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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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석 칼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의 눈물

최예용 0 4870

<최재석 칼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의 눈물


연합뉴스 2016 4 15

 

(서울=연합뉴스) 최재석 논설위원 = 요란한 정치의 시간은 일단 끝났다. 선거 결과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다. 여기저기서 자책도 하고 희망도 말한다. 정치 변화를 확신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경험칙상 변화가 그렇게 쉽게 오는 게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이런 얘기로 갑론을박도 잠깐일 것이다. 우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여러 문제와 마주해야 한다.

 

이른바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도 그중 한 문제다.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가습기가 청결하지 않으면 오히려 몸에 해롭다는 말을 믿고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다가 목숨을 잃거나 폐를 크게 다친 일이다. 누구나 동네 슈퍼마켓에서 쉽게 살 수 있는 생활용품이 빚은 참사였다.

 

사건은 발생한 지 5년이 됐지만 아직 진행형이다. 그나마 최근 검찰 수사가 뒤늦게 본격화해 다시 한 번 언론의 관심을 받는다. 그동안 대부분 사람의 기억 속에서 이 사건은 사라졌다. 문제가 해결된 줄 알았다. 그간 피해자 가족들의 눈물은 마르지 않았다. 피해 보상과 가해 기업의 사과 및 정당한 처벌을 요구하는 그들의 몸부림은 외로웠다.

2011년 4∼5월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 중환자실에는 출산 전후 20~30대 임산부 7명과 40대 남성 1명이 입원했다. 이들은 원인 불명의 폐 질환으로 고통을 호소했고 이 중 임산부 4명이 숨졌다. 그해 8월 질병관리본부는 사망한 산모들의 폐 손상이 가습기 살균제 때문으로 추정된다는 역학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게 사건의 시작이었다. 가습기 살균제 제품은 그해 11월 수거됐고 판매가 중단됐다. 그 이후론 추가 피해자가 보고되지 않았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피해자들은 주장한다. 지금까지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고 유통한 기업들은 사과하지 않고 있다. 당연히 보상도 없었다. 국가는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이라고 발표해 놓고도 그 책임을 묻지 않고 있다. 가해 기업에 대한 정당한 처벌은 이뤄지지 않았다.

 

피해자들은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는데 사건이 세상에서 잊힐까 두려웠다고 했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를 썼다가 임신 중이던 부인과 태아를 잃은 안성우 씨는 지난해 11월 10박 11일간 도보와 자전거로 전국을 돌며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알리는 캠페인을 했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말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많이 기억해주실 때 힘이 나요. 그런데 대부분 사건이 잘 정리된 줄 아시더라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가해 기업은 피해자에게 사과하지 않았어요."

 

가습기 살균제는 가습기 내의 물에 첨가해 미생물 번식과 물 때를 예방할 목적으로 1994년 처음 국내에 출시됐다. 20여 종 제품이 연간 60여 만개 팔렸다. 당초 카펫 항균제 등의 용도로 출시된 화학물질이 가습기 살균제 원료물질로 사용됐고, 2009년부터 2011년 사이 제품 소비가 크게 늘었을 때 다수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정부가 2014년 두 차례 실시한 피해 신고 접수 당시 피해 인정 신청을 한 사람은 530명이며 그중 사망자는 143명이었다. 정부는 현재까지 530명 중 221명에게 피해 보상 결정을 했다. 지난해 4∼12월 3차 피해 신고에 접수된 인원은 700여 명에 달한다. 현재 진행 중인 당국의 심사가 끝나면 피해 인정자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이 사건은 지금까지 드러난 피해자들뿐 아니라 누구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환경보건시민센터에 따르면 가습기 살균제 제품은 1994년 처음 출시돼 2011년 판매가 금지될 때까지 17년간 800만 명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피해가 컸던 '옥시싹싹 가습기 당번' 제품은 12년간 453만 개가 팔렸다고 한다.

 

우리 집엔 1995년생과 1998년생 두 아이가 있다. 지난해 말 한 공중파 방송이 이 사건을 심층적으로 다뤘던 시사고발 프로그램을 최근 다시 한 번 본 아내는 자책했다. 애들이 어릴 때 가습기 살균제를 몇 번 사용한 적이 있었다고. 그때 바쁘고 게을러서 자주 사용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고 했다. 생각하면 섬뜩하다.

 

피해자 가족 가운데 특히 자녀를 잃은 부모는 의문의 폐 질환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극도의 죄책감에 시달린다. '인체에 무해하다'는 표시만 믿고 결국 아이를 자신이 죽게 했다는 괴로움이다. 그런 제품 판매를 허가한 정부를 원망할 수밖에 없다. 지금 검찰은 전담수사팀까지 꾸려 수사에 적극적으로 나선 모양새지만 당국의 수사는 늦어도 너무 늦었다.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란 말이 새삼스럽게 들린다. 피해자 가족들은 2012년 8월 업체들을 형사 고발했지만 검찰과 경찰은 그동안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 4년을 끌어온 수사가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성과를 내기 바란다.

 

우린 이 사건을 기억해야 한다. 검찰 수사도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자. 그래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는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도 사건이 잊히는 걸 두려워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동안 언론은 이 사건을 너무나 평면적으로만 보도하지 않았던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나 또한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고백한다.


연합뉴스 02-398-3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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