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사회에 방치된현대인,억울한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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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사회에 방치된현대인,억울한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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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가습기살균제② 관리사각의 유해물질이 최악의 사망사태를 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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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없는 삶, 그보다 끔찍한 사망 사태

기술비평가 자크 엘룰은 "역사를 들여다보면 모든 기술은 당초부터 예측 불가능한 2차 효과를 품고 있다. 2차 효과는 차라리 기술 없이 지내는 것보다 더 끔찍한 효과를 낳는다"고 말했습니다. 제레미 리프킨은 「엔트로피」에서 자크 엘룰의 저서 「기술사회」의 통찰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엘룰의 통찰을 빌리자면, 2011년 우리사회는 ‘기술사회’의 공포를 체감하고 있습니다. 우선, 가습기 살균제라는 '기술'이 있습니다. 한국 정부의 질병관리본부는 이 새로운 기술이 미확인 폐질환이란 '2차 효과'를 낳았다고 공식적으로 지목했습니다. 정부가 10여 명의 임산부 환자로부터 확인한 '2차 효과'란 폐가 딱딱해지는 섬유화와 제 때 폐 이식을 하지 못했을 때 찾아오는 사망 사태입니다.

정부의 발표 이후 SBS는 ‘미확인 급성 폐질환’을 바꿔 부르기로 했습니다. 2차 효과의 본질은 더 이상 ‘미확인’ 상태가 아니며, 동물실험을 통해 ‘가습기살균제의 독성 물질’로 밝혀진 까닭입니다. 예측 불가능하면서도 그 기술 없이 지내는 것보다 더 끔찍한 2차 효과. 새로운 독성물질의 공포가 소비자를 짓누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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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도 막지 못한 정부

지난 4월 독성물질에 의한 폐질환으로 임산부들이 연이어 숨지자, 질병관리본부는 가습기살균제를 원인물질로 추정하고 성분 분석에 나섰습니다. 특히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디움 포스페이트(PHMG phosphate) 4개 화학성분을 유해물질로 지목해 검사를 벌여왔습니다.

전병율 질병관리본부장은 지난 11일 가습기살균제의 쥐실험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들 제품이 의약외품이 아닌 일반 공산품으로 방치돼 있어, 관리 사각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당국이 이들 제품에 들어간 모든 성분의 유해성에 무지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시중에 유통되는 살균제의 유해성을 관리하고 사용가능한 성분명까지 고시로 지정해 관리하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8 31일 가습기 살균제를 폐질환의 원인물질로 추정할 당시, 샴푸나 세제에 들어가는 성분이 제품이 들어있는 걸로 안다는 모호한 답변을 했습니다.

살균제 성분을 관리하는 당국이 있는 한, 이들 성분의 유해성 정보가 전무할 수는 없다는 의심이 들었고, 의심은 취재결과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지난 9 20일 기자는 정부가 성분 관리만 제대로 했더라도 폐질환 사태를 막을 수 있었다는 고발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정부가 살균제의 4개 문제성분 가운데 위험성을 파악하고 있던 것은 염화 에톡시에틸구아니디움(PGH)입니다. 질병관리본부는 이 성분이 ‘세퓨’라는 중소기업제품의 주성분이라고 밝혔습니다. 시장의 90%를 차지한 ‘옥시싹싹 뉴가습기당번’의 주성분 PHMG와 함께 쥐 실험에서 폐 섬유화를 유발한 물질입니다.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청, 농림수산식품부가 공동 운영하는 식품안전포털 즉, 식품안전정보서비스(www.foodnara.go.kr)엔 이 PGH의 유해성이 상세하게 게시돼 있습니다. 지난 2008년 처음 서비스를 시작한 이 사이트에 따르면, PGH는 눈이나 피부에 닿으면 발진이나 화상을 일으킬 수 있고, 특히 들이마시면 타는 것 같은 느낌과 함께 호흡 곤란을 겪게 됩니다. 위험성을 경고까지 해놓고도 가습기 살균제 원료로 쓰도록 방치할 만큼 관리가 허술했다는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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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출하는 영유아 사망 사례

환경운동연합 환경보건시민센터는 폐 섬유화로 숨지거나 폐 이식을 받은 영유아 사망 사례를 최근 2달 새 4차례에 걸쳐 발표해 왔습니다. 지난 9일 이들은 임산부와 영유아 10명이 숨진 사례를 포함해 가습기살균제 피해 사례 33건이 더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 단체는 피해접수 사례를 근거로, 가습기 살균제에 의한 폐질환으로 지금껏 12개월 미만 영유아 17, 12개월 이상 36개월 이하 소아 4, 임산부 3, 태아 1명과 성인 3명 등 모두 28명이 숨진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는 14년 전인 지난 1997년 국내 처음 출시된 뒤로 한해 약 60만 개, 20억 원 어치가 팔립니다. 당국은 가습기살균제의 공산품 방치의 문제점과, 그로 인한 관리 소홀을 인정했습니다. 이처럼 유해독성물질을 아무렇게나 내버려둔 동안, 이번 폐질환과 유사한 영유아 ‘간질성 폐렴’도 꾸준히 증가한 게 사실입니다.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최영희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분석한 결과, 간질성 폐렴으로 진료받은 5세 미만 영유아는 2008 176, 2009 213, 2010년에는 245명으로 매년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3년간 영유아 환자 증가율은 1.4배로 전체 연령대의 환자 증가율 1.1배보다도 높았으며, 5~9세의 어린이 환자 역시 2008 66명에서 2010 92명으로, 10~14세 환자는 같은 기간 44명에서 66명으로 각각 늘었습니다.

질병관리본부는 지난 4일 영유와 폐질환 환자에 대해서도 임산부와 같은 방식의 역학조사에 들어갔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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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봐도 억울한 죽음

가습기라는 기술은 살균제의 필요성을 낳았습니다. 자크 엘룰은 "모든 새로운 기술은 앞선 기술이 그것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탄생했다”라고 말합니다. 세탁기가 세제의 발명을 유발하고, 에어컨이 에어컨탈취제의 수요를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기술이 기술을, 공산품이 공산품의 개발을 낳는 ‘기술사회’. 엘룰의 통찰은 현대인에겐 너무나 자연스러운 (그러나 피할 수 없는) 삶의 양식 가운데 하나입니다.

전문가나 지성인이 통찰을 남기는 동안, 보통 사람은 남들처럼 정해진 수명 동안 삶의 명멸을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그것이 평화로운 시대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평화는 깨지고 도처엔 비극의 겨울을 맞은 사람이 많습니다.

가습기살균제가 삶속에 들어온 지 10년이 넘도록, 업체들은 인체 흡입 시 위험성 검사를 거치지 않은 제품을 대량 생산해 판매했습니다. 멀리 공장에서부터 집 앞 구멍가게까지 끔찍하지만 잘 포장된 유해물질이 배달되는 동안, 정부의 관리 체계는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그 동안 제품을 구매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아이에게도 99% 안전’하다거나, ‘마셔도 안전’하기 때문에 ‘흡입 시에도 무해’하다는 광고를 믿었다고 말했습니다.

정상적인 소비의 대가로 견디기 힘든 시련에 빠진 피해 가족의 사연은 아직 모두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지난 11일 질병관리본부가 동물 실험 결과를 발표하던 브리핑룸에 난입한 30대 남성은 ‘도처에 가족이 죽어나가 가정이 무너졌다’며 절규했습니다. 그의 1살 난 아이는 폐질환으로 숨을 거뒀고, 부인마저도 같은 증세로 폐 이식을 받았습니다. 그의 주변에서 단 1년 새 벌어진 일들입니다.

광고를 신뢰한 채, 가습기살균제를 자신의 삶에 받아들인 가정엔 돌이킬 수 없는 희생이 찾아왔습니다. 이 죽음이 남긴 억울함은 정부와 업체, 피해자 모두의 사정을 고려하면 할수록 객관화하고 있습니다. 누가 봐도 억울한 죽음. 정부와 업체가 이들을 어떻게 보상할지 서둘러 대책을 내놔야 하는 이유입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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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진은 2011년 11월 11일 서울 종로구 계동 소재 보건복지부 기자실에서 열린 질병관리본부와 복지부의 가습기살균제 동물실험 조사결과 발표 기자회견장에서, 질본의 발표후 피해대책이 없는 조사발표에 항의하는 피해자(영아 사망 아빠)의 모습입니다 - 환경보건시민센터, 사진출처-베이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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