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한국만 판매 허가 ‘가습기 살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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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한국만 판매 허가 ‘가습기 살균제’

최예용 0 4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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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15년 11월26일자 

 

아래는 기고문 원문입니다. 지면에는 일부 내용을 줄여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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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왜 테레비뉴스에 나와?”

엄마 때문에

엄마가 왜?”

생각 안나? 엄마가 그렇게 죽었잖아

아파서?”

그래, 일찍 자야 키 큰다

 

가습기살균제로 부인과 뱃속의 둘째를 잃은 아빠가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과 나눈 전화대화다. 이 아빠는 도보와 자전거로 지난 16일 부산을 출발해 울산과 대구, 대전 등 주요 도시를 거치며 아내와 아이의 목숨을 앗아간 살인제품을 만든 제조사를 처벌해 달라는 요구를 각 지역에 거주하는 피해자들과 함께 지방검찰청에 민원을 넣고 있다.

 

정부가 가습기살균제 제조사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자 피해자와 시민단체가 두 차례에 걸쳐 검찰에 형사사건으로 고소 고발했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발생한지 4년이 지나서야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자 철저하게 수사하여 살인죄로 단죄해 달라고 촉구하는 것이다.

 

2011 2월 갑작스런 호흡곤란으로 119 차에 실려 병원에 간지 일주일 만에 아내와 뱃속의 아이를 잃은 이 아빠는 그 해 8월말 보건복지부의 역학조사결과를 보도한 방송뉴스를 보고 집안을 뒤져 자신이 사다가 가습기 물통에 넣었던 세퓨라는 살균제를 찾아내고 망연자실했다. 자신의 손으로 아내를 죽인 거라는 충격과 죄책감에 시달리다 직장을 그만두고 충북 옥천의 작은 절에 부인과 아이를 모시고 2년간 곁을 지켰다. 아들의 폐도 딱딱하게 굳는 피해가 확인되었다. 이후 부산의 본가로 내려가 아들을 돌보며 살다 검찰이 4년만에 수사하고 있다는 소식과 정부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접수는 올해 연말까지만 받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항의행동을 결심했다.

사건초기부터 원인규명과 피해대책 활동을 돕던 필자가 동행하기로 했다. 검찰청 민원 이외에도 각 지역에 있는 롯데마트, 이마트 홈플러스와 같은 대형마트 앞에서 가습기살균제를 썼던 사용자와 피해자를 찾는 환경캠페인도 진행하고 있다. 이들 대형마트는 자체브랜드 피비상품으로 가습기살균제를 만들어 팔았고 제품을 사용한 다수의 소비자들도 사망과 폐질환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피해자를 낸 십여개의 가습기살균제 제조사들은 피해대책은커녕 단 한마디 사과도 하지 않고 있다. 평소 그들이 말하는 기업사회책임은 온데 간데 없다. 

지금까지 신고되어 확인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모두 530명이고 이중 사망자는 143명이다. 여기에는 이번 항의행동에 나선 아빠가 잃은 태아는 포함도 되지 않았다. 태아사망 피해가 10여건에 이르지만 정부는 태아사망과의 관련성이 확인되지 않았다며 피해대상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 엄마가 가습기살균제로 사망하면서 태아도 죽었거나 태어난 후에 폐질환이나 산소공급부족으로 뇌성마비를 앓는 경우도 있다. 건강한 사람도 살균제로 죽고 다치는 마당에 다른 병을 앓거나 건강이 좋지 않던 사람이 살균제를 사용하면 더 악화될게 뻔한 일이다. 그런데도 정부의 판정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관련성 낮은또는 관련성 거의 없음판정을 받은 피해자가 전체의 절반을 넘는다.

이들은 모두 정부가 주는 병원비와 장례비를 지원받지 못하고 공식 피해발표에도 빠지곤 한다. 정부가 제조사에 구상권을 행사해 지원금을 돌려받지 못할까 봐 관련성이 높은 등급을 받은 피해사례만 지원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2011년 역학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그때 제조사에 대해 수사를 의뢰하고 피해대책을 제시했어야 마땅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고 결국 제조사들에게 면죄부를 준 결과가 되었다. 살인사건이 발생해 누가 어떻게 사람을 죽였는지 밝혀냈다면 당연히 살인범을 체포해 처벌하고 피해자를 위로해야 하는데 살인범을 놔둔 채 피해자보고 소송하라고 했던 게 정부 처사였다.

걷고 자전거로 이동하면서 만나는 시민들마다 원인이 밝혀졌는데도 사건이 마무리되지 않았느냐며 의아해 한다. 피해자들의 사진이 담긴 현수막을 들여다 보면서도 설마 생활용품이 그랬을까?하는 표정이 읽힌다. 대기업이 만들어 '18'년동안 겨울철에 800만명이 넘는 국민이 사용한 생활제품이 어린아이와 산모를 143명이나 죽게 했다는 말을 듣고 누구나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사실이다. 농약이나 마찬가지인 살균제를 가습기 물통에 넣어 사용하라고 했고 아이와 환자가 있는 대부분의 가정에서 겨울철마다 방문을 꼭 닫고 밤새 가습기를 틀어 놓고 잤다. 아이들이 감기에 걸리면 병원에선 습기를 조절하라고 했고 그 말을 들은 보호자들은 가습기를 더 사용했고 살균제를 더 열심히 넣었다. 사망자가 143명이나 나온 이유다.

사람들이 믿기 어려운 사실이 하나 더 있다. 가습기살균제라는 제품은 한국에서만 만들어 팔았다.세균이나 바이러스를 죽이는 살균화학물질에 사람들이 노출되면 마찬가지의 건강피해를 입는다는 사실을 대한민국의 기업, 정부, 전문가들만 몰랐던 걸까?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일본에서 발생한 수은중독사건 미나마타병과 독일에서 산모가 먹은 입덧완화제 약으로 인해 1만여명의 기형아가 발생한 탈리도마이드 사건에 견줄만한 세계적인 환경참사다.

이들 세가지 사건의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사건을 일으킨 기업들이 하나같이 책임을 회피하고 피해자를 외면했다는 사실이다. 돈에 눈먼 기업과 자본주의의 본 모습이 원래 그런 건가 싶을 정도다. 피해자를 외면한 건 일본과 독일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도 마찬가지다. 외면하고 외면하다 십수년이 지나 미봉책으로 사건을 마무리 해온 패턴이 하나 같이 똑 같다. 국가와 정부의 속성 역시 그런 것인가 한숨이 나온다.

유족과 시민운동가가 방문하는 곳마다 환경단체 회원과 다른 피해자들이 마중 나와 함께 해주고 있다. 유족아빠가 제출한 진정서를 꼼꼼하게 살펴보던 지방의 한 검찰청 민원실 책임자는 접수증을 발급해주며 이런 놈들은 당연히 처벌해야 합니다. 성과가 있기를 바랍니다하고 말해주었다. 검찰청을 나서며 피로가 싹 가셨고 힘차게 자전거 페달을 밟을 수 있었다. 항의행동은 2주동안 진행되는데 주말에는 여주의 한 절에 안치된 엄마와 태아를 찾아 간단한 제를 올린다. ‘당신과 아이의 억울함을 풀기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그리고 미안하다고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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