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고 학교의 '죽음의 먼지'...열 아홉 청년은 왜 암에 걸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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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고 학교의 '죽음의 먼지'...열 아홉 청년은 왜 암에 걸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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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7 Oymynews

이성진(28)씨는 환경성 석면 피해자다. '죽음의 먼지'로 불리는 석면은 그의 왼쪽 폐에 악성중피종이 자라게 했다. 악성중피종은 흉막에 생기는 악성 종양이다. 국가도 그를 석면 질환자로 인정했다. 지난 2013년부터 석면피해구제법에 따라 그는 요양생활수당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는 잘 알려지지 않은 석면 피해자다. 지금껏 잘 알려진 피해자들은 석면 광산에서 일하거나 그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는 둘 다 해당하지 않는다. 한때는 국가도 그를 찾아내지 못했다. 석면피해구제법이 제정된 지난 2011년, 그는 '석면 암'으로 왼쪽 폐를 절개했다. 국립암센터에서 '악성중피종' 진단을 받았으나 국가의 지원은 그에게 닿지 않고 비껴갔다.

지난 12일, 그와 전화 인터뷰했다. 그는 열아홉 살, 꽃다운 나이에 1급 발암물질인 석면에 노출된 사연을 풀어놨다. 누구나 석면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성진씨는 충남 아산시에서 태어났다. 2010년 10월 어느 날, 몸이 펄펄 끓었다. 체온계로 재보니 40°C가 넘었다. 지독한 독감에 걸린 줄 알고 동네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았다. 엑스레이와 컴퓨터단층촬영(CT), 혈액검사를 했다. 의사는 폐결핵 같다고 했다. 왼쪽 폐 흉부에 물이 차 있다며, 주사기로 물만 빼면 별일 없을 거라고 했다.

그는 그 말을 믿었다. 하지만 며칠 후 그의 왼쪽 폐에 다시 물이 차올랐다. 약을 먹어도 마르지 않았다. '큰 병원'에 갔다. 폐결핵이 아니라고 했다. '더 큰 병원'에 갔다. 국립암센터는 조직검사 결과 악성중피종이라고 진단했다.

의사는 악성중피종이란 낯선 의약 용어를 '석면에 노출되어야 걸리는 암'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석면이 정확히 어떤 물질인지 몰랐다. 집 주변에 석면 광산도 없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의사에게 뜻밖의 말을 건넸단다.

'어릴 적 살던 집이 슬레이트 지붕이었다. 바로 옆에 성진이 고모 집이 있었는데 아이가 4살 때 정도에 슬레이트집 허무는 공사를 했다.'

열아홉 살 청년의 꿈을 갈아먹은 '석면 암'

그제야 그는 어린 시절 동네에 널브러져 있는 슬레이트를 장난감 삼아 놀던 때가 떠올랐다. 의사도 '어린 나이에 석면에 노출돼 악성중피종에 걸린 것 같다, 이렇게 어린 환자는 처음이다'라고 놀라움을 표했다고 한다.  

"최대한 빨리 수술과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암세포가 커져 있었다. 의사 선생님이 '수술을 하다가 죽을 수 있다', '수술이 잘 되어도 병원 생활을 하다가 죽을 수도 있다'고 말하는데 두려웠다. 처음 느껴보는 공포감이었다. 마침내 수술 날짜가 잡혔고 9시간에 걸친 수술이 진행됐다. 그리고 눈을 떠보니 처음 와보는 중환자실이었다."

'석면 암'은 열아홉 살 청년의 꿈을 갈아먹었다. 항암 치료를 받기 위해 잘 다니던 직업학교를 그만뒀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남들보다 일찍 사회생활을 하고자 선택한 길이었는데 1년을 못 다녔다. 친구들이 여행을 가고 연애하는 동안 병원과 집을 오가며 2015년까지 13번의 항암 치료와 33번의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하루하루가 생지옥과 같은 나날이었다.

"항암치료가 길어지다 보니 어느 순간 항암제만 봐도 속이 울렁거리고 헛구역질이 나왔다. 항암 치료 때는 밥을 안 먹는 데도 그랬다. 약이 세서 그런지 몸에서 거부 반응이 나타났다. 심지어 헛구역질을 심하게 하다가 초록색 위액이 나온 적도 있다. 방사선 치료도 다르지 않다. 하루는 심장에 물이 차서 숨 쉬는 게 어려웠다. 방사선 치료는 보통 집과 병원을 오가며 받는데 너무 힘들어 입원하기도 했다. 치료가 끝나니 67kg이었던 몸무게가 51kg이 돼 있었다."

항암 치료는 육체적 고통을 남겼다. 허구한 날 알 수 없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밤이면 진통때문에 잠을 못 잤다. 이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남들은 몰랐다. 만성진통제와 마약성 패치를 끼고 살았다.

항암 치료가 끝나자 '재발'과 '생계', '미래'에 대한 공포감이 밀려 왔다. 인터넷에서 석면 피해를 겪고 있는 사람들을 수소문했다. 충청남도 홍성의료원에서 건강 석면피해자 건강관리 서비스사업을 하는 걸 알게 됐다. 이를 꽉 깨물고 마약성 패치도 끊었다. 이건 의료보험이 안 됐다. 지난해엔 6년간 먹었던 마약성 진통제도 중단했다. 언젠가 사회에 나가려면 약 없이 고통을 견뎌야 했다.

"꽃다운 20대를 거의 병원 생활만 하면 보냈다. 청춘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다는데 석면 피해로 9년간 청춘을 잃었다. 사회생활과 연애, 여행 등 하고 싶은 건 많은데 할 수 있는 게 없다. 친구들을 만나기 시작한 것도 얼마 안 됐다. 지금은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가벼운 운동을 하고 있다.

생활은 현재 석면피해구제법에 따라 국가가 주는 138만 원의 요양생활수당이 전부다. 오는 2021년에 갱신해야 하는데. 주변에서 탈락하는 사례를 봐서 그런지 날짜가 다가올수록 불안하다. 건강이 회복되면 사회생활도 해야 하는데 막막하다."


2009년 전면 금지했으나 아직 곳곳에 남아 있는 석면
    

2011년 석면 피해에 의한
 2011년 석면 피해에 의한 "악성중피종" 판정 받은 환경성 석면 피해자 이성진씨
ⓒ 환경보건시민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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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이씨는 특별한 동행에 나섰다. 환경보건시민센터와 함께 그가 살았던 옛집과 학교 등을 찾아갔다.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다. 그는 늘 자신이 석면 피해자가 된 이유를 알고 싶었다. 옛집과 모교 등을 찾아갔다.

환경보건시민센터에 따르면, 이씨의 옛집 지붕에서 채취한 석면 슬레이트를 분석한 결과 35%의 고농도 백석면이 검출됐다. 이씨가 다녔던 초등학교 교실과 복도 천장도 석면이었고, 학교 앞 학원 건물에선 백석면이 3% 함유된 석면 천장재가 발견됐다. 2009년 정부가 석면 사용을 전면 금지했으나 아직 과거에 사용된 석면이 곳곳에 남아 있던 것이다.

"현장을 둘러보니 예상보다 석면이 사용된 곳이 많았다. 자라면서 이렇게 일상적으로 석면에 노출된 것을 몰랐다. 최근 학교에서 대대적으로 석면 제거를 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석면 제거)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공사를 하는 사람, 이를 감독하는 사람, 그리고 많은 국민들이 석면 피해에 둔감한 것 같다. 석면 피해의 위험성에 대해 시큰둥한 것 같다."

그는 지난 2일 국회에서 열린 석면 피해자들의 증언대회에 나와 목소리를 냈다. 그는 이날 "석면 질환은 정말 위험한 질병이다, 사망자도 많고 수술과 항암치료를 한다 해도 원인이 뚜렷하지 않은 통증이 있다"라며 "창창한 젊은 청년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가 석면 피해를 입지 않도록 방치된 석면들이 안전하게 철거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말했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 따르면, 석면피해구제법이 시행된 지난 2011년부터 올해 6월 30일까지 환경성 석면 피해 인정자 수는 3722명이다. 5400명이 신청했으나 69%만 석면 피해를 인정받았다. 3722명 명 중 1366명(37%)은 사망한 것으로 조사됐다.

석면에 노출된 잔인한 노동환경... 직업성 석면 피해자
 


이씨와 같은 환경성 석면 피해자만 있는 건 아니다. 산업재해로 인정된 직업성 석면 피해자도 있다. 이재원(56)씨가 여기에 속한다. 그는 2018년 동남권 원자력의학원에서 석면에 의한 '흉막 중피종' 판정을 받았다. 흉막에 종양이 생긴 것이다. 폐 60%를 절개했다.

그는 33년간 석유화학 플랜트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했다. 원유 탱크를 제작하고 보수했다. 원유 탱크에 연결된 파이프를 손보거나 보온재를 철거하는 일도 그의 몫이었다. 하지만 일용직 노동자인 그에게 보호장비는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다.

"플랜트 건설 현장에선 석면이 함유된 건설자재가 널리 사용됐다. 석면이 불에 붙지 않아서 원유탱크를 만들 때도 쓰였다. 그래서 보수공사를 하거나 철거할 때 석면 가루가 반짝반짝 휘날렸다. 하지만 2~3일에 한 번꼴로 보호장비가 지급됐다. 이마저도 눈치를 봐야 했다. 보호장비를 타러 갈 때마다 현장 감독관은 타박을 했다."

그는 석면에 노출된 잔인한 노동환경에 직업성 석면 피해자가 됐다. 산업재해를 인정받아 직업성 석면 피해자가 된 경우는 드물다. 수치도 이걸 증명한다. 한국환경기술산업기술원에 따르면, 2011년~2019년 3월 기준 산업재해가 인정된 직업성 석면 피해자 수는 274명에 불과하다. 

"플랜트 노동자 중에 석면 피해자가 많다. 일용직이 대부분이라 근무한 이력을 증명할 수 없어 (석면피해구제) 신청을 못 하는 것이다. (동남권) 원자력의학원이나 울산에 있는 병원에 가면 석면 피해로 암 투병하는 사람들이 많다."

조선소나 석유화학 플랜트 건설 노동자가 석면 피해를 입는다는 건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다. 하지만 플랜트 건설 노동자들의 석면 피해를 조사한 자료가 있다. 지난 2018년 9월 전국플랜트건설노동조합 울산지부는 조합원 120명을 대상으로 CT 검사를 통해 석면 피해 여부를 조사했다. 조사 결과 130명 중 43명(35.8%)이 폐 질환 소견을 보였으며 14명은 석면 노출로 인한 폐 질환 환자(11.7%)로 조사됐다.

"석면 피해가 20~30년 뒤에 나타나서 그런지 사람들이 겁을 내지 않는다. 석면 암(악성중피종)에 걸리면 보통 1년 안에 사망하는데도 그렇다. 내가 사람들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폐가 40% 남아 숨을 제대로 못 쉰다. 산소발생기를 코에 달고 살고 있다. 그리고 지난해 9월부터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받는데 지난 5월 (폐에 종양이) 재발했다. 의사가 더 이상 폐를 절개할 수는 없단다. 이제 길이 없는 것이다. 플랜트 노동자들의 잔인한 노동환경이 바뀌길 바란다. 사람들이 석면 피해에 대한 위험성을 제대로 알았으면 한다"

석면질환은 불치병
 

19일, 서울 강동구청 앞에서 한산초 학부모 비대위가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석면 철거공사에 문제가 있다며, 기자회견을 열고 안전대책을 요구했다.
 2018년 11월 19일 서울 강동구청 앞에서 한산초등학교 학부모 비대위가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석면 철거공사에 문제가 있다며 기자회견을 열고 안전대책을 요구했다.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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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석면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이성진씨처럼 석면 슬레이트 지붕 밑에서 살고 석면 천장재를 사용한 학교를 다니거나 학원에 가는 것만으로 폐에 악성중피종이 발병할 수 있다. 시민단체가 석면 피해를 줄이기 위해선 국가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한국석면추방네트워크 스즈키 아키라 집행위원장은 "석면사용이 금지된 지 10년이 되었지만 석면 피해는 계속되고 있다, 국가가 나서서 농어촌과 대도시에서 방치돼 있는 석면슬레이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라며 "대대적인 범국민 캠페인도 방법이다, 시민들도 석면의 위험성에 대해 관심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재원씨처럼 일하다가 석면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석면 섬유는 열과 불에 대한 저항력이 높아 브레이크 라이닝, 건축재료, 전기기기 및 절연물 제조에 중요하게 사용됐다. 산과 염기에 대한 내구성도 있어 화학약품을 다루는 산업에 널리 사용됐다.

시민단체는 현행 석면피해구제법과 산업재해보상법을 개선해야 한다고 한다. 환경성 석면피해구제 수준을 직업성 산재보험 수준으로 끌어올려 둘 사이에 차이가 없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석면피해구제기금도 현재 석면을 사용한 기업에서 각출하는 방식으론 직업성 석면 피해자로 인정받기 어렵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스즈키 아키라 집행위원장은 "석면 질환은 치료되지 않는 불치병이다, 하지만 석면 암 피해자는 5년 동안 큰 변화가 없으면 완치된 것으로 여겨 피해구제에서 제외된다"라며 "2~3급 석면폐 환자들의 경우도 생활 급여를 기간만 지급하는 문제점을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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