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타운' 해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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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타운' 해운대

최예용 0 9423

[경향시평]‘원전타운’ 해운대
정희준 | 동아대 교수·문화연구, 경향신문 2012년 12월 18일자

 

올해 해운대가 해수욕장 아닌 이야기로 언론에 자주 등장했다. 일본인들이 해운대에 집을 산다는 것이다. 지난해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인들이 쓰나미로부터 안전한 부산으로 “몰리고 있다”고 한다. ‘재팬타운’ ‘리틀 도쿄’ ‘일본인들, 부산에 살리라’ 같은 제목까지 달면서 말이다. 지리적으로도 가깝고 고급 주상복합아파트가 많아 일면 그럴듯해 보인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해운대가 ‘안전’하다고? 쓰나미가 무서워 살 곳을 찾는데 바닷가인 해운대로 온다는 것은 한마디로 난센스요, 코미디다. 더 웃긴 건 일본을 공포에 떨게 한 또 다른 이유는 후쿠시마 원전폭발이었는데 일본인들이 해운대로 온다는 주장이다. 엎어지면 코 닿을 데에 바로 그 ‘원전’이 있는데?

고리원전은 과연 어떤 원전인가. 국내 최초의 원전인 고리 1호기는 건설 당시 기술부족으로 인해 세 조각을 붙여 만든 ‘용접원자로’인데 2007년 30년의 수명이 만료됐음에도 이명박 정부가 10년간 재가동을 승인해 지금도 돌아가고 있다. 그러니까 ‘중고차’ 수준이 아니라 ‘폐차’ 수준의 ‘폐원전’을 땜질해서 계속 쓰고 있는 것이다. 고리 1호기는 최다 원전사고의 주인공일 뿐 아니라 얼마 전엔 ‘완전정전사고’까지 발생했던 ‘공포의 원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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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원전은 한마디로 ‘원전타운’이다. 현재 6기가 가동 중이고 추가로 6기가 건설된다. 12기의 원전이 한곳에 옹기종기 모여 앉는 꼴이다. 게다가 고리원전 30㎞ 안에는 340만명의 인구가 밀집되어 있다. 그린피스도 “세계 어디에도 이런 곳이 없다”면서 만약 고리원전에서 사고가 나면 후쿠시마 사고를 훨씬 능가하는 세계적 대재앙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울산지역 환경단체들이 실시한 모의실험 결과 고리 1호기에서 사고가 발생할 경우 바람이 울산 쪽으로 불면 40만명이 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울산이 그 정도니 만약 바람이 부산 쪽으로 불면 사망자가 100만명을 훌쩍 넘길 것이다. 이는 과장된 수치가 아니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인해 25년간 20만명이 사망했고 영국의 인디펜던트지는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한 사망자가 앞으로 100만명에 이를 것으로 보도했다.

해답은 간단하다. 수명이 끝난 원전은 가동을 중단하면 된다. 고리 1호기는 국내 총발전량의 1%밖에 안되니 ‘전력수급’ 가지고 시비 걸 필요 없다. 현재 운영 중인 것, 건설 중인 것은 제 수명까지 쓰고 그 기간에 대체에너지, 신재생에너지 개발에 나서면 우리도 탈원전 할 수 있다.

아까 ‘일본인 해운대 이주’ 기사로 다시 돌아가자. 일본인들이 쓰나미와 원전을 피해 해운대로 이주한다는 게 이상하다 싶었는데 부산의 한 언론이 사실을 바로잡았다. 일본인 전입자의 증가는 대지진 이전과 다를 바 없는 미미한 수준이고 해운대에 집을 사는 일본인 대부분은 재일교포라는 것이다. 결국 ‘일본인 해운대 이주’ 기사들은 건설업계를 대변하는 ‘청탁기사’였던 것이다.

나 역시 해운대에 사는데 원전 생각만 하면 잠이 안 오기도 하고 길을 걷다 불안해지기도 한다. 전쟁은 나중에 복구라도 하지만 원전이 잘못되면 아예 사람이 접근도 못하는 ‘죽음의 땅’이 된다. 대출이 듬뿍 들어가 있지만 하나뿐인 내 재산 어쩌라고. 나는 그래서 요즘 이사를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도 원전을 찾아 해운대로 이사 오는 사람들은 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어쩌면 이사를 가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이번 대선에 나선 한 후보가 노후 원전의 폐기를 공약으로 내걸었기 때문이다. 다른 후보는 고리 1호기 같은 ‘폐원전’조차 폐기할 생각이 없다고 한다. 나의 선택은 선명해졌다. 안전해지는 데다 집값까지 오를지 모를 테니.

‘원전국가’를 주장하며 폐원전마저 계속 사용하자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콜라를 마시려면 자판기에 동전을 집어넣어야 하듯 ‘전력수급’을 위해서라면 ‘국민의 목숨’이라도 밀어 넣겠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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