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 아들아! 엄마, 아빠를 잊지마!”

가습기살균제피해
홈 > Hot Issue > 가습기살균제피해
가습기살균제피해

“사랑해 아들아! 엄마, 아빠를 잊지마!”

관리자 0 4257
가습기살균제 참사 3주년, 끝나지 않은 고통
베이비뉴스, 2014-08-31 2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제1소회의실. 불 꺼진 회의실에서 조용히 영상 하나가 틀어졌다. 꿈에 그리던 아내와 아이들의 살아생전의 모습이 화면에 비춰지자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눈앞에 나타난 가족의 모습이 행여 사라질까 핏발 선 눈을 부릅뜨던 이들은 “사랑해 사랑해 우리 아들, 엄마 아빠를 잊지마”라는 한 가족의 말에 끝내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고 말았다. 마스크를 쓰거나 산소호흡기를 꽂고 온 이들은 바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들이 이날 국회를 찾은 이유는 가습기살균제 때문에 목숨을 잃은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서다. 환경보건시민센터와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은 지난 2011년 이후 매년 8월 31일을 ‘피해자 추모대회의 날’로 정하고 가습기살균제로 인해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이들을 추모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세상에 알려진지 3주기가 되는 이날 추모제에는 지금도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피해자 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심상정 정의당 의원을 비롯해 장하나, 이인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등이 함께 자리했다.

5.jpg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세상에 알려진지 3주기 되는 31일 오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가족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참사 공식발표 3주년, 살인기업 규탄 및 피해자 추모대회'에서 제단에 헌화하고 있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영상이 끝나자 이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추모 단상으로 나와 국화꽃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숙였다. 한 송이, 한 송이 국화꽃이 쌓여갈 때마다 가족들의 오열은 점점 커져갔다.

 

유독 단상 앞에서 오랜 시간 고개를 숙이고 있던 시은정(43·경기도 수원) 씨는 가습기살균제로 인해 2006년 4월 당시 3살이었던 아들을 잃은 엄마다. 현재 중학교 1학년인 딸도 4년 전까지 제대로 걷지 못할 정도로 건강이 좋지 못했다.

 

시은정 씨는 “아이 방이 건조할 것 같아서 2003년부터 가습기살균제를 쓰기 시작했다. 아이와 같은 방을 쓰던 남편이 어느날 가슴이 답답하다는 말을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면서 “아이가 죽은 이후 뉴스를 보고서야 가습기살균제가 원인임을 알게 됐다”고 울분을 토했다.

 

가습기살균제로 인해 아내를 잃은 최승영(44·서울 구로구) 씨는 “고통스러워하는 아내를 데리고 병원에 가니 원인불명의 간질성 폐염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치료도 제대로 못해본 채 아내는 세상을 떠났다”며 “그 이후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 나에겐 우울증이 왔고 4살 딸아이는 정서불안증세를 보였지만 치료받을 시간도, 돈도 여의치 않았다”고 털어놨다.

 

정부는 2011년 8월 31일 임산부, 아이, 노인 등에게서 잇따라 발생한 원인미상의 폐질환 원인이 가습기살균제라는 사실을 공식 발표했다. 현재까지 접수된 가습기살균제 피해사례는 총 600여 건. 이중 무려 150여 명이 목숨을 잃었고, 겨우 목숨을 건진 가족들은 본인이 가족을 죽인 가해자라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폐손상 의심사례에 해당하는 361명 중 폐손상조사위원회를 통해 가습기살균제와 폐손상의 인과관계가 인정된 168명에게만 의료비 등의 정부지원금이 지급되고 있다. 지원 항목은 ▲의료비 및 의료비 관련 약제비 ▲호흡보조기 임대비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차액 등의 일부 비급여 항목이다.

 

단 ▲특실 상급병실 차액 ▲간병비, 교통비, 전화사용료 등 ▲요양기관이 아닌 외부기관에 의뢰한 검사비 ▲미용성형예방 목적의 비급여 등 ▲보조기, 의료기기 및 의료소모품 구입비 ▲간이영수증으로 발급받은 의료비 ▲요양기관에서 환자부담금 납부를 면제 또는 감면한 경우의 의료비 ▲외국의 요양기관에서 발생한 의료비는 지원에서 제외된다.

 

조기에 사망해 지출된 의료비가 최저한도액(583만 원) 보다 적은 경우에는 최저한도액이 지급된다. 이 금액은 ‘석면피해구제법’에 따른 석면폐증(제3급)에 지급하는 특별유족조의금 금액과 같다. 25일 기준으로 의료비 지급이 완료된 피해자는 142명(생존 76명, 사망 66명)이다.

6.jpg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세상에 알려진지 3주기 되는 31일 오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가족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참사 정부 공식발표 3년, 살인기업 규탄 및 피해자 추모대회에서 결의문을 낭독하고 있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이날 추모제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 일동은 선언문을 통해 “사람 죽이는 제품을 만들어 유통시킨 살인 기업을 처벌하고,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는 등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체에 안전하지 않은 가습기살균제를 건강을 지키려면 꼭 사야하는 제품인 것처럼 홍보해 판매한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회사들이 사람을 죽인 기업으로 마땅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게 이들의 일관된 주장이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지목한 ‘살인 기업’은 ▲옥시레킷벤키저 ▲(주)한빛화학 ▲롯데마트 ▲용마산업사 ▲홈플러스 ▲크린코퍼레이션(주) ▲(주)버터플라이이펙트 ▲아토오가닉 ▲코스트코코리아 ▲(주)글로엔엠 ▲애경산업 ▲SK케미칼 ▲이마트 ▲GS리테일 ▲(주)퓨엔코 등 15개 기업이다.

 

또한 이들은 정부가 가습기살균제 피해 책임을 철저히 규명하고 국회에서는 잠자고 있는 가습기살균제피해자 구제 특별법을 통과시키고, 가습기살균제와 같은 유사 제품에 대한 유통관리에 만전을 가해 달라고 촉구했다.

 

이날 추모제에 참석한 심상정 의원은 “정부가 뒤늦게 진상조사에 나섰고 일부 구제가 진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기업들은 나몰라라 하고 있다. 가해자가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가습기살균제와 세월호 참사는 본질적으로 같은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환노위 위원과 함께 가습기살균제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뤄서 마무리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장하나 의원은 “내 가족을 위해 가습기를 사용했는데 그것으로 건강을 해치고 남겨진 가족은 본인이 가해자라는 트라우마와 고통을 갖고 있다”면서 “정부와 가해 기업이 처절하게 반성할 때까지 가족들과 끝까지 같은 마음으로 함께 하겠다”고 전했다.

 

 

0 Comments
시민환경보건센터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