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한국사회] 기업은 왜 뻔뻔한가?

오피니언
홈 > 정보마당 > 오피니언
오피니언

[야! 한국사회] 기업은 왜 뻔뻔한가?

최예용 0 3254
옥시레킷벤키저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의 최대 가해 기업이다. 이 회사에서 만든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고 폐질환을 얻어 사망한 사람만 100명에 달한다(이것은 1, 2차 조사 결과이고, 3차 조사에서 추가로 집계된 사망자까지 합치면 더 많을 것이다).
 
한 시민단체가 진행한 온라인 투표에서 이 기업은 ‘최악의 살인기업’ 2위에 선정되기도 했다(1위는 세월호 참사를 일으킨 청해진해운이다). 하지만 옥시레킷벤키저 코리아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사과나 반성의 메시지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자기네 회사가 얼마나 자연을 사랑하며 소비자의 건강을 생각하는지 자랑스럽게 선전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뻔뻔함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기업의 경제학>(원제는 ‘The Corporation’이고 다큐멘터리로도 제작되었다)을 쓴 법학자 조엘 바칸에 따르면, 뻔뻔함은 기업의 본질적 속성이다. 기업의 행동방식은 사이코패스와 유사하다. 기업은 무책임하고, 모든 것을 조작하려 하고, 과대망상에 빠져 있고(언제나 자사가 1위이고 최고라고 주장한다), 배려가 부족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으며, 사람들을 피상적으로 대한다. 이것은 모두 사이코패스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사이코패스는 매력적인 가면으로 위험한 자아를 감추는 능력이 뛰어난데, 기업도 마찬가지다. 기업은 광고를 통해 멋진 이미지로 자신을 포장한다. ‘또 하나의 가족’,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기업’, ‘환경보호에 앞장서는 기업’ 등등. 하지만 기업은 실제로는 자본, 즉 자기 증식을 꾀하는 화폐에 지나지 않는다. 돈에 영혼 따위가 있을 리 없다.

 

문제는 기업이 법적으로 엄연하게 ‘인격’(legal personality)을 부여받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은 주주나 경영자와는 분리된 독립된 인격으로서, 실제 사람처럼 자기 이름으로 사업을 벌이고, 자산을 취득하고, 근로자를 고용하고, 세금을 내고, 권리를 주장하거나 법정에 갈 수 있다. 행위의 주체가 기업이기 때문에, 무언가 잘못되었을 때 책임을 지는 것 역시 기업이다. 하지만 기업은 “지옥에 떨어뜨릴 영혼도, 교수형을 처할 몸도 없기에” 처벌하기가 쉽지 않다. 기업이 받는 가장 흔한 처벌이 벌금인데, 경영자의 입장에서 볼 때 벌금은 사업비용일 뿐이다.

 

기업은 어떻게 해서 ‘사람’의 지위를 얻게 된 것일까? 조합(partnership)이 일반적인 회사 형태였던 19세기 중반까지 투자자들은 투자 실패에 대해 무한한 책임을 져야 했다(회사가 도산하면 그 빚을 끝까지 갚아야 한다). 그래서 중산층을 주식시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투자한 금액만큼만 책임진다는 ‘유한책임’의 원칙이 도입된다. “주주에게서 기업 문제의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된 법률은 책임질 사람을 찾아내야 했다. 그래서 찾아낸 사람(person)은 기업 자체였다.”

 

회사법의 이러한 진화는 범죄를 저지른 기업 경영자들의 뻔뻔함과 자기분열적인 태도를 설명한다. 그들은 행위의 주체는 기업이지 자기들이 아니라고, 자기들은 기업이 그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도록 도왔을 뿐이라고 항변한다(기업 본연의 목적이란 물론 이윤추구이다).

 

 
그렇다면 기업의 횡포를 막는 것은 현행법상 불가능한 일일까? 조엘 바칸은 회사법에 ‘인가취소’ 조항이 있음을 환기시킨다. 애초에 기업 활동을 인가해준 것은 국가이다. 따라서 국가는 그것을 취소할 수도 있다. 인가취소 조항은 “기업은 국민이 인가한 기관이며, 국민에게 기업을 통제할 힘이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이제 이 힘을 사용할 때가 왔다.”

 

김현경 문화인류학자
 
김현경 문화인류학자
 
이 글은 2015년 12월22일자 한겨레신문에 실린 칼럼입니다.
0 Comments
시민환경보건센터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