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나지않은고통(19)]'가능성낮음'통보받은 이들의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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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나지않은고통(19)]'가능성낮음'통보받은 이들의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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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질환 가능성 낮다고? 그 말을 어떻게 믿나?"

[끝나지 않은 고통, 가습기 살균제 비극<19>] '가능성 낮음' 통보 받은 이들의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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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환경보건시민센터·보건학 박사
"가능성이 낮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다 숨졌거나 사경을 헤매다 살아난 사람은 도대체 어떤 원인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까. 왜 통보서에 판정과 관련한 자세한 내용이 없나요?"


"지난해 7월과 8월 조사를 해놓고 6개월이 훨씬 지나서야 '귀하의 거주환경 방문을 통한 환경노출 평가와 귀하가 제출한 임상자료 판독에 근거하여 판독했을 때 귀하의 질병은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말단 기관지 부위 중심의 폐질환 가능성이 낮은(또는 거의 없는) 것으로 판단됩니다'라는 서류 한 장. 그것도 이 자리에서 나눠 주는, 이런 무성의한 정부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시 판정을 해주세요."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장하나·심상정·홍영표·이언주 의원과 환경보건시민센터,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그 가족모임 주최로 열린 가습기 살균제 피해 조사 결과 설명회 및 피해자 지원 방안 공청회에는 피해신고자들이 아침 일찍 멀리 지방에서까지 정부 조사 결과를 설명 듣기 위해 모여들었다. 이들은 폐손상 조사위원회 공동위원장인 서울대 보건대학원 백도명 교수의 조사 결과 설명을 들은 뒤 너도나도 손을 들어 질문공세를 펼쳤다.

특히 '가능성 낮음'(42명)과 '가능성이 거의 없음'(144명) 판정을 받은 피해 신고자들은 그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구체적인 판정 경위와 이유를 설명해 줄 것을 요구했다. '거의 확실함'(127명)과 '가능성이 높음'(41명) 판정 통보를 받은 사람들은 정부 지원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관심을 보였다. 어떤 아버지는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방에서 같이 잔 아이는 '거의 확실함' 판정을 받은 반면, 비슷한 증상으로 고통을 겪은 나는 '가능성이 거의 없음' 판정을 받았다"며 왜 이런 상반된 판정이 나왔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불만을 격하게 토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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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초조, 분노에 떠는 피해자들

서울에 사는 50대 김아무개 씨는 "아내가 교회성가대에서 합창단원으로 열심히 활동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숨을 잘 쉬지 못해 병원에 갔더니 대학병원에서조차 폐가 엉망이어서 포기하는 게 좋겠다고 했는데, 세브란스 중환자실에 입원시켜 겨우 목숨을 살렸다. 지금도 산소호흡기 없이는 살 수 없다. 수시로 찾아오는 위기 상황 때문에 두 아들이 간병하느라 취직도 하지 못하고 대학도 가지 못하는 등 가정이 풍비박산이 났다. 그런데도 가능성이 낮다는 판정이 나온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얼굴이 상기된 채 분노 어린 목소리로 말해 주변을 숙연케 했다.

한 60대 여성도 "당뇨를 앓던 남편이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다가 폐섬유화를 동반한 원인 모를 폐질환에 걸렸는데 가능성이 높다는 판정을 받지 못했다. 앞서 말한 김 씨의 아내도 과거 결핵과 기관지확장증을 앓았다고 했는데 기존 만성질환이 있거나 폐질환이 있는 사람의 경우 대부분 '가능성 낮음' 판정이 나온 것 같다.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기존 질환이 더 악화될 수 있는 것 아니냐? 이해할 수 없다"며 재판정을 요구했다.

가습기 살균제가 폐에만 문제를 일으키는가에 대한 의문도 잇따라 제기됐다. 아이를 살균제 때문에 잃었고 피해자모임에서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는 백승목 씨는 폐 이외의 다른 장기에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한 고려는 이루어졌는지를 물었다. 그는 또 "가능성 낮음, 즉 'possible'이란 판정은 뭔가 있는 것 같은데 증거가 발견되지 않은 것이냐?"고 물었다. 올해 일흔인 유영석 씨도 "가습기 살균제 사용 뒤 원인 모를 심장병을 앓고 있는데 가습기 살균제가 심혈관질환에는 영향을 주지 않느냐"고 따졌다.

백 교수는 "'가능성 낮음'은 다른 원인으로 그 질환이 생긴 것 같기는 한데 가습기 살균제도 원인으로 배제하기 힘든 경우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또 "폐 이외의 부위에 대한 살균제의 영향 가능성에 대해서는 국내 연구결과 일부 물고기에 대해서는 심혈관 계통에 문제를 일으킨다는 사실이 드러나 논문으로 발표된 적은 있지만 이를 사람에게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여서 전문가 간 의견일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폐에 이상이 있는 분만 대상으로 판정했다"고 밝혔다.

"정부 지원 고시, 현실 반영 제대로 못 해"

이어 정부 판정 결과를 토대로 이루어지는 사망자 또는 피해자에게 지원되는 의료비와 장례비 등에 대한 환경부장관 고시 내용에 관한 공청회가 열렸다. 환경부 고시를 보면 피해자나 그 가족들이 실제 지출한 의료비, 즉 약제비를 포함한 진료비와 호흡보조기 임대료, 선택진료비, 상급병실 차액 등의 일부 비급여항목에 대해 영수증을 제출하면 지급하고 장례비는 일괄적으로 233만 원(2014년 기준)을 주는 것으로 돼 있다.

하지만 이 고시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부분이 많다는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장례비를 현실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잇따라 제기됐다. 간병비도 지급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 여성피해자는 자신이 중증 질환이어서 아이를 돌봐주는 사람에게 오랫동안 매달 상당한 비용을 지출했는데 이런 비용은 왜 주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또 의료비 지원 적용 시점도 3차 의료기관 확진 시점이 아니라 질병이 의심스러워 처음 (동네)병원을 찾아간 때부터로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아이를 잃고 아내도 폐 이식을 받은 뒤 여전히 중환자실과 일반병실을 오가며 힘든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장동만 씨는 "폐 이식 환자는 면역이 극도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보험약을 의사 처방에 따라 불가피하게 사용해야만 하는 경우가 있다. 또 혈액외부순환장치인 '에크모'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치아가 빠지거나 충치가 생기는 등 치아 상태가 엉망이어서 부득이하게 치아보존에 많은 돈이 들어갔다. 이런 것을 현재 고시는 고려하지 않고 있어 보완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 총괄업무를 할 주무부처인 환경부 이호중 환경보건정책과장은 "장례비가 현실에 맞지 않는 점을 알고 있다. 애초 지원 예산안이 국회에 넘어갔을 때는 의료비 지원만 있었지 장례비 지원 항목은 빠져 있었다. 국회 심의과정에서 이를 보완하는 정도여서 충분한 예산 확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는 또 "가습기 살균제 피해는 처음 있는 일이고 또 피해자마다 다양한 의료비와 의료 관련 비용 지출이 있어 이를 일일이 고시에 담지 못한 측면이 있다. 다양한 사례를 파악해 최대한 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환경부, 가습기 살균제 전문 보건센터 구축 검토

한편 피해자와 가족모임의 강찬호 대표는 "정부의 지원방안은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 대한 최소한의 구제에 그치고 있다. 하루하루 버티기가 힘든 피해자들에 대한 요양급여 등 생활수당이 제외됐다. 피해를 겪고 질환을 앓고 있는 이들에 대한 후속 관리방안이 없다"고 지적하고 "질환센터를 설치하거나 병원을 지정해 지속적으로 피해자를 관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환경부는 가습기 살균제 질환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환경보건센터 구축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밖에 이날 피해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국내 보험회사들이 질환을 앓았거나 앓고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완치 상태가 아니라며 실손 보험이나 암보험 등 각종 보험 가입을 원천적으로 거부하고 있다며 이런 문제를 정부가 앞장서 해결해줄 것을 주문했다.

환경부는 이번에 판정을 받은 사람들은 별도의 신청절차 없이 정부 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해 늦어도 올 상반기 중으로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의료비와 장례비가 지급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환경부는 정부 지원 대상을 가능성 높음까지로 할지, 아니면 가능성 낮음까지 할지에 대해 최근 열린 환경보건위원회에서 결론을 내지 못하고 다시 조만간 열릴 위원회에서 최종 결정하기로 했다고 밝혀 앞으로 지원 대상 범위가 또 다시 뜨거운 감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만약에 하나 '가능성 낮음' 판정 환자들이 지원 대상에 들어가지 못할 경우 이들은 과연 누가 어떻게 보듬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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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의 비극은 언제 끝날 수 있을까.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말할 수 없는 큰 고통을 겪고 있다. 이들은 때론 거리에서 직접 시민들에게 호소하며, 때론 언론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 자신들의 고통을 알렸다. <프레시안>도 올해 봄 9차례에 걸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을 직접 인터뷰해 기사를 내보내는 등 그동안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를 다뤄왔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걸림돌이 피해자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터졌을 때부터 지금까지 줄기차게 피해자들과 함께하며 활동하고 있는 환경보건시민센터가 <프레시안>과 공동으로 '끝나지 않은 고통, 가습기 살균제의 비극'을 기획했다. 이 기획을 통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끝나지 않은 고통, 사건의 배경과 원인, 가해 기업들의 태도와 피해자들이 벌이는 소송, 이 사건이 우리 사회에 던진 과제와 교훈 등에 대해 함께 고민해본다.

[끝나지 않은 고통, 가습기살균제의 비극(1) 2013 11 14]; 쌍둥이를 잃은 부모들 (안종주 글)

[끝나지 않은 고통, 가습기살균제의 비극(2) 2013 11 19]; 태어나기도 전에 죽은 아이들 (최예용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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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고통, 가습기살균제의 비극(5) 2013 12 13]; 폐이식 수술을 받은 사람들 (최예용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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