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가족이 죄를 지어 벌을 받은게 아니다, 우리도 우연히 살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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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가족이 죄를 지어 벌을 받은게 아니다, 우리도 우연히 살아 남았다

최예용 0 3210

 


피해신고 4486명, 사망자 113명. 하지만 정부의 피해 인정자는 258명(5.8%). 미신고 잠재 피해자 수는 추산 불가(8월말 기준).
 가습기 살균제 피해사건은 현대 사회에서 발생하리라 예상치 못했던 처참한 제도적 실패다. 2006년 서울 대형병원 소아중환자실에 원인 미상 환자 발생 이후 진상규명에만 약 6년이 소요됐고, 관리·통제권한을 갖고 있는 정부는 주도권을 상실했다. 옥시 레킷벤키저를 비롯한 제작·유통기업에 대해선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법 외에도 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들이 있다. 윤리와 상식, 양심, 합리적 판단과 사명감 등 사회를 지탱하던 많은 규범은 그 존재가 희미해졌다. 그리고 많은 정치·사회적 사건이 오로지, 절대기준이 돼버린 법대 앞으로만 달려가고 있다.
 법과 합리적 의심 사이를 파헤치던 국회 ‘가습기살균제 사고 진상규명과 피해구제 및 재발방지 대책마련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가습기 특위)의 90일간 활동이 종료됐다. 여야는 활동 연장 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절벽 같은 난항이 거듭되고 있다.

 특위 활동을 통해 비로소 국민을 보호해야할 정부가 법 뒤에 주저앉아 책임을 회피하는 광경이 드러났다. 아이가 기침을 할수록 건조한 방을 염려하며 가습기를 틀었던 헌신은 지금 부모를 지옥 같은 현실에 밀어 넣은 자책이 됐다. 피해자들이 잘못한 게 단 하나라도 있다면 현실은 이렇게까지 비극은 아니었을 것이다. 

 모든 곳이 관제(官製) 투성이지만 정작 필요한 관제는 없었다 


 7월25일부터 이틀간 특위는 환경부, 고용노동부, 보건복지부 등 11개 국가 기관에 대한 현장조사를 실시했다. 특위와 정부 부처와의 문답에는 오로지 법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직무 유기’가 드러나 있다. 국가가 국민을 보호할 것이란 원초적 믿음은 합리적 의심을 마주하게 된다. 

 환경부는 살균제 피해가 2011년이 돼서야 밝혀진 이유에 대해선 “병원에서 먼저 제기됐고, 질병관리본부 등 보고 절차를 거치며 환경부가 조기발견 못한 부분이 있었다”고 했다. 절차적 문제다. 
 PGH의 경우 스프레이·에어졸 형태 사용 신고에도 불구하고 흡입 독성 실험을 하지 않은 데 대해 “스프레이 부분은 작업장 사용 환경이라 고용노동부 소관”이라고 했다. ‘나와바리(담당부서)’ 문제다. 
 그리고 고용부는 이에 대해 “당시 법령상 독성시험성적서 제출 의무가 규정돼있지 않았다”고 답했다. 환경부는 또 2005년부터 PGH가 가습기에 살균제 원료 물질로 쓰이는 것을 알지 않았느냐는 추궁엔 “당시 법규상 신규 화학물질만 유해성 심사를 하게 돼있었다. 모두 기존에 있던 물질이어서 재심사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각지대란 의미다.

 난맥상은 현장조사 내내 지겨울 정도로 반복된다. PHMG와 PGH는 15년 사이 가습기 살균제로 용도가 변경됐지만 모니터링이나 실태조사가 없었다. 이에 환경부는 “과다한 (화학물질) 종류, 관리체계의 부재 등이 원인”이라고 인정했다. 노출 경로가 달라지면 독성이 달라진 다는 것은 독성학의 기본 상식이다. 하지만 환경부는 2001·2003년 카페트 향균제 용도로 쓰였더라도 가습기살균제로 용도가 변경되면 유독성 검사를 다시 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엔 “절차상 재심사 과정이 없었다”고 했다.
 이에 국가의 제도미비에 따른 책임이 아니냐는 추궁이 이어진다. 환경부는 “EU도 2007년 신화학물질 관리제도(REACH)가 도입된 이후에 재심사를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선진국에서도 그 부분을 재심사할 수 있는 제도가 없었다”고 답했다.

 PHMG가 들어간 세정제도 KC마크를 받았다. 국가가 안전하다고 인정했다는 의미다. 하지만 산업통상자원부는 “책임문제는 사법적 판단이 나오면 따라가겠다. 다만 당시 해당 성분은 위해물질로 지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위해성 여부를 확인하지 못하고 KC마크를 부여했다”고 답했다. 위해성 여부를 확인하지 못했는데 KC마크를 부여했다는 건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다. 행정편의주의다.
 특위는 “위니아만도 세정제 사용설명서에는 물에 타서 흡입하는 형태로 돼있다. 씻어내는 용도의 세정제를 흡입하게 기재돼있으면 (검사를) 검토해야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산자부는 “2011년 보건복지부 발표 이후 가습기 세정제로 신고된 제품을 조사해, 살균제로 사용된 6개 제품에 대해선 KC마크를 취소했다”고 말했다. 

 2007년 KC마크를 받은 코스트코의 ‘가습기 클린업’도 피해를 일으켰다. 책임은? “사법 판단 결과를 수용하겠다”는 산자부 답이 돌아온다. 생활화학 가정용품에 대한 안전관리가 미흡했다는 지적에 산자부는 “사후관리가 미흡했다는 부분을 인정한다”고도 했다.
 그럼 소비자 입장에서 제품에 포함된 화학물질 위해성을 어떻게 확인해야 할까. 산자부는 “기본적으로 제조업체에 확인해야 한다. 두 번째로 KC마크를 부여한 시험검사원에 확인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런 일을 하라고 정부가 있을 텐데…. 특위는 “세정제라도 흡입한다는 제품 설명이 있으면 독성 실험을 하거나, 제품검토 후 KC마크를 부여하지 않아야하는데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국무조정실은 8월16일 특위 기관보고에서 주무부처 선정에만 2년이 소요됐다는 지적에 “미흡한 점이 있다”고, 부처 이기주의와 칸막이 부작용에 대해선 “일부 그런 측면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국가의 헌법적 의무를 다하지 못한 데 대해선 “당시 기술과 제도 수준이 부족한 점이 있었다는 점에 대해서 안타깝게 생각한다. 도의적인 측면에서 일정 부분 책임을 느끼고 있어 최대한 지원하도록 노력하겠다”며 명시적 사과를 거부했다. 현 정부 들어 세상 곳곳이 다 관제 투성이인데, 정작 필요한 관제는 오작동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임모 군이 지난 7월26일 오전 경기도 과천법무부에서 열린 가습기 특위 현장조사에 산소호흡기를 착용한 채 참석했다. 뉴시스



 검찰은 공무원 수사를 하고는 있다 


 이런 비극의 원인 중 하나는 사회의 다른 규범이 무너지고 법만 남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찰 수사는 공무원 앞에 일단 멈춰서 있는 상태다. 

 7월26일까지 검찰은 가습기살균제 개발·제조·판매업체 임직원 등 13명을 구속기소하고 9명(3개 법인 포함)을 불구속 기소했다. 구체적으로 ‘옥시싹싹 가습기 당번’을 판매해 73명 사상, 108명 상해를 입힌 혐의(업무상과실치상) 등으로 옥시 전 대표 신모(68)씨를 비롯해 옥시 관련자 8명이 기소됐다. 롯데마트 및 홈플러스 관련자가 각각 5명, 세퓨 관련자가 2명이다. 이와 별도로 옥시 제품의 안전성 실험을 조작한 서울대 조모(56)교수와 호서대 유모(60) 교수가 각각 기소됐다.

 하지만 정부 관계자는 아직 한명도 사법처리 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현장 조사에서 “정부 부처가 혐의가 없다고 단정한 적이 없다. 지금 단계에서 정부 각 기관의 과거 대응에 혹시 문제는 없었는지를 광범위하게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1997년 유공 제품의 유해성 조사결과 및 경구 독성 확인 사실을 관보에 공표하지 않은 고용부에 대해서도 “고용부 등 여러 부처의 관계 공무원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답했다. 이어 “여러 부서나 기관이 연관된 부분을 명확히 해 수사를 마무리하겠다”고 답했다. 2012년 고발장을 접수한 검찰은 뒷북수사, 공무원 봐주기 수사 의혹을 받았다. 
 검찰은 여러 가지 논란 끝에 안타깝게 국민적 신뢰를 상당부분 잃었다. 하지만 검찰은 여전히 거대 사회악을 처리하는 마지막 보루다. 


지난 4일 가습기 특위 마지막 전체회의가 열리던 날 전 피해자 가족(오른쪽)이 우원식 특위 위원장(더민주)을 만나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시스 



 우리는 이 사태를 이야기해야 한다 


 검찰 수사와 별개로 이 사건을 파헤치던 국회 가습기 특위는 활동 기한이 종료됐다. 여야는 연장 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입장차가 너무 크다. 특히 재발방지 방안이 쟁점이 됐다. 

 야당 특위위원은 살균제 사건을 계기로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정부가 강력하게 반대하는 사안이다. 이에 새누리당은 특위 활동을 종료하고 각 상임위별로 이를 조율하자는 입장이다.

 이면에는 입법 주체로서의 특위에 대한 부담감이 있다. 특위는 살균제 피해자와 관심 있는 국민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새누리당으로선 특위 활동 내에서 입법을 반대할 경우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상임위로 쪼개 선별적 후속조치에 나서는 게 좋다고 판단한 것이다. 살균제 피해와는 별도로 이들 제도에 대해선 찬반 양론이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반면 야당으로선 이 경우 대부분 사안이 지연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살균제 후속조치 또한 정쟁의 소재로 작용하거나, 다른 정쟁에 밀려 찬물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피해자 보상도 문제다. 정부의 3·4등급 피해자 지원 여부 결정은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대안으로 특위는 가해기업 협의회를 만들어 피해 보상을 하도록 주선했다. 현재 2차 회의까지 마친 협의회는 다음 주 3차 회의를 열고 기업별 피해 분담 규모 등을 확정할 예정이지만, 주체가 사라져버렸다. 이건 앞으로 펼쳐질 난맥상의 일부에 불과하다.

 상황을 종합해보면 후속 조치 마련까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피해 가족들이 자책의 늪에서 빠져나와 사회에 복귀할 때 까지 우리는 가습기 사태를 이야기해야 한다. 피해 가족들이 죄를 지어 벌을 받은 게 아닌 것처럼, 우리도 상을 받아 살아남은 게 아니다. 우리도 우연히 살아남았다.  


국민일보 강준구 기자의 정치탐구, 2016년 10월 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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