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 억울한 약자 눈물 닦아주는 검찰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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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 억울한 약자 눈물 닦아주는 검찰 수사

최예용 0 3948

동아일보 2016 3 23 ​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둘이 걸어요….”

올해도 봄을 알리는 노래 ‘벚꽃엔딩’이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따스한 봄기운이 밀려온 지난 주말 어린아이들 손을 잡고 야외로 나온 엄마 아빠들, 젊은 연인들 표정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대단한 사람들의 특별한 호사가 아니다. 연애하고 결혼해 아이 낳고 사는 보통의 시민들이 누린 소박한 봄날의 행복이었다.

최승영 씨도 가습기 살균제 사용으로 7년 전 아내를 저세상으로 떠나보내지만 않았어도 두 딸과 함께 아름다운 봄을 맞았을 것이다. 안성우 씨도 가습기 살균제로 아내와 7개월 된 배 속 아이를 한꺼번에 잃지 않았다면 지금 봄볕 아래서 가족 나들이를 하고 있을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는 작은 행복을 꿈꾸던 이들의 삶을 무참히 파괴했다.  

대형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우리나라에 억울한 죽음이 많다지만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만큼 원통한 일이 또 있을까. 아내와 아기의 건강을 위해 사용한 가습기 살균제가 가족의 생명을 앗아간 독약이 돼버렸다. 23개월 된 아들을 떠나보낸 한 엄마는 살균제를 넣은 가습기를 사용해 아기의 기침이 심해지자 건조한 것으로 잘못 알고 가습기를 아기 얼굴에 더 가까이 댔다가 나중에 가슴을 쳐야 했다.  

애통함은 가족을 잃은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143명의 산모와 영유아가 폐 손상으로 사망했지만 옥시레킷벤키저,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들은 지금까지 배상은커녕 공식 사과 한마디 내놓지 않고 있다. 

지친 피해자들은 검찰 수사에 한 가닥 기대를 걸고 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이영렬 검사장의 지시로 형사2부 검사 6명 전원을 투입해 특별수사팀을 구성하고 강도 높게 수사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를 압수수색하고 옥시레킷벤키저, 롯데마트, 홈플러스, SK케미칼의 전현직 임원 등 핵심 관련자 30여 명을 출국금지하면서 수사를 전방위로 확대하고 있다. 

검찰의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 수사는 ‘결과’ 못지않게 수사 자체가 지닌 ‘의미’가 남다르다. 재벌 기업이나 정권 실세 등 거물급 비리를 주로 밝혀내는 특수부 수사보다 스포트라이트를 덜 받기는 하지만, 무고한 국민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고 노력한다는 점에서 진정 국민을 위한 수사로 기록될 만하다.

그간 사건 사고가 빈발한 우리나라에선 ‘죽은 사람만 억울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국민을 보호하는 정부의 자세가 미온적인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번에도 정부가 일부 피해자에게 의료비와 장례금을 지급했지만 아직 역부족이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가족을 사랑하고 극진하게 보살핀 죄밖에 없는 착한 시민이다. 돈도 백도 없는 약자들이다.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이번 수사는 검찰의 본분을 담은 ‘검사선서’를 충실하게 실천하고 있는 모범이다.  

 
‘나는 이 순간 국가와 국민의 부름을 받고 영광스러운 대한민국 검사의 직에 나섭니다. 나는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 있는 검사,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따뜻한 검사, 스스로 더 엄격한 바른 검사로서, 혼신의 힘을 기울여 국민을 섬기고 국가에 봉사할 것을 나의 명예를 걸고 굳게 다짐합니다.’

국민의 생명이야 어찌 되든 돈에 눈이 먼 일부 기업의 범죄적 경영 행태도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검사의 용기’로 엄중히 처벌해 주기를 국민은 기대한다. 피해자 가슴에 사무친 한(恨)을 풀고 최소한의 정의를 세울 수 있느냐가 검찰의 어깨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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