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이 건강해야20]가습기살균제 피해,왜 아파트 거주자에 많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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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이 건강해야20]가습기살균제 피해,왜 아파트 거주자에 많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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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이 건강해야 몸도 건강하다20-가습기살균제②] 가습기 살균제 비극의 책임

오마이뉴스 2014.08.30  안종주(acceh)
<오마이뉴스>는 대표적인 환경보건 운동 엔지오인 '환경보건시민센터'와 함께 '환경이 건강해야 몸도 건강하다'란 타이틀로 우리 사회에서 시민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방사능 안전, 미세먼지, 석면, 유해 식품, 시멘트 먼지 공해, 전자기파 공해, 환경호르몬, 중금속 중독 등의 문제를 공동기획해 매주 한 차례 연재합니다. 이 글에 대한 원고료는 환경 피해를 입은 주민들을 위한 활동에 쓰일 예정입니다. 독자들의 성원을 바랍니다. [편집자말]
오는 31일은 우리 사회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가습기 살균제 비극'의 원인이 밝혀진 지 만 3년이 되는 날이다. 이날 국회에서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추모대회가 열린다. 지난 25일부터는 국회 정문 앞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등이 가해 기업에 대한 처벌을 촉구하는 1인 시위가 매일 이어지고 있다.

지난 26일 가습기 살균제 사망자 유족 등 59가족 109명은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 기업을 살인죄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이어 28일 서울역 광장에서는 가습기 살균제로 아이를 잃은 부모들이 차마 버릴 수 없어 고이 간직했던 유품들을 모아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가습기 살균제 참극의 진상이 드러난 지 3년이 돼가지만 여전히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준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다시 우리 사회의 의제로 떠오르고 있는 이유다.

가습기살균제 피해, 왜 아파트 거주자에 많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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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8월 28일 낮 12시경 서울역 광장. 가습기살균제 피해 가족들이 모였다.
ⓒ 환경보건시민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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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 손상·집단 사망 사건의 얼개는 대충 그려졌다. 가습기는 실내의 습도를 높이는 용도로 사용된다. 초음파 장치나 가열 장치를 이용해 가습기 통 안의 물을 미세한 수증기 입자로 만들어 공기 중으로 내뿜는다.

기업들은 여기에 강력한 살균 성분의 화학물질을 첨가했다. 가습기 살균제란 이름의 이 첨가물을 만들어 팔면서, 과연 이 살균 성분이 인체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화학물질이란 사실을 기업들이 몰랐을까. 기업들은 이 성분이 우리 폐에 미세한 입자 형태로 다량 들어갈 경우 어떤 영향을 끼칠지에 대한 연구와 임상시험을 게을리 하거나 하지 않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정부 또한 이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하도록 허용하면서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그 어떤 관리도 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비극의 1차적인 책임은 기업과 정부에 있다. 하지만 왜 2000년대 들어서부터 일반 가정과 사무실 등에서 가습기 사용과 가습기 살균제 사용이 크게 늘어났을까. 그 사회·문화적 배경을 파악해보는 것 또한 이 사건의 전말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앞으로 우리가 이와 유사한 참극을 겪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가장 먼저 주거 양식이 아파트 위주로 바뀐 것을 꼽을 수 있다. 아파트는 지난 30년 동안 급성장한 주거 형태다. 농촌의 붕괴와 도시의 확장으로 인구가 수도권과 도시에 몰리면서 좁은 면적에 많은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아파트가 각광받았다. 아파트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효율적이고 살기에 편리한 주거문화로 굳건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지난 2010년 정부의 주거 형태 통계를 보면, 2인 이상 다인가구의 경우 아파트 비율이 전체의 50.1%를 차지하고 단독주택은 26.3%를 차지하고 있다. 오피스텔 등 다른 주거 형태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23.6%에 달해 아파트 또는 준아파트형 주택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전체의 3분의 2 가량을 차지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지금은 아파트 시대'라는 사실을 수치로도 단박에 알 수 있다.

아파트는 단독주택에 비해 단열성이 뛰어나고 에너지 효율성도 좋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아파트 생활을 하는 사람 중엔 한겨울에도 속옷 차림으로 실내 생활을 하는 이들도 있다. 겨울에는 베란다 창문이나 아파트 창문을 자주, 그리고 오랫동안 열어둘 경우 에너지 효율이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에 환기를 잘 하지 않는 편이다. 그 결과 아파트 실내는 겨울에 매우 건조하다. '중앙난방을 하는 아파트의 경우 단독주택보다 건조가 더 심하다'는 언론보도도 있다.

이 때문에 아파트 거주자들은 실내 건조를 막기 위해 가습기를 사용하는 경우가 다른 주거 형태 거주자에 견줘 상대적으로 많다. 이에 따라 가습기 살균제 사용자도 자연스럽게 많아졌다. 실제로 가습기 살균제 피해 신고를 해온 가정의 다수는 아파트 또는 아파트형 거주자였다. 순수 단독주택 형태의 거주자는 보기 드물었다. 한 연구보고에 따르면, 아파트 거주자 800만 명 가량이 한 차례 이상 가습기 살균제 사용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주거형태가 가습기 살균제 집단 사망 사건의 규모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볼 수 있다.

잠자는 세균 공포 부추긴 언론도 책임 커

세균에 대한 공포를 부추기는 사회 문화도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이 문화는 최근 10여 년 동안 급속히 확산됐다. 일반적으로 세균은 유해한 것보다 무해한 종이 월등하게 많다. 요구르트, 김치, 된장, 치즈, 간장, 고추장 등 발효식품을 만들어주는 유익한 균도 많다. 세균에 대해 일반인들이 균형 있게,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은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균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을 가지고 있다. 이런 공포심의 뿌리를 찾아가보면 과거 감염병(전염병) 유행으로 인한 대량 사망 등의 역사를 얘기할 수 있다. 교과서와 대중매체를 통해 이를 잘 알고 있는 일반인들로서는 '세균'이라고 하면 무조건 피하고 보자는 인식이 뇌리에 박혔을 것이다.

여기에는 방송 등 대중매체의 잘못도 크다. 뉴스 시간 또는 건강 관련 프로그램에서 질병을 일으킬 위험성이 있는 유해 세균과 무해한 일반 세균에 대한 정확한 구분이나 정보 없이 세균 공포를 부추겼다. 침대 시트나 옷에 세균이 득실거린다고 한다. 가구와 장난감, 컴퓨터 자판과 전화기, 책과 지폐, 마트 수레 손잡이, 화장실과 마루바닥 등에서 세균이 검출됐다는 사실을 보도한다. 이런 보도가 시민들을 화들짝 놀라게 만든다.

실제로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다 자녀의 목숨을 잃거나 건강에 치명적인 피해를 본 부모들은 가습기 살균제 회사의 광고·선전과 언론의 보도를 보고 살균제를 구입해 물에 넣었다고 증언했다. 그들은 가습기를 청소하지 않고 사용할 경우 세균이 가습기 물통 안에 자랄 수 있고, 그 세균들이 공기 중으로 퍼져 심각한 감염병을 일으킬 수 있다는 광고를 쉽게 믿었다.

지난 2013년 여름, 가습기 살균제 피해 신고를 해온 가정에 대해 환경조사를 실시했다. 대다수의 가정에서 곰팡이와 세균이 위험하다는 언론의 보도 때문에 세균과 바이러스 등 미생물에 대한 공포심이 증폭됐다고 응답했다. 특히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아래 사스)와 신종플루의 지구대유행 사태가 가습기 살균제 판매량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사스는 2002년 11월 중국 광둥성에서 최초의 환자가 발생해 2003년 3월부터 지구촌 곳곳으로 퍼져 대유행했다. 신종플루는 2009년 지구촌을 공포에 몰아넣은 신종 감염병이다. 이는 2000년대 초반부터 가습기 살균제 사용이 서서히 늘어나기 시작했고, 2009년부터 그 사용이 보편화되며 크게 확산됐다는 통계와 일치한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도 이때부터 급증했다는 역학조사를 보면 분명 눈여겨 볼 만한 결과이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 중에는 건강상의 피해가 가습기 살균제 때문이었음을 안 후에도 여전히 세균 죽이기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떤 이들은 은나노(銀nano) 살균제가 화학 살균제와는 달리 안전할 것으로 보고 가습기에 계속 사용하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살균력을 지닌 것으로 알려진 천연물질 농축액을 가습기 물에 타서 사용하고 있었다. 세균에 대한 두려움을 '원초적 본능'처럼 느끼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것은 선진국이나 우리나라 모두 크게 다를 바 없다. 세균에 대한 지나친 공포 문화, 특히 언론의 일그러진 세균 공포 심어주기가 그 원인 중 하나라는 분석이 설득력 있다. 가습기 살균제 비극은 세균을 올바로 바라보는 문화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남겼다.

과학기술 문명 이기에 대한 사용자 주의도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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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8월 3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대회 및 추모제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들이 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다.
ⓒ 이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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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현대 과학기술 문명의 이기에 대한 지나친 맹신을 지적할 수 있다. 현대 사회의 사회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바로 눈부실 정도로 편리해진 생활이다. 넘쳐나는 플라스틱 제품, 자동차 보급, 인터넷과 텔레비전 등 영상매체 발달, 휴대폰과 전화, 전자레인지 등 우리 일상생활은 안락함과 편리함을 주는 과학기술 문명의 이기(利器)로 가득하다.

가습기와 가습기 살균제는 20~30년 전만 해도 거의 보기 힘든 제품들이었다. 매일 번거롭게 해야만 하던, 청소 자체가 쉽지 않은 가습기를 청소할 필요조차 없다고 하니 시민들은 정말 편리한 제품이라 여겼음이 틀림없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이름 있는 외국계 대형 생활용품 제조·판매 회사뿐만 아니라 국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모두 앞 다투어 가습기 살균제 제품을 내놓았다. 대형마트 등에서도 이에 뒤질세라 가습기 살균제를 독자상표(PB)상품으로 제조해 싸게 팔았다. 가습기 살균제의 인기는 급속도로 치솟았다.

이 때문에 소비자들은 유해 가능성에 대한 아무런 의심 없이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다. 어떤 가정에서는 권장량보다 더 많은 양의 살균제를 가습기 살균제에 넣어 사용하기도 했다. 실내가 건조한 겨울철뿐만 아니라 일 년 내내 사용한 가정도 있었다. 가습기 분무량의 세기도 강하게 해놓고 잔 가정도 있었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 하지만 만약 우리들이 편리함만 추구하지 않고 겨울에 실내가 건조할 때는 젖은 수건이나 빨래를 널어 실내 습도를 관리하던 옛 전통 생활의 지혜를 발휘했더라면 비극의 가습기 살균제 재앙이 벌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전 <한겨레>보건복지전문 기자이자 보건학 박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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