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참사 특집2]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인데…코로나19 의심받아 진료 더 어려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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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참사 특집2]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인데…코로나19 의심받아 진료 더 어려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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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참사]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2년을 돌아보다②

쿠키뉴스 

2020년 12월 23일 

[편집자주]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세간에 모습을 드러낸 지 1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에 피해자들의 상처도 아물고 새 살이 돋아났으리라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기대는 빗나갔습니다. 참사 진상 규명을 위해 출범한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2년의 활동기한을 마무리했지만 피해자들은 여전히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규명해야 할 진실이 여전히 적재해 있다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 오늘도 진상 규명을 외치는 이들을 만나 그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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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자택에서 만난 김태종씨가 지난 2007년 사용한 ‘이플러스 가습기살균제’(이마트 PB제품) 용기를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박태현 기자


[쿠키뉴스] 신민경 기자 =“다수의 가습기살균제 피해자가 호흡기 이상 증세를 호소하잖아요. 응급실에서는 코로나19 먼저 의심해요.”

지난 15일 자택에서 만난 김태종씨는 올해 8월 아내를 여의었다. 아내 박영숙씨는 호흡기 질환을 앓던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였다. 호흡기 및 상세불명 결핵의 후유증, 만성 호흡부전, 상세불명형 기관지확장증. 김씨가 내민 박씨의 진단서에는 ‘상세불명’이라는 단어가 즐비해 있었다.

가습기살균제는 아내를 위해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다. 평소 기관지가 좋지 않은 아내 건강을 위해 이마트에서 ‘이플러스 가습기살균제’(당시 이마트 PB상품)를 구입했다고 김씨는 당시를 회상했다.

‘천연성분의’ ‘피톤치드’ 등의 광고 문구는 의심치 않고 제품을 손에 짚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1000ml에 9900원이었던 저렴한 가격. 그는 매일 밤 건강을 위해 가습기를 아내 얼굴을 향해 틀어놓고 가습기살균제를 반 뚜껑씩 넣었다. 이 마저도 제품 사용 권장량의 절반 수준이었다.

아내의 이상 증세는 2008년 시작됐다. 당시 아내는 집 앞 50m 가량의 언덕을 한 번에 올라오지 못하겠다며 호흡기능 문제를 호소했다. 

김씨는 “아내는 주일마다 교회에 나가 성가대 활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다”며 “‘성가대에서 몇 시간씩 연습하는 사람이 요 앞 언덕도 못 올라오는 것이 말이 되느냐’라고 호통친 처음이 지금도 너무 후회스럽다”고 눈물을 지었다. 2011년 가습기살균제와 폐 기능 저하의 상관관계가 알려지면서 피해를 의심하게 됐다고 그는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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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종씨는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뒤 건강악화로 사망한 아내 박영숙씨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박태현 기자



지난 10년 동안 아내 병간호를 해왔던 김씨는 올해는 더 힘든 한 해였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때문이다. 지난 3월23일은 아내 증세가 악화해 대학병원 응급실에 20번째로 방문한 날 이었다고. 김씨는 “코로나19로 고열과 호흡기 질환 환자가 많았는지 증세가 비슷한 아내를 코로나19 환자로 의심했다”며 “오전에 방문했지만 오후 9시가 돼서야 음압병실에 입원할 수 있었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김씨는 “코로나19가 확산하는 현재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전문 병동은 절실하다”며 “응급실에 가면 코로나19에서부터 시작한다. 음압병동이 빈자리가 없으면 발만 동동 굴러야 하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뒤 급격히 호흡기능이 악화했던 아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라고 이야기하면 진료가 좀 더 수월하지 않았을까. 황당하게도 아내 박씨는 사망한 뒤인 올해 9월25일 이전까지는 정식 피해자가 아니었다.

2014년 질병관리본부 역학조사과에서는 처음 박씨를 가습기살균제 피해 ‘가능성 낮음’으로 진단했다. 말단기관지 부위 중심의 폐질환이 가습기살균제로 생길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었다. 2015년 결과도 같았다. 2017년에는 구제계정운용위원회 심의 결과 지원 인정 대상자로 꼽혔으나 9년이 지난 뒤였다.

2009092081_OpX9GLMg_a1967875ef76e5e66add8bac50bbc5bd407b5bc7.jpg김태종씨는 아내가 투병할 당시 간병에 사용하던 의료기기를 버리지 못하고 쟁여두고 있다며 내어 보였다. 사진=박태현 기자
“아내가 평소 기관지가 좋지 않았지만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뒤 처음 호소하는 질병들이 생겨났어요. 가습기살균제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죠. 피해 인정을 위해 숱하게 소리쳤지만 피해자 스스로 피해를 인정하라는 구조에 여러 차례 무너졌습니다. 지원을 받기 이전에는 병원비로 수억 썼어요. 저와 아내 모두 신용불량자가 됐죠.” 김씨는 쓴웃음을 지었다.

정식 피해자로 인정받았지만 여전히 김씨는 기업과 전쟁 중이다. 배보상 때문이다. 김씨는 정부, SK케미칼, 애경산업, 이마트 등을 상대로 소송을 낸 상태다.

“이달 1일 1차 조정이 있었어요. 변호사들이 다 나왔더라고요. 법적인 과정이지만 기업과 정부의 진심 어린 사과를 기대했건만 몽상에 불과했죠. 그렇게 오래 지켜봐 놓곤 또 바보같이 기대를 한거죠. 사과 전화도 없었어요. 해결 의지는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더라고요.” 김씨는 한숨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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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태현 기자



사참위 활동기한 종료는 김씨의 눈앞을 더욱 캄캄하게 만들었다. 참사 조사권을 손에 쥔 사참위가 있어서 그나마 기업들이 꿈틀이라도 댔다는 것이다. 김씨는 “사참위가 있음에도 규명하지 못한 진실들이 있다”며 “사참위가 없는 마당에 그 꿈틀마저도 안할 것이라는 게 피해자들 예상”이라고 낙담했다. 피해자들이 사참위 연장을 부르짖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상이 그리운 건 유가족도 마찬가지다. 김씨는 “피해자도 정리하고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라며 “아내도 언제까지 내가 이곳에 메달리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애들은 집에 있는 아내 유품만 봐도 울컥 한다고 한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그는 “아직도 배보상을 위해 싸우는 피해자들이 많다. 참사에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기업이라면 빠른 피해 배보상을 위해 이제는 적극적으로 나설 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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