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숨- 가습기살균제 참사 이렇게 해결하자 ⑩] 가습기살균제 참사, 박수갈채-손가락질 동시에 받는 전문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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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숨- 가습기살균제 참사 이렇게 해결하자 ⑩] 가습기살균제 참사, 박수갈채-손가락질 동시에 받는 전문가들

최예용 0 5150

가습기살균제 참사, 박수갈채-손가락질 동시에 받는 전문가들

[빼앗긴 숨- 가습기살균제 참사 이렇게 해결하자 ⑩] 전문가들이 얽힌 매듭 풀 수 있어


2017 6 19 오마이뉴스 안종주 

 

'안방의 세월호' '단군 이래 최대의 환경병'으로 일컫는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환경 비극입니다. 피해자가 나온 지 2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고 사건의 실체가 드러난 지도 6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사건의 전체 진상, 피해 배상, 재발 방지 대책 등과 관련해 해결된 부분보다 해결되지 않은 부분이 훨씬 더 많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엄청난 고통 속에 지내고 있습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문재인 정부 시대를 맞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그 가족모임, 환경보건시민센터와 함께 '빼앗긴 숨-가습기살균제 참사 이렇게 해결하자'란 연재물을 공동으로 기획해 10여 차례 싣습니다. 연재에서는 가습기살균제 참사 문제와 관련해 그동안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어떤 것이 있는지를 다룰 것입니다. 

여기엔 피해와 진상 규명, 그리고 피해 배상, 재발 방지 대책 등이 포함됩니다. 또 정부와 국회, 사법당국, 전문가, 시민사회, 기업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자세를 취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겠습니다. 고통 속에 하루하루를 힘들게 버티고 있는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대통령에게 보내는 눈물의 편지도 몇 차례 싣습니다. 당신이 바로 그 피해자가 될 수 있었던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대해 관심과 지지를 부탁드립니다. - 기자 말

가습기살균제 사태와 관련 아타 샤프달 옥시레킷벤키저 대표이사가 2일 오후 영등포구 콘래드호텔에서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을 하는 가운데, 산소호흡기 없이 생활이 불가능한 피해자(만성폐질환) 임성준(13)군과 가족 및 피해자들이 기자회견장을 찾아 항의하고 있다.
▲  가습기살균제 사태와 관련 아타 샤프달 옥시레킷벤키저 대표이사가 2016년 5월 2일 오후 영등포구 콘래드호텔에서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을 하는 가운데, 산소호흡기 없이 생활이 불가능한 피해자(만성폐질환) 임성준(당시13세)군과 가족 및 피해자들이 기자회견장을 찾아 항의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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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오후 서울역 인근 세브란스빌딩 지하 회의실에 낯익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산소통을 가지고 엄마와 함께 온 14살 임성준군의 모습도 보였다. 그는 갓난아이 때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입어 겨우 목숨을 부지한 뒤 10여 년째 산소통에 의지해 힘겨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아내나 아이를 잃고 피해 신고를 했으나 피해구제 등급에 해당하지 않는 3단계와 4단계 판정을 받은 이들과 그 가족들도 여럿 눈에 띄었다.

이날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새로운 기대와 바람을 가지고 참석했다. 그동안 정부는 매우 특이한 간질성 폐섬유화증 등 극히 일부 폐질환에 대해서만 피해 인정을 매우 엄격하게 해주었다. 이날은 여기서 벗어나 앞으로 천식에 대해서도 가습기살균제 사용과의 연관성을 파악한 뒤 피해구제를 해주기 위한 가습기살균제 천식 피해 판정 기준에 대한 의견을 모으는 자리였다. 언론이나 일반인들에게는 참석이 허용되지 않은 비공개 모임이었다.

이날 폐 이외 질환 검토위원회 공동위원장과 위원을 비롯한 전문가들과 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 등 정부 관계자들이 자리했다. 피해자와 가족들이 추천한 일부 전문가도 토론을 위해 참석했다. 천식 인정기준 초안 설명이 있은 뒤 피해자와 가족 가운데 일부는 정부와 전문가들에게 불만을 털어놓았다. 가습기살균제가 온몸으로 퍼져 다양한 질환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 일찍부터 제기됐는데 역학조사와 피해자 건강 조사, 동물실험을 통한 독성시험을 차일피일 미루었다는 것이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같은 일이 터지면 전문가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이유를 잘 알 수 없는 질병이 유행병처럼 퍼져 많은 사람이 죽어가거나 위험에 빠지면 그 원인을 밝혀내는 것은 거의 전적으로 전문가의 몫이다. 물론 여기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정부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1994년 최초의 가습기살균제 시판 때 전문가의 도덕성 추락

실제로 2011년 4월 서울아산병원 등 일부 대학병원에 급작스러운 호흡곤란 등의 증세를 호소하며 입원한 어린이와 산모가 잇따라 숨지거나 중태에 빠진 일이 있었다. 그때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에 참여한 이 병원 예방의학교실과 호흡기내과 교수 등의 노력으로 비교적 빠른 기간이라고 할 수 있는, 조사 착수 4개월 만에 그 원인이 가습기살균제임을 밝혀냈다. 전문가의 역할이 돋보인 대목이다.

하지만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서막은 일찍이 1994년 올랐다. 무려 17년간 전국 곳곳에서 제품이 인기리에 팔리는 동안 우리나라 감염병·역학·화학물질·독성 전문가 가운데 어느 누구도 유독성 가습기살균제의 유해성을 주목하지 않았다. 가습기살균제가 단군 이래 최대의 환경 참사가 된 데는 생활필수품처럼 팔리는데도 전문가들이 전문가로서의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한 것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가 있다.

1994년 ㈜유공(지금의 SK케미칼)이 세계 처음으로 CMIT/MIT 성분의 '가습기메이트'란 제품을 내놓으면서 국내 유명대학에서 안전성 실험을 한 결과 아무런 문제가 없는 무해한 제품이라고 밝혔다. 당시 유공의 의뢰를 받았던 대학교수는 지난해 8월 가습기살균제 진상규명 등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 나와 실제로는 자신이 제대로 된 독성시험을 하지 않아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당시 안전성 전문기관이나 전문가들이 양심적으로 실험을 했더라면 이 제품 자체가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란 점을 생각하면 통탄할 노릇이다.

또 가습기살균제로 인해 2006년부터 어린이와 산모가 집단적으로 대학병원을 찾았고 이 가운데 상당수는 사망하는 일이 벌어지자 대학병원 소아과를 중심으로 한 의사 전문가 집단은 그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이들은 원인규명에 실패했다. 그리고 무려 5년이란 세월동안 방역당국에 이 원인미상 질환을 알리거나 역학·예방의학 등 다른 의학전문가들과 합동 연구를 하는 것을 외면했다. 조기에 원인을 밝혀낼 수 있는 기회를 안타깝게도 놓쳐버렸다. 

전문가 집단에 쏟아지는 박수갈채와 손가락질

더불어민주당 양승조 가습기살균제 피해문제 해결을 위한 특위 위원장(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2016년 8월 30일 오전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열린 전문가 간담회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훈, 정춘숙, 남인순 위원, 이언주 간사, 양 위원장, 한정애 위원.
▲  2016년 8월 30일 오전 더불어민주당 양승조 가습기살균제 피해문제 해결을 위한 특위 위원장(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열린 전문가 간담회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훈, 정춘숙, 남인순 위원, 이언주 간사, 양 위원장, 한정애 위원.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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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참사와 관련해 전문가집단은 박수와 함께 손가락질을 받을 두 요소를 모두 갖고 있는 셈이다. 이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오는 8월부터 천식에 대해서도 피해자들을 구제해주기 위해 1년 가까운 노력 끝에 이날 초안을 만드는 데는 전문가들의 역할이 컸다. 

하지만 정부가 지난 6년간 굼벵이 피해자 인정과 지원 정책을 펴는 데 대해서 전문가 집단은 대체적으로 수동적인 자세를 취했다. 다시 말해 정부가 주는 연구 과제를 수행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데 그쳤다.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데는 소홀히 한 것이다. 

물론 한국환경보건학회 소속 교수 등 일부 전문가들은 가습기살균제가 문제가 된 초기에 정부가 피해자 조사 등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자 십시일반으로 연구비를 모은 뒤 피해자 방문조사를 벌여 조사보고서를 내는 등 전문가로서의 사회적 역할을 위한 나름대로의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문가 집단이 집단으로서 목소리를 내는 데는 피해자 등의 기대에 못 미친 것 또한 사실이다. 

전문가 집단이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대해 접근하는 방식이 소극적이다 보니 피해자를 발굴하고 이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 질환 확정과 피해 판정 기준을 마련하는 일은 너무나 더디게 이루어지고 있다. 참여하는 전문가들도 의학, 환경보건, 독성, 화학 등 이공계 학자와 일부 법학자·법조인 등으로 한정돼 있다. 사회학, 언론학, 심리학 등 다양한 사회과학자들의 참여도 절실하다.

문제 해결에 의학·자연과학자와 사회과학자 힘 합쳐야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의학이나 자연과학자들의 노력으로 완전히 해결할 수 있는 성격의 사안이 결코 아니다.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을 모두 아우르는 다학제적 연구와 함께 완전 해결을 위해서는 정치·사회적 합의 등과 같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피해 질환과 판정 기준 등을 위해 애쓰는 전문가들은 자신들이 지닌 역할의 한계를 알고 그것을 넘어서는 사안에 대해서는 현실을 인정하면서 그 다음 단계로 제때 넘어가도록 협조하는 솔직한 자세가 필요하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국가(정부)의 잘못이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과학자들의 역할이 필요하겠지만 법 전문가들의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관련해 우리 앞에 놓인 과제는 너무나 많다. 가습기살균제 구매가 너무나 오래전에 이루어진 일이어서 가습기살균제 구매·사용 사실을 객관적으로 입증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피해자와 가족들이 꽤 많다. 이를 잘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데도 전문가들의 아이디어와 목소리가 필요하다.

또 가습기살균제가 폐나 호흡기 계통뿐만 아니라 혈액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 다양한 장기와 조직에서 독성과 질병을 일으킨다면, 그리고 그 질병과 증상은 다른 많은 요인에 의해서도 일어나는 것이라면 어떻게 감별진단 할 것인가 하는 것도 난제 중 난제다. 의학적으로 증명하는데 오랜 세월이 걸릴지 모르며 증명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 전문가들이 집단지성으로 해결책을 만들어 정부에 제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관련해 전문가 집단은 공과가 모두 있다. 전문가집단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에게 진 빚을 생각하고 이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생각하는 전문가 윤리가 있다면 당연히 지켜만 보거나 홀로 모래알처럼 흩어져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힘을 뭉쳐 한목소리로 크게 외쳐야 한다. 전문가들이 상아탑이나 연구실 안에만 있지 않고 고통받는 피해자와 그 가족들과 함께할 때 해결이 어려워 보이는 많은 문제의 매듭이 하나씩 차례로 풀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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