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평법,잘 쓰면 약이 된다]vs[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울 화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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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평법,잘 쓰면 약이 된다]vs[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울 화평법]

최예용 0 6234

경향신문 2013년 9월9일자 기고글

박광식 동덕여대 약학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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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 약칭 화평법이 요즘 화평(和平)하지 않은 것 같다. “화평법 시행 땐 한국서 R&D 못한다”, “제조 기반 뿌리째 흔드는 화평법” 등 산업계의 걱정이 자못 거세다. 과연 그런가? 실상을 알려면 입법 취지와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화평법은 국내 시장에서 유통되는 화학물질의 유해성 정보를 확보해서 안전하게 사용하기 위해 추진했다. 동시에 유엔, OECD 등의 국제기구와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 화학물질 관리강화 추세에 대한 국내 기업들의 대응능력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화평법의 원조 격인 EU의 신화학물질관리제도(REACH)가 시행된 이후 ‘No Data No Market’은 국제무대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맞춰 미국, 일본, 호주 등 선진국뿐만 아니라 중국, 대만 등 개도국들도 자국 내에서 제조·수입되고 있는 화학물질 안전성 정보를 확보하기 위해 관련 제도를 개편하고 있다. 특히 화학산업 판매액 세계 1위인 중국은 모든 신규화학물질에 대해 신고하도록 함으로써 중국으로 수입되는 신규화학물질의 정보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의 주요 교역국인 미국, EU, 중국 등으로 화학물질을 수출하려면 해당 화학물질의 정보를 생산해 제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수출길이 막힐 수도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화학물질 정보 구축이 기업 경쟁력의 한 요인이 될 것이 분명하다. 국내 기업들은 화학물질의 판로 확보를 위해 신뢰성 있는 정보 확보가 중요한 과제가 된 만큼 화학물질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산업계의 R&D 전략 역시 화학물질 성능뿐만 아니라 화학물질 정보의 체계적인 관리에 맞춰져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화학물질 유통구조를 보면 아직까지 국내 제조보다는 수입되는 물질이 더 많다. 2010년도 화학물질 유통량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수입되는 화학물질 수는 1만1000여종으로 수출되는 물질보다 2.1배나 많다. 수입량도 약 2억3000만t으로 수출량의 2.6배에 이른다. 다품종 소량 신규화학물질을 많이 취급하는 정밀화학분야는 수입액 162억달러, 수출액 80억달러 규모로 만성적인 무역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수천, 수만종의 신규화학물질이 아무런 정보도 없이 국내로 유입되고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만에 하나라도 발암물질이나 유독물질이 포함돼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가습기살균제 사고의 악몽이 떠오른다. 국내 시장에 유통되고 있는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조차 확인되지 않는다면 제2의 가습기살균제 사고를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당장은 버거울 수도 있지만, 긴 안목에서 국제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 기업들은 화평법을 활용해 새로운 경영의 틀을 짜야 할 때다. 고부가가치를 지닌 신규화학물질을 수입에 의존하기보다는 자체 개발에 힘쓰는 한편 안전 관련 정보의 확보에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또한 유해화학물질을 대체할 친환경 화학물질 개발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국가 전체적으로도 녹색 화학(Green Chemical) 분야의 신규 시장을 창출하는 데 화평법이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 화평법은 잘 활용하면 국내 산업계에 약(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남은 과제는 정부와 산업계가 머리를 맞대고 하위법령을 잘 만드는 일이다. 정부는 오늘 여러 이해 관계자가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해 올해 말까지 하위법령안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민안전과 산업계 경쟁력 제고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슬기로운 제도가 도출되기를 바란다. 그리해 제2의 가습기살균제 사고나 화학사고 걱정없이 모든 국민이 ‘화평’해지는 세상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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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의 입장과 대비되는 글로 동아일보 2013년 9월10일자 사설입니다.

[사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울 화학물질등록법

2015년부터 시행할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화평법)’에 따르면 신규 화학물질은 모두, 기존 화학물질은 연간 1t 이상 제조할 경우 환경부에 반드시 등록해야 한다. 제조 및 수입량이 연간 100t 이상일 경우 위해성(危害性) 평가도 받아야 한다. 지난해 9월 정부가 발의한 화평법은 신규 또는 기존 화학물질을 연간 1t 이상 제조하거나 수입할 경우에만 등록할 것을 의무화했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신규 화학물질까지 모두 환경부에 등록하도록 바뀌었다.

화학물질을 엄격하게 다뤄야 한다는 데 이의는 없다.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의 불산 누출사고와 LG화학 청주공장의 유기용제 폭발사고, SK하이닉스의 염소가스 누출사고, LG실트론의 불산혼합액 누출 사고, 포스코 고열 코크스(고체연료) 유출 사고를 되돌아보면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4월에 국회를 통과한 화평법은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화평법의 모델인 유럽연합(EU)에서도 연간 1t 이하의 신규 화학물질은 등록을 면제하고 있다. 그동안 국내에서 연간 사용량이 0.1t 이하이거나 연구개발(R&D)에 쓰는 신규 화학물질은 등록을 면제했지만 화평법에 따르면 모두 등록해야 한다. 지난해 수입량이 연간 0.1t 이하여서 등록을 면제한 건수는 3만5000여 건이다. 화평법은 모든 화학물질을 위해물질로 간주하는 것이어서 기업이 불평할 만하다. 신규 화학물질을 등록하려면 보고서 준비에 8∼11개월이 걸리고 비용도 만만찮다고 한다. 기업 비밀이 노출될 우려도 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그제 인천지역 중소·중견기업을 방문한 자리에서 “환경분야의 불합리한 규제가 기업 활동에 애로를 초래해서는 안 된다”며 시행령에 재계의 우려를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국회 법안 처리 때는 미적대다가 뒤늦게 기업 달래기에 나서는 듯해 미덥지 못하다.

현대경제연구원이 그제 발표한 ‘미일 제조업경쟁력 강화전략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2011년 2분기 이후 여덟 분기째 미국 제조업 수익성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런저런 규제로 기업 활동을 옭아매면 경제가 힘들어진다. 화평법도 취지는 살리되 기업을 옥죄는 규정은 현실에 맞게 고쳐야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잘못을 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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