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않은고통(17)] 세균 잡으려다 사람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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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않은고통(17)] 세균 잡으려다 사람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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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고통, 가습기 살균제 비극] <17> 우리는 왜 가습기살균제를 썼나

프레시안 2014 3 5

안종주 환경보건시민센터 운영위원.보건학 박사
검찰이나 경찰은 가끔 조폭과의 전쟁을 벌인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가끔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세균과의 전쟁을 벌인다. 인간과 세균과의 전쟁 역사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살펴보면 그 시작은 비위생과 감염병(전염병)과의 싸움을 볼 수 있다. 페니실린을 비롯한 각종 항생제의 등장과 화학산업의 발달로 살균소독제가 값싸게 시장에 나옴에 따라 항생·항균제와 살균·소독제는 이제 의사나 방역당국 고유의 무기가 아니라 일반인들이 곁에 두고 언제든지 사용하는 생활필수품이 되었다.

각종 질병의 원인이 세균이나 바이러스 때문이라는 질병의 병원체 기인설을 주창한 루이 파스퇴르와 로베르트 코흐 이래로, 병원미생물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목소리는 약간의 부침은 있었지만 결코 줄어든 적이 없었다. 특히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반 들어와서도 여전히 에이즈와 이로 인한 결핵의 재만연, 사스와 신종플루, 조류독감과 같은 신종 감염병 출현 등의 사태가 발생한다. 또 한때 수그러들었다 다시 유행을 보이곤 하는 홍역 등 재출현 감염병 등은, 방역당국을 긴장케 하는 것은 물론 지구촌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한다.

이런 가운데 언론은 이들 감염병이 새로 등장하거나 유행할 때마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해 공포의 극대화 방식으로 관련 보도를 하는 행태를 보인다. 이는 예나 지금이나, 서양이나 동양이나, 선진국이나 후진국이나 크게 다를 바 없다. 한국 언론도 이런 전통을 오랫동안 보여 왔다. 이런 보도 행태는 일반인들이 미생물을 극소수 병원미생물과 대다수 무해미생물로 구별해 대처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그래서 많은 시민들은 '세균·바이러스=무조건적인 적'이라는 공식을 구구단처럼 머리에 달달 외어 세균 없는 세상, 세균 없는 환경을 위해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사람들은 미생물이 몸 안에 들어와 질병을 일으키려면 특정 경로를 거쳐 특정 지역에 자리 잡고 또 적정한 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피부에 병을 일으키는 균은 피부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 또 소화기 계통에 질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은 입으로, 호흡기 계통에 문제를 일으키는 미생물은 호흡기로 침투해야만 한다. 그 반대가 될 경우 또는 엉뚱한 곳에 들어가거나 붙을 경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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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남빛나라)


언론의 '무한도전', 세균 공포 부추기기 

미생물이 일으키는 질병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지식이 없는 상황에서 만약 언론이 침대 시트나 옷에 세균이 득실거린다거나 가구와 장난감, 컴퓨터 자판과 (휴대)전화기, 책과 지폐, 마트수레 손잡이, 화장실과 마룻바닥 등에 세균이 검출된다는 사실만을 보도해도 화들짝 놀란다. 이들 가운데 어린이가 있거나 병에 민감한 사람들은 한 달에 수십만 원의 비용을 들여 온 집안과 집안 내 각종 용품에 살균제를 마구 뿌려댄다.

우리나라 언론은 시도 때도 없이 이런 행태의 보도를 보인다. 특히 방송이 그렇다. 미생물이 득실댄다는 이야기를 대상 소재를 바꿔가며 되풀이한다. 마치 살균제나 소독제를 만들어 파는 회사와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한다는 인상마저 들 정도로 잦다. 언론의 세균 공포 부추기는 언론이 할 필요가 없는, 아니 해서는 안 되는 비정상적 역할이다. 우리 손과 발, 몸, 옷, 입안, 장내(腸內)에는 그 수를 헤아리기조차 힘들 정도로 엄청난 수의 미생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바보처럼 잊고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살균과 소독도 지나치면 틀림없이 문제가 된다. 지나치면 독이 된다. 꼭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 필요한 방식으로 사용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세균 죽이기 열풍은 너무나 지나쳐 마침내 그 독화살은 사람의 생명을 한꺼번에 빼앗은 재앙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뒤늦게라도 세균 죽이기 열풍을 식혀야 하는데 한번 달아오른 열풍이 좀처럼 식지 않고 있다. 언제 다시 살균·소독제의 재앙이 또 다른 가습기 살균제 악마가 되어 우리를 덮칠지 모른다.

가습기 살균제 재앙 부른 세균 공포

가습기 살균제 재앙은 분명 우리들의 세균(원래는 서로 다른 것이지만 여기서는 곰팡이와 바이러스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사용함)에 대한 일그러진 공포가 준 판도라의 상자였다. 세균을 죽이기 위해 가습기에 넣은 살균제는 세균뿐만 아니라 어린이와 산모 등 수많은 목숨과 건강을 빼앗았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입은 환자와 사망자의 가족들은 한결같이 가습기를 청소하지 않고 사용할 경우 세균이 가습기 물통 안에 자랄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그 세균들이 공기 중으로 날리게 돼 심각한 감염병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살균제 회사의 광고·선전과 언론의 보도를 보고 살균제를 구입해 물에 넣었다고 증언했다.

또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처음 들어본 이름의 감염병이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때 병원성 바이러스의 공포에 휩싸였다. 특히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즉 사스의 위력은 대단했다. 2002년 11월 중국 광둥성에서 처음 환자가 발생해 홍콩을 거쳐 2003년 3월 전 세계로 삽시간에 번졌다. 중국뿐만 아니라 미국, 캐나다, 베트남, 한국 등 세계 곳곳을 강타했다. 그해 7월까지 세계 32개국에서 8096명의 감염자가 발생하고 774명이 사망했다. 한국은 첫 환자 발생을 두고 논란이 일었으나 방역당국이 환자가 아닌 감염자라고 해 더는 논란이 확산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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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국제공항 입국장 앞에 인천공항 검역소 직원들이 중국 청도지역 항공기를 통해 입국하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열 감지기를 작동시켜 감염 의심환자를 가려내는 작업을 펼치고 있다. (2003년 12월 17일) ⓒ연합뉴스

 
특히 2009년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에게 감염을 일으킨 신종플루에서, 한국인들의 신종 감염병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는 최고조에 달했다. 1918년과 1919년 전 세계인을 최고 5000만 명까지 숨지게 한 것으로 추정되는 스페인독감이 재현될 수 있다는 언론과 일부 전문가들의 위험 증폭 겁주기와 맞물려, 방역당국은 텔레비전 등을 통해 손씻기의 생활화와 손 소독의 중요성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공공기관과 사무실, 다중이용시설, 호텔 등에서는 층별로 액체 살균소독제를 비치해 직원과 손님 등이 수시로 손을 소독하도록 했다. 가정에서도 소독제를 따로 사서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일부 소독제 회사는 신종 감염병 때문에 한때 톡톡히 재미를 보았다.

정부의 손 씻기 대대적 홍보

그 이후 한국에서는 세균 죽이는 것은 좋은 일이란 인식이 널리 퍼졌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들도 한결같이 이들 감염병 유행과 정부의 손 소독 홍보 등 때문에 미생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하게 각인됐다고 밝혔다. 그래서 마트 등에서 아무런 의심 없이 가습기 살균제를 구입해 사용한 것이다.

세균은 생태계에서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존재다. 과학자들은 지구 최초의 원시 생명체가 세균일 것으로 보는데다 이 세균이 죽은 동식물을 분해해 각종 원소로 되돌려놓는, 그리하여 생태계가 온전히 순환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구실을 한다고 본다. 미생물이 없는 생태계, 즉 지구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인간이란 존재 자체는 탄생과 더불어 세균과 함께 한 몸을 이루고 살아왔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피부와 몸에 세균을 지닌 채로 세상으로 나온다. 인간은 세균과 한 덩어리가 돼 평생을 같이 산다. 그리고 사람은 결국 죽지만 미생물은 살아 인간을 우주의 여러 원소로 돌려놓는다. 

또 일부 세균과 곰팡이, 효모는 인간에게 너무나 고마운 친구들이다. 항생제를 선물로 주는 곰팡이와 세균도 있다. 어떤 효모와 세균, 곰팡이는 발효를 통해 김치, 된장 등의 발효식품과 요구르트, 빵과 술을 먹고 마실 수 있게 해준다. 이런 풍성한 먹거리와 건강식품은 온전히 미생물 덕분에 가능하다. 

물론 세균이나 바이러스, 곰팡이 가운데 우리가 경계하고 때론 가장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죽여야 할 것들도 있다. 하지만 미생물은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엄청나게 번식해 군집(콜로니)을 형성했을 경우에 눈에는 보이지만 그것만으로 좋은 놈인지, 나쁜 놈인지 일반인의 눈으로는 알아차리기 매우 어렵다. 그래서 사람들은 미생물이 어디엔가 있다고 하면 일단 무조건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세균이 무조건 두려운 한국인들

피해자 가족 가운데는 살균제 때문에 심각한 피해를 받았다고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세균 죽이기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떤 이들은 은나노 살균제가 화학살균제와는 완전 다를 것으로 보고, 즉 안전할 것으로 보고 가습기에 사용하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살균력을 지닌 천연물질 농축액을 가습기 물에 타서 사용하고 있었다. 세균에 대한 두려움을 원초적 본능처럼 느끼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이 정말 안타깝다. 

사실 가습기는 실내 환경이 건조하지 않도록 사용하는 제품이다. 제때 깨끗하게 청소하면서 사용하면 굳이 살균제를 돈 주고 사서 넣을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청소를 매일 하는 것은 매우 번거롭고 귀찮다. 또 가습기 물통은 청소를 효과적으로 하는데 쉽지 않은 구조로 돼 있다. 맞벌이로 인한 시간적 여유 부족과 편리함을 좇은 나머지 알약 하나를 넣거나 살균제 액을 약간 넣으면 되는 살균제는 눈길을 끌 수밖에 없다.

맞벌이는 다른 선진국에서 훨씬 그 비율이 더 높을 것이다. 또 편리함을 추구하는 것은 선진국이나 우리나라 모두 크게 다를 바 없을 터이다. 그런데 왜 유독 한국에서만 가습기 살균제가 시민들의 필수 생활용품처럼 돼 널리 사용됐을까? 아무래도 이런 의문에 대해서는 세균에 대한 지나친 공포 문화, 특히 언론의 일그러진 세균 공포 심어주기가 그 원인이라는 대답이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가습기 살균제 재앙은 우리에게 세균을 올바로 바라보는 문화를 가꿔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분명한 교훈으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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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의 비극은 언제 끝날 수 있을까.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말할 수 없는 큰 고통을 겪고 있다. 이들은 때론 거리에서 직접 시민들에게 호소하며, 때론 언론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 자신들의 고통을 알렸다. <프레시안>도 올해 봄 9차례에 걸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을 직접 인터뷰해 기사를 내보내는 등 그동안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를 다뤄왔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걸림돌이 피해자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터졌을 때부터 지금까지 줄기차게 피해자들과 함께하며 활동하고 있는 환경보건시민센터가 <프레시안>과 공동으로 '끝나지 않은 고통, 가습기 살균제의 비극'을 기획했다. 이 기획을 통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끝나지 않은 고통, 사건의 배경과 원인, 가해 기업들의 태도와 피해자들이 벌이는 소송, 이 사건이 우리 사회에 던진 과제와 교훈 등에 대해 함께 고민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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