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울리는 고래관광선, 이걸 기대한 게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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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울리는 고래관광선, 이걸 기대한 게 아닌데

이희경 0 6056

[2013 전국투어 - 대구경북울산⑩] 생태관광으로 바꾸면 어떨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2013. 08. 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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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10월 5일 오전 울산 장생포 앞바다에서 목격된 참돌고래떼

고래소설로 널리 알려진 허먼 멜빌의 <백경>과 송창식의 <고래사냥>, 울산의 고래관광에는 고래가 있을까?

<백경>은 대표적인 고래소설이다. 실은 '모비 딕'이라는 거대한 흰 고래에게 한쪽 다리를 잃은 에이햄의 복수담인데, 한때는 <백경>이 자연과학으로 분류된 적도 있다고 한다. 소설에는 부분적으로 고래에 관한 내용이 나오긴 한다. 하지만 기껏해야 고래 뼈, 고래수염, 신화 속 고래이야기, 고래 해부 그림 등이다. <백경>은 고래가 주인공이라기보다는 고래를 쫓는 이상 인물에 초점이 맞춰진 소설이다. 그렇다면 울산 고래관광에는 고래가 있을까?

울산 고래관광의 시작

2005년 울산에서 제57차 국제포경위원회가 개최된 기간이었다.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는 우리나라도 고래관광을 해보자고 울산 지방자치단체와 어민들에게 심포지엄을 통해 공개 제안했다.

처음엔 불법으로 고래를 잡아오던 어민들에게 "외국에서는 고래를 잡지 않고 보는 관광이 시작됐고, 세계적으로 60여 국가에서 고래 보는 관광으로 포경보다 많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알리면서 고래관광 비전을 설명했다. 그렇게 설득하면서 지자체와 함께 고래관광을 준비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애초의 계획과는 다른 형태로 고래관광 사업은 지자체 주도의 시범사업으로 출발했다. 울산광역시 남구청은 지난 2009년부터 어선을 고친 고래바다여행선(승선 정원 107명)을 운영하다 2013년 들어 550t급 크루즈선(정원 394명)을 도입해 지난 4월 6일부터 고래관광을 시행하고 있다. 환경운동연합이 고래관광을 하자고 제안하였을 때의 취지는 일반적인 관광이 아니라 고래생태관광이었다.   

고래생태관광은 고래를 '먹는' 생선이 아닌 인간과 '교감'하는 동물이라는 점을 강조해 사람들의 생태 감수성을 높이는 게 주요 취지였다. 또 고래의 신비한 생태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멸종위기에 처한 고래를 보호하는 시민의식을 고양시키는 프로그램이다.   

게다가 고래잡이가 금지된 지금도 불법으로 고래를 잡는 사람들을 고래관광으로 유도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지금도 해경의 지도단속에도 전국에서 30여 선단이 불법 포경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나돈다.

어쨌든 결론적으로 울산은 고래를 잡고, 먹고, 사고, 팔고, 관광 상품으로도 이용하는 전국유일의 도시가 되었다.   

현재 남구청은 66억8000만 원을 들여 구입한 550톤 급 고래 크루즈선을 주5일 운항한다. 크루즈선에서는 뷔페, 공연장, 노래방 등 편의시설이 있으며 디너크루즈, 비어파티, 커플데이 등 이벤트를 한다고 한다.  

<백경>에 고래이야기가 별로 없는 것처럼, 울산의 고래관광도 실은 바다유람선에 가깝다. 크루즈선에 고래 관련 사진 붙어 있고, 고래에 대한 설명이 일부 곁들여지긴 하지만 말이다.  

'쇼' 펼쳐지는 고래관광선, 괜찮을까?

이런 고래바다여행선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은 '7080쇼'이다. 바다를 보다 지치면 선내에 들어와 '7080쇼'를 보다가 어느 순간 즉석 노래방이 펼쳐지기도 한다. 춤추고 노래 부르는데 흥겹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고래생태관광을 기대하고 배를 탄 사람들은 당황스럽다. 노래공연 소리를 불편하게 여기는 시민도 많다. 배 안 어느 곳에서도 들리는 노래공연 소리에 고래가 놀라 도망갈 지경이라고 꼬집는 사람도 있다.  

오전 10시 출항해 오후 1시까지 운항하는 고래바다여행선에서 이뤄지는 프로그램은 크게 세 가지다.(매주 화~목요일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한 차례 운항한다. 토요일엔 오후 1~4시와 7~9시, 일요일엔 오전 10시~오후 1시와 오후 2시 30분~5시 30분 각각 두 차례씩 운항한다)

일단, 고래문화 해설사가 울산의 고래문화와 역사, 생태에 대해 이야기한다. 30분 가량 설명하면 울산에서 활동하는 가수와 연주자들이 공연을 펼친다. 공연을 마치면 승선객들은 대부분 갑판에 나와 고래가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울산 앞바다의 고래 출현율은 시기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평균 30%에 이른다고 한다. 세계의 고래관광지와 비교해 봐도 조건이 나쁘지는 않다. 앞으로 얼마든지 고래관광이 확대될 수 있는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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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큐멘터리 영화 <더 코브>의 스틸컷.

오히려 고래관광이 늘어 고래보호에 역행하는 결과가 나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고래고기식당과 연결돼 고래고기를 홍보하고 불법 고래잡이를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하거나, 고래관광선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고래를 위협하는 시끄러운 소리나 음파가 발생할 수 있다. 또 고래가 선박에 부딪혀 다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고래관광을 처음 생각했을 때, 고래생태관광의 모습과 흡사한 것은 울산시의 고래조사선이었다. 울산시는 고래관광을 시작하기 전 몇 년부터, 주1회 이상 어업지도선을 이용해 울산 앞바다의 고래관광 가능성을 알아보는 고래 개체수와 이동경로 등을 조사해왔다. 고래관광에 관심 있는 많은 사람이 어업지도선에 함께 타 고래생태계와 바다, 고래관광에 관한 의견을 교환하곤 했다.

기자도 어업지도선에 몇 번 올랐다. 울산항을 출발해 두어 시간 달려 연안을 벗어나면 어업지도선에 탑승한 모든 사람들은 집중하여 고래를 찾기 시작했다. 이른바 목시조사이다.  망망대해에서 몇 초 정도 짧게 숨 쉬러 올라오는 고래를 발견하는 일은 특별한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면 하기 힘들다. 회유동물 고래가 잘 나타나지 않을 때 말이다.

깊은 산속에서 산삼을 발견하면 "심봤다!"라고 외친다. 망망대해에서 고래를 발견하는 일도 산삼을 발견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고래를 보면 부자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발견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울산에서 시인 정일근과 몇 번 고래조사를 함께 나갔었는데, 신기하게 시인은 고래를 가장 먼저 발견하곤 했다. 필자는 시인이 고래를 부르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고래는 포유류다. 아가미 대신 콧구멍(분기공)을 통해 폐로 숨을 쉰다. 물속에 있을 때는 분기공이 밸브처럼 잠겨 있지만, 폐로 호흡을 하기 때문에 종종 물 밖으로 나와야 한다. 폐 속의 공기를 바꾸기 위해 수면으로 뛰어 오르는 행동, 일명 '고래뛰기'를 하면서 콧구멍 안에 있는 물과 기도에 있는 거품을 공기중으로 내뱉는다.

고래생태관광, 불가능한 이야기 아니다

이때 큰 소리가 멀리까지 들리거나, 물기둥이 보이기도 한다. 고래의 종류에 따라 콧구멍 모양이 다르기에 물기둥의 모양과 높이도 다르다. 그래서 물기둥을 보고 고래의 종류까지 구별할 수 있다. 물론 고래 조사에 능숙한 사람의 경우에 한해서이다. 

고래관광 경험이 많은 호주나 대만, 일본에서는 대부분 20~30명 규모로 관경선을 운영한다. 하지만 유람선처럼 시끄럽게 고래관광을 하지 않는다. 기자는 고래를 사고, 팔고 ,먹지 않는 대만에서 고래관광을 한 경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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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큐멘터리 영화 <더 코브>의 한 장면

 

기상상태가 좋지 않아 배 멀미와 파도에 옷이 흠뻑 젖었지만 바다와 고래에 관한 열정적인 해설을 통해 생태관광 욕구가 충족되었다. 애초 생태관광을 떠났으니 고래를 보지 못했어도 만족도는 나쁘지 않았다.  

사람들이 관광을 하는 주요 목적은 현실을 떠나 자연생태계를 관찰하고 야외에서 휴식을 통해 재충전을 하는 것이다. 한때는 일부의 전유물이었던 관광도 이젠 누구나 즐기고, 그만큼 자연생태계가 훼손되는 일이 많아졌다. 이런 탓에 생태관광 필요성이 생겼다.  

생태관광은 휴식과 새로운 자연환경을 즐기면서, 해당 지역의 환경을 해치지 않는다. 또 지역민의 삶이나 문화, 정서를 파괴하거나 방해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일반 관광의 부정적인 측면을 보완하는 역할도 한다.

제주 올레길 걷기, 자전거여행, 생태문화기행, 역사기행, 템플스테이 등은 생태관광의 좋은 사례이다. 생태관광은 자연스럽게 생태계를 보호하는 마음을 갖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봄에서 가을, 고래가 우리나라를 회유하는 기간에 고래 생태관광을 떠나고 싶다. 제돌이가 돌아간 제주 김녕항 어디쯤에서 고래를 만나고 싶어진다. 굳이 멀리가지 않더라도 내가 활동하는 울산에서 고래를 만나고 싶다. 울산의 고래관광, 생태적인 모습으로 바뀌길 희망한다.

 

 

울산 남구청 "고래만 자주 출몰하면..."

 

고래바다 여행선을 운영하는 울산 남구청의 고민도 깊었다. 남구청 고래정책과의 한 관계자는 "고래는 회유동물이어서 배를 띄운다고 늘 볼 수 있는 게 아니다"며 "여행선을 3시간 운항하는데, 고래가 없을 때 승객이 지루해 하기 때문에 간단한 '쇼'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울산 지역 가수 등이 나와 노래와 연주를 하는데, 사람들에 따라서 호불호가 갈린다"며 "그렇다고 고래바다 여행선이 유람선처럼 춤추고 노래하는 곳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또 이 관계자는 "여행선에 고래해설사가 고래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을 하고 동영상도 틀어주는데, 너무 교육적으로만 하면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글을 쓴 오영애 기자는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 부위원장이면서 울산환경운동연합 정책실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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