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숨- 가습기살균제 참사 이렇게 해결하자 ⑦] '나쁜 과거'와 결별할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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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숨- 가습기살균제 참사 이렇게 해결하자 ⑦] '나쁜 과거'와 결별할때

최예용 0 5051
'안방의 세월호' '단군 이래 최대의 환경병'으로 일컫는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환경 비극입니다. 피해자가 나온 지 2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고 사건의 실체가 드러난 지도 6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사건의 전체 진상, 피해 배상, 재발 방지 대책 등과 관련해 해결된 부분보다 해결되지 않은 부분이 훨씬 더 많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엄청난 고통 속에 지내고 있습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문재인 정부 시대를 맞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그 가족모임, 환경보건시민센터와 함께 '빼앗긴 숨-가습기살균제 참사 이렇게 해결하자'란 연재물을 공동으로 기획해 10여 차례 싣습니다. 연재에서는 가습기살균제 참사 문제와 관련해 그동안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어떤 것이 있는지를 다룰 것입니다. 

여기엔 피해와 진상 규명, 그리고 피해 배상, 재발 방지 대책 등이 포함됩니다. 또 정부와 국회, 사법당국, 전문가, 시민사회, 기업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자세를 취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겠습니다. 고통 속에 하루하루를 힘들게 버티고 있는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대통령에게 보내는 눈물의 편지도 몇 차례 싣습니다. 당신이 바로 그 피해자가 될 수 있었던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대해 관심과 지지를 부탁드립니다. - 기자 말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제조사를 상대로 살인죄를 적용해 처벌해 달라는 내용의 형사고소장을 접수하기 위해 대검찰청사 앞을 지나고 있다.
▲  2014년 9월 5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제조사를 상대로 살인죄를 적용해 처벌해 달라는 내용의 형사고소장을 접수하기 위해 대검찰청사 앞을 지나고 있다. 
ⓒ 환경보건시민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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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 장관을 비롯한 행정부, 국회의원으로 대표되는 입법부, 판사가 일하는 사법부를 통틀어 삼권이라고 한다. 삼권은 서로 독립적으로 권한을 행사하지만 각 부 나름의 방법으로 인민의 삶 깊숙이 관여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도 어느 한쪽에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행정·입법·사법부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막지 못한 것과 참사의 성격을 알아차린 뒤 피해자 배상과 재발방지 대책 수립 등에도 어느 한 부의 책임이 아니라 권력 3부 모두에 책임이 있다. 지금까지 3부 모두 가습기살균제 문제와 관련해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상당한 책임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어느 곳도 아직 그 책임을 드러내거나 잘못을 성찰하지 않고 있다.

이들은 국민한테서 녹봉을 받고 있다. 국민의 피와 땀이 스며든 세금을 받아 생계를 꾸려가고 부를 축적하고 있는 3부 종사자들은 그에 걸맞은 밥값을 할 '무한 의무'가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들은 밥값을 제대로 치르지 않았다.

법·제도 미비 탓에 참사 일어났다면 그것도 국가 책임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벌어진 데 대해 어떤 이들은 시스템과 제도 미비 탓으로 돌린다. 민간 기업이 가습기살균제란 제품을 시장에 내놓고 인기리에 팔고 있을 때 이것의 안전성을 제대로 살펴볼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 주장에 동의를 하지는 않지만 만에 하나 동의를 한다고 해도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시스템과 법적·제도적 장치가 미흡했다면 이를 마련해야 할 의무가 행정부와 입법부 모두에게 있었다. 미국과 유럽 선진국들은 제대로 된 예방 시스템을 어떻게 갖추었는가. 사법부 또한 안전을 무시한 채 위해 상품을 파는 기업에 대해서 징벌적 배상이나 처벌을 할 수 있는 법이 마련돼야만 안전과 생명을 최우선 가치로 한 사법정의를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이것이 실행되도록 할 의무가 분명 있었다. 모두가 무관심하거나 안이했다.

정부는 참사의 규모가 어느 정도 드러나고 원인이 밝혀진 뒤에도 억울한 피해를 입고 신고조차 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잘 알면서도 소홀히 했다. 자신의 배를 채우는 데는 열성을 올렸으나 밥값을 제대로 지불하는 일에는 젬병이었다. 관료들에게 약방의 감초처럼 늘 따라붙는 '복지부동' '복지안동'이 가습기살균제 참사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이는 가습기살균제 건강피해 백서와 2016년 국회 국정조사 때 여실히 증명된 바 있다. 

솜방망이 수사-SK케미칼과 김앤장에 약한 모습 드러내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회원들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가족들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 본사 앞에서 ‘가습기 살균제 참사관련 SK케미칼 규탄, 검찰수사 확대 촉구 기자회견’ 열고 SK케미칼에 대한 검찰의 조속한 수사를 촉구했다.
▲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회원들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가족들이 지난해 6월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 본사 앞에서 ‘가습기 살균제 참사관련 SK케미칼 규탄, 검찰수사 확대 촉구 기자회견’ 열고 SK케미칼에 대한 검찰의 조속한 수사를 촉구했다. 
ⓒ 최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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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검찰은 피해자들이 가습기살균제 회사들을 일찍이 고발했음에도 실제 본격 수사하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검찰총장 아들이 가습기살균제로 죽고 검사 수십 명의 아들이 같은 피해를 입었다고 가정할 때도 그렇게 남의 일처럼 여기는 수사를 했을까. 에스케이케미칼을 비롯한 여러 대기업들과 김앤장에 대한 수사는 얼마나 열성을 가지고 했는가. 정부 부처와 정부기관에 대한 수사를 하고도 왜 그 결과를 발표하지 않는 것인지 이제라도 대답을 해야 한다. 혹 부실수사의 민낯이 드러날까봐 쉬쉬하는 것은 아닌지 해명을 해주길 바란다. 

입법부 또한 정부 탓만 하고 있을 처지가 못 된다. 2013년 야당을 중심으로 가습기살균제 피해 구제법을 국회에서 발의했으나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지금의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의 교묘한 반대로 무산됐다. 당시 이 법이 통과됐더라면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분명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을 터이다. 국회는 지난 1월 우여곡절 끝에 피해구제법을 통과시켰지만 가습기살균제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허점이 너무 많다. 법 조항 곳곳에 지뢰가 설치돼 있다.

사법부도 가습기 살균제 참사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해

사법부에는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의아해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법부가 제구실을 하지 못한 것은 그리 크게 외부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몇몇 문제가 분명 있다. 최대의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업체인 다국적 기업 옥시레킷벤키저를 상대로 피해자들이 민사 손해배상 소송을 벌일 때 재판부는 이 회사의 잘못과 은폐 시도가 확실한데도 피해자와 기업 간 소송 전 화해를 하도록 종용한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엄한 철퇴를 가해기업에게 내리쳐 현행 법 테두리에서 가장 엄한 중벌을 내릴 의무가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또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최근 이루어진 서울대교수 등 가습기살균제 연루 일부 피고인에 대한 솜방망이 판결에 대해서도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과연 이들은 사법정의를 실천하고 있는가, 밥값은 제대로 하고 있는가하는 의문을 던지면서 말이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행정부가 안전 행정을, 생활화학물질 안전 관리를 제대로 했더라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비극이었다. 국회가 제대로 된 법을 만들어 이런 유해·불량제품이 팔리는 것을 원천봉쇄했더라면 오늘의 고통은 없었을 터이다. 시민의 생명을 외면하고 돈벌이에 급급한 기업과 안전 행정을 게을리하는 관료에 대해서 죽비로 내려치는 판결을 사법부가 평소에 강력하게 했더라도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참 나쁜 과거'와 확실히 결별할 때

이제 우리는 '참 나쁜' 과거와 결별을 확실히 선언해야 한다. 그 선언에 행정·입법·사법부 모두 참회하는 마음으로 동참해야 한다. 적폐와 나쁜 관행을 뿌리 뽑아야 한다. 3부 모두가 그 어떤 힘이나 압력에도 견디는 아주 촘촘한 안전 그물코를 지닌, 생명을 지키는 그물을 만들어 우리 사회에 드리운 유해물질과 위험을 걷어 올려야 한다. 

먼저 정부는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국가 책임도 있다는 선언적 내용에 그치지 말고 정말 참사를 막지 못하고 참사 후 대응 부실이 왜 정부 곳곳에서 이루어졌는지를 살펴야 한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이 있듯이 정권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설립 정신에 걸맞게 독립적인 감사원이 그 과정을 세밀하게 들여다보아야 한다. 

이를 통해 누구누구를 처벌하겠다기보다는 실패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의문의 죽음에 대해 부검의가 인체 장기 곳곳에 대해 죽음에 이르게 된 흔적의 파편을 찾듯이 해야 한다. 그래야 다른 억울한 죽음을 방지할 수 있다.

새로운 생명·안전 패러다임과 정치·사회적 합의만이 문제 해결

정부는 이와 함께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 방식이 아니라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세계에서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일어난 전대미문의 재앙이다. 이러한 환경 재난에는 우리가 그동안 알지 못했던 많은 일들이 씨줄날줄로 얽혀 있기 마련이다. 악마의 물질이 우리 몸을 할퀸 상처를 과학(의학)이라는 불확실성이 있는 도구로 모두 찾아내기는 어렵다. 물론 그런 노력은 해야겠지만 그렇게 해도 풀리지 않는 문제가 분명 생길 터이고 이는 과학이 아닌 정치·사회적 합의로 풀어야 한다. 

입법부 또한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막을 수 있는 법을 미리 만들지 못했고 제때 피해자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피해구제법을 입법하지 못했다는 성찰을 늘 하고 이를 토대로 재발 방지 대책이든, 피해자 지원책이든 마련해야 한다. 제2의 가습기살균제 참사,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생활 속 화학물질 사용으로 인한 생명·건강 위험이 생기는 것을 예방할 수 있는 효과적 제도 장치가 어떤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살생물제관리법만 제정하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인지 살펴야 한다.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는 법과 제도는 그 내용도 중요하지만 필요할 때 제때 만드는 것 또한 중요하다.

사법부 종사자, 즉 재판관들은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같은 성격의 국가재난에 대해서 판결을 할 때, 엄격한 법 해석이나 증거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피해자와 그 가족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처럼 지녀야 한다. 가습기살균제 재판에서 합의 종용이 왜 일어났는지, 과연 그것이 사법부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이었는지를 성찰하고 고백해야 한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면 밥값을 하지 않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행정·입법·사법부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곳이다. 3부 종사자들은 국민의 종복들이다. 밥값을 해야 한다. 무전취식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관련해 그들이 보여준 자세는 군림하는 모습이었다. 이제 세상은 달라져야 한다. 이명박근혜 시절의 행정·입법·사법부의 행태를 그대로 보여준다면 시민들은 다시 촛불을 들 수밖에 없다. 시간과 망각도 결코 끌 수 없는 촛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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