마음을 안고 국회로 무거운 발걸음을 내딛는다.

[오전 9시 50분] 대한민국에서 입법부가 행정부를 견제하고, 국민을 대리해서 잘잘못을 따질 수 있는 국정감사. 복도에 꽉 들어찬 피감 기관의 실무자들. 회의장 안의 수많은 카메라와 기자들 그리고 자신들의 수장인 장관이 혹 어려운 질문에 당황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방청석 뒤에 각종 자료를 들고 늘어선 국장들. 그 틈 속으로 살짝 끼어든다. 피해자 방청객이란 조그만 비표를 가슴에 달고. 피해자 활동을 시작한 지 2년째, 그간 알음알음 알았던 기자들과 의원들 그리고 보좌관들이 눈인사를 전해온다. 애써 웃으며 인사하지만 난 오늘도 이 공간이 그리 쾌적하진 않다.

[오전 10시] 위원장의 개시 방망이 소리에 환노위 피감기관인 환경부와 기상청 그리고 산하 기관들의 종합 감사가 이루어진다. 주제와 상관없이 고성이 오가며 퇴장·입장을 반복하던 예전의 국감 모습은 분명 아니다. 나름 노련하신 위원장님의 회의 진행에 여야 의원이 번갈아 질의를 하며 심문을 한다. 물론, 여당 간사의 4대강 사업 편들기와 뻔한 대답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마치 토크쇼에 나온 게스트에게 질문하듯 하는 몇몇 의원들의 수사는 여전히 염치없기도 하다.

[12시 정오] 국정감사의 점심시간은 각자 나름의 이유로 분주하다. 장관을 비롯한 실무진들은 오전에 나왔던 질문 중 시간 관계상 오후 질의로 넘어간 주제에 대해 대비하기에 바쁘다. 의원 보좌관들 역시 급히 작성한 듯 보이는 A4 용지를 들고 뛰어다니기에 바쁘다. 가장 자유로울 수 있는 피해자 방청객인 나는 같이 온 피해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최주완 선생님. 홀로 몇 달째 일인시위를 하고 있는 어르신이다. 택시운수업을 하면서도 이날을 위해 두 시간을 자고 나오셨단다. 퀭한 얼굴로 행여나 가습기살균제 문제가 나올까 귀를 쫑긋하며 졸지도 않으신다.

박용기 선생님. 대구에서 혹시라도 늦을까봐 어젯밤 기차를 타고 올라오셨단다. 딸네 집에서 자고 일찍 나와 이 사람 저 사람을 붙잡고 가습기살균제 문제에 대해 역설하기 시작하신다. 피부질환으로 고생을 하시면서도, 가습기살균제 문제가 등급 산정에서부터 의료비 지원, 소송 등에 이르기까지 각종 부당한 것이 많다고 목소리를 높이신다.

그 와중에 난 환경부 실무자를 잠깐 만나 가습기 살균제 피해 신규 재심 신청일(피해 조사신청서를 접수받고 있는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 신규 재심 신청일을 10월 10일까지 정했다)을 왜 이리 빨리 끝내느냐고 항의도 해본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는 잠복기가 길고, 언제 발병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또 작년에 편성된 예산 중 대부분이 불용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해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따지듯 묻기도 한다. 원론적인 무책임한 답변들을 뒤로 하고 다시 열린 오후 국감장 방청을 시작한다.

원론적인 답변에 답답해진 가슴...

4.jpg   2014년 8월 28일 낮 12시경 서울역 광장. 가습기살균제 피해 가족들이 모였다. ⓒ 환경보건시민센터


[오후 2시]
증인과 참고인 심문이 진행되며, 의원들의 추가 질의가 이어졌다. 드디어 가습기살균제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환노위 위원장이 가습기살균제 피해 신규 신청기간을 연장하고, 불용될 처지에 있는 예산을 피해자들을 위해 쓰일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이에 환경부장관은 "관련 전문가와 상의하여 생각해보겠다"는 원론적인 대답만 내놓을 뿐이다. 마음이 또 답답해진다.

가습기살균제 문제가 무엇이던가! 현재 500여 명이 넘는 피해자와 144명의 사망(그중 절반이 유아사망)이 발생한 대한민국 초유의 환경재난 사고가 아니던가. 2000년대 중반부터 이유를 알 수 없는 폐질환으로 수백명이 죽어가고 아파하다가 2011년 8월 정부 발표로 가습기살균제 유해성이 확인된 지 벌써 3년.

그러나 살인제품을 제조한 회사도,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도록 판매한 대형마트도, 또 그것을 관리감독하는 정부도 이 문제를 빠르게 분석하고 피해를 보상하며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을 하지 못했다. 제조사는 아직도 정부의 유해발표를 믿지 못하며 대형로펌 등 뒤에 숨어 소송을 계속하고 있다.

애초에 관리감독을 하지 못한 정부는(당시에는 몰랐다고 백 번 양보해 생각한다고 해도) 가습기살균제의 유해성을 발표하고 모든 제품을 전량 회수할 뿐 그후 담당부서만 '보건복지부→환경부'로 바꾸면서 폭탄 피하기에만 급급했다. 그러다 국회에서 관련 법령(가습기살균제 피해 구제 특별법)을 제정하려고 하자 이제 와서 아주 제한적으로 지원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기업에 구상권을 전제로 한 쥐꼬리만한 지원을.

그 사이에 아이를 잃고 아내를 잃고 가족을 잃거나 폐이식 등으로 힘든 생활을 하고 있는 피해자들은 제조사로부터 아무런 사과도 받지 못했다. 정부로부터도 공식적인 사과를 받지 못한 채, 경제적·정신적 어려움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오후 6시] 여러가지 이슈들로 국감장은 여전히 분주하다. 예년에 비해 큰소리는 많이 나지 않았지만, 따질 것은 많아 보인다. 4대강 습지 문제나, 저탄소 차량 지원 문제 등도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지만, 내 눈엔 어린이 용품 유해물질 문제나 생활화학용품 관리체계 문제가 더 들어온다. 작지만 생활 속에서 충분히 조심하고 준비했다면 사랑하는 내 딸도 하늘나라에 가 있진 않을 건데, 하는 부질없는 생각도 해본다.

[오후 9시 반] 벌써 밤이 깊어가고 있다. 간단한 저녁식사 후에도 의원들의 추가질의와 답변들이 계속 오간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의 등급 산정이 올바르냐?"고 질의한다. 피곤한 몸이지만 절로 박수가 나왔다. 현재 피해자들이 지난 3월 1차로 판정받은 4단계는 '①가능성 확실 ②가능성 높음 ③가능성 희박④가능성 없음'이다.

이 판정의 임상학적 기준의 옳고 그름은 차치하고라도 한 가정을, 한 생명을 송두리째 잃어버리거나 고통을 받는 피해자에게 등급을 매겼으니, 그런 줄 알아라라는 식의 행정태도는 참을 수 없다. 그들의 입장에서 우리는 그저 대기업에서 제조하고, 나라에서 허가한 제품을 사서 쓰다가 병에 걸리고 죽음에 이른 '재수없는 국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재수없음을 몇 개의 등급으로 나눠 일괄적으로 재단하는 이 모양새가 너무도 비상식적으로 느껴지는 밤이다.

[오후 10시] 국회에서 걸어나오며 하늘을 바라본다. '아빠, 오늘도 수고했어요'라고 말하는 큰딸아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좁은 회의장에서 웅크리며 한 마디라도 놓치지 않고 들으려고 힘들었던 나에게 위안이 된다. 오늘 하루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최선을 다했던 그대들. 다른 건 다 몰라도 그 최선이 가습기살균제문제를 가장 상식적인 선에서 해결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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